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오마쥬’를 통해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약 4년 만에 나온 쏜애플의 새 EP [동물]은 기나긴 공백을 감안할 때 여러모로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앨범이었다. 어지간하면 팬들의 호평이 1페이지를 차지하는 멜론 댓글에서도 기대 이하였다는 평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음악 팬들이 점수를 매기는 사이트 Rate Your Music에서도 현재 평균 별점 2.86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 쏜애플의 앨범이 평균적으로 3.3점 언저리인 것을 미루어 보면 상당히 낮은 점수임을 알 수 있다. 누적치를 감안하긴 해도 멜론의 좋아요 수가 상당히 낮은 것 역시도 그 증거 중 하나일 것이다. 쏜애플의 신보가 아쉬움을 남긴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는 “음악적으로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곤 한다. 노래는 좋았지만 그 기다림을 감내할 만큼의 새로움, 음악적 충격이 없었다는 것이다. (입문자들에겐 기괴한 앨범 커버도 장벽 중 하나일 테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동물]을 마냥 “스타일이 비슷하다”라는 말로 퉁 치기에는 어딘가 아쉬울 것이다. 본 앨범을 자세히 들어본다면, 기존에 해오던 특유의 J Rock (제이 락)스러운 진행과 감성을 답습했음을 넘어서, 이전 곡들의 리프 혹은 리듬이 들리기까지 하며, 가사 역시 마치 Part 2를 보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다시 언급되고는 한다. 이것을 창작력의 부재, 혹은 오리지널리티의 부재에서 오는 자가복제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 부분마저도 철저히 계산한 ‘셀프 오마쥬의 영역’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본 글에서는 이번 앨범이 정확히 어떤 것을 오마쥬 했는지, 그리고 이런 오마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에 대해 풀어 보고자 한다.
쏜애플의 디스코그래피 얘기부터 해보자. (초창기) 넬과 제이 락 향기를 물씬 풍기는 리듬과 기타 리프, 그리고 밴드 凛として時雨 (린토시테시구레)의 TK가 떠오르는 시원시원한 보컬까지. 우리가 보편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쏜애플의 스타일은 요약하자면 “일본스러움”일 것이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하면 쏜애플의 커리어에서도 초창기의 일본스러움과 최근의 일본스러움은 결이 살짝 다르다. ‘빨간 피터’, ‘이유’, ‘아가미’로 대표되는 1집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는 아마추어 시절 작품이기에 어려운 테크닉, 변주 등을 뽐내기 보다 중 2병스러움으로 대변되는 우울한 감성과 탑라인, 싸이키델릭한 기타 톤으로 승부를 본 작품에 가까웠으며 그 후 발매한 2집 [이상기후]는 마찬가지로 우울한 가사와 제이 락 사운드를 베이스로 삼지만 프로그레시브적인 진행 (백치, 살아있는 너의 밤, 암실)을 가미한 앨범이었다. 그러면서도 ‘시퍼런 봄’, ‘피난’, ‘아지랑이’ 등을 통해 1집의 스트레이트함과 대중성을 그대로 계승하며 본인들의 정체성이 여전히 제이락에 있음을 드러냈다. 즉 이때까지의 쏜애플은 조금 더 정석적이며 직선적인 형태의 쏜애플이었다.
