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커리어를 돌아보며
다방면에 걸쳐서 경험하는 것과 한 분야를 꾸준하게 파는 것 중 무엇이 좋을까. 당연히 넓고 깊은 것이 가장 좋겠지만 보통의 존재라면 양자택일 상황의 두 갈래 길과 마주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구름이라는 뮤지션은 여기서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의 길로 들어선 듯하다. 지난 10년 동안 아티스트, 프로듀서, 세션까지 다양한 역할을 경험하면서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제너럴리스트라는 이정표를 보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처럼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왔을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커리어의 단계마다 상징적으로 남겨진 앨범들이 그가 꽤나 훌륭한 ‘제너럴리스트 뮤지션’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아마 대부분이 백예린의 프로듀서로서 구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백예린이 15& 활동을 끝내고 솔로 활동을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두 사람은 작업 파트너로 함께하고 있다. 사실 15&에서의 백예린은 어디까지나 ‘노래 잘하는 가수’였다. 그 자체만으로도 유의미하겠지만 이후 구름의 터치가 들어간 [FRANK], [Bye bye my blue]에서는 본연의 감성을 담아내면서 한층 다채로워진 음악을 선보였다. 마치 구름이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해도 괜찮다고 알려준 것만 같다. 그리고 마침내 [Our love is great]을 통해 백예린은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을 완성했다.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가 몽환적이면서도 따뜻한 질감의 사운드를 만나면서 그의 순수한 매력이 온전히 표출되었고, 음악적으로도 훌륭했지만 상업적으로도 높은 성과를 달성하면서 신비로운 인디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굳히는데 중요한 모멘텀이 되었다. 이 정도면 백예린의 프로듀서보다 ‘백예린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더 적절해 보인다.
백예린을 만나기 전 구름은 달총과 함께 치즈로 활동했다. 백예린과의 작업은 주로 아티스트가 스케치한 자작곡에 프로듀서로서 사운드를 입히며 채색을 하는 방식이라면, 치즈에서는 직접 멤버로 활동했기 때문이었는지 작곡에 보다 비중을 두었다. 대표적으로 [CHEEZE 1.5집 Plain]에 수록된 ‘Madeleine Love’가 있다. 달총의 밝은 매력이 구름의 통통 튀는 래그타임 리듬을 만나면서 극대화된 곡이다. 이전부터 기리보이의 [성인식]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알리고는 있었지만 구름을 인디 씬의 대표적인 프로듀서로 자리매김하게 해 준 것은 ‘Madeleine Love’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재즈 스탠다드 넘버인 ‘Autumm Leaves’를 대중적인 멜로디로 풀어낸 ‘Romance’도 인상적이었다. 장르적으로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증명서 하나를 남긴 느낌이다.
사실 그는 인디 록 밴드 바이바이배드맨에서 키보드를 연주하면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아쉽지만 록 밴드에서 키보드는 필수 요소라고 하기 어렵다. 폭발적인 사운드를 내는 리듬 기타와 자기주장이 강한 리드 기타가 들어서면 남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보드는 주로 세련된 사운드를 찾아서 감칠맛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Bye Bye Badman]은 90년대 초반 영국의 매드체스터 사운드를 멋스럽게 소화한 앨범이다. 그중에서도 ‘Between the black and white’를 들어보면 키보드가 고유의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제대로 구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Out Of Here’의 후반부에서 작렬하는 솔로 역시 일품이다. 음악을 세련되게 만드는 특유의 감칠맛이 바이바이배드맨 시절에 자연스럽게 단련된 것이 아닐까 싶다.
구름의 커리어를 역순으로 돌아보면서 그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적 역량을 키우며 이름을 알려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다시 제너럴리스트 이야기를 해보면 문득 질문이 생긴다. ‘최대한 다양하게 경험하면 최대한 성공할 수 있는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경험만 많이 하면 오히려 ‘무난하지만 애매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함정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자고로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큰 기대감을 만족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신입 직원에게 할당되는 책임과 베테랑 임원이 감당하는 책임의 크기는 현저하게 다르다. 무난한 신입 사원은 사랑받을 수 있지만 애매한 임원은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제너럴리스트도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강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구름이라는 제너럴리스트 뮤지션도 스페셜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에 매번 완성도 높은 앨범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작곡부터 마스터링까지 모든 역할을 홀로 소화한 구름의 [많이 과장해서 하는 말]을 살펴보면 이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앨범의 주제를 관통하는 동명의 수록곡 ‘많이 과장해서 하는 말’은 재지한 건반 연주와 나른한 보컬만으로 차분하게 진행되다가 중간중간 사운드가 혼란스럽게 터지는 부분이 등장한다. ‘우울한 날이 가끔 있을 때도 있었어’ 그런데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는 아이러니한 가사처럼 우울과 행복 사이에서 강하게 요동치는 것만 같다. 이처럼 단편적인 우울이나 행복을 복합적인 형태의 감정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면 감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듣는 사람을 배려하는 세심한 매력이 느껴진다. 트랙 전체에서 개인적인 감정을 이야기하면서도 이는 의미심장하거나 거창한 감정이 아닌 그저 많이 과장해서 하는 말이라고 거듭 강조하기 때문인지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
결국 구름이 커리어에 걸쳐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도 매번 유의미한 결과물을 남기면서 훌륭한 제너럴리스트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감력’이라는 자신만의 강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프로듀서로서 백예린이 음악 안에 본연의 감성을 담아내도록 자신감을 끌어올리고, 작곡가로서 달총의 밝은 매력이 돋보이는 음악을 만들고, 또한 세션으로서 밴드가 추구하는 감성을 세련된 사운드로 디자인한 것 역시 아티스트의 복합적인 감정을 이해하고 이를 사람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풀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성장하는 방법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지금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의 두 갈래 길과 만난 사람이라면, 구름이라는 제너럴리스트 뮤지션의 성장법이 좋은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by Ja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