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ÉBE YANA, LE SSERAFIM, 페노메코 외
등구 : K-POP과 언더그라운드 클럽 씬을 연결하겠다는 포부처럼 그녀는 투스텝, 트랜스 등의 전자음악을 보다 대중적인 사운드로 들려주는 아티스트로서 그녀만의 포지션을 점점 더 굳히고 있다. 다만 이전에는 K-POP 중에서도 K-RNB에 가까운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보다 많은 K-POP 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작년까지의 작업물들은 보컬이나 곡 구성적으로도 국내 힙합/알앤비 씬에서 많이 들어본 듯한 알앤비에 일렉트로닉을 결합한 느낌이 강했던 반면 이번 싱글에서는 알앤비의 비중이 거의 사라졌는데, 이렇게 그루비함을 걷어내고 힘을 뺀 보컬과 브레이크비트의 조합은 최근 K-POP에서 자주 쓰이며 이미 많은 이들에게 익숙해진 PinkPantheress 스타일의 작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K-POP스럽기만 하다는 것은 아니다. 후렴 파트를 반복하며 보컬 소스처럼 활용하거나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더욱 에너제틱한 비트와 함께 터트려주는 등의 전자음악적인 터치가 여전히 강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최근 유럽, 북미권의 일렉트로닉 씬의 부흥을 발판 삼아 Charli XCX의 EDM 앨범 [brat]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고, 국내에서도 Peggy Gou와 Yaeji가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24' 라인업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일렉트로닉과 클럽 뮤직의 인기는 점점 커지고 있다. 하우스 기반의 EDM을 시도한 이번 르세라핌을 시작으로 K-POP 씬에서도 이런 시도들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지금, 이번 싱글은 K-POP 팬들에게도 어렵지 않게 다가가면서, 그보다는 더욱 강렬한 비트를 통해 일렉트로닉을 막 듣기 시작한 리스너들에게도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곡이다. 그녀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시류를 타는, 영리한 선택이 아닐 리 없다.
도라 : 르세라핌의 데뷔 이후 꾸준하게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해외 아티스트의 특정 음악 스타일이 떠오른다는 지적인데, 카피라기엔 부족하고 레퍼런스라기엔 과한 결과물이 이어져 왔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게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략적으로 상당히 유효한 선택이었고 '르세라핌'이라는 아티스트를 거쳐 한국식으로 잘 희석되기도 했으니, 성과를 폄하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아쉬움은 남는다. 앞서 말한 해외 아티스트의 곡이 떠오른다는 비판은 결국 '이럴 거면 ~듣지 왜 르세라핌 노래를 들어야 하는데?'로 이어지기에. 오직 K-Pop만을 듣는 리스너의 수준을 끌어올리기에는 분명 퀄리티 높은 곡이지만 '빌보드 좀 듣는다' 하는 리스너에게는 들을 메리트가 적거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번 타이틀 곡 ‘CRAZY’ 또한 Charli xcx의 ‘Von dutch’ 그리고 ‘360’이 떠오르는 일렉트로 하우스 장르의 곡이지만, ‘손대면 like 피카츄 백만 볼트 전기 it’s pumping’과 같은 팝한 가사가 진입장벽을 단숨에 낮춘다. 지루하고 어렵다 생각했던 장르의 입문 곡으론 제격인 셈이다. 반면, 수록곡의 아쉬움이 컸다. 타이틀 곡을 지나 음반의 허리인 3번 트랙 ‘Pierrot’가 등장하게 되는데, 치고 들어오는 샘플링의 임팩트가 강해도 너무 강했다! 머릿속에 '고민하기보다 미쳐보자'는 가사보다도 김완선과 삐에로만 남아버리니 맥이 뚝 끊기는 느낌만이 남아버린다. 이후, 다시 미쳐보자고 뛰어보지만, 미치지 않는 이유를 마지막에 설명하고 있으니… 화려하고 엉뚱하게 시작했던 음반은 그 에너지를 받쳐주지 못한 채 싱겁게 마무리되고야 만다. 