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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May 01. 2024

디스전 득(得)? or 실(失)?

드레이크 VS 켄드릭, 누가 이기느냐보다 중요한 것

현재 힙합 씬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라면 누가 뭐래도 드레이크 (Drake)와 켄드릭 라마 (Kendrick Lamar)의 디스전일 것이다. 힙합을 넘어 현 음악 산업을 대표하는 두 아티스트는 지금껏 다른 양상으로 세간의 평가를 받아왔다. 드레이크는 발매되는 앨범마다 항상 전에 없던 상업적 성과를 이루며, 힙합의 대중적인 인기가 지속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반면 켄드릭 라마는 앨범이 발매되는 족족 대중들과 평론가들 모두를 만족시키는 훌륭한 평가를 받아오며 힙합 장르의 예술성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자리 잡았다. 이 두 아티스트와 제이콜(J.Cole)까지 포함하여 세 명의 래퍼는 힙합의 빅 3 (Big 3)로 불리우며 데뷔와 동시에 큰 주목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각자의 영역에서 힙합 씬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해당 디스전에 불씨를 지핀 건 제이콜이지만 현재는 드레이크와 켄드릭의 싸움으로 집중되어 전개되고 있다.


디스전의 발단이 된 J.Cole의 벌스


디스전의 주체가 되는 두 아티스트 중 '누가 이겼나', '누가 더 랩을 잘했냐' 등의 논제와는 별개로, 시들해지고 있는 힙합 씬에 대한 주목도가 다시금 살아나고 있다. 디스 그 자체만으로도 이 정도의 주목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 행위가 주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 때문일 것이다. 씬의 주목도가 점차 작아지고 있음에도, 최근 진행됐던 니키 미나즈(Nicki Minaj)와 메간 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의 디스전이나, 국내에서 진행됐던 스윙스와 식케이의 디스전은 어느 정도 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데에 성공했다. 짊어질 것이 많음에도 힙합 아티스트들이 이 모든 것을 감수하며 디스전을 전개하는 이유는, 본인의 음악적인 관점을 고수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힙합에선 음악인 스스로의 태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만큼 힙합이란 장르의 뿌리를 들여다 보면 본인들이 일궈낸 것을 지키고자 하는 것에서 유발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상 아래, 지금까지 힙합 씬에 있어서 디스전은 다양한 의미로 작용해 왔으며 씬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쳐왔다. 이를 득(得)과 실(失)의 관점에서 힙합 씬과 아티스트들에게 어떤 의미로 작용해왔는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Round 1 : 득(得) 


쇼미더머니 팀배틀 中 최고의 라인으로 평가받는 '우찬아 걱정마 울어도 돼, 사실 산타는 없거든'


가장 먼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디스전 그 자체가 씬의 활기를 유발하기도 한다. 가장 재밌는 것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고 했던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드레이크와 켄드릭의 사례가 그러하고, 지금까지 존재해 온 크고 작은 디스전 모두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해왔다. 쇼미더머니에서도 '팀 대항전'이란 이름의 디스전이 고정적인 콘텐츠로 존재했던 만큼, 일반적인 대중들에겐 디스 그 자체가 힙합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로 작용하기도 한다. 편집을 활용하여 갈등을 유발하는 상황이 자극적인 소재로서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이기에, 방송사에 있어서도 트래픽을 올리는 데에 이만한 효자 소재가 없을 것이다. 또한 사람과 사람 간의 갈등을 음악이란 이름 아래 구경할 수 있는 콘텐츠인 만큼, 대중들에게는 합법적으로 도덕적인 양심을 배제하고 이를 즐기기에 좋은 콘텐츠가 없다. 이러한 소소한 가십이 힙합에 대한 큰 관심으로 이어지려면 조금 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할지도 모르지만, 이를 통해 조금이나마 힙합 그 자체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장르 리스너로 유입이 될 수 있는 채널이 되기도 한다.


개코 VS 이센스의 본격적인 서막


2013년 스윙스가 불을 지피고, 개코와 이센스가 서로 간의 디스로 정점을 찍었던 일명 '한국판 컨트롤 디스전'의 사례 또한 대중들의 한국 힙합 씬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유발한 사례이다. 쇼미더머니의 인기 증가와 맞물린 영향도 있겠지만, 분명 해당 사건은 2010년대 한국에서의 힙합 장르 자체가 일정 기간 동안 메인스트림으로 변모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전까지 한국 힙합 씬에서 존재했던 디스전은 장르 애호가들만이 관심을 가졌었지만, 해당 디스전의 판이 커지며 대중들에게도 유명했던 개코의 참전으로 인해 그 주목도는 전에 없을 만큼 높아졌다. 그후 국내 대중들에게 힙합이란 장르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로서 디스전이 큰 파이를 자치하게 된다. 그만큼 디스전은 대중들에게 힙합 장르 자체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또 디스전은 힙합 장르의 음악적 수준 자체를 높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제이지(Jay-Z)와 나스(Nas)가 뉴욕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시작됐던 디스전은 결국 이 둘 모두의 평가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고, 10년 간 이어진 이 둘의 디스전은 그 자체만으로 힙합 장르의 음악적 수준을 크게 높이게 된다. 또한 앞서 언급한 '한국판 컨트롤 디스전'의 원형인 켄드릭 라마의 '컨트롤' 디스전 또한 당시 그가 생각했던 힙합의 본질을 되찾고자 시작됐던 디스전이다. 이를 통해 여러 유명 래퍼들의 맞디스를 유발하여 술, 마약, 클럽 등 당시 힙합 곡에서 점차 일관되어 가는 주제를 벗어나 힙합 씬을 다시금 활발하게 움직이게 한 사례 중 하나로 언급되곤 한다.




