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O, 영탁, 윤하, Becca Stevens, Valley 외
쑴 : 힙합 플레이리스트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타가 '외힙 같은 국힙'이다. 국내 힙합에서 본토의 색깔을 잘 구현한 곡들을 일컫는 말인데, CAMO는 이런 플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아티스트다. 트랩 비트 위에 멜로디컬한 싱잉랩을 주로 하는 그녀는 이국적인 사운드, 한국어와 영어 가사의 조화로운 조합, 매력적인 톤으로 미국 본토의 블랙 뮤직을 트렌디하게 로컬라이징 하며 주목받았다. 이번 싱글 ‘Ring Ring’ 역시 그간 보여줬던 음악적 색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곡으로 몽환적인 비트에 멈블랩을 하며 곡을 세련되게 풀어간다. 섹슈얼한 감정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가사, 감성적인 멜로디와 리드미컬한 트랩 비트의 섬세한 경계를 능숙하게 넘나드는 플로우, 보이스 샘플과 신디사이저가 주도하는 몽환적인 비트가 어우러져 CAMO 특유의 트렌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럼에도 다소 아쉬운 점은 한국어 가사의 애매함이다. 영어와 한국어 가사가 8:2의 비율인데 80%의 영어 가사는 플로우와 톤에 잘 어우러진 덕에 흐름에 자연스러운 것에 비해 멈블랩과 오토튠의 영향으로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 와중에도, 20%의 한국어 가사는 나올 때마다 부자연스럽게 흐름을 끊는 느낌이다. 특히 곡을 마무리하는 아웃트로의 오토튠이 잔뜩 낀 한국어는 곡의 완결성을 떨어트린다는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CAMO의 음악이 국내 힙합씬에서 트렌디하다는 평을 받는 이유는 그녀의 매력적인 톤이 9할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매력적인 그녀의 톤이 감미로운 싱잉랩에 갇히기보단 ‘MAPSI (맵시)’ 와 ‘Like Me’에서 보여준 것처럼 하드한 스타일의 랩과 밸런스를 맞춰가며 다채로운 음악을 해간다면 단순히 외국 힙합을 답습해서 로컬라이징 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카니 : 트로트 가수는 트로트만 부를 것이라는 고정관념과 트로트 특유의 창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영탁의 [SuperSuper]를 들으며 그 편견이 완전히 깨졌다. 트로트 가수의 음반에서 아이돌의 색채가 느껴질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의 1, 2집을 들어보며 더 놀란 것은, 영탁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예상보다 훨씬 넓다는 점이었다. 특히 트렌디한 R&B 감성을 세련되게 구현해 내는 그의 재능은 진정 '탁며들게' 만든다.
영탁의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해야만 하는 음악'인 트로트를 유지하면서도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한 도전정신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대중에게 친숙한 ‘폼 미쳤다’, ‘머선 129’ 같은 곡과 이번 앨범의 ‘사랑옥’ 같은 트랙은 트로트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 특히 팬덤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게 하는 '폼 미쳤다~'같은 훅 라인들은 타 트로트 가수들과 차별화되는 요소로,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청중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영탁은 트로트 가수라는 한정된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R&B, 정통 발라드, 인디팝, 신스팝, 보사노바, 재즈 같은 다양한 사운드를 앨범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특히 정규 1집 [MMM]에서는 ‘재잘대’와 ‘Second Chance’처럼 여러 아이돌 앨범에서 들을 법한 서정적인 팝 감성을 부드럽게 녹여냈다.
또한, 트로트 가수는 특유의 창법을 고수할 것이라는 또 다른 편견도 이번 [SuperSuper]로 완전히 깨졌다. 영탁은 담백하게 툭툭 내뱉으면서도 그루비한 리듬감을 잃지 않는 음색으로 에너제틱한 멜로디의 ‘슈퍼슈퍼’, 그루비한 R&B ‘사막에 빙어’, 전통 트로트 ‘사랑옥’, 감성 발라드 ‘가을이 오려나’, 오케스트라의 유려한 사운드의 ‘Brighten’까지 다양한 트랙을 맛깔나게 소화해 냈다. 물론 곡의 다채로움이 앨범이라는 하나의 틀 안에서 조화를 이루지는 않지만, 트랙마다 독립적인 매력을 발산하며 트로트 창법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아티스트임을 증명했다. 이번 앨범을 듣고 나니 영탁뿐 아니라 트로트 가수 전반에 대한 편견을 반성하게 된다. 그가 넘어야 할 유일한 과제가 있다면, 아마도 나 같은 편견쟁이들의 청취를 이끌어내는 전략일 것이다.
