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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Feb 07. 2024

“변화하느냐, 유지하느냐”

딜레마에 갇힌 선우정아

의식 있는 아티스트가 앨범을 기획할 때면 ‘새로운 시도를 하느냐, 혹은 기존의 스타일을 유지하느냐’ 하는 고민은 무조건 한 번 즈음은 하고 넘어가지 않을까 싶다. 마치 비극 ‘햄릿’의 ‘To be, or not to be’를 연상케 하는 이 명제는 실제로 그만큼 중요한 것인데, 사람들은 훗날 아티스트의 디스코그래피를 평가할 때 이 변화가 매우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아티스트였지만 기존의 스타일을 유지하다가 ‘자가복제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인기가 서서히 줄어들기도 하고, 혹은 ‘어설프게 스타일을 바꿨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커리어가 꼬이기도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아티스트들 역시도 이 딜레마를 의식해 (특히 힙합과 같은 장르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먼저 언급하기도 한다. 저스디스가 ‘One of Them’에서 언급한 “새로운 걸 들으면 구리다 하고, 익숙한 걸 들으면 베꼈다 하고”라는 라인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 난제가 어려운 것은 정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하면 ‘아티스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한 문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뭐든 간에 음악만 좋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한다면 그것이 그나마 정답에 가까울 수 있겠지만서도, 동시에 이것이 아티스트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일 것이라고 강하게 느끼게 된다. 최근 나에게 이 난제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아티스트가 있으니, 바로 선우정아이다.



 ‘복면가왕’과 ‘도망가자 (Run With Me)’. 아니, 조금 거슬러서 ‘고양이’나 ‘구애’로 입문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낯설 수도 있겠지만 매니아들이 만장일치로 꼽는 그녀의 커리어 하이는 당연하게도 2013년의 [It’s Okay, Dear]를 발매한 순간일 것이다. 그 당시의 선우정아는 정말로 특별했다. 2006년 1집 [Masstige]의 대실패 이후 심기일전하여 다시 도전한 이 앨범은 재즈 팝을 기반으로 했지만 디테일한 연주와 진행은 해외에서도 레퍼런스를 쉽게 찾기 어려울 만큼 참신함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인맥의 바다를 헤엄치는 인어공주는 말보로에게 목소리를 팔고”라거나 “병신 같은 얼굴 치워”와 같은 가사들 역시 그 당시 인디계에서는 상당히 자극적이고 신선한 가사로 모두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죽은 본인의 아버지를 얘기한 ‘Purple Daddy’나 “무명 작곡가이지만 내 길을 가겠다”라는 ‘알 수 없는 작곡가’ 같은 곡들 역시 그렇다. 


“망할 변박을 멈추지 않을 거야, 남들에 시선의 귀를 팔지 않아”
“오늘도 난 무명 무명 무명을 떨치네, Music is my life 배부른 소리 하네. 그래도 Music is life” 

그런 가사와 달리 그녀의 진짜 꿈은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었나 보다. 15년 발매한 싱글 ‘봄처녀’를 시작으로 조금씩 팝적인 음악 색을 보이기 시작한다. 정용화와 함께 발매한 ‘교감’도 그렇고,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EP [4X4]도 그랬다. 그러한 욕망이 가장 전면에 드러난 곡은 단연 ‘구애(求愛)’일 테다.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다” 하는 노랫말 속에서 ‘당신’을 대중’으로 해석하는 일은 너무나도 쉬웠으니 말이다. 그 후의 행보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복면가왕에 출연해 좋은 성적을 거뒀고, IU의 지원을 받아 ‘고양이’를 히트시키고, 여러 아티스트와 협업하고 각종 콘텐츠에 출연했으며, 2019년 말에 발매한 ‘도망가자’는 말 그대로 대 히트를 기록한다. “차트 밖에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음악 하자”는 가사의 노래 ‘차트 밖에서’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발행한 면죄부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15년 이후 장르성을 줄여가며 대중친화적인 노선을 타고 있던 그녀였지만, 그래도 이때까지는 최소한의 음악적 퀄리티는 유지하고는 있었다. ‘고양이’의 스캣은 매우 참신했고, ‘도망가자’의 작법은 뻔했지만 목소리와 진심만큼은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선우정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음악’들이 어느 정도 존재하던 시기인 것이다. 그렇기에 (앞서 언급한) 정용화와 IU를 비롯해 효린, 현아와 같은 케이팝 아티스트들과도 협업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지만, 크게 우려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딱 잘라 말해 2020년 이후 선우정아의 음악들은 마치 길을 잃은 것만 같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민망할 만큼 대부분의 곡은 [Serenade] 앨범의 지루한 하위 호환이었고, 그 사이사이 껴 있는 ‘BUFFALO’, ‘터뜨려 (Burn it all)’ 같은 곡은 그 의도조차 알 수 없다. 그나마 22년 발매한 [Studio X {1. Phase}]가 기존 선우정아 팬들의 갈증을 일정 부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하긴 했지만 결국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진 못했다. 


