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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Aug 21. 2024

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4년 8월 3주)

SOLE, 너드커넥션, 재현, beabadoobee, FINNEAS 외


"오래된 앨범을 펼쳐 타임머신을 탄 듯한 음악"


1. SOLE (쏠) - [Time Machine]

 : 90년대 ~ 00년대의 음악을 들으며 자라온 아티스트가 그 시절의 음악을 자양분 삼아 성장하고 당시 음악에 대한 리스펙트를 담아 리메이크 앨범을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SOLE 또한 리메이크 앨범 [A Love Supreme]을 통해 존경하는 선배와 그때의 음악에 대한 사랑의 찬가를 보내며 90년대 후반의 음악을 현재로 소환했다. 꾸준히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던 그녀가 이번에는 리메이크를 넘어서 본인만의 작법으로 00년대 빈티지 레트로 감성을 가득 담은 앨범으로 당대의 음악을 구현해 냈다.


90년대생들이라면 쉽게 공감하겠지만 프리스타일의 ‘Y(Please Tell Me Why)’, NEYO의 ‘So Sick’ 등 듣는 순간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음악들이 있다. 특히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그럼에도 LOVE’는 이러한 감성을 나타내고자 한 듯, 언젠가 한번 들어본 듯한 정겨운 사운드 소스, 빈티지한 기타 리프, 특유의 서정적이고 마이너한 알앤비 사운드로 2000년대 싸이월드 미니홈피 BGM 같은 느낌을 준다. ‘잠깐이라도…’는 SOLE의 소울풀한 보컬과 ep사운드가 어우러져 00년대의 Musiq Soulchild와 박화요비의 음악이 떠오르기도 하며 THAMA와 작업한 ‘Situationship’은 Tamia의 네오 소울 R&B가 연상되기도 한다. 00년대의 국내외 음악이 SOLE만의 스타일로 변주되어 그 시절의 사운드가 조화롭게 재구성되며 레트로와 현대적 감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음악은 사진과 같은 기능이 있어서 특정 시기의 기억과 감정을 담을 수 있다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과거의 음악을 들으면 오래된 앨범을 편 것처럼 그 시절의 기억, 느낌, 추억이 물밀듯 느껴지곤 한다. [Time Machine]은 이런 음악의 본질적인 매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음반이다. 타임머신이라는 앨범명답게 듣는 순간 과거로 날 데려가는 느낌과 Mp3에 음원 하나하나 손수 담아 옮기고 닳고 닳을 때까지 들으며 그 시간의 나를 꽉꽉 눌러 담았던 음악들이 떠오른다. 24년도에 새로이 나온 곡들을 통해서도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음반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부드러운 목 넘김을 만드는 완벽한 블렌딩"


2. 너드커넥션 (Nerd Connection) - [그래도 우리는]

카니 : 차트에서 롱런 중인 ‘그대만 있다면’의 스타일, 즉 밴드사운드에 차분히 감성을 담아낸 발라드를 통해 커리어를 안전하게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너드커넥션은 과감하게도 [그래도 우리는]에서 온갖 분노를 우아하게 풀어냈다. ‘가장 높은 인연’과 ‘행운을 빌어’ 같은 곡에서는 여전히 대중들의 귀에 익숙한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을 가져가면서 여기에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의 락킹한 사운드를 조밀하게 배합해 균형 잡힌 음악적 조화를 이뤄냈다. 


‘Psychiatric Hospital’에서 ‘headshrinker’로 이어지는 제목의 연속성이나, ‘headshrinker’에서 ‘CASH’로 이어지는 사운드의 유기성은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곡과 곡 사이의 변주는 물론, 곡 내에서도 리듬과 분위기가 업 다운을 반복하며 청자를 마치 하드 트레이닝하듯 몰입시키는 점도 인상적이다. 특히, ‘Freddy’에서 끝음을 살짝 변주하는 일렉기타와 인트로, 벌스, 코러스 그리고 후반 구간까지 연쇄적으로 변하는 분위기에서 이러한 다이내믹한 구성이 잘 드러난다. 


