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VE, 구름, 성휘, Glass Beams 외
도라 : 데뷔 때부터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PLAVE(플레이브)의 진가가 드디어 드러났다. '버추얼' 아이돌의 존재가 단순 호기심에서 문화로 정착되어가는 기로에 선 지금 플레이브가 그 중심에 서있는다는 건 부정 못 할 사실이다. 플레이브에 입덕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트랙이 좋다.'이다. 하루가 다르게 기록을 경신하는 플레이브의 기세에 모든 트랙을 들어보았고, 나 또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음반의 경우 1번 트랙 ‘Watch Me Woo!’ 그리고 3번 트랙 ‘버추얼 아이돌’이 귀를 사로잡았다. Afrobeat을 사용한 그루비한 트랙에 얹은 매끄러운 표현력, 치부가 되기도 하는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특성을 쫀득한 랩으로 재치 있게 풀어내는 담대함까지. 조롱 섞인 '뭐야?'가 놀라움의 '뭐야!'로 바뀌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공통적으로 느낀 플레이브의 강점은 리듬이 주가 되는 힙합 장르의 소화력이 상당하다는 점이었다.
한편, 한국과 일본이 다루는 '버추얼 아이돌'의 방향성이 다름에도 각자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각국의 '아이돌이 가지는 정의'가 방향성의 차이를 만드는 것에 일조했다고 볼 수 있겠다. 한국의 아이돌은 소위 말하는 K-Pop 기반의 '기획형 아티스트', 그리고 일본의 아이돌은 서브컬처 기반의 '성장형 아티스트'이다. 그 때문에 국내 버추얼 아이돌은 기존 아이돌과 같은 K-Pop 시장에서, 일본은 서브컬처 시장에서 성장하게 된다. 특히나 일본의 경우 대다수가 시작부터 아이돌이 아닌, 유튜버에서 무대 진출까지 이루어낸 경우이기에 지향하는 트랙 장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일 간 시장 다양성과 규모의 차이에 따른 선택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돌'이라는 이미지가 가져온 서로 다른 결괏값이 상당히 재미있다.
플레이브가 버추얼 아이돌이자 K-Pop 아이돌로서 성공할 수 있던 비결은 K-Pop 도식을 따른 퀄리티 높은 트랙과 더불어 아이돌 문화에 빠질 수 없는 '커뮤니티 화력'이 맞물려서가 아닐까. 약 4일 간격의 꾸준한 라이브 방송과 거기서 파생되는 클립을 통해 기존 K-Pop 팬덤 바깥에 있던 팬층이 유입되었다. 애초부터 온라인 활동에 능하고 '덕력'이 높은 팬층은 커뮤니티 문화 적응력 또한 빠를 수밖에 없다. 덕후가 괜히 덕후이겠나, 고객 충성도만큼 높은 단합력이 맞물려 가파른 성장세를 만들어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엔터사들이 고민하던 '파이 싸움'의 새로운 해결책이 플레이브를 통해 제시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오타쿠의 성지이자 발생지인 일본에서는 '일본 경제를 돌리는 것은 오타쿠'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국내 또한 소위 오타쿠 문화라 불리는 서브컬처가 점차 양지로 올라오고 있는 가운데 플레이브의 성장과 서브컬처 시장의 확대가 K-Pop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상당히 기대된다.
카니 : 생각해 보면 악몽은 어떤 꿈보다도 유달리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현실에서도 악몽 같은 일들은 뇌리에 깊게 박혀 오랜 시간 우리를 괴롭히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어떤 선명한 것들이라도 흐려지기 마련이다. 구름은 이런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을 [나폴리탄 악몽 산책]에 기록했다.
