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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Aug 14. 2024

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4년 8월 2주)

김하온/vangdale/식케이, 카코포니, 파란노을, Khalid 외


"엣지있는 프로듀싱의 색깔에 비해 아쉬운 스케치."


1. 김하온 (HAON)vangdale식케이 (Sik-K) - [KCTAPE, Vol. 2]

윈스턴 : 힙합 레이블 KC의 설립 이후, Sik-K와 HAON은 [ALBUM ON THE WAY!]와 [KCTAPE, Vol. 1]를 발매해 본격적으로 국내 힙합씬에 레이지(Rage) 장르 트렌드를 끌고 오겠다 선언했다. 이에 리스너들은 국내 메인스트림에 부족했던 레이지 장르를 내놓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메인 프로듀서 vangdale의 비트와 두 아티스트의 장르적 이해에 큰 기대를 걸었다. 이에 부응하듯, 이번 두 번째 컴필 앨범은 glasear, F1lthy와 같은 해외 프로듀서들도 참여하며 더욱더 엣지있는 사운드에 집중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더욱 강해진 프로듀싱에 비해 아티스트의 역량은 만족할 만큼 따라오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기는 앨범이었다.


전반적으로 레이지 기반 레이블 Opium의 영향을 받은 강력한 사운드 속에서, KC는 전작보다 두드러지는 거친 질감의 베이스와 강력한 킥, 그리고 ‘LOVE IN THE AIR’, ‘WATER IS A LIE’와 같은 레이브 뮤직·하이퍼팝에서 느껴지는 청각적 쾌감의 성취를 이뤄나간다. 허나 ‘8AM 남산 프리스타일’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레이지 트랙부터 쾌락주의적 구절과 본인의 신념을 담은 다채로운 Spit을 선보이는데, 매 벌스에서 비슷한 인상을 주며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R.O.K(RECIPE of KC)’ 같은 트랙은 음미하기 버거운 구절들로 매력 없이 2분 동안 소비된다. 이외 트랙에서도 눈에 띌 만한 시도는 없었고, 결국 꽉꽉 채운 Spit의 소득 없이 생생한 비트 사운드만 인상에 남는 결과를 초래한다. 오히려 레이지 장르의 특성을 고려해 구절을 줄이고, 랩을 사운드로써 더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나마 반복적인 후렴구의 모쉬핏 사운드트랙인 ‘SHOT’과 같은 트랙에 이르러 역량을 골고루 담으려 했다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인 점이다.


정리하자면, 전작보다 분명 사운드적인 강점을 더했지만, 플레이어들의 색깔이 뚜렷하게 보이진 않았던 컴필 앨범이다. 국외 트렌드를 국내 메인스트림에 끌고 오는 만큼, 이에 대한 거부감과 아쉬움은 필연적이다. 결국 '본토 사운드 흉내 내기에 그치지 않나'라는 시선이 앞으로도 따라올 텐데, 해결책은 이들의 음악적 작법을 얼마나 잘 다듬는가에 달려있다. 물론 2달 만에 나온 컴필 앨범이고, 앞으로 KC가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있다는 점에서 기대된다. 분명한 건 KC는 현재 국내 힙합씬의 엣지에 있는 레이블이다.





"포장지가 바뀌어도 알맹이는 그대로"


2. 카코포니 (cacophony) - ‘Don't Tell My Papa

도라 : 강렬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던 카코포니의 음악이 보다 대중 친화적 변모를 시작했다. 현악기 밴딩에 가까울 정도로 미끄러지던 보컬이 꿈같은 음악 세계를 표현해 낸 이전 음반과 달리 이번 싱글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중음악'에 가까운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물론, 날것의 에너지가 덜 담겼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처음 음악을 들었을 때 어느 정도 예상가는 진행을 만들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렵다'고 느껴지는 음악들은 1. 너무 복잡하거나 2. 송 폼이나 멜로디가 어디로 튈지 모르겠고 3. 가사가 심오하다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시각을 기반으로 이번 싱글을 들어본다면 확실히 예상 가능하고, 에너제틱한 카코포니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Don’t Tell My Papa’는 Michael Jackson의 ‘Black or White’가 연상되는 기타 리프와 시작되는데, "우리 아빠는 사실 제가 음악 하는 걸 몰라요."라는 위트 있는 한 문장이 곡의 상상력을 증폭시켜 듣는 재미를 더한다. 깊은 저음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verse에서 verse로 점차 옥타브를 올려가며 감정을 고조시키는데, 높아진 파도에 가볍게 올라타듯 '이쯤 왔으니 시원하게 한번 내질러주기까지'. 듣는 이의 기대에 적절히 부응하는 송 폼은 전시회의 안내 방향처럼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준다.


미니멀한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맥시멈으로 꾸밀 줄 알아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카코포니 또한 그간 겹겹이 둘러싸고 있던 음악적인 레이어가 있었기에, 몇 꺼풀 벗어냈다 한들 그 색깔이 흐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틀이 달라졌기에 명확한 감성을 보여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변화를 보여준 점에서 성숙함을 느낄 수 있는 음반이었다.