르세라핌의 정체성은 음악 장르보다도 가사에 있다고 보는데, 이번 음반에서는 난해한 가사로 그조차도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 이처럼 아이덴티티 무게가 가사에 실려버리니, 그것을 '음악적 장르'로써 정의하기란 상당히 어려워진다. 때문에 "ONLY K-Pop 리스너"가 '르세라핌 느낌의 음악이 좋다'라는 감상을 넘어 그 원류를 찾게 만드는 기능에 회의감이 든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요약해 보자면, 가사를 통한 독특한 표현법은 르세라핌에게 있어 양날의 검이다. 그러나 이제는 강점보다는 약점으로써 작용하고 있음이 강하게 느껴졌다. 전작 [EASY]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가. 잔뜩 화가 난 르세라핌에게 대중이 받는 첫인상은 '누가 뭐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번 음반 [CRAZY] 또한 그랬다. 눈치 보기 싫은데 눈치 보느라 제대로 미치질 못해. '언제 눈치 보긴 했나?' 이런 상반된 인식 속에 던져지는 메시지는 공허할 뿐이며, 결과적으로 르세라핌은 늘 거짓말쟁이가 되고야 만다.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관심인 비즈니스라지만 구태여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 특히나 장르적 아이덴티티보다 가사에 무게를 싣고 있기에, 그 강점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대중 인식과 르세라핌 사이의 간극을 줄일 필요성이 시급하다 느껴지는 음반이었다.
윈스턴 : 2021년 피네이션 합류 후 페노메코는 당시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흥겨운 아프로팝(Afropop)이 담긴 싱글 ‘Organic’을 발매했었고, 1년 전 틱톡을 통해 역주행하면서 해외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이끌며 기대를 모은 바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아프로비츠와 아마피아노의 인기가 뜨거운 현시점에서, 페노메코는 지난날 선보인 시도를 갈고닦아와 보다 더 본토적인 사운드를 선보이고자 한다. 이번 [Organic2]는 그가 닦아온 아프로퓨전(Afrofusion)의 연구가 빛나는 순간이지만, 홀로 댄스 플로어 뮤직의 매력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해 아쉬움을 자아낸다.
앨범을 접하며 생긴 긍정적인 인상은 전작보다 진화된 그의 장르적 이해도이다. 묵직한 베이스와 뎀 보우 리듬, 멜로딕한 벌스가 담긴 곡 ‘아수라발발타’는 "OLOGO"나 "KOLO"와 같은 단어를 활용해 전작에서 보여줬던 나이지리아 발음을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돋보인다. 이외에도 로그 드럼·셰이커와 같은 퍼커션, 가벼운 질감의 피아노, 부드러운 와블 신스(Wobble Synth)가 담긴 트랙 ‘SODA’에서는 아마피아노 고유의 분위기와 페노메코의 보컬적 강점을 느낄 수 있었다. 허나 줄곧 이어오던 댄스 플로어 뮤직의 에너지는 비교적 약한 임팩트의 수록곡 ‘가랑비’와 ‘ICN’을 맞이하면서 다소 상실된다. 장르적 변화 없이 105 bpm 수준의 비슷한 곡들이 이어지다 보니 청자로서는 새롭거나 즐거운 포인트가 발견되길 원하는데, 수록곡에선 그 매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열정적인 사랑을 전하는 캐치한 탑라인이 담긴 ‘AURORA’에서는 인터루드의 재즈틱한 사운드를 통해 여유로움과 흥겨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고, Crush의 매력적인 음색을 통해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전보다 더욱 진화된 아프로퓨전의 이해도를 대중에게 증명하기엔 충분했지만, 즐길 수 있는 포인트를 전달하기엔 다소 아쉬움이 남는 모음집에 가깝다.