Round 2 : 실(失) 


디스전이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유발시키는가 하면, 반대로 힙합에 대한 비호감도와 피로도를 증가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일부 대중들이 가진 힙합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이러한 호전적인 측면 때문인 경우가 많다. 특정 아티스트를 디스하면서도 음악과 가사적으로 충분히 재치있고 훌륭하게 풀어낼 수 있지만, 그 반대 급부의 수준 낮은 가사를 담은 디스일 경우, 심하면 법정 싸움까지 이어지며 사회적인 비난을 받는 사례도 존재한다. 블랙넛은 일반적인 디스가 아닌 성희롱에 가까운 가사들을 담아내어 힙합에 대한 인식을 격하시켰고, 실제로 그의 준수한 랩 실력과는 별개로 힙합 리스너들 사이에서도 해당 아티스트에 대한 평가가 극도로 갈린다. 이처럼 어떤 디스곡들의 경우 팝콘처럼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으로 소비되는 반면, 또 어떤 디스곡들은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장면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또 앞서 언급한 쇼미더머니의 '팀 대항전'의 경우, 명분 없이 억지로 래퍼들을 싸움 붙여 노골적이고 유치한 인신공격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시리즈가 이어질 수록 해당 회차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으로 변해가기도 하였다.


비기 (The Notorious B.I.G. aka Biggie) & 투팍 (2PAC)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디스전의 사태가 최악의 경우까지 가게 되면,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그 사태가 것잡을 수 없어지기도 한다. 이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역시나 투팍(2PAC)과 노토리어스 B.I.G.(The Notorious B.I.G.)의 디스전일 것이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이 두 래퍼는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의 양대산맥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의 동부와 서부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과 디스전이 그 단초였지만, 결과적으로 당시 가장 영향력 있고 이 두 지역을 대표한다고 평가받았던 두 아티스트의 피살 사건으로 그 디스전이 끝을 맺게 되어 지금까지도 디스전의 대표적인 반면교사로서 언급되곤 한다. 이처럼 너무나 과격한 디스전은 가사에서의 사실 여부나 시시비비, 혹은 각 아티스트들의 실력과는 상관없이 아쉬운 희생만 남기기도 한다.




Round 3 : 아티스트에게 디스의 존재 이유



이러한 극단적인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에게 디스전이란 다양한 이유로 이용되다. 많은 경우 디스전이 보다 높은 커리어로 올라갈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산이의 버벌진트를 향한 디스가 있겠다. 인터넷 힙합 커뮤니티 등지에서 자신이 셀프로 녹음한 작업물을 올리며 일명 '방구석 래퍼'로 활동하던 산이는 당시 수많은 힙합 커뮤니티의 화두에 오르고 있던 버벌진트를 향한 디스곡을 내게 되는데, 오히려 버벌진트에게 샷아웃(Shout Out)을 받았으며, 그후 산이는 래퍼로서 씬에서 제대로 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사실 앨범 커버에서부터 향후 힙합 장르에 대한 방향성이 이미 판가름 난 거 같기도..


또한 본인의 힙합에 대한 음악적인 관점을 관철하기 위해 디스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장 최근 국내 사례로는 스카이민혁과 제이씨유카의 디스전이 그러하고, 각각 대중성과 예술성으로 대표되는 드레이크와 켄드릭의 이번 디스전 또한 비슷한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정확히 랩을 통한 디스전은 아니지만 칸예 웨스트(Kanye West)와 50 센트(50 Cent) 또한 발매 시기가 비슷하여 인터뷰 등지에서 서로에 대한 비방으로 대결 아닌 대결을 펼쳤는데, 결과적으로 칸예 웨스트의 앨범이 훨씬 높은 판매량을 달성하여, 이후 힙합 씬의 음악적 방향성 자체가 크게 바뀌게 된 사례 또한 존재한다.




Final Round : 앞으로의 힙합


2020년대에 들어서 힙합 장르는 예전만큼의 힘을 못 쓰고 있었고,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는 다른 장르에 그 왕좌를 내어주고만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디스전의 곡들 중 켄드릭이 참여한 'Like That'의 경우 디스곡 중 드물게 1위를 차지할 만큼, 이 두 아티스트 그리고 넓게 보면 힙합 장르에 대한 관심을 커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만큼 그 승자가 누가 됐건 힙합 장르에 대한 관심을 재점화하기에 충분한 싸움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이 디스전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기에, 드레이크와 켄드릭 중 누가 더 잘했다거나 이기고 졌는지에 대해 논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각 영역에서 워낙 훌륭한 두 래퍼의 맞불이기에 해당 디스전이 끝난 후에도 이들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의 영역으로 굳혀질지도 모른다. 힙합은 이미 대중적인 영역과 예술적인 영역으로 나뉘어 각 수요에 맞는 사람들에게 어렵지 않게 그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드레이크와 켄드릭 둘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실상 대중성과 예술성을 어느 정도는 확보하고 있기에, 이들의 승패 자체가 앞으로의 힙합 씬의 방향성을 확고하게 바꾼다고 하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또 이번 디스전이 2013년 켄드릭이 터뜨렸던 '컨트롤' 디스전과 비슷한 당사자들의 싸움이라는 것도 그 방향성을 바꾸는 것의 확실한 단초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디스전이 이들과 비슷한 잠재력을 가진 루키들의 싸움이었다면 그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번 디스전은 이전까지 존재했던 힙합 씬의 동어반복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사실 새로운 힙합 아티스트의 등장이 아닐까? 해당 디스전이 끝난 이후에도 힙합씬에는 아직까지 풀어내야 할 다른 숙제가 많아 보인다.






By 동치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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