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도둑 기습 숭배 좀 하겠습니다.
지난 1월에 발매된 김반월키의 [빈자리]는 여러모로 놀라운 앨범이었다. ‘인디 가수’라고 부르기도 미안할 정도로 인지도가 바닥에 가까운 아티스트이기에 이 앨범을 들은 사람은 극히 드물었지만, 들은 사람들은 모두 ‘최고’라고 말하기 주저하지 않는다. 필자 역시도 현재까지는 24년 한국 최고의 앨범이라고 확신하고 말이다. 물론 이 앨범이 퀄리티로만 본다면 완벽한 작품은 아니다. 가사의 단어 선택의 아쉬움이라거나 억지 느낌이 있는 탑라인, 그리고 너무나도 조악한 보컬 실력 등에서는 확실히 프로와 아마추어 경계에 있는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대단한 이유는 Tim Buckley, The Microphones 등이 떠오르는 싸이키델릭 포크 문법 위에 조휴일이 연상되는 인디 팝이나 보사노바, 프로그레시브, 혹은 모임별의 포스트 락 성향이 모두 적절하게 버무려진 앨범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만 제대로 챙기기도 어려운 장르들을 훌륭한 편곡을 통해 어색하지 않게 잘 조화시켰으며, 앨범의 유기성 측면에서도 하나도 어색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포크적이면서도, 싸이키델릭하면서도, 실험적이면서도, 그 어떤 앨범보다도 보편적이다.
하지만 이 앨범을 듣고 가장 먼저 연상되는, 연상해야만 하는 지점은 응당 ‘공중도둑’이어야 할 것이다. 특유의 보컬과 편곡, 악기 운용법 등은 영락없는 공중도둑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 ‘공중도둑스러움’은 서로 다른 영역 내에 있는 것만 같은 장르들을 앨범 내에서 하나로 뭉치게 해주는 구심점이 되어줬으며, 나아가 앨범을 ‘공중도둑 스타일에서 인디, 포크적 요소를 극대화한 앨범’으로 쉽게 정리할 수 있게끔 해준다. 앞의 복잡한 장르적 레퍼런스를 나열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렇다면 ‘공중도둑스러움’이란 무엇인가. [무너지기] 앨범은 그 질문에 대한 좋은 대답이 될 것이다. 본 앨범에는 포크를 기반으로 하지만 긴장감을 조성하는 카우벨 소리, 로우파이, 글리치, 노이즈, 전자음, 그 외 싸이키델릭한 온갖 소리들은 시종일관 터질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 듯하다. 보컬은 정말 독특한 위치에서 특유의 공간감을 형성하고 있으며 기타 소리마저도 일반적인 포크의 기타와는 다르게 그 어떤 곡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질감을 머금고 있다. 심지어 ‘쇠사슬’에서는 보이스웨어로 불리는 인공 음성까지 등장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사운드들을 풀어 나가는 방식 역시 기존의 관습을 무시하듯이 급진적이면서도 포크 특유의 보편성과 서정성까지 잃지 않으니, ‘가장 아날로그적이면서도 가장 전자적인 음악’이라는 말이 그나마 공중도둑을 요약할 수 있는 가장 큰 갈래의 문장일 것이다. 실로 기존 모든 음악적 관습을 ‘무너지게 하는’ 음악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앨범은 기존 그 어떤 장르로도 이 앨범을 완벽하게 규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혹자는 이 앨범을 ‘네오 싸이키델리아’ 앨범으로 부르기도 하며, 누구는 ‘포크트로니카’ 앨범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나아가 ‘싸이키델릭 포크’, ‘글리치’, ‘싸이키델릭 팝’ 등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두 틀린 설명은 아니다, 그의 앨범에는 분명 이러한 장르의 요소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본 장르들과의 차이점 또한 명확하게 존재한다. 네오 싸이키델리아라고 정의한다면, 그 장르들은 이렇게 포크스러운 사운드와 서정적인 면을 강조하지 않는다. 