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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Sep 25. 2024

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4년 9월 3주)

GENBLUE, 단편선 순간들, 화사, Floating Points 외


"K-Pop 역수입 시대"


1. GENBLUE (젠블루) - ‘COCOCO

도라 : 대만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미래소녀(NEXT GIRLZ)"를 통해 결성된 걸그룹 GENBLUE(젠블루)가 국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내 엔터사 기획의 현지화 그룹이 아닌 해외의 오디션 프로젝트 그룹이 음반 발매는 물론 음악 방송까지 진출하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다수의 한국인 멤버와 소수의 외국인 멤버가 아닌, 다섯 명의 대만인과 한 명의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멤버 구성을 보게 되다니. 반전된 숫자가 신선한 느낌을 선사했다. 그러니까 과거 외국인 멤버들이 하나둘 국내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지금처럼 역전된 상황을 볼 수 있으리라고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K-Pop 프로듀싱 팀 Vendors의 설립자이자 빅히트 뮤직 소속 프로듀서 EL CAPITXN이 프로듀싱에 참여한 만큼 트랙은 '익숙한 K-Pop 구조'를 가지고 있다. 2:38의 짧은 러닝타임은 물론 단순하고 반복적인 챈팅과 메탈릭한 질감의 신스 사운드까지. 처음 해외에서 '걸크러시' 컨셉을 통해 성공을 이루었던 걸그룹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해외 팬덤이 바라보는 'K-Pop의 이미지'를 잘 이식해 놓은 느낌이 든다. 반복되는 코러스를 제외한 가사의 한국어 밸런스 또한 나쁘지 않았다. 한국어로 시작한 문장의 어미를 영어로 끝내는 작법은 'K-Pop 아이돌 작사'에 충실했을뿐더러, 발음의 어색함이 드러날 틈을 가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국내 활동을 함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영문 가사로 발매되어 '이게 K-Pop이 맞느냐'는 논란이 소소하게 이는 현 K-Pop 씬을 생각하면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국가 간의 차이가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소수의 외국인 멤버를 품고 출발하여 큰 성공을 거둔 그룹들의 존재가 젠블루를 국내 음악방송에서 만나볼 기회를 만들어준 셈이다. 젠블루 뿐만 아니라 태국, 대만, 중국 등 국내에서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는 '외국인 멤버들'의 나라에서도 K-Pop 레퍼런스의 가요를 만들어내고 있는 추세이니 말이다. 이렇듯 젠블루의 등장으로 외부에서 바라본 K-Pop의 매력과 특성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다시금 짚어볼 수 있었다! 너무 익숙해 잊고 지내던 장점에 대해 환기를 시켜준 점에서 반가운 존재로 남게 된 젠블루가 다음에는 어떤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줄지 상당히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말하고 싶은 건...음악 만세!"


2. 단편선 순간들 - [음악만세]

윈스턴 :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첫 정규 [백년]과 함께 등장한 포크 아티스트 단편선은 그야말로 한국 인디 록에 필요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와도 같았다. 단편선만의 독특한 창법과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는 점차 진화해 나갔고 결국 그의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동물]은 동·서양의 교차를 보여줬다는 평가와 함께 2015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음반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는 아방가르드하고 기이한 사이키델릭 포크로 점철된 그의 음악적 세계가 완성됨을 뜻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약 7년이 지나고 그가 새로운 프로젝트로 찾아왔다. 단편선 순간들의 [음악만세]에서는 차분함과 경쾌함을 오가며 그의 전위적인 스타일을 여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대담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지는 않지만 다양한 감정과 주제들을 이야기해 가는데, 이를테면 세계를 홀로 살아가는 주체에 관한 이야기 ‘독립’, 배우자에 대한 관조적인 시선이 담긴 ‘아내’, 물과 불에 대한 심상을 담아낸 ‘물’과 ‘불’ 등이 그러하다. 동시에 음악적으로는 음울한 선율과 정제된 퓨전 재즈, 때로는 경쾌하면서도 역동적인 질주 혹은 긴박함이 느껴지는 프로그레시브 곡을 선보이기도 하며 앨범 전반에 다채로움과 몰입도를 부여해 낸다. 가사에서는 원초적인 인상과 추상을 담은 그만의 시학을 여전히 엿볼 수 있었다. "주름진 물"(‘물’), "손 뼈 축축 숲 태양/숨 춤 물 혀 부패한"(‘오늘보다 더 기쁜 날은 남은 생에 많지 않을 것이다’) 등과 같은 그만의 표현법은 물론, ‘아내’에 이르러서는 시낭송을 하듯 읊조리는 스포큰워드로 심상을 극대화해내기도 한다.


경쾌한 시작으로 포문을 열고, 차분하면서도 나른한 전개 이후 불과 같이 휘몰아치는 이 앨범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밴드 사운드와 김진숙 노동운동가의 투쟁 메시지가 담긴 마지막 트랙 ‘음악만세’이다. 다양한 주제와 감정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투쟁 혹은 원하는 것에 대해 쟁취하자고 단편선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정리하자면 앨범 전반에 그만의 아방가르드 스타일로 점철되어 있어 다가가기 어렵지만, 편히 들을 수 있는 곡들이 여럿 있고 무엇보다도 단편선이 돌아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앨범이다. 국내 인디 록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그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기대해 본다.





