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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May 26. 2024

제로베이스원과 제로즈는 "딱 좋아 지금"

“Feel the POP” / [You had me at HELLO]

제로베이스원과 제로즈는 "딱 좋아 지금"

제로베이스원 - “Feel the POP” / [You had me at HELLO]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끝’이 있다는 것

Mnet <프로듀스101> 시리즈의 워너원과 아이즈원의 성공이 여간 컸었는지, 투표 조작 논란 이후에도 ‘플래닛’이라는 새로운 오디션 시리즈를 론칭하며 <걸스플래닛999>의 ‘Kep1er’, <보이즈 플래닛>의 ‘제로베이스원’을 데뷔시켰다. 프로그램의 높은 화제성은 곧 제로베이스원의 탄탄한 데뷔로 이어졌고, 데뷔 앨범으로 더블 밀리언 셀러에 달성하며 고척스카이돔에서 콘서트를 진행하는 등 ‘5세대 보이그룹’의 등장이라는 수식어도 거머쥐었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의 데뷔는 프로그램의 화제성이 팬덤을 모으며 데뷔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활동기간과 종료 시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명확한 한계를 갖기도 한다. 팬덤의 충성도가 곧바로 그룹의 성장과 수명으로 이어지는 케이팝의 특성상 장기간의 팬덤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한 약점이다. 프로그램에서 멤버 1인에게만 투표를 해 순위대로 데뷔가 결정되는 점 또한 자칫하면 팀 내 개인 멤버의 팬덤 문화를 조성하기 쉽고 ‘하나의 팀’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갖기 어렵다.  



‘제로즈’의, ‘제로즈’에 의한, ‘제로즈’를 위한 앨범: [You had me at HELLO]


여러 패널티가 있는 상황에서 제로베이스원은 대중성의 확장 대신 ‘데뷔시켜준’ 팬들을 향한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그 팬덤을 공고히 하는 전략을 택했다. 단순히 팬송을 수록하는 개념을 넘어 앨범의 모든 콘셉트와 스토리에 팬덤 ‘제로즈’를 반영했다. ‘내’가 뽑은 아이돌이 ‘나’를 주인공으로 노래한다는 점은 타 그룹들과의 확실한 차별점이다. 어찌 보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의 아이돌이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이 강하다. 


첫 앨범 [YOUTH IN THE SHADE]부터 제로즈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타이틀곡 ‘In Bloom’의 가사에서 가장 선명한데, ‘영원한 건 없대, 결국엔 모두 시들 테니’, ‘난 그저 모르는 체’, ‘시작과 끝은 너’ 등에서 끝이 정해져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결말은 변함없대도 난 달려갈게’라고 팬들을 안심시키며 위로한다. 이후의 [MELTING POINT]에서도 자신들을 구원해준 팬들을 위해 부서지고 무너져도 그들을 지키겠다는 (다소 오글거리는) 서사가 이어졌다.


운명 같은 첫 만남(In Bloom)과 앞으로의 각오(Crush)에 이어 세 번째 미니앨범 [You had me at HELLO]는 사랑에 푹 빠진 행복을 이야기한다. 팬들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청춘에 빗댄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앨범으로, 그간의 앨범들 중 가장 긍정적이고 밝은 정서를 다루고 있다. 걱정과 고민 없는 시간을 선물하겠다는 일상적인 메시지에 맞게 앨범 전반이 이지리스닝곡으로 이루어져있고, 실험적인 시도나 독특한 세계관 연출을 배제하여 심심할 수는 있으나 흐름이 여유롭고 자연스럽다. 



힘 빠진 타이틀과 더 나은 선택지: ‘Feel the POP’과 ‘SWEAT’

그렇지만 아쉬운 점은 정작 타이틀곡 ‘Feel the POP’이 별다른 존재감을 남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쌓아온 서사와 팬들과의 유대를 제외하면 음악 자체의 매력이 너무 부족하다. 일단 곡의 구조가 너무 진부한데다, 강박적으로 삽입한 아쉬운 래핑과 보컬의 음색을 전혀 활용하지 못한 음역대의 멜로디로 감상이 금방 증발되어 버린다. 곡 전반에 반복되는 귀여운 아르페지오만 귀에 맴돌 뿐이다.


‘SWEAT’ 같은 곡을 메인타이틀로 내세웠으면 어땠을까. 강렬한 신시사이저와 선명한 보컬이 시원하고 화려한 분위기의 여름을 연출하고, ‘Brrrup ba ba ba dum’ 등의 캐치한 파트가 존재해 앨범의 타이틀로 알맞은 역량을 갖고 있는데도 선공개 싱글에 그쳤다. 발매시기의 계절감을 표현하기에도 ‘Feel the POP’보다 훨씬 적합해 보인다. 특히 ‘Feel the POP’의 뮤직비디오 연출과 스타일링이 음악과 어울리지 못하고 붕 떠있는 데에 비해 ‘SWEAT’의 뮤직비디오는 직관적으로 음악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아쉽다.  



짧은 기간, 제로베이스원의 성장을 위해


제로베이스원의 음악은 대중음악을 향해있지만, 타겟은 ‘대중’보다 ‘팬’을 바라보고 있다. 현재 케이팝 아티스트의 강점이자 약점이기도 한데, 제로베이스원은 이 특징을 본인들의 특별한 서사와 연결지어 어떻게든 독자적인 세계관을 만들어냈다. 


제로베이스원의 활동이 종료될 때까지 많은 보이그룹들이 데뷔할 것을 고려하면 활동기간 내 팬덤의 이탈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보자면 계속해서 팬들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언급하는 이 전략이 아이돌 산업에서 꽤 유효할 듯싶다. 


‘In Bloom’ 때의 화제성과 음원 순위, 대중들의 감상을 생각하면 ‘Feel the POP’의 패착은 좁은 타겟이나 세계관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음악’인 것을 알 수 있다. 제한된 기간 내 팀의 확실한 각인을 위해서는 워너원의 ‘에너제틱’, 아이즈원의 ‘FIESTA’와 같은 정체성이 필요한 때이다. 멤버 개개인의 역량을 고려한 곡 선정, 깊이 있는 콘셉트 수립과 섬세한 연출, 앨범의 홍보 전략 등 케이팝을 구성하는 다방면의 요소에서 웨이크원의 꼼꼼함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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