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히라고 긁어놓고 긁힌다고 뭐라 하다뇨
힙합 특유의 거친 가사와 길거리에서 동료들과 함께 소위 ‘가오 잡는’ 뮤비까지, 개그 유튜버 ‘뷰티풀너드’가 부캐 ‘Men’s Tear’ (이하 맨스티어)의 이름으로 발표한 곡 ‘Ak47’은 발매 2주 만에 유튜브 조회수 600만 회를 돌파하고, 각종 음원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반 농담으로 “쇼미 이후 가장 히트한 힙합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곡이 먹힌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현재 힙합 씬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잘 캐치해 기믹으로 활용했고, 그 기믹을 음악으로까지 확장시켰지만 퀄리티가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클 것이다.
분명 기믹의 활용이라는 부분에서 힙합 팬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빈지노와 같은 랩퍼 혹은 몇몇 팬들은 오히려 이것을 재밌다고 칭찬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힙합에 대한 조롱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또다시’ 힙합이 머리채 잡혀왔다는 점에서 일부 팬들은 불편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른 영역에 있던 인플루언서의 행동으로 인해 힙합 씬 자체가 불타게 된 점에서 마치 몇 년 전 이찬혁의 “어느 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 라인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앞서 언급했듯이 대중들의 대다수는 이 곡을 듣고 오히려 현재 힙합 씬의 행태를 제대로 긁어서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즉, 비 힙합 팬들 사이에서 현재의 한국 힙합은 전혀 지지를 받지 못하는 장르라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대체 한국 힙합은, 아니 힙합 장르는 어쩌다 이렇게 추락했을까? 그리고 힙합 팬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사실 00년대 중반의 힙합은 이만치 부정적인 이미지는 아니었다. 리쌍과 에픽하이, 다이나믹 듀오와 같은 무브먼트 크루 출신의 팀들은 공중파에서도 이름을 알리며 제법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고, 언더에서도 소울컴퍼니와 빅딜 레코즈와 같은 레이블은 별다른 논란 없이 각자의 영역에서 음악만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 힙합 씬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07 ~ 08년 전후일 것이다. 스윙스와 산이로 대표되는, 소위 말하는 ‘미국 물 제대로 먹은 랩퍼들’이 들어오면서 미국 특유의 선정적인 펀치라인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고 힙합 특유의 Toxic 함이 제대로 발현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흐름은 언더 씬에서만 머무르고 있었기에, 대중에게 별 영향은 가지 않은 편이었다. 때문에 2012년의 (비프리에게는 욕을 먹긴 했지만) ‘용감한 녀석들’이나 그 이전 ‘나몰라패밀리’같은 프로들은 보다 힙합의 긍정적인 면, 자유롭고 할 말을 하는 랩퍼들의 사이다 모습이 부각된 긍정적인 패러디로 남는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2010년대로 들어서고 나서는, 정확히는 2013년 이후부터는 메이저 씬에까지 이러한 흐름이 확장되고 말았다. 2013년은 ‘쇼미더머니 2’의 성공으로 언더그라운드의 랩퍼들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산이의 ‘아는 사람 얘기’가 대중적으로도 큰 히트를 기록했던 시기이다. 스윙스는 ‘쇼미더머니 2’의 기세를 몰아 미국 힙합의 Control 디스전까지 가져왔던 것도 2013년이기도 하다. 그 후의 흐름은 모두가 알 것이다. 14년의 ‘쇼미더머니 3’은 대 히트를 기록하며, 한국 힙합을 저스트 뮤직과 일리네어 둘로 양분시켰으며 몇 년간 대중음악의 헤게모니는 힙합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한국 힙합의 전성기에는 이미지가 긍정적인 편이었다. 비록 (기리보이, 블랙넛과 같은) 저스트 뮤직 사단을 비롯한 많은 랩퍼들이 자잘하게 사고를 치고 다녀도, 혹은 인지도 있는 랩퍼가 마약을 하다 걸려도 일리네어의 호감 이미지는 워낙 굳건했으며, 랩퍼들 개개인이 캐릭터도 강했고 무엇보다도 랩 테크닉이 직관적이면서도 뛰어났기에 논란을 실력으로 덮을 수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Tvn 예능 ‘최신유행 프로그램’에서 힙합과 키드밀리를 패러디했을 때에도, 많은 대중들은 같이 힙합을 조롱하기보다는 키드밀리를 조롱한 본 프로그램을 비판했다. (물론 이 이유에는 키드밀리의 가정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PD의 실책이 가장 컸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힙합은 무엇보다도 직관적이지가 않다. 2010년 말 미국에서부터 유행해 코로나 전후로 한국에도 상륙한 멍청 트랩, UK 드릴, 레이지 힙합 등은 랩 테크닉보다는 중독성이나 기믹, 혹은 한 소절만 들어도 느껴지는 속칭 ‘야마’의 비중이 더 컸기 때문에 그들이 들고 나오는 음악들을 대중은 쉽사리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꾸준하게 외국 힙합도 체크해 온 힙합 팬들은 언에듀케이티드 키드, 호미들, 노스페이스 갓 등의 ‘본토스러운’ 음악에 열광했지만 대중들에게 그들은 그냥 ‘랩 못하는 기믹 랩퍼’ 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음악에서부터 이해받지 못하게 되니, 쇼미더머니 역시 자연스레 몰락하게 되고, 10년대부터 스멀스멀 쌓아 올려진 불호의 이미지는 어느덧 주류 의견으로 자리 잡고 만다. 힙합 프로그램에 피쳐링으로 나와서 “힙합은 안 멋지다”라고 디스를 하질 않나, 이름 없는 개그맨이 스윙스를 조롱하며 시계를 술에 빠뜨리자고 하지 않나. 그런 수모를 당해도 힙합 팬들은 감내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맨즈티어의 ‘AK47’은 그 어떤 곡보다 현재의 힙합 씬을 잘 조롱한 노래이다. 앞서 말한 랩퍼들의 기믹을 비롯해, 별 뜻 없이 센 척하는 가사, 그렇지만 전혀 멋있지 않은 랩퍼들의 외형, 직관적인 테크닉보다는 중독성과 자극성에 집중한 랩과 사운드, 그러다가 뜬금없이 가족을 언급해서 감성에 호소하는 것까지. 몇 년 전 ‘최신유행 프로그램’에서 지적된 내용에서 나아가 최신 트렌드까지 담아냈으며, 그 점을 단순한 유머가 아닌 힙합 곡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대단하긴 할 것이다. 그렇다. 이 노래는 기존 어떤 패러디보다도 훌륭하게 현재의 힙합 씬을 제대로 ‘긁은’ 노래이다.
