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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Apr 15. 2024

케이팝 트렌드 톺아보기

현재 케이팝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

처음 아이돌이라는 형태를 보여줬던 1세대부터 거대한 글로벌 영향력을 지닌 4세대까지, 지난 수십 년간 케이팝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지상파와 케이블 TV 중심이었던 활동지는 SNS와 세계로 뻗어 나갔고, 케이팝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음악적 특징도 하나둘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4세대로 접어들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그들은 오랜 기간 고착화된 시스템을 단번에 바꾸었다. 


이미 수많은 매체에서 달라진 케이팝 트렌드로 이지리스닝, 영어 가사의 증가, 짧아진 곡 길이, 정규 앨범의 부재를 꼽았다. NewJeans의 'Attention'과 'Hype Boy'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이지리스닝의 시대가 열렸고, 틱톡의 막강한 홍보 효과는 3분 이내의 곡 길이와 고음 대신 중독적인 훅을 택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또한, 음악 외적으로도 세계관 및 공식 포지션의 부재, 정규 앨범의 선호 감소 등의 현상이 나타났다. 이렇듯 현재 케이팝은 다방면에서 많은 변화와 도전을 지속해서 꾀하고 있으며, 올해에도 어김없이 트렌드의 움직임은 포착되었다. 




1. 독자적 장르 구축 

RIIZE / TWS

MIXX POP으로 독자적 장르의 시작을 알렸던 NMIXX 이후 5세대에서는 줄지어 독자적 장르를 선보이고 있다. 자신들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셔널 팝(Emotional Pop)'의 RIIZE, 일상 속 아름다운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환상적이고 감각적인 음악인 ‘보이후드 팝(Boyhood Pop)’의 TWS, 모든 나날 속에서 함께하겠다는 아이덴티티를 강조하는 DAYS-POP(데이즈 팝)의 NOWADAYS까지. 보이 그룹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는 독자적 장르는 자신들의 컨셉을 강조하는 역할이자 다른 팀과의 차별점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독자적' 장르에는 모순이 있다. 바로 해당 장르의 부연 설명이 없다면 락, R&B 등 기존 장르에 편입되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도 이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일까, 세부 장르를 열거하며 화려한 소개 글을 장식하는 타 가수들과 달리 단출하게 POP 또는 댄스로 기재하여 해당 곡이 독자적 장르임을 강조했다. 더불어 장르에 대한 설명에도 기술적인 내용보다는 컨셉적인 내용만을 내세웠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곧 자신들의 독자적 장르는 그저 팀의 컨셉을 음악화한 것뿐이라는 말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5세대 보이 그룹의 독자적 장르는 기존 장르처럼 사운드로 구분 가능한 것이 아닌 팀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음악에 결부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언제든 누군가 이것이 정말 ‘장르의 정의에 부합하는가’라는 이견을 내비칠 수도 있는 것이 허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세대 보이 그룹이 독자적 장르를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4세대 보이 그룹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해 '보이 그룹 하락세'라는 말이 나올 때에 출범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려면 '보이 그룹의 노래와 컨셉은 매니악하다'는 편견을 깨트려야만 했다. 그렇게 그들은 4세대로 통칭되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Stray Kids에 반하는 가벼운 음악과 독자적 장르라는 직관적인 컨셉으로 대중성을 노리는 전략을 택했다. 


그 결과, RIIZE와 TWS는 음원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며 팬덤과 대중을 동시에 잡는데 성공했다. 다만, 두 팀 모두 데뷔와 동시에 많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인지라 그들의 성공에 독자적 장르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모순과 허점, 환경의 차이가 존재한다 한들 이들의 새로운 시도가 성공한 이상 앞으로 독자적 장르에 도전하는 아이돌은 점차 늘어갈 것으로 보인다. 2주 전 데뷔한 NOWADAYS의 DAYS-POP처럼 말이다. 





2. 레트로의 변화


음악 시장에서 복고는 늘 트렌드였다. 케이팝 씬에서는 코로나19 전후로 Dua Lipa와 The Weeknd가 디스코와 신스팝 열풍을 이끌면서 본격적으로 레트로를 도입했고, 그로부터 약 4년이 지난 지금, 레트로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누 디스코 장르인 FIFTY FIFTY의 'CUPID'

우선, 2020년대 초반에는 70~80년대에 유행했던 디스코 계통의 음악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레트로한 신스가 멜로디컬하게 얹어진 것이 특징인 신스 웨이브로와 80년대 디스코 사운드를 전자 음악과 결합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누 디스코가 있다. 신스 웨이브로는 TWICE의 ‘I CAN’T STOP ME’, 키의 'BAD LOVE' 등이 있으며, AKMU의 경우 '전쟁터(with 이선희)'에서 실제 80년대를 풍미했던 이선희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레트로한 느낌을 배가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트와이스의 ‘The Feels’, FIFTY FIFTY의 ‘Cupid’ 등 미국을 강타한 수많은 인기곡이 누 디스코를 활용한 곡이었으며, ENHYPEN의 'Sweet Venom', 지민의 'Like Crazy', IVE의 ‘Off the Record’를 통해 비교적 최근까지도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UK개러지를 활용한 정국의 'SEVEN'

