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멘트 Jul 25. 2024

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4년 7월 3주)

NCT WISH, 정준일, 혁오, f5ve, Glass Animals 외


"우리가 새로운 SM의 청량&NEO다."


1. NCT WISH - ‘Songbird’

윈스턴 : NCT WISH는 NCT의 무한 확장 종료에 따라 마지막 서브그룹이라는 이름 아래 큰 기대를 받았고, 올해 초 ‘청춘소망돌’ 콘셉트를 들고 와 청량한 매력으로 그 기대에 부응했다. 다만, 첫 싱글 ‘WISH’에서 보여준 펑키함과 절제된 에너지는, NCT DREAM과의 음악적 차별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운 출발이었다. 지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이번 두 번째 싱글에선 '청량&NEO'라는 그들만의 팀컬러를 대중 앞에 더욱 밝고 에너지 있게 선보이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였다.


타이틀 ‘Songbird’는 리드미컬한 기타 스트로크와 퍼커션의 어우러짐이 돋보이는 곡이다. 곡 내내 기타 스트럼은 변주를 통해 성공적으로 곡의 긴장도를 견인해 나간다. 특히, 탑라인에서 멜리스마를 활용해 차별점을 두는 노림수는 눈여겨볼 만하다. 아쉬움으로는 이어져 오던 기세가 댄스 브레이크 구간과 브릿지에서 다소 꺾인다는 점. 이와 대척되는 미디엄 템포 기반의 수록곡은 타이틀의 에너지를 중화시키고 여운 있게 마무리하며 앨범 컬러를 충실히 뒷받침해 준다.


전작보다 그들의 팀컬러가 더 잘 드러나는 이번 싱글이었지만, 안주하기엔 이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검증된 퍼포먼스 역량과 콘셉 소화력을, 앞으로 '소망'이라는 범주 안에서 어떻게 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일지 고민할 시간이다. 또한, NCT DREAM과의 간극을 어떻게 벌릴지도 충분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 현지화 전략에 맞춰 탄생한 그룹이라는 점과 최근 K-POP 씬에서 주목되고 있는 '재패니메이션 코드'가 그들의 날개가 되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새로운 스타일을 기대해 볼 만하다.





"색의 부재에서 오는 힘"


2. 정준일 - [어떤 무엇도 아닌]

등구 : 흑백은 컬러가 주는 명확한 전달력과 자극은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질리지 않으면서 보는 이가 더 다양하게 감상하고 상상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이 앨범은 그 흑백의 특성을 잘 활용하고 있다. 앨범 커버뿐만 아니라 공개된 3편의 뮤직비디오 모두 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각각의 이야기를 그려낸 차분한 흑백의 영상이다. 그리고 음악 역시 정준일의 이전 앨범보다 훨씬 청각적인 자극이 덜하게 느껴지는 흑백 같은 곡들이다.


이전 앨범의 타이틀곡인 ‘안아줘’, ‘고백’, ‘그래 아니까’가 모두 폭발적이고 호소력 짙은 보컬과 클라이맥스가 뚜렷한 구성의 정석적인 감성 발라드였던 것에 반해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Love Again’은 전처럼 노래방에서 자주 불릴 듯한 곡은 아니다. 그 어느 후렴에서도 진성으로 고음을 지르지 않고, 바이브레이션과 함께 음을 길게 끌기보다는 호흡을 많이 섞어 가볍게 내뱉듯이 끊어 부른다. 함께 연주되는 악기의 구성은 그의 대표곡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비교적 드럼의 힘이 약하며 스트링은 화려하게 연주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곡을 감싸며 입체감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수록곡들에서도 보이는 특징으로, 보컬이든 연주든 모두 전체적으로 잔잔하며 고저가 크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쉽게 지루해질 수 있는데, 그 점을 최소한의 연주와 비장미로 보컬에 몰입하게 하는 ‘Curse’와, 반대로 보컬을 죽이고 연주를 앞세운 ‘Rune’의 조합으로 보완하고자 한 것 같다. 다만 ’Rune’이 과연 이 앨범에 꼭 수록되어야 했는지 의문이 들기는 한다. '이 곡만 후반작업을 다른 곳에서 했나' 싶을 정도로 큰 연주의 볼륨은 트랙들을 순서대로 들으며 절정에 다다른 몰입력을 단번에 흩트린다. 메이트 시절 때부터 해오던 락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 신선하기는 했지만, 조금 밋밋해지더라도 ‘Curse’에서 마무리를 하거나 그 자리에 매 앨범마다 존재하던 재즈 트랙을 수록하는 편이 긴 여운을 남기기엔 더욱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그럼에도 여러 번, 오래 들으며 곱씹게 하는 앨범임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힘은 오히려 파워풀한 가창력 대신 섬세한 감성을 모아 만듦에서 온 것이 아닐까.





