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18일 데뷔한 아이유는 어느덧 데뷔 15주년을 맞이한 중견가수가 되었다. 데뷔초 ‘Boo’나 ‘있잖아’, ‘마쉬멜로우’ 등 통통 튀는 콘셉트의 곡들로 소녀스러운 모습을 강조하다가도 통기타 하나와 목소리만으로 무대를 가득 채워 대중을 놀라게 했었다. ‘잔소리’의 히트 이후 발매한 ‘좋은 날’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슈퍼스타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좋은 날’의 유례없는 성공 이후 ‘너랑 나’-‘분홍신’으로 이어진 ‘동화 유니버스’는 이민수-김이나 콤비의 작품이다. 이민수 작곡가는 클래식 사운드를 맥시멀하게 활용하는 편곡으로 곡의 버라이어티함을 극대화시켰고, 페스티벌이나 퍼레이드에 가까운 음악 위에 김이나 작사가의 동화스러운 가사는 아이유만의 아이덴티티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분홍신’ 발매 이후 꾸준히 그 유니버스를 탈피하려고 시도했다. 만들어진 세계관 속에 존재하는 아이유가 아닌 ‘이지은’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했다. 현재 대중이 아이유를 인식하는 것은 ‘좋은 날’의 3단 고음이 아닌 대중에게 전한 깊은 위로와 따뜻한 메세지다. 그녀가 오랜 시간 동안 가수로서 롱런할 수 있는 기반은 이 변화에 있었다. 가수 아이유의 2막을 연 [CHAT-SHIRE]나 [Pallete]는 마치 다른 가수의 음악을 듣는 것 같기도 했지만, ‘스물셋’ – ‘밤편지’의 굵직한 히트 넘버를 남기는 것은 물론 음반의 음악적 완성까지 이루었다. 큰 시스템 아래 재단된 것도 본인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도 모두 좋은 작품으로 만들 줄 아는, 영리하면서도 부지런한 아티스트다.
[꽃갈피] 2014.05.16
아이유는 이 앨범을 발매하기 전에도 탑티어 솔로가수였지만, 다른 아티스트와의 확실한 차별화를 두며 우위를 선점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리메이크 앨범의 공이다. 곡을 커버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으며 본인만의 보컬 스타일과 감성으로 완전히 재해석해 리메이크라는 이름에 매이지 않은 또 다른 자신의 명반을 만들었다. 타이틀이었던 '나의 옛날이야기'뿐만 아니라 '너의 의미'까지 차트에서 롱런하는 등 '좋은 날' 이후 또 한 번의 큰 각인이었다. 학생들은 옛 원곡을 찾아 듣고, 3040은 아이유 노래를 듣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식의 이벤트로 치부하지 않으며 이후 [꽃갈피 둘]을 발매하며 보컬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결과물만 놓고 보았을 때 음악적으로도 좋은 성과이지만, 전략적으로도 영리한 기획이었다. 단지 '옛 노래를 다시 부른다'는 개념을 넘어 기타 치며 '옛 사랑 '을 부르는 영상이 알음알음 화제가 됐었던 아이유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실제 아이유 보컬의 강점, 아이유의 음악적인 욕심 등 모든 것들의 공통분모를 이 [꽃갈피] 한 장으로 풀어냈기에 비즈니스적으로도 훌륭한 음반이다.
[CHAT-SHIRE] 2015.10.23
본격적으로 동화 유니버스를 탈피하고 아이유의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한 앨범이다. ‘내 손을 잡아’, ‘금요일에 만나요’ 등 이전에도 자작곡을 발매한 적이 있긴 했지만 음반 전체의 기획에 관여하는 것은 이 앨범이 처음이었다.
타이틀곡 ‘스물셋’이 갖는 의미는 정말 크다. 솔로 여자 가수의 성공적인 롱런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으며, 여자 가수가 자신의 나이를 앞세워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냉소적으로 풀어 낸 것은 보기 힘든 일이었다. 좋은 날도, 싫은 날도 많았던 아이유의 친절하고도 차가운 감정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아무것도 모를 나이에 정상에 올라 이런저런 산전수전을 다 겪으니 자기 자신도 곰인지 여우인지 모르는, 그런 아이유이기에 이 곡의 전달력이 컸다. 웅장한 스케일의 음악이나 보컬의 노래 자랑 없이 '연예인 아이유와 사람 이지은'이라는 누구나 생각해 볼 가십거리로 탄탄한 스토리의 음반을 만들어냈다.
