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음을 통해 알아본 가장 현재의 음악 씬
올해로 21번째 회차를 맞이한 한국대중음악상(이하 '한대음')은 한국의 그래미 어워즈를 표방하고자 만들어졌다. 그만큼 해당 시상식의 후보에 오르며 수상을 하는 작품들은 대중적인 인기보다는 작품성과 음악성에 비중을 두고 평가된다. 이런 이유로 MAMA나 MMA 등 상업성과 대중성 위주로 편성되어 있는 다른 대중음악 시상식들과는 그 결을 달리하고, 국내의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매년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시상식이다. 팽창하는 케이팝 위주의 시상식들과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한대음은, 국내 음악 씬의 질적 발전을 위한 유일한 희망이자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올해에는 어떤 작품들이 수상했으며, 그것이 국내 음악 씬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다양한 후보군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다고 여겨지는 종합 분야의 수상작 및 수상자들(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올해의 음악인, 올해의 신인)을 둘러보며, 2023년 한해에는 어떤 아티스트의 노래와 활동들이 국내 음악 씬에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자.
가장 먼저 빈지노의 [NOWITZKI]이다. <쇼미더머니>의 잠정 폐지 이후,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는 힙합 씬의 하락세에 반박이라도 하듯이 해당 앨범은 떡하니 '올해의 음반'의 주인공이 되었다. 앨범 단위 작업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시되는 힙합 아티스트이기에 이 수상이 값진 성과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 수상은 단순히 작품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인정 외에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힙합 장르에서는 언제나 래퍼 개인의 이야기가 주 소재로 다뤄진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지나친 기믹 활용이나 금전적 성공 과시 등의 소재에 기대어 래퍼들은 자극적인 맛을 점차 첨가해 갔다. 더군다나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장 우선하여 추구하는 미디어의 영향으로, 자극을 추구하며 힙합에 첫발을 들인 대중들조차 이제는 오히려 그 맛에 피로감이 쌓이고 말았다.
[NOWITZKI]는 인간 '임성빈'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현시점에서 해당 앨범의 수상은 이제 개인의 진심이 담긴 음악이 통할 시기가 된 것임을 의미한다. [NOWITZKI]에서 다뤄지는 특정한 개인의 이야기는 오히려 평범한 한 개인의 이야기이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졌다. 그만큼 이 앨범은 각박해진 현 사회에 한껏 과하게 들어간 긴장감을 풀어준다. 이같이 이제는 진정성을 말 그대로 '진정성 있게 다루는' 아티스트가 살아남는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나 개인의 이야기를 가사로 푸는 힙합 씬에서는 이런 요소들이 더더욱 중요해질 것이며, 이제는 자극적인 맛이 아닌 힙합의 담백한 맛을 대중들에게 보여줄 차례이다.
2022년,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성공적인 데뷔 행진을 거행한 수많은 4세대 걸그룹들 중, 뉴진스는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그룹이었다. 데뷔 당해 한대음 시상식의 자리에서 '올해의 신인'으로 뉴진스가 불리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바로 1년 후, 뉴진스의 'Ditto'가 '올해의 노래'에 수상 된 것 역시 어쩌면 당연한 순서처럼 보인다. 그만큼 뉴진스가 내놓고 보여주는 음악들은 현시점 케이팝 씬에서 만들어지는 최고의 것으로 통하고 있고, 이 산업에서 컴백과 데뷔를 준비하는 그 어떤 누구라도 이제는 뉴진스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
단순한 메가 히트를 넘어, 'Ditto'의 수상은 케이팝이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올곧이 보여준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해외의 다양한 음악들, 그리고 국내보다는 해외에 더 집중하는 케이팝 씬의 경향으로 인해, 근래의 케이팝 음악들은 오히려 우후죽순 해외 음악의 레퍼런스를 누가 가장 먼저 따올 것이냐의 싸움으로 번져갔다. 그럼에도 뉴진스는 본인들만의 감성을 잃지 않고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자신들만의 것을 자연스럽게 혼합했다. 