"왜곡과 노이즈는 더 찬란히 빛나게 할 뿐"


3. 파란노을 (Parannoul) - [Sky Hundred]

등구 : 작년 기준, 스포티파이의 슈게이즈 플레이리스트의 청취수는 800% 이상 증가했으며, 틱톡의 #Shoegaze 태그의 조회수는 7억 3천만을 돌파했다. 약 2, 3년 전부터 눈에 띄게 커진 슈게이즈 씬은 장르가 탄생한 이래로 가장 찬란한 시대를 보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파란노을은 씬이 커지는데 큰 공을 세운 아티스트 중 하나일 것이다.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출연했을 정도로 이제 그의 음악은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을 만큼 친숙해졌다. 하지만 이번 [Sky Hundred]은 친구의 색다른 모습을 봤을 때처럼 잠시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전보다 드럼의 볼륨을 키워 만들어낸 훨씬 폭발적인 사운드를 거의 러닝타임 내내 들려주고 있는데, 이마저도 마치 공연장의 스피커가 연주를 감당하지 못했을 때처럼 노이즈와 함께 뭉개져 들린다. 또한 ‘암전고백’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잔뜩 왜곡되어 귀를 찌르는 고음역대 신스와 글리치 사운드, 이전 앨범들보다 보컬의 볼륨을 키우는 등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완성된 과잉은 지금까지의 그의 음악과는 분명 구분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낯선 음악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전히 파란노을의 감성이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연 때마다 라이브에 관한 후기가 빠지지 않는 보컬은 여전히 요령 없이 울부짖으며 사춘기의 미숙함을 떠올리고, 이제는 밈처럼 되어버린 ‘찐따무직백수모쏠아싸XXXX’ 같이 파격적이진 않지만 여전히 '내게 확신이 없는 건 나를 버려서야'와 같은 가사로 자신의 어두운 면을 솔직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아련한 멜로디 라인과 건반의 존재감은 거친 것들 사이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나며 언제나 늘 그랬듯 그의 음악이 아름답게 들리도록 한다. 특히나 ‘Evoke Me’, ‘시계’와 같은 포스트록 트랙들은 리프의 반복과 벅차오르는 구조를 통해 그 감성을 더욱 강조하며 앨범의 킬링 트랙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번 앨범에 덧입혀진 왜곡되고 파괴적인 사운드는 그 아름다움을 방해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 감성을 더 극대화하는 기폭제인 것이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를 리스펙하고, 신인 슈게이즈 아티스트 앨범을 듣고 '파란노을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놀랍지 않을 정도로 그는 아티스트와 리스너 모두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그 영향력은 '2023 피치포크 베스트앨범 50'에 선정되는 등, 국내를 넘어 전 세계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Fax Gang과의 [Scattersun]을 통해 시도한 전자음악과 힙합에 이어, 노이즈 팝까지 나아간 [Sky Hundred]는 그가 계속해서 그의 음악을 개척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흠잡을 데 없는 사운드로 보여주며 본인이 이 씬의 영리더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언제 농염해지고, 대담해질래?"


4. Khalid - [Sincere]

윈스턴 : 청소년기를 담은 [American Teen]에서의 포근하면서도 그루비한 사운드, 성년을 맞이한 [Free Spirit]의 느슨하면서도 칠한 사운드까지, Khalid는 항상 단조롭고 부드러운 음악을 선보여왔다. 냉혹한 현실이지만, 그 누가 몰입되지 않는 완곡한 표현의 R&B를 영원히 들으려 할까? 결과적으로 그는 지속적인 자기 복제의 인상을 주며 리스너와 평단에게 점차 잊혀갔다. 이를 인식한 듯, 긴 준비에 걸친 이번 앨범은 새로 데뷔하는 기분으로 작업했다 밝히며 성장한 자아를 보여줄 것임을 예고하였다. 허나 길었던 기간에 걸맞은 큰 새로움은 부족했고, 여전히 자기 복제의 답습이 만연히 남아있었다.


공간감이 강조된 백코러스 활용과 포근한 코드의 전개방식으로 시작하는 앨범의 초반부는 그의 기존 작법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Broken’의 음악적 전환 이후, 마약중독에 관한 이야기, 매력적인 트리플렛 보컬 라인 등을 선보이며 그가 음악적 변화에 애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앨범의 중반에 해당하는 ‘Breath’에서는 Arlo Parks의 부드러운 후렴구와 어둡고 심오한 이야기를 랩으로 전개하는 Khalid의 도전이 돋보이며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그렇지만 싱그러운 인디팝 ‘Heatstroke’를 제외하면, 전형적인 그의 바이브로 가득한 곡들이 끝까지 전개되며 실망하게 된다. 이토록 아름답고 따뜻한 음색이 왜 다채롭게 쓰이지 못할지 아쉬울 따름이다.


