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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Feb 20. 2024

록의 붐은 정말 온걸까?

밴드의 시대를 맞이하기 힘든 이유

 현재 록 밴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꽤 오래전부터 들었던 '록의 붐은 온다'는 소리가 이번엔 유난히도 오래 지속되는 듯하다. 작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엔데믹 직후였던 22년도 기록을 넘어 역대 최다 기록인 15만 관객을 동원했고, 조용히 활동하던 인디밴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파란노을, BrokenTeeth, 왑띠는 국내에선 다소 낯선 장르인 슈게이징과 원맨밴드라는 생소한 비주얼이 결합된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팬들에게 지지받으며 합동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는 곧 인디밴드의 활동 무대가 확장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18년도부터 빌보드의 관심을 받은 The Rose는 올해 코첼라 진출을 앞두고 있으며, wave to earth의 스포티파이 월 청취자 수는 약 670만 명이라는 높은 수치를 자랑한다. 외에도 새소년, ADOY, LUCY 등 다수의 팀이 해외 공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들의 활발한 활동 배경에는 엔데믹으로 인한 페스티벌의 흥행과 록 사운드의 유행이 있었으며, 최근 인디 아티스트와 케이팝의 협업이 자주 성사되면서 인디음악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허물게 된 것이다. 이제는 인디밴드를 좋아하는 것이 마이너한 취향이 아닌 하나의 ‘힙’이 되어버린 지금, 이 기이하고도 반가운 현상의 중심엔 실리카겔이 있다. 



 '현재 가장 핫한 밴드는 실리카겔'이라는 말에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디음악 좀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거론되던 이름이 'NO PAIN'을 기점으로 성공 가도에 올랐고, <MMA 2023> 오프닝 무대는 이들의 메인스트림 입성을 알렸다. 한국 록 씬에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실리카겔의 부흥이 한국 록의 부흥을 이끌 신호탄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록의 붐'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실리카겔의 붐'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인디밴드의 현 상황에서 알 수 있는데, 첫째로 애매한 포지셔닝이다. 


 바로 윗세대인 잔나비의 경우 '청춘을 노래하는 밴드'로 자신들을 알렸다. 어떤 음악을 하는 팀인지 감조차도 잡히지 않던 초기 싱글들을 지나, [MONKEY HOTEL]을 시작으로 [전설]까지 그들의 음악은 '회상'을 매개체로 하여 '청춘'으로 귀결되었다. 이들은 빈티지 팝이라는 세련된 촌스러움으로 잔나비만의 색다른 청춘을 표현했는데, '그 푸르른 눈동자에 날 태워줘 내 방황을 멈추어 줘 하루빨리 날 데려가 줘', '탐탁지 않던 하루와 극적인 타협의 순간' 등 동화 같으면서도 시적인 가사는 지난 뜨거운 감성을 자극하여 흘러간 옛 청춘을 떠오를 수 있게 했다. 이 시점에 확실한 포지셔닝을 한 결과, 잔나비는 ‘청춘을 노래하는 밴드’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현세대의 대표 격인 실리카겔은 어떠할까? 제대 후 'kyo181'부터 이어진 수많은 싱글은 메시지보다 소리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둔다는 그들의 말처럼 매우 일차원적인 가사였다. 그렇기에 내용은 직관적이거나 또는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했지만, '새롭고 용감한 사운드를 하는 밴드'라는 수식어에는 걸맞았다. 그러나 'NO PAIN'부터 조금씩 의미를 담기 시작하더니 [Machine Boy]에서 돌연 세계관을 도입하며 팀의 방향성은 흐려졌고, 이 상황은 [POWER ANDRE 99]까지 이어졌다. 


"근데 이제 음악적인 원동력만 가지고 음을 배열하고 만들다 보니까 조금씩 싫증이 나더라고요. 
듣기에는 좋은데 뭔가 이상하게 아쉬운 기분도 들었고요. 제가 존경하는 뮤지션들은 정치적인 메시지부터 정서적인 측면까지 가사가 없는 곡이라 하더라도 외부의 영향이나 자기 내부로부터의 이야기와 의도를 
잘 표현하는데 제 곡은 그런 부분이 굉장히 비어 있었거든요. 어떻게 하면 나도 ‘진짜’처럼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음악을 솔직하게 대하고 그렇게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인터뷰 출처 - Hypebeast ]


 솔직하게 표현하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그들의 심오한 음악 세계는 더욱 짙어졌고, 종국에는 난해하다는 잔상이 사운드를 덮어버렸다. 앨범의 주인공인 'Machine Boy' 트랙은 약 8분에 달하는 앰비언트 연주곡으로 별 의미 없이 이어지는 구간에 불과했고, 세계관을 지키려다 보니 [POWER ANDRE 99]에서는 이미 공개된 곡으로 상당수를 채워 아쉬운 구성을 보였다. 새롭고 실험적인 사운드를 하는 팀으로 올곧게 나아가던 방향에 세계관이 더해지면서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실리카겔은 장르의 틀에 구애받지 않는 사운드와 감각적인 비주얼 아트로 '힙'스러움을 대표하는 팀이 되었지만, '어떤 힙'인지에 대한 수식은 물음표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실리카겔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수많은 인디밴드가 '힙' 또는 '청춘'으로 포지셔닝하여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고 있으나, 보편적인 정의가 장기적인 비전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컨셉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거기에 차별점을 더해 어떻게 본인의 것으로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예측불허한 새로운 스타의 탄생 속에서 특색 없이 마냥 흘러가기엔 대체 가능한 아티스트가 언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 때문에 앞서 언급한 잔나비의 '낡은 감성의 회상'을 활용한 청춘 포지셔닝이 더욱 영리한 선택으로 비춰진다. 