조금 더 전자음이나 일렉트릭 기타의 소리를 통해 소위 ‘약 빤 느낌’에 조금 더 집중한다. 포크트로니카라고 한다면 기존 포크트로니카에 비해 포크의 비중이 훨씬 높으며, 이렇게 급진적인 전개와 빌드 업을 찾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싸이키델릭 포크라고 하기에는 이토록 다채로운 사운드가 설명이 되지 않으니, 단순히 “네오 싸이키델리아와 포크트로니카와 싸이키델릭 포크가 합쳐진 앨범”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음악이 공중도둑의 음악이다. 그는 그러한 장르적 문법에 머무르기보다는 조금 더 한 차원 나아가 선형적 전개를 파괴하고, 소리를 쌓고 무너뜨림과 동시에 그만의 소리를 창조해 낸다. 나원영 평론가의 말을 빌린다면 “이미 존재하던 음악들을 그저 조금 다른 방식,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했다” ‘그저 조금’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탄생된 그만의 음악, ‘공중도둑스러운’ 음악은 한국에서 하나의 장르, 스타일로 자리 잡게 된다. 다시 김반월키의 앨범으로 돌아가 보자. 첫 트랙 ‘디퓨저’부터 ‘희끄무레’까지는 포크를 메인으로 삼으며 ‘공중도둑스러움’은 제대로 등장하는 듯 마는 듯하며 철저하게 절제해 내지만, 마지막 트랙 ‘…그러나 과거에 갇혀 살 수만은 없기에 모쪼록 가슴에 묻어두고서 나는 앞을 응시하고…’에서는 더 이상 눈치 볼 필요 없다는 양 13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 속에 공중도둑만의 요소를 잔뜩 선보인다. 특유의 진행과 탑라인 위에 펼쳐지는 기타 소리와 온갖 소리들은 공중도둑의 음악에서 급진적이면서도 함축적인 전개를 길게 늘인 것만 같다는 인상을 준다. 그뿐만 아니라 기타리스트 혼닙의 19년 EP [이유] 라거나, 각각 23년과 24년에 발매된 khc/moribet의 [전파납치], 혹은 Herhums의 [To Save Us All]과 같은 앨범들은 결은 다르지만 다들 각자의 장르 내에서 ‘공중도둑스러운’ 요소를 머금고 있는, 기존의 음악만으로는 설명이 쉽사리 되지 않는 음악들이지 않은가. (물론 Herhumes의 일부 트랙에는 공중도둑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 음악 평론 유튜버 ‘theneedledrop’ (판타노)는 23년 6월 자신의 영상에서 ‘[무너지기]는 2010년대 최고로 과대평가받은 앨범이다’라고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 좋은 앨범이긴 하지만 포크와 일렉트로닉의 조합이 그렇게 새롭고 혁신적인 시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예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했듯이 장르적인 요소로만 본다면, 단순히 ‘네오 싸이키델리아와 포크트로니카’ 측면으로만 본다면 각각의 장르에서 이미 탁월한 성취를 거둔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중도둑의 팬으로서 반론을 한다면, 그 장르들을 이토록 절묘하게 조합한 작품은 극히 드물며, 동시에 공중도둑이 그 음악들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변주하며 선보인 사운드는 기존에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다. 나아가 한국의 포크, 전자 음악 씬에서는 계속해서 ‘공중도둑스러운’ 음악이 등장하고 있으니, 충분히 새롭고 혁신적인 음악이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기존 음악 중 과연 어떤 앨범에서 이런 음악을 들을 수 있었는가? [무너지기] 이후로 정립된 ‘공중도둑스러운’ 음악들은 앞으로도 ‘공중도둑스럽다’는 말 외에는 정리가 불가능할지도 모르며, 이 스타일은 앞으로도 인디 씬에서 자주 회자될 것이라고 감히 예언해 본다.
By 베실베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