정리하자면, 기대했던 새로운 면모는 너무나 짧았고 여전히 무해하면서도 플랫한 플레이리스트였다. 탄탄한 프로듀싱과 느긋한 바이브를 풍부히 담고 있지만, 5년 만에 돌아온 그의 고민이 충분히 담겨있음을 대변하기엔 아쉬운 작품이다. 오히려 그가 음악적인 시도를 대담히 하지 않더라도, 완곡한 표현에서 벗어나 흥미로운 가사를 더 선보였다면 성과 있는 복귀라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동시대를 누렸던 Billie Eilish, Dominic Fike와 같은 아티스트가 그들만의 길을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그의 음악이 단순 나이트 드라이브 뮤직 플레이리스트에만 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보같을 권리를 주는 음악의 힘"


5. The Dare - ‘You're Invited

도라 : Charil XCX의 ‘Guess’가 Billie Eilish의 피쳐링 참여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직설적이고 강렬한 가사가 중독성을 야기하는 ‘Guess’는 The Dare의 손을 거쳐 탄생했음이 알려지며 그의 음악 또한 야금야금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유튜브 채널을 들어가 보아도 발표곡을 제외한 영상 클립은 총 다섯 개, 정식 발매된 음반은 두 개로 컴팩트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갑작스레 세상에 등장한 건 아니다. 대학을 다니던 학부생 시절 Turtlenecked라는 인디 밴드를 결성하여 데뷔와 동시에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인디 록' 그 자체에 충실한 음악으로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You’re Invited’와 같이 파티 무드가 짙은 곡은 코로나로 인한 관객과의 단절로 만들어졌는데, 극히 단순하고 원색적인 가사가 특징이다.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봐도 알아들을 법한 단순한 가사는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다는 강점이 된다. 특히나 '챌린지'를 통해 조각나고 있는 음악들을 생각하면 더욱 강력한 무기가 됨을 알 수 있다. 단순함은 악기 구성에서도 드러나는데, 과잉 존재감 베이스와 억지로 늘린 듯 찢어지게 들리는 하이햇, 디스토션 기타가 만드는 절묘한 균형감이 툭툭 뱉는 랩과 가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는 스스로 '얼빠진(Goofy)' 음악을 만든다고 소개하는데, 그의 '뇌 빼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이야말로 현대의 카타르시스로서 작용한 게 아닐까. 페르소나가 아티스트에게만 적용되는 시대는 지났다. SNS를 통해 현대인 모두가 각자의 페르소나를 가진 현시점에서 파티 문화의 음악화를 통해 나를 가장 재미있게 포장할 수 있는 30초는 집중해 봄 직한 가치일 테니까. 그러니 알맹이 없는 가사도 가끔은 즐겨보자. 싸이도 말하지 않았던가, "Dress classy, dance cheesy!"





"못하는 거 말고 잘하는 걸 해주세요"


6. The Smashing Pumpkins - [Aghori mhori mei]

등구 :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 [CYR]에서는 신스팝을, [ATUM]에서는 AOR을 보여주는 등, 그동안 종종 해오던 얼터너티브 메탈/하드록적 색채를 점점 빼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1년 만에 발매된 이번 앨범에서는 갑자기 밴드 초중반 때의 음악으로 되돌아갔다. 항상 이들의 기둥이 되는 서정적인 얼터너티브 록을 중심으로 메탈과 슈게이즈/드림팝 장르를 담아낸 모습은 The Smashing Pumpkins의 대표 앨범인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와 비슷한 구성처럼 보여진다. 


다만 [Aghori mhori mei]는 이들이 지금껏 보여줬던 메탈 중에서도 꽤나 강한 사운드의 메탈 트랙이 앨범의 상당 부분을 채우고 있다. 몸이 울리는 듯한 강렬한 드럼, 화려한 디스토션 기타는 ‘Bullet With Butterfly Wings’나 제일 강한 메탈/하드 록 앨범이었던 [Zeitgeist]까지도 떠오르게 하는데, 그런 사운드를 6분이 넘는 긴 호흡으로 뽑아내 1, 2번 트랙에 모두 배치시키며 더더욱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만큼의 파워가 있는지는 아이러니하다. 빌리 코건의 보컬이 날카로운 편이기는 하지만, 메탈의 파괴력을 이끌어줄 만큼의 힘이 없다. 데뷔 초에는 긁는 소리를 내거나, 사이키델릭한 기타로 보컬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했던 것에 비해 이번 앨범에서는 흔한 고음을 내는 시도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올드한 탑 라인과 기타 리프까지, 이 앨범이 올해 발매됨으로써 가질 수 있는 매력이 터무니없이 적다.


사실 최근 앨범들이 비교적 취향에 맞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이런 시간 여행이 반가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역시 메탈 트랙보다는 슈게이즈/드림팝 트랙인 Goeth The Fall처럼 비교적 잔잔한 곡에서 훨씬 밸런스가 안정적인 것이 아쉬울 뿐이다. 1979가 여전히 그들의 원탑 대표곡인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만약 이번 앨범이 정말 과거로의 회귀 선언이 맞는다면, 차라리 다음 앨범은 메탈 외에 감성적인 얼터너티브 록, 슈게이즈, 드림팝 같은 다른 장르들로 채워주길 바라본다. 





※ '도라', '등구', '윈스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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