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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Aug 08. 2024

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4년 8월 1주)

기쿠하시, 베리코이버니, 전소미, aimyon, Crack Cloud 외


"눅눅함과 청량함이 공존하는, 기쿠하시의 여름"


1. 기쿠하시 - [코인런드리 밴드연습] 

루영 :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다시 시작된 지금, 무더위를 씻어 내리기에 딱 좋은 여름 앨범이 나왔다. 나른한 미성의 보컬과 멜랑콜리한 흐름의 메인 멜로디가 이어지는 가운데, 적절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오는 슈게이징과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조화로 마치 비가 갠 직후에 느껴지는 특유의 눅눅함과 청량함이 공존하고 있다. 또한 90년대 포크 음악처럼 잔잔하면서도 경쾌한 리듬의 곡부터 젊음의 에너지가 가득한 밴드 사운드의 곡까지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어, 한 청년이 마주하는 여름의 여러 풍경들이 곡마다 그려지는 재미도 느낄 수 있는 앨범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기쿠하시' 본인보다 그가 영향을 받은 것 같은 아티스트들의 존재감이 아직까지 더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일렉기타와 신스 사운드의 조합에서 Fishmans, Lamp 등 90년대 시부야케이 장르의 아티스트가 연상되고, ‘POPEYE’, ‘푸른섬광’과 같은 일부 트랙에서는 Ellegarden과 같은 제이락 스타일의 밴드 사운드가 유독 짙다. 전체적으로 그가 애정을 갖고 들었을 노래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재조합하려는 노력이 느껴졌지만, 그만큼 '기쿠하시' 본인의 색깔이 옅게 느껴지는 점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이 앨범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여름의 수채화 같은 감성이 트랙 곳곳에 잘 묻어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멍하니 ‘코인런드리’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다가, ‘물고기’부터 서늘한 여름밤공기 사이를 생각에 잠긴 채 걷기 시작하더니, ‘POPEYE’와 ‘푸른 섬광’에 이르러서는 한낮의 쨍쨍한 거리를 박진감 있게 달려 나가는 흐름의 자연스러움이 이 앨범을 여러 번 듣게 될 정도로 좋게 느껴졌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추상적인 이미지들을 음악뿐만 아니라 앨범에서도 스토리텔링을 충실히 해내는 아티스트라는 인상을 받았다. 앞으로 그가 또 어떤 감성을 전해줄지 기대되는 만큼, 다음 앨범에서는 '기쿠하시' 고유의 음악적 색채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제 시작일 뿐"


2. 베리코이버니 (verycoybunny) - ‘Restart’

 : 베리코이버니는 버블검 팝의 감성을 가지고 있지만 얼터너티브 록, 그런지 록 사운드를 표방하고 있는 가수다. 에이브릴 라빈이 떠오르는 팝펑크 장르의 ‘모자라’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그런지를 새로운 세대의 스타일로 풀어냈다는 평과 함께 2024 한국대중음악상 모던록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 싱글은 앞서 나열한 그녀의 디스코그래피를 떠올리면 분명 색다른 시도임에 틀림없다. 


록 사운드는 희미해졌으며 점차 증폭되는 드럼과 신스음이 몽환적이고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 얼터너티브 록과 신스팝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듯한 곡이다. 특유의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더 섬세하고 풍부해진 사운드를 보여준다. 담백하지만 생동감 있고 격렬한 비트로 인해 그의 음악에서 자주 들리는 특징인 단조롭지만 유려한 멜로디가 더욱 돋보였다. 다양한 사운드를 시도했던 초기 EP [BUNNY]에 수록된 트랙들이 떠올라 반갑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가 과연 베리코이버니의 커리어에서 유의미하게 작용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든다.