하울 : 작년 12월, 윤하는 데뷔 20주년 기념 온라인 언팩 행사를 개최하며, 한 해 동안 총 20회의 공연, 전시회 개최, 그리고 정규 7집을 연내 발표할 것을 밝혔다. 거기에 정규 6집, 7집, 8집이 [THEORY]라는 이름의 시리즈로 계획했다는 사실 또한 밝혔는데, 그렇게 탄생한 앨범 [GROWTH THEORY]는 전작 [END THEORY]에서 팝과 R&B의 비중을 줄이고 록과 컨트리의 비중을 대폭 증가시킨 형태를 보여준다. 전작의 수록곡 ‘오르트구름’, ‘살별’ 등에서 나타난 대중의 반응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데, 컨트리에 북유럽의 민요 느낌을 첨가한다던지(‘케이프 혼’), 왈츠로 시작해서 웅장한 스트링・기타 사운드로 마무리를 한다던지(‘맹그로브’), 어깨에 힘을 빼고 훨씬 더 자유롭게 실험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전작이 트랙 순으로 앨범을 듣기에 장르나 텍스처가 급격하게 바뀐다는 인상이었다면, [GROWTH THEORY]는 비교적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어 앨범 단위로도 청취가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전작과 완전히 새로운 음반인가?'라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타이틀곡 ‘태양물고기'는 전작의 히트곡 ‘사건의 지평선'을 더욱 경쾌한 무드로 발전시켜, 드라마틱한 기승전결이 돋보였던 전작에 비해 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쌓는 구조를 띤다. 그러나 Verse-PreChorus-Chorus의 강약조절과 거의 동일한 악기 구성・BPM・멜로디 구조 등으로 보아 전작의 공식을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또, 대중가요의 가사로써는 지금껏 잘 사용되지 않았던 '터전(‘맹그로브’)', '분신(‘라이프리뷰’)' 등의 단어들과 '진실과 정의를 구분해(‘죽음의 나선’)', '은화한 우리는 다음 차례로 가(‘은화’)' 등의 표현들이 간혹 곡의 몰입을 저해하기도 하는데, 애니메이션・게임 OST로 앨범의 90% 이상을 채운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전작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던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하'라는 아티스트가 대중에게 다시 각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아티스트에게 기대하는 바가 생겼다는 증거다. 지난 2월, 여성 솔로 아티스트로써는 6번째로 KSPO DOME(舊 체조경기장)에 입성한 그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MINDSET] 시리즈), 자신이 새롭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대중에게 설득하는 과정([THEORY] 시리즈)에서 아티스트로써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 이번 앨범은 대중이 그녀에게 손을 내민 만큼 그녀 또한 자신에게 바라는 음악으로 보답하고자 했다는 인상이 크다. 게임 속 세상에서의 이야기를 매듭짓고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 떠나갈 그녀에게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하울 :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싱어송라이터 Becca Stevens는 인디 록, 일렉트로 팝, 발칸 음악 등의 요소를 차용하여 재즈 기반의 아트 팝을 전개해 온 아티스트다. 지금까지는 음악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펼치는 데 집중했다면, [Maple to Paper]에서는 모든 수록곡을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만 작업해 군더더기를 최대한으로 줄이고 순수한 자기표현에 몰두한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친어머니・스승의 죽음과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치유하고자 했던 그녀. [Maple to Paper]는 Joni Mitchell과 Sufjan Stevens 등 선배 아티스트의 영향을 이어받아 다소 개인적이라 할 수 있는 날것의 감정을 카타르시스로 전환, 청자와 공유한다.
근래의 포크 음악 씬 경향으로는 사운드가 지나치게 비어보이는 것을 고려해 더블 트랙이나 여러 이펙트를 더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Stevens는 원테이크로 13곡을 제작하는 강수를 둔다. 대신 코드 진행이나 기타 주법, 보컬의 텍스처 등을 부각해 앨범에 다이내믹을 부여하려 한 것이 이 앨범의 특이점이다. 특히 이번 앨범은 그녀의 고향인 애팔라치아 지역의 포크 음악이 많이 녹여져 있는데, 기타 하나로 리듬과 멜로디를 동시에 표현하는 피드몬트 블루스(Piedmont Blues) 기법도 그중 하나다. 아르페지오의 단순 반복 대신 이러한 방식을 택함으로써 포크 음악 특유의 단순함과 지루함을 영리하게 벗어난다.