결론에 앞서, 한국 힙합이 조롱받게 된 1차적인 원인을 살펴본다면 당연하게도 그들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갱스터스러워야 한다’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가사에는 혐오적인 내용을 담았고, SNS 등을 통해 각종 자극적인 워딩을 선보이기도 했다. 힙합이 모두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꼭 타파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사건사고에 휘말리지 않는 랩퍼 또한 너무나도 많다. 힙합에서만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것도 아닐뿐더러, 선을 넘은 랩퍼들과 쉴더들은 힙합 커뮤니티에서부터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가장 먼저 앞서서 질타하기도 한다. 멋이 없는 랩퍼들의 멋이 없는 뮤비 역시 가장 먼저 비판하는 것도 힙합 팬이다. 즉 모든 힙합이 혐오와 대중들이 싫어하는 요소들로 점철된 것은 아니란 뜻이다.
힙합 팬들은 이 곡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빈지노와 같이 관조적인 위치에서 ‘재밌다’고 유쾌하게 반응하는 것만이 옳은 반응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대다수의 팬들에게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AK47’은 철저하게 힙합을 ‘긁기 위한’ 의도로 탄생됐다. 이 노래에 문화에 대한 존중이라거나, 건전한 담론 형성의 기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퀄리티도 좋게 봐서 나쁘지 않다 정도이지 객관적으로 그들이 조롱하는 기믹 랩퍼들보다 뛰어난 것도 절대로 아니고 말이다. 그저 부캐 ‘맨즈티어’가 아닌 본캐 ‘뷰티풀너드’에서 그랬듯, 특정 아르바이트생과 롤 폐인, 공시생과 같은 MZ 세대들을 조롱했듯이, 조회수를 위해서 힙합 역시 조롱의 대상으로 삼은 것뿐이다. 거기에서 나아가 본 채널의 팬들은 “국힙 90% 정리”와 같은 말도 안 되는 댓글을 달며 힙합 씬을 더욱 긁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보다 못한 힙합 팬들이 이 영상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면 이찬혁 사건 때처럼 “이것 봐 유머를 유머로 보지 못하고 화만 내네 역시 힙합은 안 멋져!” 하고 2차로 조롱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즉 그들은 긁히라고 만들었고, 3자는 한 술 더 떠서 긁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긁혔고, 그걸 보고 또 ‘긁혔네’하고 웃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인 것이다. 그들은 대체 그들이 혐오하던 힙합에서 일부가 혐오하는 방식과 무엇이 다른가?
물론 힙합이 이렇게 유머 대상으로 언급된다는 것부터 힙합의 파이가 크고, 인지도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재즈의 경우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밈 외에는 전혀 언급조차 되지 않으며, 락 역시 이제야 떠오르기에 아직까지 그 누구도 밈으로 소비하지는 않는다. EDM의 경우 최근 해외를 중심으로 ‘WTF the DJs Actually do?’ 밈이 돌자 각종 DJ들이 그 밈을 활용하며 2차 창작했지만, 아무도 밈을 토대로 EDM을 진지하게 비판하거나 그 DJ 들에게 ‘긁혔네?’라고 추가로 조롱하지 않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유머로 받아들이는 것도 한계가 있다. 밈으로 소비하는 것은 괜찮지만, EDM처럼 최소한의 선은 지켜주어야 한다. 유머와 패러디의 명목으로 긁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렇다면 그것을 다시 비판하는 것도 자유라는 뜻이다. (힙합의 업보도 있으니) 긁는 것까지는 상관없다. 그것을 보고 긁히거나, 긁히지 않은 것도 개인의 자유이다. 그렇지만 긁힌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긁는 방식을 지적하는 것 또한 잘못이 아니고 말이다. 힙합을 싫어하는 이유가 혐오를 해서 싫은 것이었다면, 적어도 같은 맥락으로 힙합을 혐오하는 ‘피장파장의 오류’는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 혐오하며 추락하기에는 음악계에 남겨진 숙제가 너무 많다.
By 베실베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