또한, ‘Losing Myself’, ‘Freddy’등의 트랙에서 들리는 기타 솔로와 하드락적 요소는 ‘그대만 있다면’이나 ‘좋은 밤 좋은 꿈’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과격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바로 이 강렬함에서 너드커넥션의 진가가 드러난다. 거세게 몰아치는 사운드에 서영주의 옹골찬 보컬이 섬세한 감성을 더해,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병 주고 약 주듯이 조화시키며 독특한 매력을 발산, 도파민을 극대화한다. 사실, 악기의 구성이 다채롭지 않아 킥 드럼, 스네어, 일렉기타로 반복되는 리프가 다소 단순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Cash’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서영주의 보컬 기량이 다양한 악기의 부재를 대체하며 무료함을 소멸시키고 유쾌한 곡 구성이 단조로움을 완벽히 커버한다. 구성, 완성도, 곡 퀄리티도 완벽했지만 무엇보다 이 앨범이 가장 멋들어지는 이유는 대중적인 기조에 안주하지 않고 음악적 줏대를 지켜간다는 점이다.





"장미가 어떤 색으로 피어날지를"


3. 재현 (JAEHYUN) - ‘Roses/Dandelion

하울 : NCT라는 그룹 안에서 재현이라는 멤버는 다채로운 음색의 멤버들 가운데서 묵직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었다. 그런 그가 솔로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색깔의 음악, 어떤 컨셉을 보여줄 것인지 상상이 안 갔던 것 또한 사실이다. ‘Forever Only’, ‘Horizon’ 등 단편적인 싱글로 몸풀기를 했던 그가 정규 앨범의 행보에 나선다. 선공개곡 ‘Roses’는 한때 같은 소속사의 선배였던 백현의 노선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한 R&B 곡. SM 특유의 꽉 찬 사운드와 보컬 라인의 앙상블이 강조됐던 그룹・유닛 활동과는 다르게, 그의 보컬적인 역량이 도드라진다. 빌드업, 드랍으로 이어지는 EDM식 구성과 가스펠적인 요소를 사용함으로써 사운드 자체는 2010년대 후반의 Labrinth와 Flume, FKJ 등이 연상된다. 보통 이러한 곡을 가늘고 섬세한 보컬리스트가 소화를 하는 반면, 재현의 보컬은 비교적 단단한 소리를 가지고 있어 곡을 보다 더 관능적으로 연출한다. 예상치 못했던 조합이다. 

 

NCT 멤버들의 솔로 프로젝트가 가시화되면서 유독 돋보였던 점은 멤버가 추구하는 음악색의 차이였다. 나상현씨밴드, 유다빈밴드 등으로 대표되는 소프트 록 장르를 구사하는 도영과 NCT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네오한' 힙합 사운드를 선보이는 태용. 재현은 ‘Roses’에서 나른하고도 끈적이는 R&B를, 또 다른 선공개곡 ‘Dandelion’에서는 Lauv, Jeremy Zucker 등이 선보이는 말랑말랑한 인디 팝 장르를 보여주며 두 가지 색깔을 모두 가져가겠다는 야심을 보여준다. 지난 5월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Lauv의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한 것 역시 그의 음악적 욕심을 드러내기 위한 행보였다. 다만 ‘Dandelion’ 같은 경우, 레퍼런스로 삼은 아티스트의 곡들과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은 그와 그의 팀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다.

 

앞서 솔로 데뷔를 마친 두 멤버 모두 수록곡의 작사・작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색깔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재현 역시 ‘Roses’의 작사・작곡, ‘Dandelion’에서는 단독 작사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아직까지는 프로덕션의 비중이 높은 느낌이지만 향후의 발전 가능성이 엿보이는 선공개다. 정확히 그룹 활동으로부터 1달 뒤에 발매한다는 빠듯한 스케줄임에도 불구하고, 선공개곡의 높은 완성도는 재현 본인을 포함한 NCT 센터(NEO 프로덕션)가 얼마나 이번 작품에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제 첫 번째 정규 앨범의 뚜껑을 열어볼 차례다.





