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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Mar 12. 2024

빠순이, ‘고객’이 될 수 있을까?

엔터테인먼트 업계만의 독특한 고객 응대 태도

최근 제로베이스원 팬 싸인회 논란을 들어보지 못한 아이돌 팬은 없을 것이다. 제로베이스원 멤버 중 하나인 ‘김지웅’이 팬과의 영상통화 팬 싸인회를 끝마친 직후 바로 욕설을 했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소속사 웨이크원은 영상이 조작되었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음성 분석 결과와 함께, 욕설 사실을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논란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팬덤은 팬 개인의 문제로 원인을 돌리는 회사의 태도에 오히려 더욱 크게 분노했다. 그에 따라 사비를 들여 트럭 시위를 보내고 음성 분석을 다른 업체에 의뢰하면서 김지웅의 탈퇴를 촉구하고 있다.


팬들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분노했을까? 근본적인 원인을 되짚기 위해서는 다른 사례들을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몇 개월 전의 사건이지만, ‘BOYNEXTDOOR’의 과잉경호 사건 역시 팬덤의 공분을 샀다. 공항에서 멤버를 촬영하고 있던 팬을 경호원이 세게 밀치는 영상이 SNS에 게시되었고, 팬덤은 마찬가지로 분노했다. 두 사건 속 팬덤의 입장에는 공통점이 있다. 논란이 된 김지웅의 영상을 게시한 팬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이렇다. “왜 빠수니가 오억주고 눈치 살살봐가면서 대화해야되나요..?” 두 팬덤 모두, 왜 ‘돈을 지불하는’ 일종의 ‘고객’인 자신들이 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두 사례를 들었을 뿐, 팬덤에 대한 열악한 처우는 최근만의 문제도, 특정 소속사에 국한된 문제도, 업계 내부만의 문제도 아니다. ‘빠순이’라는 비하단어가 국어사전에 정식으로 등재되었을 정도로, 아티스트를 응원하는 팬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태도는 업계 내부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팽배하다. 아이돌이 출연하는 콘서트나 행사를 관람해본 적이 있다면 알겠지만, 그 안에서 경호 인력의 거친 언행이나 과잉한 신체 진압, 혹은 스태프의 과도한 본인 확인 절차, 비인간적인 소지품 검사 등은 일상적인 일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엔터테인먼트의 우수한 ‘고객’이나 다름없는 팬덤은 왜, 어째서 ‘빠순이’가 되었을까?




소속사나 공연 기획사의 입장은 분명하다. 첫 번째로 수많은 관객이 운집하는 공연장, 공공장소 등에서 아티스트와 관객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다소 과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경호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아티스트가 부상을 입거나, 관중들이 많은 인파에 밀려 부상을 입는 사고가 빈번하다. 대표적으로는 2021년, 트래비스 스콧의 공연에서 압사 사고가 일어난 바 있으며, 한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여러 번 발생한 바 있다.


둘째로는 경제적인 이유다. 일례로, 공연 그 자체가 상품이고 수익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그들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촬영 및 게시를 제한하기 위해 다소 과잉한 소지품 검사 등의 절차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만들어내는 상품의 특성을 고려해보면, 이는 구매 전, 상품 개봉을 금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지 모른다. 또한, 최근 한국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 ‘암표’ 관련한 문제도 있다. 예매가 어려운 공연의 티켓을 구매한 뒤 프리미엄을 붙여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일부 암표상을 제재하기 위해, 개인정보 확인을 통한 본인 확인 절차를 엄격하게 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팬덤도 일종의 고객이라는 면에서 바라보면, 이런 상황이나 대우는 어불성설이다. 놀이공원에 많은 입장객이 운집한다고 해서 안전을 이유로 욕설을 내뱉거나, 세게 밀치는 행동을 하는 직원을 본 적이 있는가? 상상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이 고객의 이탈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롯데월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에버랜드에 갈 수도 있고, 에버랜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서울랜드에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상품은 일반적인 상품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엔터테인먼트의 상품은 곧 ‘아티스트’다. 그들을 소비하는 팬덤은 그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실제 인간관계에서 그들의 단점을 발견하거나 갈등이 있었다는 이유로 쉽게 관계 단절을 할 수 없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받는다. 엔터테인먼트의 상품은, 상품의 성격을 띄고 있지만, 동시에 일방향이라고 할지라도 인격적인 관계도 포함하고 있기에 다른 상품처럼 대체제를 찾기 쉽지 않다. 그것이 음악, 특히 아이돌 산업의 주요 고객층인 팬덤을 다소 험하게 다루어도 고객 이탈이 일어나지 않는, 동시에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일부 현직자들이 팬덤의 처우에 큰 관심이 없는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최근의 아이돌 팬덤은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인다. ‘그럼에도 내가 사랑하는 가수이기에 참는다’는 매우 순종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전과는 상이하다. 2016년, 엑소의 콘서트 현장에서의 몸 수색 절차가 과잉하며, 그것이 성희롱으로 느껴진다며 팬들이 반발하자,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엑소의 팬덤의 연령대가 낮은 편으로 보다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 그 이상의 대응은 없었고, 팬들의 반발도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최근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2023년, 앤팀의 팬싸인회 현장에서 발생한 과잉한 몸 수색에 팬덤이 보다 끈질기게 대응을 요구했고, 소속사 하이브는 결국 차후 개선안을 준비하겠다며 사과했다.