"따스한 롤러코스터를 타고 온 혁오"


3. 혁오 (HYUKOH), Sunset Rollercoaster - [AAA]

도라 : 4년 만에 혁오가 돌아왔다. 혼자가 아닌 대만의 밴드 Sunset Rollercoaster와 함께! 이번 음반은 2023년 5월부터 약 1년간 국내에서 두 밴드가 작업한 곡이 실리게 되었는데, 얼마나 긴밀하게 작업을 했으면 총 8개의 트랙 중 무려 6곡이 타이틀로 지정되었을까 싶었다. 처음에는 그저 '인디 밴드 앨범적 표현'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곡을 들어보니 밀도 높은 완성도에 ‘그럴 만했다.’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첫 번째 트랙부터 사이키델릭한 무드를 자아내는 비브라폰과 일렉트릭 피아노, 몰아치는 색소폰 그리고 이펙터가 잔뜩 먹여진 기타가 주는 원초적인 '듣는 즐거움'이란. 그뿐일까, 만다린어 특유의 부드러운 발음이 듣는 이를 포근하게 감싸 안은 듯한 3번 트랙 ‘Antenna’는 잠시 듣고 있으면 근심 걱정 없이 떠다니는 해파리의 기분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눈을 감고 술술 흘러 들어오는 곡을 듣다 보니 가장 대중적인 바이브의 ‘Young Man’을 지나, 가장 마음에 들었던 트랙 ‘Aaaannnnteeeeennnaaaaaa’를 만나게 된다. 해당 트랙은 3번 트랙 ‘Antenna’의 속도를 반으로 늦춘 버전인데, 느림의 미학이라 하던가 어깨에 힘을 빼고 몰입할 수 있는 그 스피리추얼한 에너지가 일품이다.


이러한 에너지가 표현될 수 있던 데에는 두 아티스트가 서로의 이야기와 음악관을 나눈 1년여간의 시간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온난한 기후의 느긋함을 사이키델릭한 넓은 공간감으로 풀어내던 Sunset Rollercoaster의 감성이 이펙터를 잔뜩 먹인 혁오의 기타 밴딩 사운드로 표현되었으니, 서로의 매력이 어떤 식으로 녹아들었는지 '청각적으로' 쉽게 알 수 있기도 하다. 다만, 앞서 말했듯 "혁오" 하면 떠오르던 어딘가 나른하나, 리드미컬한 그루브가 있던 고유의 색깔은 변하지 않은 느낌인데 프로젝트 앨범이 아닌 솔로 음반이 출시된다면 이번 프로젝트 앨범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상당히 궁금하다!





"오래된 유행을 각자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다."


4. f5ve(파이비) - ‘Underground

도라 : Y2K가 K-Pop 씬을 오래도록 점령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걸그룹 사이에서 가장 핫한 열풍은 밀레니얼 팝 디바의 재해석이다.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 즉, Y2K 시대의 가요계는 Britney Spears, Beyoncé, 그리고 Jennifer Lopez 등 여성 솔로 가수들을 벤치마킹했던 '섹시 가수' 붐이 일었다. 그러니 현재 가요계는 한여름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것처럼 그 시대에 어렴풋한 추억을 가진 이들이 성장하여 동경했던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한편, 동시대 일본은 '갸루' 문화와 '파라파라 댄스' 붐이 일고 있었는데, 그 당시를 재해석한 J-Pop 아이돌이 바로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 f5ve 되시겠다. 본래 ‘파라파라 댄스’는 유로 비트를 기반으로 팔을 쭉쭉 뻗는 움직임을 중심으로 구성된 안무가 특징적인데, 이번 싱글 ‘Underground’에 해당 안무 포인트가 차용되었다! 하지만 3분이 채 안 되는 트랙, 하이퍼 팝 베이스에 통통 튀는 리드 사운드로 일본 특유의 '카와이 문화'를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나 f5ve가 재미있던 점은 비주얼과 트랙의 구성이 일본인이 생각하는 'K-Pop 아이돌'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칼군무, 이지 리스닝, 짧은 러닝 타임 등 아직도 5분이 넘어가는 곡을 왕왕 발매하는 일본 아이돌과는 차별점이 느껴지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한편, aespa의 일본 데뷔가 국내 유행을 선도한 '일본 패션 잡지' 그리고 메카닉 애니메이션을 모티브로 제작된 걸 보면 한/일 각국의 긍정적인 이미지의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이 상당히 흥미롭다.