"황금비율을 찾은 듯한 달콤 쌉사르함"


4. beabadoobee - [This Is How Tomorrow Moves]

 : 틱톡이나 릴스에서 ‘coffee’, ‘death bed’로 익숙하게 들었던 목소리의 비바두비는 버블검 팝에 그런지를 더한 '버블검 그런지'라는 독특한 인디팝으로 주목받은 아티스트다. 앳되고 달달한 풍섬껌 같은 목소리에 그런지 사운드가 조합된 그녀의 음악은 단짠단짠의 매력이 있다. 정규 1집 [Fake It Flowers]에선 강렬한 일렉트로닉 기타 팝으로 90년대의 얼터너티브 락을, 정규 2집 [Beatopia]에선 어쿠스틱한 밝은 인디팝을 보여주었던 비바두비가 정규 3집에선 1집과 2집 그 사이의 밸런스를 찾은 듯하다.


이번 3집은 발매 전부터 세계적인 프로듀서 릭 루빈이 참여한다는 소식과 함께 비바두비의 리스너들에 큰 기대감을 조성하였다. 선공개 싱글 ‘Take A Bite’ 은 그런 기대의 소리들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곡이었다. 몽환적이면서도 부드러운 보컬과 거칠면서도 멜로디컬한 기타 리프에 디스토션 이펙트가 듬뿍 묻어 있는 이 음악은 어쩐지 아련한 락스타가 떠오르기도 하며 몰입의 농도를 짙게 한다. 그러나 그 이후로 공개된 ‘Coming home’, ‘Ever Seen’은 아쉽게도 곡 자체는 무난하지만 새로운 느낌이 없어 흘러가는 트랙이란 인상을 주며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켜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앨범이 릴리즈 되고 전체 트랙을 하나씩 들어보니 아쉬움은 사라지고 비바두비만의 바이브에 스며들어 음악을 온전히 즐기게 되었다. 그녀만의 유연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와 애써 믹싱 하지 않은 의도된 거친 잡음들이 섞여 낯선 듯하면서도 조화로운 선율에 푹 빠지게 된다. 특히나 14번 트랙 ‘This Is How It Went’ 는 3/4박자 왈츠 리듬과 곡 후반의 스트링 사운드를 통해 긴 호흡이었던 이번 음반의 마지막 트랙으로써 대미를 장식한다. 이 대장정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그다음의 스토리가 기대되게 하는 목소리, 감정 표현은 꽤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기존의 인디 팝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90년대 포크/록 아티스트의 색채를 띤 사운드가 묻어 있는 이 음반은 아포가토와 같이 달달하면서도 씁쓸한 매력으로 비바두비의 앞으로의 행보와 성장이 기대되게 한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예전보다 더 자유롭게 소리칠 때!"


5. FINNEAS - ‘For Cryin’ Out Loud!’

하울 : 지난 5월에 발매된 동생 Billie의 3집 [HIT ME HARD AND SOFT]는 개별 곡의 완성도와 앨범 단위의 유기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캐릭터빨이 끝났다'고 말하던 세상 사람들에게 '난 캐릭터빨로 성공한 게 아니야'라며 음악적 승리를 거머쥔 Billie. 그녀의 음악에는 항상 오빠 FINNEAS가 있었다. 매번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프로듀싱 능력은 분명 그의 가장 큰 장기이지만,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FINNEAS는 묘하게 정제된 듯한 느낌이 있었다. 2집의 리드 싱글 ‘For Cryin' Out Loud!’는 그의 솔로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직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곡이다. 트럼본, 트럼펫, 색소폰의 호른 섹션을 도입해 다소 강박에 가까웠던 프로듀싱에서 보다 더 자유로워진 듯한 느낌을 준다. 


