콘텐츠 시장의 역사와 국내 음악 씬의 양극화
2000년대 중후반만 하더라도 음악은 가장 ‘가벼운’ 콘텐츠였다. 왜냐고? MP3를 제외하고 당시 대중화된 하드웨어(MP4, PMP)를 이용하여 영상과 게임을 즐기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웠’으니까. 영상 한두개를 휴대하기 위해 우리는 파일들을 기기에 일일이 다운받아야 했고, 콘텐츠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마땅한 플랫폼도 없었다. 때문에 대중교통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음악이 유일했다. 요컨대 24/7 우리의 시간을 뺏을 수 있는 콘텐츠는 음악뿐이었고, 음악은 청춘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장 큰 문화 교집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AAA급 고사양 게임을 휴대하면서 즐길 수 있는 UMPC가 보급화되고 있는 시대다. 그 사이 우리는 스마트폰의 비약적인 대중화와 성능 향상을 경험했고, 과거 음악만이 독점적으로 누리던 ‘가벼움’의 속성은 현재 책, 영화, 드라마, 게임에게도 해당된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무슨 콘텐츠든 당장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다. 비단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시장도 커지면서 유튜브, 넷플릭스, 스팀 등 소비자가 간편하게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이 우후죽순 성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콘텐츠는 동종 업계 내부가 아니라 전체 산업 단위에서 우리의 시간을 뺏기 위해 경쟁중이다. 과거 넷플릭스가 그들의 경쟁사를 게임회사라고 역설한 이유가 있다. 음악은 그저 하나의 선택지다.
콘텐츠 유통 시장만 변화했을까? 플랫폼, 즉 뉴미디어라는 신대륙이 펼쳐지면서 제작 또한 대중화의 급물살을 맞았다. 영상의 경우 레거시 미디어가 아닌 일반인 제작자들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고, 소위 크리에이터라 불리는 이들은 수익과 인지도 면에서 모두 준 연예인급 지위를 누리고 있다. 물론 거대 자본이 들어가는 드라마와 영화는 ‘일반인’의 참여가 한정적이지만, 유튜브, 트위치, 틱톡 등 가장 트렌디한 SNS에서 그들이 꽤나 많은 지분을 확보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웹툰, 웹소설 시장에는 현재도 끊임없이 신인 작가들이 유입되고 있다. 콘텐츠는 더이상 숙련된 전문가의 손에서만 탄생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말로 천하제일 콘텐츠 대전이며, 이 모든 것들이 당신의 시간을 뺏기 위해 음악과 경쟁한다!
음악의 입장에서 보면 언뜻 대공황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마냥 그렇지도 않다. ‘보는 음악’ 어쩌고 하는 시대부터, 감성을 담은 플레이리스트가 유행인 시기를 지나 지금의 대 숏폼 시대까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기 위한 시도는 늘 존재했다. 생각해 보면 음악은 OST를 기조로 다른 콘텐츠와 융합하거나 오디션 예능의 단골 소재로서 오랜 시간 자생을 도모했다. 특히나 지금 표준이 된 챌린지 문화는 ‘아무노래’ 시절부터 새로운 개념의 히트곡을 제시해 왔고 현재진행형이다. 숏폼 콘텐츠에서 음악을 제외하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음악 방송이 아니더라도 더 유의미한 쪽으로 홍보할 수 있는 채널은 더 많아졌다. 음악은 이제 그 자체보다는 다른 콘텐츠를 거쳐서 우리의 시간을 뺏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음악 씬 내부적으로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는데, 콘텐츠를 통해 아티스트 간 무한 경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물론 플랫폼이 성숙화되는 과정에서 알고리즘 및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인디 아티스트에게도 희망의 빛이 내린 듯했다. 레거시 미디어가 아니더라도 본인의 감성을 인정해줄 소비자를 찾기가 수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이스북 페이지/인스타 계정, 플레이리스트 채널, 그리고 지금의 숏폼 채널들까지 모조리 상업화되면서 추천과 광고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자금이 없다면 피칭의 ‘피’자도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선택지가 늘어나며 피로함을 느낀 사람들은 브랜드 파워가 있거나 본인 취향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쪽으로 변했는데, 그것을 뚫고 인식 범위 안쪽으로 들어오려면 상당한 콘텐츠 물량이 필요하다. 유튜브/트위치 등 크리에이터들의 채널 출연 피칭도 이제는 애매한 인지도로는 쉽지 않다. 다수 채널을 이용한 거대한 규모의 마케팅이 성행하는 상황에서, 알고리즘을 통한 스프레드마저 이제 돈이 있어야 이용 가능한 서비스에 가깝다.
따라서 콘텐츠 마케팅 파워가 제일 중요한 지금, 인디 씬이나 신인급 아티스트들은 고개를 들기 어렵다. 현재 차트에서 대형기획사 아이돌 제외 신인 아티스트를 얼마나 찾아볼 수 있을까? 케이팝 씬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나름 중형 기획사 출신 아이돌일지라도 대형 기획사 출신의 그들과의 앨범 판매량은 하늘과 땅 차이다. 최근 잘 알려지지 않은 아이돌들이 앨범을 냈을 때 멜론 좋아요 개수는 천 단위에 그치지 못한 경우도 많다. 거꾸로 하이브 내 레이블 아이돌들이 케이팝 그룹 앨범 판매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난 아이돌 제작의 경우, 마케팅에서 얼마나 힘을 쓸 수 있겠는가. 애초부터 예산이 적어 마케팅에 많은 파이를 할당할 수 없는 인디 씬 또한 마찬가지다.
요약하자면 평등해진 콘텐츠 시장으로 인해 음악은 영상 및 숏폼 콘텐츠에 굉장히 의존적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처음에는 알고리즘을 통한 ‘누구나 홍보’의 희망을 가져왔으나 대부분의 채널이 상업화되면서 마케팅의 양극화를 가져왔다는 흐름이다. 오디션 프로그램마저도 철이 지난 지금, 언더독 출신의 슈퍼스타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음악 콘텐츠의 대중성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바뀌어야 할 지도 모른다. 대중성은 누구나 공감하고 설득시킬 수 있다는 퀄리티의 개념이 아닌, 압도적인 자본으로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젠 국민 가수가 되겠다는 허망한 꿈을 좆는 것보다 서브컬쳐와 같은 더 콘셉츄얼하고 작은 시장을 노리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가. 과거 경제학자 갤브레이스가 지적했던, 공급 과잉으로 인한 풍요의 시대의 문제점은 현재 음악 씬에서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by 최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