화면 속 인플루언서를 보고 나도 모르게 그들을 부러워한다거나(‘I'm Not Her’),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그녀를 향한 원망과 그리움을 동시에 느낀다거나(‘Shoulda Been There for Me’), 개인적인 경험을 음악으로 녹여내는 모습은 여느 싱어송라이터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숏폼처럼 짧고 강력한 청각적 자극만을 탐하는 2020년대에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60분 이상을 채우는 행보는 충분히 도전적이다. 창작자와 청자 모두에게 높은 수준의 집중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생(生)음악'이 가진 가치, '의미'가 가진 가치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카니 : 밴드에게 있어 피할 수 없는 숙명 중 하나는 바로 멤버의 탈퇴다. 특히 밴드 사운드의 핵심을 담당하는 메인 기타의 부재는 음악적 색깔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Valley의 메인 기타리스트 탈퇴는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고, 앨범에서 나타난 음악적 변화는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느껴진다. 이는 밴드가 성장하고 진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변화의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작년에 발매된 [Lost In Translation]과 비교해 보면, ‘theme’의 보컬 튠이나 ‘Lost In Translation’의 강렬한 사운드 같은 요소들이 빠지면서 전반적으로 다소 밋밋한 인상을 주며, 앰비언트, 신스사운드를 활용해 만들어내던 공간감과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줄어들어 에너지가 약해진 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발매 시기가 9월, 계절의 변하는 시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포크 감성을 담아낸 사운드가 가을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여름의 뜨거움이 가시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감성을 잘 담아낸 이 앨범은 계절의 변화를 적절히 포착하며, 초창기 Valley의 감성을 다시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비록 전체적으로 담백한 사운드를 유지하고 있지만, ‘When You Know Someone’이나 ‘Let It Rain’ 같은 트랙에서는 여전히 매력적인 탑 라인과 ‘Lost In Translation’을 닮은 구성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멤버 탈퇴라는 과도기를 겪고 있는 Valley가 향후 펼쳐 나갈 음악적 방향성을 기대하게 만드는 중요한 단서이다. 밴드 데이식스 또한 메인 기타/보컬 멤버의 탈퇴로 공백이 생겼지만, 가상악기와 신스 사운드를 활용해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찾아내며 과도기를 극복하고 전성기를 맞이했다. Valley 역시 이번 변화 속에서 들려준 어쿠스틱 사운드를 스케치 삼아, 다양한 색깔을 채워갈 중요한 시기를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빈 공간이 오히려 자유롭게 무엇이든 채워 넣을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지는 것처럼, [Water the Flowers, Pray for a Garden]은 다음 챕터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주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쑴 : Zedd는 시기별로 음악적 스타일이 크게 달라진 아티스트다. 시간순으로 나눠서 설명해 보자면, 1기는 ‘Stars Come Out’과 같이 컴플렉스트로한 다소 거칠고 복잡한 사운드의 EDM을 선보였고, 2기는 2010년대 덥스텝의 붐과 함께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를 기반으로 거칠었던 1기보다 멜로디컬한 사운드를 중심으로 ‘Clarity’, ‘Spectrum’과 같은 곡을 선보이면서 EDM 씬을 사로잡았다. 3기는 Zedd가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과를 얻은 시기로, 프로듀서 Grey와 함께 작업하며 퓨처 베이스 기반의 팝 성향이 짙은 대중적인 곡을 내기 시작하며 그 결과 ‘Stay’와 ‘The Middle’ 이 빌보드 핫 100 상위권에 진입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처럼 Zedd는 강렬한 사운드로 시작했던 초기 음악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팝적인 스타일로 변모하며 EDM과 팝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9년 만의 정규 앨범인 이번 신보 [Telos]는 새로운 음악적 스타일을 보여주며 4기의 Zedd를 열었다고 하기엔 어렵고, 그간의 음악적 색채들이 조금씩 담겨있는 음반이다. ‘Tangerine Rays’와 ‘Descensus’는 묵직하고 흡입력 있는 도입부, 귀를 거칠게 긁는 베이스 사운드가 특징으로 초창기 프로그레시브한 Zedd가 생각나는 트랙이다. ‘Out Of Time’은 빈틈없이 꽉 차 있는 비트가 중심인 곡으로 ‘Addicted To A Memory’가 떠오르며 [True Colors]의 pt.2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다만, ‘Addicted To A Memory’ 만큼의 매력적인 베이스 드랍이 없다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6번 트랙 ‘Lucky’는 Zedd 특유의 산뜻하고 중독적인 일렉트로닉 팝 사운드로 ‘Stay’와 같은 팝 적인 색깔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Stay’의 히트 이후 퓨처 베이스 기반의 팝 스타일 곡이 유행처럼 나온 탓에 곡의 작법이 꽤나 익숙해져서 그때만큼의 감동은 느낄 수 없고, 곡의 RT가 2분 7초로 너무 짧아 곡이 갑자기 끝나는 느낌을 준다. 전반적으로 과거 Zedd의 여러 음악이 떠오르며 가볍게 즐기기엔 좋은 곡들이지만, 9년 만에 가져온 새 앨범이 과거 회상용에 그치는 아쉬움이 있다. 곡의 색깔이 비슷함에도 퀄리티는 단연 과거의 곡들이 더욱 완성도가 높다는 점도 뼈아픈 사실이다.
시기별로 변화된 음악 스타일을 보여줘 왔던 아티스트인 만큼 어느 시기를 통해 Zedd를 입문했는지에 따라 그의 음악에 대한 인상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Stay’를 듣고 "아 이게 딱 제드 스타일이지~"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또 어떤 이는 ‘clarity’를 들으며 "아 이게 진짜 찐 제드지" 하며 그의 이전 스타일을 그리워한다. 현재의 Zedd는 초기의 강렬한 일렉트로 하우스를 그리워하는 매니아층을 만족시키기에도 부족하고, 중기처럼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기에도 아쉬운 과도기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2010년대 edm을 줄기차게 들었던 사람들이라면 이번 앨범을 통해 그 시절의 향수를 작게나마 느끼며 과거를 회상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앨범이다.
※ '쑴', '카니'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