EP [서울병]은 과도기적 앨범일 것이다. 1번 트랙 ‘한낮’은 ‘시퍼런 봄’과 ‘피난’을 잇는 직선적인 일본 OST 스타일의 곡이지만 ‘석류의 맛’부터 시작되는 이후 트랙들은 다소 낯설다. 기타 톤은 공간감을 가득 머금었으며 진행은 쉴 새 없이 바뀌는데, 2집까지는 뼈대가 직선적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그보다도 프로그레시브한 진행과 이전과 다른 기타 사운드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앨범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물론 기타 톤이 변화한 데에는 기타리스트가 바뀐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서울’ 마지막의 가사 “지도에 없는 곳으로 가려고 집을 나선 날”은 1, 2집의 우울함을 넘어선 새로운 서사의 시작도 의미하겠지만 동시에 사운드적인 변화까지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3집 [계몽]에서는 또다시 새로워진다. 앨범 전반부는 부드러운 탑라인과 독특한 리듬 등으로 Indie Rock (인디 락)과 Math Rock (매쓰 락)을 유연하게 넘나든다. 7번 트랙 ‘넓은 밤’을 기점으로 사운드 스펙트럼은 조금 더 넓어지며, ‘넓은 밤’의 인트로는 아주 약간이지만 [Kid A]의 앰비언트와 IDM을 연상케 하며 ‘뭍’이나 ‘은하’의 신디사이저나 건반, 그리고 후반부 전체를 휘감는 몽환적이면서 웅장한 기타 톤은 Dream Pop (드림 팝)과 Post Rock (포스트 락) 적인 면모가 있지만 특유의 날카로움이나 보컬 때문에 쉽사리 ‘어떤 아티스트와 닮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전히 일본스러운 감성은 남아있지만 개성 있는 리듬과 다양한 기타 톤을 통해 장르적 스펙트럼을 더욱 넓혔으며 가사는 이전보다 더 직관적이면서도 희망을 노래하고, 그러면서도 대중성까지 확보했으니, [계몽]은 부정할 수 없는 쏜애플의 커리어 하이 앨범일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정석적인 제이 락 밴드로 시작해 본인들만의 사운드와 오리지널리티 영역을 확보해 낸, 어떻게 보면 인디밴드의 가장 교과서적인 행보를 걸어왔다.
이랬던 쏜애플이기에 [동물]은 1번 트랙 ‘멸종’부터 우리를 더더욱 당황스럽게 한다. 전체적인 리듬과 기타 리프에서는 [서울병]의 ‘한낮’과 [이상기후]의 ‘피난’이 들리는데, 특히나 코러스의 반복적인 탑라인은 피난의 완벽한 그것이다. 여태까지 쏜애플의 커리어를 짚으며 그들이 변화해온 과정을 장황하게까지 설명했건만 이번 앨범에서는 [계몽] 이전의 작법을 선보이니 팬들 입장에서는 “다시 옛 스타일로 돌아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트랙 ‘할시온’은 또 [계몽]의 ‘뭍’과 ‘은하’ 감성이 아닌가? ‘살’ 역시도 [계몽]의 ‘수성의 하루’와 ‘로마네스크’가 오버랩 되지만, ‘파리의 왕’에서는 다시 [이상기후]로 되돌아와 ‘베란다’의 리듬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 외에도 [동물]의 앨범은 수많은 기존 곡들의 레퍼런스를 품고 있지만, 그 레퍼런스는 [이상기후]와 [서울병], 그리고 [계몽]까지 모두 포괄하기에 정확히 무슨 음악을 들려주고자 하였는지 특정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음악만 본다면 기존 리스너들의 아쉬운 평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계몽]에서 확립한 쏜애플의 새로운 사운드를 이어갈 무언가를 기대했던 팬들에게도, 혹은 초기의 직선적인 감성으로 돌아오길 원했던 팬들에게도 모두 만족스럽지 못할 앨범으로 남아 버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음악만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 앨범을 해석하는데 가장 중요한 키는 가사에 있다. “언제쯤 날 다시 찾아올 건가요? 난 그때만 기다리고 있어”와 같은 가사들은 기존 쏜애플이 가지고 있던 외로움의 정서를 비슷하게 품고 있지만 기존에는 대상이 없이 혼자 되뇌는 독백에 가까웠다면 이번에는 명확하게 지칭된 ‘너와 나’ 사이를 노래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만약 우리 마지막으로 할 일이 없다면 그땐 둘이서 춤을 출 거야”라는 가사는 기존 쏜애플 노래에서 찾아볼 수 없던 희망적인 가사이며, 마지막 트랙 ‘게와 수돗물’에선 “살아가자 너와 내게 남겨진 생명을 다해”로 끝맺음 하니, 이런 면에서 [동물]은 [계몽]의 희망적인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한 발 더 나아간 앨범이다. 뿐만 아니라 ‘석류의 맛’의 “끝이 없는 끝을 내게 줘”를 이어받은 “어차피 끝은 정해졌고”라는 가사나, ‘수성의 하루’의 “아직 절반도 안 살았는데”를 뒤집는 “절반쯤은 남았겠지”와 같은 가사는 마찬가지로 기존 곡들을 오마쥬 했음을 드러내는 지점이면서도 그들이 바라보는 관점이 변했음을 시사하는 지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음악을 다시 들으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동물]의 음악들은 목적이 없는 무분별한 레퍼런스가 아닌 의도된 오마쥬의 영역에 놓일 것이다. [이상기후]의 직선적인 제이락 스타일과 [서울병]의 프로그레시브한 스타일을 모두 [계몽]의 사운드 아래에서 재창조한 듯하다. 즉 음악 역시 가사와 마찬가지로 기존 곡들을 오마쥬 함과 동시에 그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변화 해왔는지를 아우르는 결과물로 들리게 되는 것이다.