구름의 아이덴티티라 생각하는 몽글한 건반이나 서서히 피어오르듯 변조하는 사운드는 여전했으며 이는 ‘청소년 영화’, ‘여름이었던 것’ 후반부에서 잘 드러나있다. 이렇듯 구름의 스타일은 유지하되 [많이 과장해서 하는 말]의 거친 사운드 질감보다는 한층 부드러워진 질감과 길게 늘어지는 아웃트로가 압도되는 분위기를 만들어 구름의 유니크한 색감을 더욱 짙게 했다. 특히 마지막 트랙 ‘인 영’은 박자가 밀리는 독특한 흐름과 흐릿해진 악몽에서 깨어나 다시금 피어난 사랑을 "지금까지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말해줘", "깨어나지 않을 줄 알고 무서웠다고 말해줘"라 에둘러 표현하며 구름 특유의 먹먹함을 머금은 작사가 잘 묻어나 유독 마음에 들었던 곡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수채화처럼 붓 칠을 하면 할수록 연하게 퍼지는 음악이 꽤 마음에 들었지만 그만큼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모두에게 스며들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유행하는 기류에 휩쓸리지 않고 작곡, 작사, 프로듀싱, 믹싱, 마스터링까지 온전히 구름만의 색으로 채워냈기 때문에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리스너들에게는 명화가 될 앨범이지 않을까.
수니 : 성휘의 음악적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와인루프 활동 당시에는 외부 효과를 적용시키는 것 없이 깨끗하고 선명한 사운드를 지향했다. 그러나 솔로로 전환하면서부터는 리버브와 같은 공간계 이펙터를 활용하여 분위기를 흐릿하게 하고 사운드에 공간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음악적 변화는 ‘영원히 머물게요’에서 두드러진다. 이전보다 음향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졌으며, 넓은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사운드 풍경 안에서 이별에 대한 깨달음을 노래하여 깊은 감정적 여운이 느껴지게 한다.
그는 김광석의 감성을 좋아한다. 김광석의 것과 같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더 깊게 느껴지는 점이 신선하다. 이는 그의 음악적 변화 덕분이다. 이것은 자칫하면 해당 장르의 본질을 해칠 수도 있는 것인데 절제되어 있다. 배경 사운드도 최소화되어 담담한 노랫말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러한 기조에 살짝 가미된 블루스 벤딩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덕분에 감정적으로 더욱 깊은 몰입이 가능했다. 온전히 노랫말에 집중하며 그 여운을 느낄 수 있는 곡을 오랜만에 만났다.
레트로를 사랑하는 성휘는 확실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곳에 단순히 머물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시간을 진실로 마주하고 이해했다. 그렇게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 창작자로서 온고지신의 올바른 사례를 보여주었으며, 음악적으로는 클래식한 장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그 가능성을 제시했다. 나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Sufjan Stevens이나 Mitski의 음악처럼 과감한 접근도 해줬으면 한다. 이는 좀 더 대중성을 위한 방법이 될 것이다.
도라 : 태생적 뿌리가 음악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아름답다. 그리고 그 영향은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땅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이민자들과 그들의 후대가 이민국에 뿌리를 내리며 이루어지는 문화적 융합은 전 세계의 뻔하고 지루한 음악 세계를 넓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디아스포라를 통해 빚어지는 예술은 그들과 삶과 닮아있다. 기존의 형식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 부드럽게 섞이되, 자신의 근간을 확실히 주장한다. 덕분에 느껴지는 보석 같은 차이에 모두들 매료되어 Afrobeat 또한 주목받는 시대가 오지 않았는가.
모든 새싹 음악인은 한 번씩 거쳐 가는 길이 있는데, 바로 하모닉 마이너 스케일을 배웠을 때 본 적 없는 아라비안나이트에 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Glass Beams의 이번 신곡을 듣고 직감했다. '또 많은 새싹 음악인이 하모닉 마이너 스케일에 도전하게 만들 곡이 나왔구나.' Glass Beams의 창립 멤버 Rajan Silva는 호주 이민자인 아버지의 음악 취향에 영향을 받았는데, 발리우드의 화려함과 블루스 록의 끈적함이 섞여 독특한 색을 만들어냈다. 처음 트랙을 들었을 때 당연히 시타르로 연주한 줄 알았던 멜로디 라인이 사실은 이펙터와 프리앰프를 통해 만들어낸 기타 사운드였음을 확인했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적 악기로 재해석한 사운드가 주는 충격이란! 정교한 CG로 표현된 역사 속 한 장면을 보듯,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만났을 때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확장성을 음악으로 옮겨놓은 느낌이었다.
