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시장의 메가 IP가 무너진 이유는
올해 국내 힙합 시장에서 생긴 여러 사건사고들 중 가장 뜨거웠던 이슈를 꼽아보자면, 단연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의 폐지가 아니었나 싶다. 엠넷 측에서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는 이야기를 전했지만, 이미 연간 편성표에 쇼미더머니 대신 힙합 신규 프로그램이 편성된 것으로 보아 쇼미더머니의 폐지는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2년부터 2022년까지, 무려 11년 동안 쇼미더머니는 엠넷이 방영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큰 기둥으로서, 한편으로는 많은 리스너들이 힙합 장르에 유입될 수 있는 창구로서 존재해왔다. 지금의 엠넷을 있게 해 준 대표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슈퍼스타 K’ 가 8개의 시즌을 거쳐 종영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10년이 넘게 프로그램의 명맥을 유지해왔다는 것은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는 방증이기에 대단한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인식될 수 있지만, 쇼미더머니는 단순히 서바이벌을 넘어 이제는 하나의 장르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리스너들에게 자리매김해왔고, 때문에 해당 프로그램의 종영 소식은 힙합 팬들에게 있어서는 유독 아쉽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쇼미더머니를 관심 있게 지켜본 이들이라면 프로그램의 폐지는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었다. 전작들이 매회 시청률 상승을 거듭하며 평균 1.9% 정도로 마무리되었던 반면에 ‘쇼미더머니 11’은 시작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 결국 최종회 시청률 0.8%를 기록하며 별다른 화제성 하나 없이 조용히 마무리되었고, 유튜브 조회수 또한 이전 시즌의 인기곡들이 1,000만 뷰를 넘겼던 과거와는 달리, 시즌 11의 최고 조회수는 700만뷰에 그친다. 물론 이전 시즌들에서도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청률이 떨어지는 추세는 아니었기에 더욱 씁쓸한 결과다. 한 마디로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 자체가 떨어진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이유에서 리스너들은 쇼미더머니를 외면하게 된 것일까?
우선 쇼미더머니가 화제성을 불러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힙합이라는 특정한 장르를 대중들이 소비하는 영역으로 가져왔다는 점이다. 쇼미더머니의 첫 시즌인 ‘Show Me The Money’가 방영되던 2010년대 초만 해도 힙합 시장은 지금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라기보다는 아티스트와 일부 팬들이 독자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즐기는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띄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힙합 아티스트를 오디션과 같은 방식으로 선발한다는 ‘Show Me The Money’의 등장은 많은 이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힙합이라는 장르의 특성 상 타 장르에 비해 아티스트, 심지어는 음악을 즐기는 팬들마저 미디어 노출에 반감을 띄고 있었기에 초기에는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포맷들을 시도함으로써 점차 프로그램의 아이덴티티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미디어에 노출된 아티스트들이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으며 음악의 퀄리티 또한 상승한다는 점은 아티스트와 팬들에게 있어 큰 메리트로 다가왔고, 이는 쇼미더머니가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전개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현재의 음악 시장에서 힙합은 더 이상 희소성 있는 장르가 아니다. 당장에 멜론 차트에도 힙합 아티스트의 곡이 보이고 있으며, 현재 K POP 음악들 또한 힙합을 베이스로 기획된 음악이 대다수다. 플랫폼의 확산도 장르의 희소성 하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보가 부족하던 이전에는 미디어가 유일한 매체로 작용했는데, 힙합 커뮤니티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아티스트의 정보를 쉽게 알 수 없었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아티스트와 음악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플랫폼에서 사용자의 취향에 맞게 아티스트를 선별해주기도 하며 누구나 쉽게 아티스트의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쇼미더머니를 통해 힙합을 들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쇼미더머니는 리스너들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특히 루키들에게 있어서 쇼미더머니는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등용문과도 같았다. 쇼미더머니가 있기 전,힙합 아티스트들은 주로 커뮤니티에 믹스테잎과 같이 자신의 작업물을 올리거나 여러 공연 활동을 통해 자신들을 알릴 수밖에 없었는데, 메이저 아티스트들의 눈에 들어오기가 여간 쉽지 않을 뿐더러 설사 작업물을 통해 이름을 알린다고 해도 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것이 대다수였다. 이러한 상황이었기에 TV를 기반으로 하는 쇼미더머니는 루키들에게 있어 보다 많은 이들에게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시즌 4에 처음 등장했던 수퍼비나 시즌 5의 해쉬스완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당장에 시즌 11만 해도 플리키뱅, 고은이, NSW Yoon 등 여러 신예 아티스트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씬에서의 인지도가 있던 아티스트들 또한 쇼미더머니를 통해 홍보 효과를 거두는 사례도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시즌 2에 참가자로 지원한 스윙스가 있다. 