[Palette] 2017.04.21
수작이라고 평가받았던 정규 2집 [Last Fantasy]에서 아이유는 완벽히 짜인 동화 유니버스 세계관 아래 그 주인공으로 분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Palette]는 다르다. 오로지 아이유로부터 그려졌다. 장르와 스토리, 그 무엇도 전혀 상관없이 그저 ‘좋은 팝’ 10곡을 넣었더니 없던 유기성도 알아서 만들어졌다.
‘이 지금’에서 본인의 음악 세계를 이제야 보여주겠다고 넌지시 전하고는 ‘팔레트’에선 아이유여야만 의미가 있는 가사들로 대중과 소통을 시도한다. ‘밤편지’의 사랑 고백과 ‘이름에게’의 위로를 통해 전작의 냉소적인 시선이 대중과 공감을 주고받으려는 시그널로 변화했다. 아이돌과 싱어송라이터, 그 사이를 갈팡질팡하지 않고 둘 다 잘해버린 결과다.
[Love poem] 2019.11.18
전곡의 지은이가 아이유이기 때문에 앨범의 모든 곳에 그녀 특유의 신중한 은유가 묻어 있고, 곡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각자 다를지만 '사랑시'라는 글감 하나로 리스너들의 이해를 설득한다.
보컬의 표현력이 흡 잡을 데 없이 훌륭하니, 음악이 갖는 감정과 서사도 선명하다. '그 사람'에서는 깊은 벤딩으로 흑백영화의 한 컷을 떠오르게 하고, '자장가'에선 '밤편지' MV의 한 장면을 여린 보컬로 표현한다. '너랑 나'의 동화 유니버스와 현재 아이유의 음악 세계를 연결하는 작품 '시간의 바깥'은 아이유가 얼마나 본인의 디스코그라피를 허투루 만들어내지 않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내가 사랑하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남'에게 전하는 응원가 'unlucky'와 'Love poem'의 수록으로 음반의 시작과 끝맺음의 유기성마저 갖추었으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음반을 통해 아이유 자신도, 우리 리스너도 사랑받아야 할 나의 인생, 혹은 누군가의 인생을, 혹은 전혀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고, 곡과 함께 생각할 것이다. 시는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여러 사람들의 생각과 말로 해석되고, 전달된다. 아이유는 그것을 철저히 수용했고, 음반 소개에서도 드러냈다. 'poem'이 그렇듯,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면, 그게 감상인 것이다. 아이유는 그런 이야기를 6곡의 미니앨범에 풀어 냈다.
[IU 5th Album 'LILAC'] 2021.03.25
대중들은 이미 ‘소녀 가수’ 아이유에서 ‘사람 이지은’으로 그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변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회사의 프로덕션, 미디어의 기능도 아닌 그녀의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도, 괄시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프로듀싱을 믿고 밀어붙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Celebrity'와 ‘라일락’의 자아가 가수 아이유인지, 사람 이지은인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졌다. 아이유가 부르는 노래는 모두 어떠한 '사람'의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에.
가장 최근 작품이자 정규 5집 앨범인 [LILAC]은 아이유의 모든 것을 총망라했다. 인디씬과 메인스트림의 감성이 공존하던 [Palette]와 달리 비교적 대중적이다. 가볍고 쉽게 감상할 수 있는 '라일락'과 'Celebrity'가 음반의 시작과 중심을 잡아주고, 재치 있는 'Flu'와 '어푸'가 시선을 환기하면, '아이와 나의 바다'와 '에필로그'로 리스너의 감정선을 아름답게 마무리 짓는다. 한 사람의 20대를 마무리하고, 30대라는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자전적인 앨범이지만, 결국 그 긍정적인 메시지는 리스너에게 향한다. 참 ‘사람 이지은’다운 작품이다.
‘에잇’, ‘strawberry moon’, [조각집] 등 정식 앨범이 아닌 디스코그라피에도 사람 ‘이지은’의 작품이 이어지고 있고, 아이유의 신보 발매 소식이 뜰 때면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하고 자연스레 기대한다. 자신의 이야기로 아티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인 ‘아이덴티티’와 ‘기대감’을 모두 충족시킨 셈이다.
이 변화만이 정답이고 유일한 해결책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판타지를 계속 유지했어도 아이유만의 무언가를 충분히 녹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가 가장 자신 있는 것으로 대중을 설득했고, 대중은 이에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