다음은 90년대의 브레이크비트다. 작년 한 해를 휩쓸었던 저지클럽, UK 개러지, 드럼앤베이스 모두 브레이크비트 계열의 음악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음악의 유행은 그야말로 NewJeans가 쏘아 올린 공이었다. 작년 초 NewJeans는 ‘Ditto’와 ‘OMG’를 통해 케이팝에서 잘 사용하지 않던 저지클럽과 UK 개러지를 도입했고, 이후 본격적인 브레이크비트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작년 음원 차트 상단을 차지하고, 틱톡에 자주 모습을 보였던 세븐틴의 ‘손오공’, LE SSERAFIM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TXT의 ‘Happily Ever After’는 저지클럽이었고, 빌보드 핫100에 이름을 올린 NewJeans의 ‘OMG’와 정국의 ‘SEVEN’은 UK 개러지였다. 뿐만 아니라 드럼앤베이스도 많았는데, ZEROBASEONE의 ‘In Bloom’, NewJeans의 ‘Zero’가 그 예시이다. 이후 정국의 ‘Standing Next to You’로 콘템포러리 알앤비를 시도하며 그 시절 Justin Timberlake를 소환하더니, 이제는 00년대 슈퍼스타와 과거 감성 자체를 재현하며 오마주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00년대 감성과 Britney Spears를 소환한 KISS OF LIFE의 'Midas Touch'


최근 발매된 KISS OF LIFE의 'Midas Touch'와 YOUNG POSSE의 'XXL'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KISS OF LIFE의 경우 처음부터 Britney Spears의 'Toxic' 감성을 참고했다고 밝혔던 만큼, 00년대를 떠오르게 하는 리드 신스를 전면에 내세운 끈적한 댄스 팝으로 Britney Spears의 완벽한 오마주를 선보였다. 동시대 걸그룹과 달리 힙합 노선을 탔던 YOUNG POSSE는 ‘XXL’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을 닮은 비트와 안무에서 서태지를 연상케 했다. 정리하면 이전의 레트로와 비교했을 때, 이전에는 단순히 장르의 특징을 가져와 음악을 재현했다면, 이제는 장르를 넘어 아티스트와 그 시절 감성 자체를 재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3. 장르 선택의 확장 


The Weeknd의 'Blinding Lights'과 굉장히 유사한 키의 'Killer'

꽤 오래전부터 시작된 케이팝의 표절 논란은 지금까지 유효하다. 어쩌면 케이팝의 현주소는 레퍼런스와 표절의 경계에서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이라고 봐야 할지, 최근 들어 케이팝 레퍼런스의 범위가 꽤 많이 확장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기존의 케이팝 흐름대로라면 트렌드에 맞는 빌보드 상위권 곡이 나오면, 해당 곡을 참고한 곡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일쑤였다. 키의 'Killer'와 로켓펀치의 'Ring Ring'은 전 세계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한 노래로 꼽힌다는 The Weeknd의 'Blinding Lights'을 대놓고 레퍼런스 삼은 곡이었다. 또한, 음악뿐만 아니라 비주얼까지도 레퍼런스 삼아 비슷하게 제작해 논란을 야기했던 적도 있다. 태연의 'Weekend'는 Doja Cat의 'Say So', 'Kiss Me More'의 음악 스타일과 창법, 아트워크 등과 유사했고, LE SSERAFIM 역시 'ANTIFRAGILE' 발매 시 Rosalia의 음악, 비주얼 등을 참고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플럭앤비 장르인 아일릿의 ‘Magnetic’

이렇듯 기존 케이팝의 상당수는 차트 상위권 곡들을 레퍼런스로 가져와 아슬아슬하게 표절을 비껴갔다고 했을 정도의 유사성을 띠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최근 발매된 앨범들을 살펴보면 확실히 전과는 조금 다른 행보라는 걸 알 수 있다. 작년부터 해외에서 조금씩 인기를 끌기 시작한 플럭앤비 장르는 아직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얼마 전 아일릿의 ‘Magnetic’을 통해 본격적인 케이팝의 도입을 알렸다. 이미 유튜브에서는 케이팝을 플럭앤비로 리믹스한 영상이 떠오르고 있으며, LE SSERAFIM 역시 ‘EASY’의 플럭앤비 리믹스 버전을 발매하기도 했다. 또한,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Deja Vu’와 YOUNG POSSE의 [XXL EP] 수록곡인 ‘Scars’도 본토에서 핫하다는 레이지 장르의 곡으로 우리에게 친숙했던 빌보드 차트 최상위권의 The Weeknd, Doja Cat 때와 달리 아직 대중이 접하지 못한 새로운 장르를 들여오려는 시도가 전보다 빨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유독 반가운 이유는 케이팝이 점점 수동적인 움직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세 가지의 변화 모두 레퍼런스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실 한국 대중가요는 과거 80~90년대부터 레퍼런스를 가장한 카피 논란이 꾸준히 있었다. 단지 인터넷의 발전으로 현대곡이 더 빠르게 들키는 것뿐. 이러한 악습이 수십 년간 지속된 상황에서 독자적 장르라는 새로운 시도와 트렌드를 빠르게 캐치하려는 노력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아일릿 /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이미 대형 기획사에서 발 빠르게 새로운 장르를 들이는 시도를 시작한 만큼, 앞으로는 단순히 차트 상위권 곡만 고집한 레퍼런스 보다는 새로운 장르의 도입을 위한 활발한 레퍼런스 체크가 예상된다. 더불어 기존에 없는 다양한 독자적 장르가 탄생하고, 레트로 역시 또 다르게 변형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주체적으로 음악을 제작할 때다. 더 이상 카피 논란을 낳지 않고, 능동적인 태도로 임하는 케이팝이 될 수 있기를. 




by. 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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