스윙스는 당시 힙합 씬에서 큰 인지도가 있었지만, 쇼미더머니에 출연함으로써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 여파로 국내 힙합 시장에서 손에 꼽는 영향력을 가진 플레이어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공사례 덕분에 시즌 3부터는 너나할 것 없이 여러 아티스트들의 출연이 이뤄졌으며 쇼미더머니 또한 힙합 씬에만 국한되지 않고, 대중들에게까지 메이저 프로그램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편성된 프로그램인 ‘고등래퍼’의 인기와 더불어 ‘쇼미 입시’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그 영향력은 독보적이었기에, 새 시즌이 편성될 때면 새로운 아티스트를 찾는 리스너들과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아티스트 모두가 해당 프로그램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또한 지금에 와서는 무의미해지게 되었는데, 쇼미더머니 출연 없이 자신을 브랜딩할 수 있는 여러 플랫폼이 생기게 되면서 아티스트들은 더 이상 쇼미더머니에만 집중하지 않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DPR (Dream Perfect Regime) 크루는 유튜브에 자신들의 곡을 영상과 함께 올렸고, 세련된 사운드와 어우러지는 감각적인 영상이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대중들에게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러한 사례는 미디어가 가지는 작위적인 캐릭터 조성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아티스트들 또한 더 이상 미디어에만 의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브랜딩을 해나갈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밖에도힙합 레이블 AOMG가 진행한 오디션 프로그램 ‘사인히어’나, 유튜브를 통해 방영했던 영앤리치의 ‘드랍 더 비트’와 같이, 현재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쇼미더머니와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등장하게 되면서, 보다 주체적으로 자신들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아티스트들은 자연스레 등을 돌리게 되었다.
현재의 리스너들이 쇼미더머니를 보지 않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음악’에 있다. 특히나 이번 시즌은 유독 음악에 대한 혹평이 많았는데, 참가자로 출연한 아티스트 대부분이 드릴 (Drill) 장르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특징 또한 강한 내용의 가사나 다양한 의성어를 사용하는 힙합 장르에서도 마이너한 편이었기에 주로 대중들을 겨냥한 쇼미더머니의 메이저한 무드와는 맞지 않았다는 의견이었다. 힙합 씬의 팬들 뿐만이 아닌 여러 시청층을 타겟으로 하는 쇼미더머니의 특성 상 프로듀서는 다양한 리스너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중적인 곡을 구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대부분의 참가자가 장르적인 특색이 강한 음악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때문에 힙합 팬들과 대중 양쪽 모두가 아쉬운 음악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러한 고민은 쇼미더머니가 시작할 때부터 거론되어왔던 문제이기도 하다. ‘대중의 유입을 위해 메이저한 무드의 곡을 전개해야 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힙합의 장르적 색깔 또한 유지해야 하는가’는 쇼미더머니에게 있어 피할 수 없는 딜레마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쇼미더머니가 흥행했던 2010년대 글로벌 음악 시장은 흐름 상 힙합 아티스트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대중들이 큰 반감 없이 이러한 곡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대중들의 긍정적인 반응 덕분에 쇼미더머니는 매 시즌 다양한 프로듀서를 도입하거나 방송을 통해 붐뱁, 트랩, 그라임 등 시즌별로 주가 되는 장르를 미리 소비자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도 대중성과 음악성의 간극을 좁힐 수는 없었다. 시즌마다 다양한 컨셉의 곡들이 나왔지만 성적 면에서는 결국 대중성이 강한 음악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러한 결과의 영향으로 프로듀서들도 자신의 음악적 퀄리티를 높이기보다는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곡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아무리 드릴, 컨셔스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전개하는 래퍼들이 나와도 결과적으로 본선에 들어가서는 차트인을 위한 싱잉 랩이나 팝 랩을 선보이게 되었고, 퀄리티 또한 점차 떨어져가며 힙합 팬들의 반발은 거세지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시즌이 계속되는 동안 점차 심해져갔으며 결국 리스너들의 외면을 받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쇼미더머니가 가진 이러한 딜레마는 현재 힙합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의 음악적 방향성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아티스트 또한 자신들의 음악이 차트에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보다 상업적인 방향으로 음악을 전개하게 된 것이다. 아티스트 본연의 색은 점차 줄어들고 대중들이 듣기 좋은 일명 ‘머니 코드’를 운용한 이지리스닝 위주의 곡들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텍스트의 키워드 또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내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 위주로 줄어들게 되었다.