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지닌 그에게도 홀로 이 장르를 소화하는 것에 대한 걱정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퍼포먼스로 채우기보단, 본인의 목소리를 덜어내고 피쳐링진을 추가했더라면 더욱 다채롭고 여유로운 앨범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대중적인 인식상 페노메코와 다소 거리감 있는 댄스 플로어 뮤직 장르이기에, 이에 대한 간극을 줄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탁월한 가사배치와 높은 소화력을 보여주며 수준 높은 아프로퓨전 트랙들을 내놓은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도라 : Ginger Root의 음악은 ‘Loretta’를 기점으로 확실한 기준이 생겼다. 한결같다면 한결같고, 지겹다면 지겨울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음악은 일관적이었다. 아득한 무드로 먼 추억을 그려내는 시티 팝과 베드룸 팝을 쭉 제작해 왔는데, 이번 싱글 또한 빈티지한 신스 사운드, 그리고 먹먹한 보컬 이펙트를 통해 뉴 노스탤지어 감성을 한껏 자극하고 있다. 지난 음반들 또한 공통적인 보컬 이펙트, 어쿠스틱 악기로 구성된 트랙, 화룡점정으로 그때 그 시절을 킹받게 흉내 낸 앨범 아트까지. 시대에 대한 그리움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충실한 재현에 있는데, VHS 자막, 음악 세트장 등 80년대 미국과 일본의 문화에 빠져있는 타겟층이 늘 일정량의 소비를 맞춰준다. 그러니까 수요와 제작자의 취향이 맞물린다면 꼭 '새로울 필요'가 없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셈이다. 비슷한 풀 안에서 같은 맛을 내주는 아티스트도 필요하다는 의미이니, 너무 '트렌디' 할 것을 좇을 필요는 없다.
그가 같은 작풍을 유지할 수 있는 뒷배가 되어준 프로젝트가 있는데, 바로 '키미코 프로젝트'이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80년대 일본의 탑 아이돌 '타케우치 키미코'의 프로듀서를 바로 Ginger Root가 맡게 되고, 미국인인 그와의 협업을 통해 미국 데뷔를 할 예정이었으나! 생방송 직전에 돌연 아이돌을 그만둔다는 선언을 하게 되어 비어버린 무대에 프로듀서인 Ginger Root가 올라 데뷔를 하게 된다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런 세계관을 시티팝이라는 장르와 접목한 ‘Loneliness’가 성공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음원 발매 전 스토리를 켜켜이 쌓아가는 비디오들을 통해 묵묵하게 'Ginger Root' 세계관을 확장 중이시다. 세상의 반이 날아가고, 음악적으로 새로워야 하며, Something new가 되지 않아도 아티스트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한 세계관으로써 유효하게 소비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50년 전통 할매 국밥집이 괜히 전통이겠나, 다 찾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어져 오는 것이고 음악 또한 그럴 수 있다! 그걸 이번 Ginger Root의 활동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윈스턴 : 얼터너티브 팝 듀오 Magdalena Bay는 90년대 인터넷 하위문화의 감성 위, 다채롭고 극적인 음악을 통해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는 아티스트이다. 이들은 다양한 장르 속 요소를 극적으로 배치하며, 과거 위대한 아티스트들에게서 느껴지는 향기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재창조하는 것에 능하다. 전작 [Mercurial World]에서는 2010년대에 머문 듯한 댄스 팝 사운드를 다채롭게 풀어나가며 그들의 야심을 엿볼 수 있었다면, 이번 앨범은 그 야심이 완성되는 순간과도 같다. 이들은 극적이고 변칙이 가득한 예술을 얼마나 연마해 왔는지 다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물론, 그들이 창조한 과격하고도 아름다운 세계로 초대해 초현실적인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