활동 초기의 미니멀하고도 파괴적인 사운드는 다소 퍼석하게 느껴지는 FINNEAS의 보컬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빈티지 록 장르의 이번 곡은 프로그래밍 기반의 작업 스타일에서 벗어나 공간감 있는 라이브 사운드를 메인으로 내세운다. 1집 [Optimist] 이후 발매한 싱글 ‘Mona Lisa, Mona Lisa’, ‘Naked’ 등에서 첨가한 밴드 사운드는 그의 보컬이 지나치게 도드라지지 않는 선에서 이전보다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For Cryin' Out Loud!’에서는 드럼 머신 대신 실제 드럼을 사용하고, 하나의 악기만을 강조하던 경향에서 벗어나 전체적으로 균형감 있는 소리를 선보이는 등, 밴드 셋을 가미하는 것을 넘어서 그루비한 밴드 사운드를 보여준다.


동생 Billie의 커리어는 그가 함께 만들어낸 커리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커리어가 동생에 못 미친다는 반응이 많았던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반응을 의식해서일까, 1집 [Optimist]는 FINNEAS 혼자서 대부분의 작업을 진행했다면, 올 10월에 나올 2집 [For Cryin’ Out Loud!]에서는 동료 프로듀서와의 협업, 홈레코딩이 아닌 스튜디오 세션을 진행했다. 대체로 FINNEAS의 커리어는 동생의 커리어와 비슷하게 흘러갔기에 리드 싱글에서 나타난 변화가 부디 정규 앨범에서도 반영되길 바랄 뿐이다.





"음색이 명함이야"


6. keshi - [Dream]

카니 : 매섭게 쏟아지는 비를 피해 무작정 들어간 카페에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던 중, 우연히 keshi의 ‘drunk’를 듣게 되었고 단숨에 목소리에 홀려버렸다. 그 순간의 온도, 습도, 분위기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고 아마도 그 첫 만남이 특별했기에, keshi의 음악에 유독 애정이 가는지도 모른다.


작은 규모의 앨범들로 활동을 이어오던 keshi가 본격적으로 볼륨을 키운 앨범 [GABRIEL]의 발매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뒤따랐다. 앨범은 그루비한 비트, 힙합 패드, 그리고 신스를 활용해 "다채로움"을 추구한 듯 보였으나, ‘MILLI’ 같은 트랙에서 사운드가 뭉개지고 겹쳐지며, 다양한 요소들이 따로 노는 느낌을 주었다. 이는 조합의 아름다움보다는, 마치 사공이 많아 산으로 가는 상황을 연상시켰다. 차라리 keshi가 잘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의 가장 큰 강점인 독특한 음색을 이펙트로 해치는 음악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었다. 마치 담백한 국물을 원했는데,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자극적으로 만든 후 맛만 좋으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앨범이었다. 다행히 이번 [Dream]에서는 다시 원초적인 느낌으로 돌아온 듯하다.


‘Dream’보다 신스 팝 트랙 ‘Say’가 나중에 공개될 곡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언급이 있었기에 ‘drunk’, ‘always’의 계보를 잇는 인디팝의 부재가 확실시된 것 같아 아쉬웠지만 악기의 질감과 감정의 섬세함에서 점진적인 성장을 엿볼 수 있었다. 투박하게 튕겨내던 어쿠스틱 기타는 어느새 부드럽게 변해 ‘Dream’에 포근함을 더하고, ‘Say’에서는 정신 산만한 믹싱과 과도한 사운드가 사라져 보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정제된 신스 사용이 돋보인다. 또한, keshi의 고운 미성과 네오한 음색은 단출한 구성에서도 곡을 유려하게 이끌어내며 향후 앨범에 대한 확실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이제는 그에게 보내는 애정이 추억에 깃든 낡은 기억의 단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에 기반한 애정이기를 바랄 뿐이다.  





※ '쑴', '카니'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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