"성공의 맛이 너무 달았나요"


5. Glass Animals - [I Love You So F***ing Much]

등구 : 빌보드 HOT 100 91주 차트인, 2022년 빌보드 연말 차트 1위라는 엄청난 성공 후 처음으로 발매된 신보 [I Love You So F***ing Much]의 첫인상은 화제작 ‘Heat Waves’를 포함해 주로 일렉트로니카와 트랩으로 채워져 있던 [Dreamland]와 비슷한 방향일 것 같다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1,2,3번 트랙의 뚜렷한 밴드 사운드, 점점 빌드업되다 벅차오르는 멜로디와 함께 코러스에서 터지는 전형적인 구성은 그들에게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던 락 밴드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놀랍기만 할 뿐 흥미롭지 않다는 것이다. ‘Show Pony’와 ‘Creatures in Heaven’은 Imagine Dragons의 베일에 덮여 Glass Animals의 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다음 트랙들의 감상도 비슷하다. 그들 특유의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사운드를 잘 표현한 [ZABA], 아프리카 민속적인 사운드를 드라마틱한 프로덕션으로 버무린 [How To Be A Human Being]에서 느꼈던 독창적인 모습과 인디 감성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Your Love (Déjà Vu)’, ‘Life Itself’ 등에서 잘 드러나던 독특하면서도 중독적인 리프 메이킹 능력 역시 보이지 않는다. 틱톡에서 큰 흥행을 맛봤기에 그 기세를 이어가고자 친숙하고 팝적인 음악을 시도한 것이라면 이해는 된다. 하지만 1, 2집을 사랑했던 팬에게는 너무나 가슴 아픈 앨범임을 조금이라도 그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본전은 쳤지만, 다소 아쉬운 패션쇼."


6. Kehlani - [Crash]

윈스턴 : 매혹적인 음색의 아티스트 Kehlani는 그간 사랑을 다루는 것은 물론, 전작 2개의 정규앨범에서 확인할 수 있듯 불완전한 내면세계도 선보여왔다. 이는 힘들었던 청소년기, 스캔들로 인한 자살 시도, 성적 지향 등을 면밀히 드러내는 그녀의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면의 혼란을 읊어대던 그녀가, 이번 앨범에서는 다양한 차림새를 해보며 얼터너티브 R&B 장르에서 본인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에 집중했다.


챔버팝 사운드로 시작하는 ‘Groove Theory’의 중간지점 전위적인 전환 이후, 포근한 Wub Synth와 그루비함을 통해 그녀는 몽환적인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후 댄스홀&레게톤 기반의 ‘After Hours’, 트랩 기반의 ‘What I Want’, 아미피아노 기반 ‘Tears’에선 본인의 장르적 시도를 완성도 있게 선보인다. 주목할만한 곡으로는 사이키델릭 하이라이트의 ‘Deep’이다. 이 곡에선 상향과 하향을 오가는 Synth&Flanger와 대비되며 어우러지는 베이스라인이 돋보이며, 자신의 괴로웠던 과거사를 들춰낸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있다. 그녀의 색깔로 채워오던 앨범의 정체성이 컨트리 기반의 ‘Better Not’이 나오고 나서부터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이 곡에선 그녀의 색깔이 묻어나기보단, 전형적인 장르적 색채만 남아 기시감마저 들게 한다. 이외에도 몇몇 곡들의 부족한 한방과 아쉬운 구성 탓에 목표했던 바까지 힘겹게 나아간다.


정리하자면 음악적 완성도·샘플링 등에서 프로듀싱의 재치가 돋보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앨범 구성의 집중도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오히려 힘을 덜어내고 구성에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럼에도 매혹적인 보컬 퍼포먼스와 다양한 시도를 충실히 내놓았다는 점에서, 어쨌든 얻고자 했던 씬에서의 영역 확대만큼은 본전이 아닐까 생각된다. 허나 이 앨범이 시도로 끝날 것인지, 다음 단계를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을지는 단언컨대, 그녀의 높은 완성도가 더욱 따라줘야 할 것이다.





※ '도라', '등구', '윈스턴' 블로그

매거진의 이전글 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4년 7월 2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