이에 대한 방증으로 다양한 해외 음악 매체에서 뉴진스의 음악들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였고, 그만큼 이들은 케이팝 씬을 넘어 해외 음악 씬에서의 한 방을 노릴 만큼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단순히 '팝'에서 'K'라는 번역 과정을 거쳐 번안곡 수준의 레퍼런스 차용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것을 찾고 살을 붙이는 작업이 앞으로의 케이팝 씬 내에서의 과제라는 것이다. 또 음악의 본질적인 퀄리티와 더불어 그것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모두에게 큰 의미를 전달했던 'Ditto'의 프로모션 방식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음악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여러 방안 또한 계속해서 논의될 포인트이다. 이처럼 이 씬에서 통용되던 공식을 깨트리고 깨트려야 국내 음악 씬의 가장 선두 주자라 볼 수 있는 케이팝이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의 음악인'의 주인공인 실리카겔로 시선을 넘겨보자. 이들은 현재 국내의 인디와 록 씬의 구세주로 여겨지고 있으며, 마땅히 그럴만한 커리어와 작품성을 지니고 있다. 바로 직전 음악 칼럼의 내용처럼 '록의 붐은 왔는가?'라는 대답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리카겔의 붐이 왔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제는 인디 팬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조차 이들의 이름을 외치고 있다. 일반 대중들에게 실리카겔의 부흥은 갑작스럽게 느껴지겠지만, 실리카겔은 사실 꾸준히 자신들의 것을 갈고 닦으며 성장해 왔다. 실리카겔의 한대음 수상 목록을 쭉 살펴보자. 이들은 데뷔 시기인 2017년 '올해의 신인' 수상 이후, 2022년부터는 2024년도까지의 모든 '최우수 모던록 노래상', 2023년과 2024년의 '최우수 모던 앨범상'까지, 실리카겔로서 받을 수 있는 모든 트로피는 싹쓸이했었다. 하지만 어딘가 아쉬우며 한 방이 부족하다고 느껴졌기에 장르 분야가 아닌 종합 분야에서의 이번 수상이 더욱 빛나고, '드디어'라는 생각이 들게 했었다.
작년 한 해, 실리카겔의 다양한 공연 활동과 선공개 싱글과 EP들의 완성판인 [POWER ANDRE 99]의 발매를 통해서 단순 구시대의 유물이라 취급받던 록이란 장르가 이처럼 새롭고 다채로운 색깔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알려주었다. 이번 수상이 실리카겔이 훗날 '록의 부흥은 우리가 이끌었다.'라고 당당히 대답할 동기부여가 되길 바라며, 또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 작품성을 겸비한 다양한 인디 & 록 아티스트가 계속해서 생겨나길 바란다.
'올해의 신인'의 주인공을 차지한 키스 오브 라이프는 작년 동일한 상을 받은 뉴진스의 의지를 이어받아, 2000년대의 감성을 그대로 가져왔다. 하지만 이들은 섬세함보다는 강렬함을 무기로 삼아 본인들만의 색채를 내뿜는다.
이들이 선보인 EP 두 장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음악 매체에서의 예술 표현이 결국 다른 무엇보다 플레이어 본인(들)에게 있음을 다시금 일깨우게 했다. 아무리 케이팝의 작품들이 방대한 산업적 구조와 기획의 힘을 받아 탄생한다 해도 결국 그것을 소화하는 아티스트의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그 음악이 진정성 있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언급된 '진정성'을 이번 '올해의 신인' 수상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키스 오브 라이프의 사례를 다른 K-엔터의 중소기업에서도 벤치마킹한다면 상향 평준화되어 살아남기 힘들어진 케이팝 씬에서도 돋보이는 활약을 보여주는 소위 '중소의 기적'이 계속해서 일어나지 않을까? 케이팝의 희망과 미래는, 분기에 걸쳐 신인 그룹들이 데뷔하는 대기업에서가 아니라, 바로 이들에게서 찾아보자.
이상의 네 아티스트들은 각자 다른 장르를 다루기에 이들은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보인다. 예술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럴 테지만, 이들은 그중에서도 더욱 본인들만의 것을 더욱 공고히 쌓아 왔고, 또 쌓아 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들려주고 보여준 음악과 퍼포먼스는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쳤음에 틀림이 없다.
음악은 우리의 삶에 떼려야 뗄 수 없는 문화 이상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 되었다. 이제는 다양한 음악들이 여러 채널을 통해 대중들에게 소개되고, 쉽게 찾아 들으며 소비된다. 이 가운데 매년 한 번씩 개최되는 한대음은, 우리가 한 해 동안 어떤 음악들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어떤 잠재된 의식들이 우리를 지배했는지 다시금 일깨우게 한다. 해당 칼럼에서 소개된 음악가들의 작품들과 또 이번 칼럼에서 다루지 못한 다른 장르의 음악들도 모두 적극적으로 찾아 듣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모두가 다양하고 좋은 음악과 문화를 한대음에서 참고 삼아 경험해보자.
By 동치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