물론 아티스트의 상업적인 음악이 마냥 나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힙합 씬에서는 상업적인 음악을 해도 그 속에 다양한 장르를 도입함으로써 아티스트 나름대로 시장과 리스너 양쪽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을 했던 반면, 쇼미더머니가 불러들인 차트 인 효과는 아티스트 및 프로듀서의 퀄리티도 떨어지게 만들었으며, 점점 더 극도의 시장성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게다가 쇼미더머니가 가진 파급력은 많은 아티스트들이 같은 형태의 음악을 만들게끔 유도했으며 결과적으로 모두가 어설프게 싱잉 랩 일변도로 가는 사태가 발현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알고리즘에 기반한 플레이리스트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리스너들은 유행과 관계없이 자신이 선호하는 음악을 찾으며 더 이상 차트에 의존해서 음악을 듣지 않게 되었고, SNS에 수도 없이 돌아다니는 바이럴 광고에 대한 반감 때문에 차트가 가진 영향력 자체도 계속해서 떨어지게 되었다. 아티스트의 곡이 차트 상단에 위치해 있어도 음악성을 더더욱 인정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쇼미더머니의 흥행 이후로 많은 아티스트들은 상업성을 쫓고자 음악성을 포기하면서까지 극단적으로 양산형, 차트 올인형 싱잉 랩을 추구했지만 정작 차트의 힘은 떨어지고 있다는, 그 어느 것 하나 못 건진 ‘웃지 못할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이러한 현상은 힙합 씬에 있어 새로운 과제로 자리잡게 되었고, 리스너들 또한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서 힙합 씬은 다시금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쇼미더머니가 낳은 딜레마가 현재 힙합 시장의 근간 또한 흔들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쇼미더머니는 결국 리스너들의 외면을 받고 초라한 퇴장을 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프로그램이 전파했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나의 장르를 대중들에게 전파하고,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시즌이 시작되고 끝날 때마다 여러 말들이 오가지만, 쇼미더머니의 영향으로 힙합 시장이 대중음악의 영역에까지 확대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그런 의미를 가진 프로그램이었기에 종영 이후에도 리스너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현재의 힙합 시장은 더 이상 미디어의 도움만이 정답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유튜브에서도 힙합 아티스트들을 알리는 프로그램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아티스트들 또한 각자만의 방식으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자신을 브랜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엠넷이 쇼미더머니 대신 새로운 힙합 프로그램을 편성했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섰다. 기존의 방식대로라면 앞서 이야기했던 과제들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엠넷 특유의 캐릭터를 이용한 작위적인 스토리 전개는 이제 더 이상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오지 않는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기존과 같은 오디션 포맷인지 아예 기존의 메이저 아티스트끼리 경쟁하는 서바이벌 포맷인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변화된 시장의 흐름에서 쇼미더머니가 가졌던 메가 IP의 저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힙합 팬들과 대중들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밸런스다.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09444
https://www.mk.co.kr/star/broadcasting-service/view/2023/01/47971/
https://www.ajunews.com/view/20230124101517778
http://www.celuvmedia.com/article.php?aid=1675043342445665010
by 데이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