또한, 빛나는 금색 실과 비즈로 엮은 가면을 쓴 채 연주하는 밴드 멤버들의 모습은 '오리엔탈 뷰티' 그 자체였다. 인디언 루츠를 가진 당사자이기에, 문화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표현의 깊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매력 중 하나임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모든 걸 제외하더라도 Glass Beams의 음악에는 흡입력이 있다. 재생하자마자 그들의 음악 세계에 푹 빠질 수 있으니 데뷔 이후 세계가 주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테다. 버튼 하나로 다른 세계로 여행이 가능한 음악을 찾는다면, Glass Beams의 음악을 들어보길! 분명 그들의 세계를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테니까 말이다.
카니 : ‘Slow Motion’은 느린 속도로 촬영하다 순식간에 빨라져 극적인 효과를 주는 영상기법 슬로우 모션처럼 극적인 전개방식을 사용했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이 이어지다 순간적으로 드럼앤베이스 특유의 강한 리듬이 변화구를 던지듯 반전을 주는데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거처럼 작은 돌멩이에도 대차게 울렁이는 물결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 구성으로 엉망으로 흘러가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연인과 함께하는 시간은 느리게 흘렀으면 하는 바람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그동안 들어왔던 제니의 파워풀한 보컬이 아닌 차분한 보컬이 주는 섬세한 표현 방식도 곡에 잘 묻어나 깊이를 더했다.
맷 챔피언의 곡 ‘Die With Me’처럼 그의 독특한 음악스타일은 ‘Slow Motion’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그의 독보적인 음악성이 극적인 전개를 만들고 3분이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이 더해져 지루할 틈 없는 트렌디한 곡을 완성했다. 이는 3년이 묵은 음악임에도 발매할 수 있던 계기가 되었고 특히 새로운 레이블에서 시작될 제니의 첫 음악행보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고 곧 발매될 맷 챔피언 앨범에는 기대감을 심어 두 아티스트 모두에게 득이 된 선택이었다.
수니 : Sasha Alex Sloan은 새벽의 잔잔한 호수 위에 떠있는 지휘자다. 그녀의 손짓에 의한 물결은 저 멀리 나아가 누군가의 마음에 새겨진다. ‘Dancing With Your Ghost’는 그 파동이 절정에 올라있다. 이곡은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이 잔물결을 끊임없이 일으킨다. 중반부부터는 부드러운 스트링이 가세하여 세심한 감정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모든 사운드가 입체적으로 변하고 Sasha Alex Sloan의 백킹 코러스까지 가미되어 호수에 파문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잔잔함 속에서 순간적인 임팩트로 긴 여운을 주는 점이 그녀가 가진 무기다. 허나 ‘Highlights’의 Sasha Alex Sloan은 호수 위에서 별 손짓 없이 멍하니 있다. 그렇다 보니 그녀의 호수가 너무 정적이게 되었다. 곡 후반부의 미약한 스트링은 큰 물결을 일기에는 부족하다.
곡의 메시지 전달만큼은 확실하다. 차분한 목소리로 전달되는 감성적인 노랫말은 온전히 느껴진다. 허나 이건 Sasha Alex Sloan의 디폴트 값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Katy Perry, LANY, Kygo 등 다양한 팝스타들과 협업한 경험으로 음악적 내실 또한 충분하다. 그렇기에 이번 싱글이 더욱 아쉬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감정적인 빌드업은 여전하지만 마무리 과정에서의 임팩트가 이번엔 없었다. 만약 ‘Highlights’와 같은 기조로 갈 거면 건반의 비중이 많았으면 좋겠다. Sasha Alex Sloan의 감성을 드러내기에 이것만큼 적합한 악기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Jeremy Zucker의 ‘always, I’ll care’가 좋은 예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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