8월 26일 열린 [동물] 음악 감상회에서 윤성현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끝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주 생각하곤 하는데, 나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마치 죽음을 암시하는 것만 같은 이 말은 인디 밴드의 싸이클을 관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2010년에 데뷔한 그들은 햇수로 벌써 14년차 밴드가 됐는데, 이 14년이라는 시간은 패기 넘치던 신인 밴드가 중견 밴드로 거듭나게끔 하는 시간임과 동시에 대부분의 밴드들에게는 초반의 하잎을 견디지 못한 채 자가 복제 혹은 어설픈 변화를 일삼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음악적 수명이 다한 그들은 더 이상 어떤 파급도 일으키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신보를 내기만 할 뿐이며,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리는 새로이 탄생하는 밴드들이 차지하게 된다.
그렇지만 올해 컴백한 Blur와 The Rolling Stones는 그런 밴드들과는 달랐다. 실로 오랜만에 돌아왔지만 스타일의 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기존 팬들이 듣고자 했던 그때의 그 사운드에 집중했는데, 그러면서도 Blur는 연주적인 면에서 훨씬 더 정갈하고 차분해졌으며, The Rolling Stones는 가사적인 면에서 성숙해지는 등의 작은 변화를 통해 ‘자가복제’와 ‘어설픈 변화’라는 딜레마를 모두 빗겨 나가는데 성공한다. 00년대 초반을 지배한 The Strokes 역시 Synth Pop (신스 팝)이라는 어설픈 장르 변화로 혹평을 듣다가 2020년 다시 원래의 장르로 돌아오면서도 신스 팝 사운드를 자연스럽게 융화하는데 성공하며 큰 호평을 받지 않았던가. 참으로 모범적인 ‘롱런 밴드’의 예시였다.
쏜애플 역시 이들과 궤를 같이 한다. 마찬가지로 아무 목적 없는 자가 복제도, 어설픈 장르적 변화도 택하지 않았다. 다양한 부분에서의 셀프 오마쥬와 약간의 변용을 통해 자신들의 옛 스타일들을 소환하면서도 그저 옛 음악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밝혔다. ‘게와 수돗물’의 “형제는 차갑게 식어가고 나의 차례를 기다려 우린 떨어지다가 점점 스러지다가 끝내 잊혀질 거야”라는 가사는 끝을 앞둔 밴드의 심정을 노래하는 것 같으면서도 “얼마나 남았을까 아직 알 순 없어도 우리 앞의 기나긴 시간들을 살아가자”로 끝맺음 하며 그들이 다가올 죽음을 마냥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것임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다. Blur나 The Rolling Stones가 택한 그 방식을 쏜애플도 자연스럽게 터득해 선보인 것이다. 이것이 쏜애플이 영리한 밴드인 이유이다.
그렇게 그들은 지금까지의 긴 행보를 [동물]에서 갈무리함과 동시에 새롭게 시작할 그들의 2막의 기틀을 마련했다. 윤성현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이어서 “그렇기에 다음 앨범은 빨리 내도록 하겠다”고도 말했다. 90년대와 00년대를 풍미했던 밴드 중 오롯이 살아남아 퀄리티를 유지하는 밴드가 검정치마 하나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2010년에 데뷔한 쏜애플은 어느새 검정치마를 잇는 한국 최장수 롱런 밴드가 됐다. 14년이라는 시간은 대부분의 밴드에겐 그의 말처럼 “끝이 다가오는 시간”이겠지만 그들의 수명은 아직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음 앨범을 계속해서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아직 “다음”이 존재한다
By 베실베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