‘라이즈’와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콘텐츠 업로드 주기 및 종류 차이


 두 번째 이유는 소비의 당위성이다. 현재 인디밴드의 팬덤은 힙합과 케이팝 등 다른 씬에 있던 팬들이 모인 형태로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주류 문화에 없는 독특한 감성이나 록 음악의 고유한 문화를 즐기기 보다는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에 의존하는 '덕질'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높은 도덕성과 멋을 그들에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언제든 팬덤이 분열될 수 있는 위태로움이 동반된 것이다. 


 게다가 인디밴드의 입지가 넓어지며 상업 음악을 비교군으로 삼을 수 있는 지금, 수많은 아티스트 가운데 팬들이 인디밴드를 소비해야 할 명확한 이유를 찾기 힘들어 보인다. 단적인 예로 케이팝의 경우 뛰어난 비주얼과 퍼포먼스, 뚜렷한 컨셉 등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지만, 반면 인디밴드는 상업적 성공을 대놓고 겨냥하지 않다 보니 제공되는 선택지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즉, 각종 노출로 조회수 및 트래픽 상승까지는 달성했으나, 그 지표가 소비로까지는 이어지기 힘들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인디밴드의 트래픽 상승에 크게 기여한 대다수가 다른 씬에서 유입된 팬으로 구성되면서 소비의 당위성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 초래됐다. 



 또, 대중을 유입할 만한 외부 콘텐츠의 부재도 큰 영향을 차지한다. 힙합의 경우 오래전부터 다이나믹듀오, 에픽하이 등 대중적 인기를 얻은 아티스트의 음악이 줄지어 나오긴 했지만, 결국 힙합을 주류문화로 만든 건 <쇼미더머니>였다. 이에 힘입어 ‘딩고 프리스타일’에서는 힙합 콘텐츠를 지속해서 다루며 힙합에 관심 없던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기도 했다. 반면, 인디밴드의 주 장르인 록을 메인으로 하는 콘텐츠는 거의 없다. <슈퍼밴드>와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과 같은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시도는 있었으나, 마니아층의 호응 그 이상을 가지 못했다. 이 부분은 장르 때문이라기보다는 타 프로그램 대비 화젯거리가 거의 없었던 탓이 더 크다. '좋은 밴드를 찾자'는 취지에만 초점을 둔 편집과 '오직 음악만 바라보는 출연자'의 조합은 미지근한 결과를 낳았다. 현재 록 씬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아티스트도 그렇다. 앞서 언급한 힙합과 비교했을 때, 한정된 미디어에서 대중을 끌어당길 만한 스타성을 지닌 사람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혹자는 '인디밴드는 그 모든 걸 감안할 만큼 뛰어난 음악성을 자랑한다'고 반론을 제기하겠지만, 그 '뛰어난 음악성'이라는 건 인디밴드에만 국한된 수식어가 되지 못한다. 장르적 성격이 강한 덕에 많은 곡이 높게 평가되는 건 사실이나, 그에 못지않은 상업 음악도 많은 것도 사실이다.


 더 나아가 그들의 음악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90년대 말에 등장한 델리스파이스, 노브레인, 크라잉넛, 언니네 이발관을 향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적극적인 소비로 이어지진 못했다. 이후 장기하와얼굴들, 검정치마, Galaxy Express가 집중적으로 나왔던 시기에도 록 밴드가 대세가 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현재 실리카겔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그들의 독창적인 사운드이기도 한 해외 인디에서 유행하는 네오 사이키델리아는 처음 접하기엔 ‘난해하고 낯선’ 인상을 주어 하나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그 때문에 대부분이 ‘듣는 음악’으로 지속해서 소비하기보다는 ‘공연이 주는 분위기와 트렌드에 편승하려는 심리’에 가까울 것이라 추정된다. 



 정리하면 록의 붐이 오기 힘든 이유는 애매한 포지셔닝으로 희미해진 지속성과 상업 음악과 견주었을 때 그들을 선택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인디는 인디로 소비해야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니야?'라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현대의 인디밴드는 과거처럼 완전한 독립활동이 아니지 않던가. 이제는 대다수의 인디밴드가 제작, 유통, 홍보 등 여러 영역에 레이블의 자본을 빌려 활동하는데, 직접 곡을 쓰는 메이저 씬의 아티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현재 록 밴드에 높아진 관심은 페스티벌의 부흥에서 기인한 현상일 가능성이 높으며, 각자만의 확실한 비전이 없다면 이 또한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우려가 있다. 어쩌면 인디밴드의 한계는 공연장의 규모가 아니라 장기적인 비전일지도 모른다. 씬의 부흥을 위한 새로운 스타의 탄생은 이루어졌다. 과거 인디밴드들이 독자적인 음악성으로 입지를 넓혔다면, 이제는 지속성과 확장을 위해 노력할 때다. 그러니 그 속에서 장기전이 가능한 전략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길 바란다. '힙'과 '청춘'으로 무장하는 것만이 성공법칙은 아닐 테니. 





By 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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