이제 팬덤은 트럭 시위 등의 방법으로 본격적이고 거세게 팬덤의 처우 개선에 목소리를 높인다. 이는 세대 자체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 아이돌과 팬덤은 매우 일방향적인 관계로서, 아티스트를 팬덤이 동경하고 사랑하는 구조였다면, 이제 팬덤은 자신을 아티스트와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로서 인식한다. 프로듀스 101은 이러한 인식 변화의 가장 큰 발판이었다. ‘국민 프로듀서’라는 이름을 달고, 좋아하는 연습생에 투표해 그를 직접 데뷔시키는 프로그램의 구조는 팬덤으로 하여금 그들의 지위를 달리 만들었다. 이제 팬덤은 단순히 아티스트와 기획사의 결과물에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들의 성공에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지위를 갖고 있다. 그렇기에 팬덤에게 아이돌은 더 이상 일방적인 동경과 사랑의 대상으로 남지 않는다. 함께 성장해야 하는 공동체, 나아가 내가 육성해야 하는 일종의 가능성이 된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실제로 금전을 지불하며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되는 팬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것은 훨씬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되고, ‘탈덕’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팬덤과 마찬가지로 현직자들의 인식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 케이팝의 성장세는 점차 둔화하고 있다. 실제로 2023년 하반기에 들어 피지컬 세일즈가 눈에 띄게 줄어든 그룹이 다수 존재한다. 게다가 케이팝이 덩치를 키우면서 증가한 공연과 앨범 가격, 쏟아져 나오는 MD와 무형의 소통 서비스까지, 이제는 그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는 팬들의 목소리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잠재적 코어 팬덤의 역할을 하는 라이트 팬덤의 유입에 고전을 겪고 있는 현재의 씬에서, 코어 팬덤의 구매력까지 하락한다면 케이팝이 현재와 비슷한 위상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구매력 있는 팬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 나아가 매출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고객’으로서 대하지 않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인식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우수 사례로 꼽히는 임영웅 콘서트

물론 이렇게 말하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곡소리가 나올지 모른다. 먼저 언급한 안전과 경제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훌륭하게 바꿔낸 선례들이 있다. 임영웅의 콘서트는 안내 및 경호 인력을 다수 배치해 친절한 관객 응대 태도로 크게 호평받은 바 있다. 아티스트와 팬덤의 특성이 달라 아이돌 공연과 일대일 대응은 어렵지만, ‘친절함’을 바탕으로 안전하고 쾌적한 콘서트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비용의 문제가 있을 수 있겠으나, 키오스크 등을 활용해 MD 판매, 티켓 발권 등에 들어가는 인력을 줄여 경호나 현장 안내 인력을 늘린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 역시 든다. 안전 뿐 아니라 암표 문제 역시 기존 콘서트 사례를 참고하면 불가한 일은 아니다. 최근 장범준은 암표를 근절하기 위해 티켓을 NFT 형태로 발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NFT 티켓 형태를 활용한다면, 공연, 혹은 팬미팅, 공개 방송 방청 등 현장에서의 고압적인 태도의 과하리 만큼 엄격한 본인 확인 과정 역시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현장에서의 대우만 달라질 것은 아니다. 팬덤에 대한 업계 관계자의 인식 역시 바뀔 필요가 있다. ‘빠순이’가 아니라 하나의 정당한 ‘소비자’로서 팬덤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들 역시 중요하다. 여느 물건 판매업이 고객센터를 운영하듯, 엔터테인먼트에도 직접적으로 의견을 청취하는 공간을 만드는 등의 예시가 있을 수 있다. 일례로 최근 SM엔터테인먼트는 ‘광야 119’를 신설하며, 아티스트 권익 보호를 위한 신고, 그리고 팬덤 의견 청취 게시판을 마련했다. 실제 팬덤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은 간접적인 반응 리서치를 넘어 보다 직접적으로 팬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물론, 현재 시스템상 이곳에 남겨진 의견과 신고가 실무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는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AI를 활용해 수합된 공통 의견과 실무 반영 결과를 볼 수 있는 자리가 정기적으로 마련된다면 더욱 발전된 시스템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관행, 그리고 비용적인 측면에서 팬덤의 처우를 개선하는 일이 하루 아침에 될 수 없는 일임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덤의 기조는 점차 변화하고 있고, 이 변화에 적응하고 대응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이탈을, 동시에 매출의 하락을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제는 관행이라는 이름 뒤에 숨을 수 없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 케이팝 씬을 유지하기 위해, 부디 팬덤을 바라보는 태도가 어땠는지 돌아보는 많은 현직자가 있기를 빌어본다.


By. 이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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