나아가 최근에는  던, 아이브, 혹은 정세운이나 ‘놀면 뭐하니’의 프로젝트 그룹 ‘JS엔터’ 같은 케이팝 아티스트와 콜라보를 하고 있는데, 그 퀄리티가 너무나도 참혹하다. 모든 음악이 예상 가능한 지점에 놓여있고 가사 역시 선우정아 특유의 익살을 담으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전혀 재미도 없을뿐더러 현재의 케이팝 트렌드와는 더더욱 어울리지도 않는다. 이전까지의 장르성까지 기대하지는 않아도, 그래도 최소한 듣기 좋은 이지리스닝 팝의 역할만큼은 다 해야 하건만 지금 그녀의 음악에서는 그런 면모를 찾기가 어렵다. 팝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본인이 무엇을 잘했는지, 어떤 부분에 강점이 있는지조차 잊은 듯하다. 즉, 지금은 장르성 여부를 넘어 순수하게 ‘퀄리티’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사.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보자. 그렇다면 다른 동시대의 훌륭한 아티스트들은 이 ‘변화’의 기로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먼저 랩퍼 키드밀리는 19년 [L I F E] 앨범 즈음하며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지만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아 “예전 음악으로 돌아오라”는 비판에 시달리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린 키드밀리의 해결책은 정면돌파였다. 모두가 인정하는 프로듀서 dress와 함께 정규 앨범 [Cliché]를 발표했는데, 제목 그대로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예전 클리셰로 돌아왔다’라는 메시지를 담음과 동시에 더 나아가 그런 상황에 직면한 아티스트로서의 고뇌까지 훌륭하게 그려내며, 그 갈등과 비판을 앨범적으로 승화한 매우 좋은 선례로 남을 수 있었다. 만약 이런 가사들 없이 음악만 예전의 스타일로 돌아갔다면, “최근에 스타일 바꿔서 욕먹더니 결국 예전 스타일로 도망쳤구나”라고 욕을 또 먹었을 지도 모를 상황에서, 서사를 활용해 정면돌파한 것이다. 단순 메시지뿐만 아니라 dress의 비트와 키드밀리의 랩핑 역시 칼을 간 듯 너무나 뛰어났기에, 그 누구도 이에 토를 달 수 없었다.


출처 엘르 코리아 인터뷰


락 씬에서는 쏜애플이 인상 깊다. 지난 칼럼에서도 다뤘었지만, 작년 발매한 쏜애플의 EP [동물]은 기존의 10년간의 모든 스타일을 갈무리하면서도 새로운 시도까지 훌륭하게 버무린 앨범이었다. 기존의 이모, 혹은 싸이키델릭한 작법은 덜어내고 부드러운 최신 제이락 감성을 입혀낸 앨범이지만, 연주 곳곳에서는 예전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남겨 놓아 옛 팬들을 만족시키면서도 이러한 변화에 대해 위화감을 완벽하게 제거해냈다. 그뿐만 아니라 키드밀리와 마찬가지로 가사적인 면에서 역시 이러한 변화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암시해 주었고 말이다.


그렇다면 선우정아는 어떠한가? ‘구애’와 같은 곡을 통해 ‘대중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밝히긴 했지만 ‘알 수 없는 작곡가’에서 멈추지 않겠다고 말한 변박은 스리슬쩍 멈춰 버린 지 오래다. 키드밀리처럼 이러한 변화에 대해 납득할 만한 가사를 담은 적도 없고, 그렇다고 음악적인 부분에서 쏜애플처럼 과거의 팬들도 만족할 만한 요소를 숨겨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그들만큼 음악의 퀄리티가 뛰어나지도 않다. 힙합이나 락과 달리, 팝의 특성상 퀄리티까지 챙기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그러한 편견에는 250과 FRNK가 완벽하게 반례를 제시해버리지 않았던가. 


요약하면, [It’s Okay, Dear] 이후 본인의 장르적 음악색을 성공적으로 구축했지만, 진정 원하던 ‘대중성’을 위해 서서히 장르성을 버리고 팝 아티스트로 향해 변화하는 과정에서 다른 아티스트들과 같은 내러티브나 설득력이 없다 보니 결국 근본적인 퀄리티의 하락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나마 퀄리티와 기존의 장르성을 유지하고 있는 [Studio X {1. Phase}]에서 이러한 우려들까지 대해 성공적으로 풀어냈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 이제 선우정아의 노선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계속 이 팝적인 변화를 유지해야 할까 아니면 다시 예전의 스타일로 돌아와야 할까? 이 두 가지의 단순한 선택지가 과연 해결책이 될 수가 있을까? 저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고 해도, 기존의 퀄리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당연하겠지만 한 아티스트가 절정의 폼을 십 년 넘게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이 아니라 해외로 눈을 돌려도, 한두 장의 앨범으로 온갖 극찬을 받던 아티스트는 많지만 그 이상으로 꾸준하게 명반을 배출한 아티스트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런 아티스트들을 ‘천재’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슬프지만 나는 선우정아도 그런 천재 중 한 명일 거라고 굳게 믿었다. [It’s Okay, Dear]는 지금 들어도 정말로 세계의 그 어떤 팝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걸작 중 하나였고, 그 후에도 그런 본인만의 음악 세계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물론 보란 듯 훌륭한 정규를 발매해 이 글을 한때의 설레발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러기를 희망한다. 그냥 몇 년 잠깐 불타오르다 사라지는 아티스트가 아닌, 시대를 빛낼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기를.





By 베실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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