이 앨범은 변태를 겪는 곤충의 내부에서 발견되는 상피 구조 "Imaginal Disc"에서 착안해, 머리에 CD를 주입하는 우스꽝스러운 방식을 실현하는 외계인과 이상적인 자아실현을 이뤄나가는 인간 사이 이야기가 담긴 콘셉트 앨범이다. 울려 퍼지는 환각적인 신스와 변칙적인 방식, 소프트한 패드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겹겹이 쌓여가는 밴드 사운드와 아련함이 느껴지는 보컬이 담긴 이 앨범의 다채로움과 급진적인 진행방식은 서사적 장치는 물론 청각적 쾌감에서도 놀라운 성취를 보이고 있다. 동시에 삶의 실존이 곧 죽음과 사랑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지 질문하는 ‘Death & Romance’, 용서를 원하는 여정에 나선 악당의 이야기를 담은 신스팝 ‘Cry for Me’, 21세기 초반 TV에 대한 두려움의 발상을 다루는 ‘Watching T.V.’, 앨범의 처음과 연결되는 자전적인 주제의 ‘The Ballad of Matt & Mica’와 같은 트랙을 통해 그들의 메시지를 다각적으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이 앨범의 뛰어난 점은 전위적인 방식을 억지로 끄집어내지 않고 그들의 미학을 온전히 실현했다는 데에 있다. 서사의 흐름과 곡의 주제에 맞도록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배치하면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동시에, 그들이 선호하는 인터넷 하위문화의 미학과 성공적으로 합치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최고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차원을 경험하는 듯한 웅장한 프로덕션과 사운드는 물론, 사려 깊은 가사와 다각적인 주제의식을 통해 Magdalena Bay는 그들의 음악적 세계를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앨범을 설명하는 방식, 이에 맞는 서사 부여 등 모든 방식에서 치밀하고 계획적이다. 키치하고도 왠지 모를 불쾌함이 느껴지는 뮤직비디오와 웹사이트를 통해 앨범의 서사를 표현함으로써, 그들의 미학과 야심을 더욱 확장하고 미학적으로 드러냈다. 많은 이들의 [brat] 열풍이 끝나지 않은 여름이지만, 내게는 [Imaginal Disk]의 열풍이 새로이 시작됐다.
등구: 절제되고 세련된 느낌의 하우스 트랙이 많았던 [WET TENNIS]와는 달리 이번 앨범은 'Be Really Energetic and Dance'이라는 뜻의 앨범명처럼 대부분 굉장히 댄서블한 트랙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들이 밝고 신나는 느낌을 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라틴의 화려함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라틴음악 자체가 세계적으로 인기 장르이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와 섞이면서 고유의 색이 옅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Sofi Tukker는 리듬과 멜로디, 브라스 사운드, 그리고 브라질리언 펑크 아티스트(Mc Bola)와 나이지리아 아티스트(Kah-Lo)의 피처링 등을 통해 라틴 특유의 정열적인 분위기를 꽤나 딥하게 담아내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신나기는 하지만, 특히나 내게 이 앨범의 메시지가 와닿고 이들의 그 어떤 앨범보다도 흥겹게 들렸던 이유는 그 희석되지 않은 라틴의 향기 속에서 느껴진 우리의 '뽕' 때문이다. 어딘가 구슬픔이 느껴지는 ‘Perfect Someone’의 탑 라인과 색소폰 사운드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자주 들리던 트로트를 연상시키는 너무나 익숙한 그것이며, 김현정, 소찬휘 등이 떠오르는 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의 댄스 팝스러운 신스 사운드의 ’Spiral’은 후렴에 고음 파트만 더해주면 당장 노래방으로 가야 할 정도이다. 사실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지구 반대편의 음악을 섞은 앨범에서 트로트와 일렉트로닉을 접목한 앨범인 250의 [뽕]이 생각나는 신기한 경험이라는 점과, 그리고 그것이 정말 그들의 의도인 '댄스'를 확실히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너무나 흥미로운 앨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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