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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Apr 01. 2024

어도어 하청업체 아닙니다

바나는 어떻게 한대음을 휩쓸었나


한대음에서 벌인 무력시위


'뉴진스의 아버지'. 바로 뉴진스(NewJeans)의 메인 프로듀서인 250을 지칭하는 말이다. 지난 2022년, 그는 뉴진스의 데뷔 EP [New Jeans]를 프로듀싱하면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Attention과 ‘Hype Boy’는 강력한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한국 대중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뉴진스를 제작한 어도어(ADOR)의 대표 민희진이 발매 전부터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그를 "너무 잘하는 프로듀서"라고 언급한 것은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


250과 더불어 그가 몸담고 있는 비스츠앤네이티브스(이하 바나)라는 레이블도 주목을 받았다. 뉴진스의 앨범 크레딧에 유독 바나 소속 뮤지션들의 이름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250과 함께 뉴진스의 프로듀싱을 맡아서 ‘Cookie’를 탄생시킨 프랭크(FRNK)가 있었다. 이들은 각각 ‘Ditto’와 ‘OMG’를 통해 자신들의 프로듀싱 역량을 다시금 입증하기도 했다. 그리고 EP 2집 [Get Up]에는 기존의 250과 프랭크는 물론이고, 김심야와 빈지노까지 각각 ‘Super Shy’와 ‘ETA’에 작사로 참여했다. 이쯤 되니 각종 커뮤니티에서 '어도어의 하청업체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들리는 것도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바나는 한국대중음악상(이하 한대음)으로 대답했다. 작년 250의 [뽕]에 이어서 올해 빈지노의 [NOWITZKI]로 올해의 음반 리핏(repeat)을 달성하면서 자신들만의 작품성을 널리 알렸다. 두 앨범으로만 무려 6개의 트로피를 가져가면서 현시점 대중성과 예술성 모두 '미친 폼'을 보여주는 독보적인 레이블로 자리매김했다. 마치 '어도어의 하청업체가 아니라고' 무력시위라도 펼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바나는 어떻게 한대음을 휩쓸었을까?

바나에게 올해의 음반을 선물한 [뽕]과 [NOWITZKI]


 



꺼진 뽕도 다시 보자 


'뽕'이라는 단어는 그다지 세련되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각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트로트의 구수한 멜로디와 양산형 신디사이저, 단순하게 반복되는 디스코 리듬의 조합은 평론가들에게 진지한 관심을 받지 못한 채 고속도로 등지로 밀려났다. 그러나 250은 여기에 집중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들었던 뽕짝이 자신의 음악 인생을 열어준 포문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자신의 첫 앨범에 상징적인 의미로 뽕을 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바나는 250에게 촌스러움이 아닌 '장인정신'을 입혔다. 무려 5년에 걸친 시간 동안 전국을 뒤지고 다니면서 뽕에 대해 고민하고 배워나가는 과정을 '뽕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직접 옛날 악기들을 둘러보면서 소리를 탐구하거나 사교댄스를 배우면서 정서를 이해하려는 모습에서 그가 뽕이라는 음악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진짜 광기 앞에서 촌스럽다는 생각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출처 : BANATV)


결국 250의 치열한 노력과 바나의 장기적인 전략은 결실을 맺었다. '모든 것이 꿈이었네'라는 짧은 말과 함께 마침내 [뽕]을 집대성했다. "모두가 외면하고 있던 과거를 가장 앞선 방식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우리만의 정서를 관통하는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촌스럽다는 이유로 애써 멀리했던 뽕을 세련되게 풀어내면서 지난날을 돌아보게 만든 훌륭한 작품이었다. 이제 '뉴진스의 아버지'라는 수식어만으로 그를 설명하기는 어려워졌다.