그러한 우려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은 여전히 보이는 베리코이버니 음악만의 독특한 정체성이다. 분명 00년대의 노스텔지어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가수다. 단순히 00년대에 흥행했던 장르를 차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흘리는 듯한 발음과 꾸밈없는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 음악 외적으로는 키치하고 유니크한 패션 등 베리코이버니를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들이 그 이유일 것이다. 이렇듯 특유의 감성으로 이미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구축했다 판단되니, 이번 싱글처럼 하이틴스러운 록에 한정되지 않은 다양한 시도를 보여줘도 좋을 것 같다. 국내에선 독보적인 스타일의 가수인 만큼 더 다양한 리스너에게 노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로가 책임을 떠넘겼을 때"


3. 전소미 - ‘Ice Cream

페페 : 아프리카의 리듬은 확실히 국내 음악시장에서 인기를 얻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멜론 댓글에도 쓰여있듯 마케팅이나 올림픽과 겹친 발매 시기도 큰 영향을 끼쳤겠지만, 계속되는 아프리카 리듬을 사용한 K-POP 곡들이 국내 음악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범인 지목을 피해 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많은 아티스트와 회사가 로컬라이징을 시도했지만 아직은 엇박과 당김음 등 특유의 포인트가 있는 아프로 리듬에 맞춰 대중들이 몸을 움직이기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마케팅, 발매 시기, 리듬 같은 문제들도 있지만, 제일 큰 문제는 싱글임에도 만듦새가 아쉽다. 앨범커버와 음악이 매칭되지 않는 점이 가장 먼저 느낀 아쉬운 점이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틴팝같이 통통 튀고 밝은 음악이 생각나는 파스텔 색감의 일러스트와 끈적이고, 어른스러움이 생각나는 아프로 리듬의 음악이 연결되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멜로디가 이전 히트를 했던 ‘Fast Forward’의 멜로디를 그대로 갖다가 쓴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중에서도 Pre-Chorus 부분이 자가복제의 느낌을 많이 받는다.


결론적으로는 모든 부분이 문제다. 마케팅도 발매 시기도 음악적 트렌드 체크와 음원 제작까지 모든 부분이 아쉽다. ‘Fast Forward’의 너무 큰 성공 때문이었을까 ‘Fast Forward’의 복제 같은 느낌을 지우기가 쉽지 않은 곡이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일관성, 아이묭"


4. aimyon - ‘Zarame

루영 : 9월에 발매 예정인 정규 5집의 수록곡이 하나씩 공개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싱글 곡 ‘Zarame’는 지금까지 발표한 싱글 곡과 달리 무겁고 어두운 감정이 짙게 깔려 있다. 잔잔한 축에 속하긴 하지만, 가사를 담담하게 읊조리는 보컬과 전반적으로 무겁게 연주되는 기타 리프에서 오랜만에 ‘生きていたんだよな(살아있었던 거구나)’를 다시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와 같은 분위기의 반전을 통해, 정규 4집처럼 밝은 분위기의 잔잔하고 경쾌한 포크 음악으로 채워질 것으로 예상했던 정규 5집의 트랙 리스트가 어떻게 완성될지 더욱 궁금해진다. 


한국에서 인지도가 생기기 전부터 꾸준히 아이묭의 노래를 들어오면서 느끼고 있는 점은, 데뷔 초반의 도발적인 가사와 펑크 기반의 사운드가 줄어들고, 점차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잔잔하고 경쾌한 사운드 위주로 앨범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몇 달 동안은 새로 나오는 노래마다 비슷하게 들려서 기억에 잘 안 남을 때도 많았고, 인디 시절의 미니 앨범과 정규 1집 수록곡의 개성 있었던 사운드가 그리워지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묭의 노래를 계속 찾아 듣게 되는 이유는 매 곡마다 진솔하면서도 섬세한 가사와 스토리텔링이 청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싱글에서도 '이 가슴에 박힌 이름 없는 칼날을 뽑는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변하고 싶어, 주저 없이 살아가는 사람으로'와 같이 좌절과 절망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이 가질 법한 생각을 담담하게 풀어내었다. 심금을 울리는 가사를 여러 번 곱씹다 보니, 이미 익숙한 단촐하고 어쿠스틱한 밴드 사운드도, 보이시하면서도 앳된 보컬 스타일도 다시금 최적의 조합으로 여겨졌다. 곡마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고유한 매력을 만들어내는, 동의가 될 수밖에 없는 일관성이 아이묭이 가진 최고의 재능이라고 생각되는 바이다. 