(출처 : ONSTAGE)





그렇게 아티스트가 된다


'Carhartt의 스폰서 덕에 더는 못 사 입는 domestic'이라는 가사처럼 20대의 빈지노는 패션 센스에서 풍기는 세련된 이미지로 이목을 끌었다. 게다가 서울대라는 화려한 스펙까지 가졌으니, 이 정도면 반칙이었다. 그러나 빈지노의 음악에는 인간미가 있었다. ‘Smoking Dreams’나 ‘Always Awake’처럼 그는 미래에 대한 근심으로 방황하는 청춘들의 불완전한 감성을 대변했다. 특히 '내게도 마지막 호흡이 주어지겠지'라는 처연한 자기 암시로 시작되는 ‘If I Die Tomorrow’의 마지막 벌스는 그가 얼마나 진정성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면서 반전 매력을 뿜어냈다. 그야말로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출처 : KUKKA ENGLISH)


그리고 어느덧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미루었던 군복무를 마쳤고, 도끼(Dok2), 더 콰이엇(The Quiett)과 함께 머니 스웩을 보여주면서 힙합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일리네어는 사라졌다. 8년을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하면서 유부남이 되기도 했다. 말보로를 피며 고뇌하던 20대 청춘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안정적인 가정을 이룬 30대 아저씨로 변모한 것이다. 그래서 빈지노는 "계속해서 20대 청춘에 머무르는 사람이려고 하면 진짜 졸라 징그러운 것 같다"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을 여전히 청춘의 아이콘으로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여기서 바나는 자신들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했다. 이들은 빈지노를 스웨덴 남서부 항구에 위치한 말뫼라는 도시로 데려갔다. SM엔터테인먼트에 인터내셔널(International) A&R로 몸담으면서 수많은 해외 프로듀서들과 교류해 온 김기현 대표는 이곳에서 '송캠프'를 열었다. 지금까지 재지팩트(Jazzyfact)에서는 시미 트와이스와, 솔로 활동에서는 피제이(PEEJAY)와 주로 작업해 온 빈지노에게 다양한 해외 프로듀서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새로운 음악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것이다.

빈지노의 스웨덴 작업실을 구현한 광명 이케아(IKEA)의 쇼룸 (출처 : Living sense)


덕분에 빈지노는 주위의 시선을 차단한 채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했다. 그리고 [NOWITZKI]를 통해 달라진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침대에서/막걸리’에서는 혼자 침대에 있을 때의 우울한 감정과 부부로서 침대에 함께 있을 때의 행복한 감정을 대조하면서 포근한 신혼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Camp’에서는 군복무를 통해 한층 성숙해진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청춘의 이야기에서 아저씨의 이야기로. '내가 알던 빈지노'의 음악은 아니었지만 세대를 대변하는 그의 진정성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빈지노는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타이틀을 넘어 세대를 상징하는 진정한 '아티스트'가 되었다.

(출처 : ONSTAGE)





 역사는 진실을 말한다


이처럼 바나가 한대음을 휩쓸면서 독보적인 레이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티스트의 노력과 더불어 레이블의 치밀한 전략과 세심한 배려에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어도어의 하청업체'라는 소리를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었다. 


바나의 레거시는 이센스(ESENS)의 [The Anecdote]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슈프림팀(Supreme Team)의 해체로 솔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이센스에게 힙합 기반의 덴마크 프로듀서 오비(Daniel Obi Klein)를 소개해서 그가 자신만의 독특한 플로우를 살리는 진한 붐뱁(Boom bap)의 감성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또한 이센스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수감되면서 발매가 불투명해지자 내린 대한민국 최초의 옥중 앨범이라는 과감한 결단은 결과적으로 그가 앨범에서 풀어놓는 비뚤어진 이야기에 설득력을 입혔다. 마치 '힙합은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듯이 바나는 [The Anecdote]를 클래식으로 만들었다. 그렇다. 이들은 날 때부터 예술적인 레이블이었다.

바나라는 레이블을 세상에 알린 [The Anecdote]





 쓰리핏을 향해서


리핏이라는 타이틀에서 오는 무게감이 있다. 그저 올해만 반짝한 것이 아니라 씬을 압도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이 리핏을 넘어 '쓰리핏(three-peat)'을 달성할 수 있을지 지켜볼 차례다. 현시점에서 발매 주기가 길다는 폐쇄적인 면만 줄여준다면 바나의 시대를 알릴 수 있는 쓰리핏이라는 상징적인 업적도 불가능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by. J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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