"철저하게, 그러나 엉성하게"


5. Crack Cloud - [Red Mile]

 : Crack Cloud는 무려 10인으로 구성된 캐나다의 아트 펑크 집단이다. 그동안은 포스트 펑크적이고 날카로운 기타 사운드와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주를 이뤄왔으나 더 밝아졌고, 훨씬 담백해졌다. 메시지 역시 내면적이고 성찰적인 가사로 변모했다. 여전히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지만, 표현 방식에서 더욱 성숙한 접근을 택했다고 할 수 있겠다. 전작에서도 이미 자기 성찰적인 가사로 약간의 변화를 보였는데, 음악 장르의 변화까지 수반된 모습이다. 혹자는 신선함과 독특함이 줄어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분명히 의도적이며 납득 가능한 변화다.


독특한 리듬과 강렬한 포스트 펑크 사운드를 보여주었던 ‘Pain Olympics’에 이어, 다양한 악기들의 사용과 실험적인 사운드 구성을 보여준 ‘Tough Baby’ 등의 전작들과 비교하면 멜로디와 사운드가 전체적으로 대단히 팝스러워졌다. 그렇지만 ‘Blue Kite’와 ‘I Am’ 같은 트랙에서 여전히 장난스럽고 강렬한 기타 노이즈 사운드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Crack Of Life’에서의 대충대충 부르는 보컬과 깨끗한 피아노의 조합 역시 신선하고 즐겁다.


상업성에 대한 비판과 정체성의 상실, 내적 갈등에 관한 가사를 팝스러운 멜로디로 노래하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더 와닿는다. 기존 펑크 음악에서나 보여줄 법한 거친 창법과 사운드를 팝스러운 멜로디와 악기들로 구현한 점은 이 앨범을 더욱 독창적으로 느끼도록 만들기도 했다. 반항적인 메시지를 비롯해 파괴적이고 실험적인 요소들을 상당수 덜어냈지만 그들의 유쾌함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지금 들어가도 저점매수"


6. JPEGMAFIA - [I LAY DOWN MY LIFE FOR YOU]

페페 : 힙합만이 아닌 대중음악 전체에서 영향을 끼친 ‘Kanye West’의 다음으로 칭해지고 있는 아티스트 ‘JPEGMAFIA’이다. 특히나 이번 앨범 ‘I LAY DOWN MY LIFE FOR YOU’는 ‘Kanye West’ 음악의 주요 키워드인 미니멀함과 샘플링 기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만큼 더 ‘Kanye West’ 음악의 스타일이 나타나고 있다. 차별점이라면 올드스쿨, 글리치, 록 등 다양한 장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느껴졌다. 특히나 선공개로 발표했던 ‘SIN MIEDO’는 압권이었는데, 계속해서 바뀌는 바리에이션 사이사이에 들어가는 거친 일렉기타 사운드와 개성이 너무나도 넘치면서 본인의 영역을 확실히 지키는 사운드들의 믹스까지 귀가 농락당한 느낌을 받게 한 곡이다.


아직 외국 힙합의 팬들만 아는 아티스트이지만, 몇 년 전부터 꾸준하게 명반이라 칭해질 수 있는 앨범들을 발매하고 있다. 물론 아쉬운 점이라면 히트곡이 없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힙합팬은 아쉬워할 수 있겠지만, ‘Kanye West’의 ‘Runaway’같이 시대를 막론하고 힙합 클럽에서 틀릴 수 있는 히트곡 하나만 생긴다면 JPEGMAFIA의 좋은 음악들을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주지 않을까 싶다. 





※ '둥', '페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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