"HWASA라고 쓰고 PSY라고 읽기"


3. 화사 - [O]

등구 : 마지막 EP였던 [Maria] 이후로는 4년 만에, 피네이션 이적 이후로는 처음으로 발매된 [O]는 첫 트랙부터 굉장히 트렌디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Road’, ‘HWASA’는 빌보드에서는 이미 인기 장르가 된 지 오래지만 국내에는 거의 수입되지 않은 컨트리를 섞어내면서도 가성과 진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보컬 실력과 매력적인 허스키 음색을 모두 보여주며 몰입도를 높이고, 강한 EDM 향 댄스 팝에 드리프트 퐁크 요소가 첨가된 ‘EGO’와 최근 흥행했던 사브리나 카펜터의 ‘Espresso’가 연상되는 디스코 팝 넘버인 ‘just want to have some fun’ 등, 수록곡들을 통해 핫한 장르들을 다양하게 시도했는데 모두 화사의 당당한 이미지에 잘 부합하면서 보컬적인 장점을 잘 담아내려 했음이 느껴진다. 


또한 이 곡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Love Myself'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타이틀곡을 포함하여 정말 처음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일관되게 '남 상관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가장 제대로 보여주어야 할 타이틀곡에서 메시지는 힘을 잃는다. 이유는 음악에서 화사 본인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프리코러스 후반부터 들어오는 EDM 신스 빌드업과 코러스의 하우스 비트에서는 익숙한 PSY의 향기가 물씬 느껴진다. 특히나 강남스타일의 'Eh Sexy Lady' 파트를 떠오르게 하는 코러스의 'Oh, ready set here I go' 파트는 이 곡에 그의 손길이 닿았음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화사가 보여주고자 하는 "NA"가 누구인지는 그녀의 프로듀서 특유의 뽕끼 가득한 전자음과 작법으로 흐려져 버린 것이다. 


앨범의 주제가 "나"가 아니었다면 괜찮았을까? 긍정하기 어렵다. 유영진이 만들었던 SMP, TEDDY가 만들었던 YG스러움처럼 싸이가 만드는 피네이션스러움을 원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후자가 전자들만큼의 매력이 있을지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전 국민이 아는 싸이의 재치 있는 B급 감성 음악이 전혀 다른 이미지의 여성 아티스트에게 과연 메리트 있는 음악일까. 원하는 이미지 구축, 보장된 흥행성, 인정받을만한 음악성 등등.. 그녀가 싸이스러운 음악을 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아직까지 올해 전자음악이 아쉽다면"


4. Floating Points - [Cascade]

윈스턴 : IDM의 대가 플로팅 포인츠의 디스코그래피에는 다양한 연출방식이 담겨있다. 신경과학·유전학 박사 학위를 준비하며 제작한 첫 앨범 [Elaenia]에서는 불안하지만 따스한 사운드를 재치 있게 표현해 내고, 이후 [Crush]에서는 다양하게 튀는 악기의 질감을 살려내고, 재즈 색소폰의 대가 파로아 샌더스 그리고 LSO(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Promises]에서는 아름다운 사운드 디자인을 선보여왔다. 그의 새로운 신보는 그동안 연출해 왔던 방향들의 평균 지점에 해당하는 앨범이자 새로운 이정표이다.


기존 IDM의 추상적인 구성에서 조금은 벗어나 그가 댄스 플로어 뮤직으로 나아가고자 했다는 점이 우선 돋보이는데, 포온더플로어 리듬 위 경쾌한 신스와 다채로운 질감의 퍼커션이 담겨있는 첫 3개의 트랙과 몽환적인 감성의 ‘Del Oro’가 그러하다. 그럼에도 캐치한 베이스 라인과 강력한 킥, 탁월한 카운터 멜로디를 구사해 내며 단순함 속 매력을 부여해 낸다. 이후 ‘Fast Forward’를 기점으로 점차 IDM으로 넘어가는데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신스 리드를 통해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중반부에 이르러 스퀘어파 신스를 도입시켜 애시드 하우스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몰입의 순간을 선사한다. 이후 등장하는 ‘Ocotillo’에서는 아름다운 하프의 선율과 함께 다양한 전자음으로 빚어낸 놀라운 사운드 디자인을 8분 동안 선사해 낸다. 몽환적인 신스의 잔향과 탬버린으로 채워나가는 ‘Afflecks Palace’에서는 드럼 앤 베이스의 모체인 정글(Jungle)의 향수도 느낄 수 있다.


다만, 마지막 두 트랙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전 트랙들과는 달리 앰비언트적이면서도 반복적인 리듬의 IDM이기에 흥미가 뒤떨어지는 것은 물론, 우타다 히카루의 멜로디 기여도 독창적으로 자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사운드 디자인이 담겨있는 이 앨범은 10년 가까이 이어온 그의 음악적 방향성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간 듣지 못했던 대중 친화적인 음악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올해 일렉트로닉 음악에 다소 싫증을 느꼈다면, 플로팅포인츠의 화려한 귀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매너리즘 그게 뭔데, 어떻게 하는건데"


5. Men I Trust - ‘Husk

등구 : 어떤 장르건 비슷하겠지만, 진행이 단순하고 로파이한 감성의 곡이 대다수인 베드룸 팝 역시 자칫하면 '그 곡이 그 곡'이라는 감상이 나오기 십상이다. 특유의 나른한 보컬과 몽글몽글한 사운드로 많은 사랑을 받는 베드룸 팝 밴드인 Men I Trust 역시 그러한 우려를 피하긴 어려웠지만 다행히도 최근 몇 년 간의 발매작들에서 다수의 리스너들이 생각하는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한 노력이 보이고 있다. 앰비언트 사운드와 함께 이전보다 훨씬 우울하고 가라앉는 감성으로 풀어낸 [Untourable Album], 섬세한 보컬과 대조되는 긴박한 리듬의 포스트 펑크 넘버 ‘Billie Toppy’, 로파이한 질감에 사이키델릭한 요소가 더해진 바로크 팝 곡 ‘Girl’은 Men I Trust의 음악세계를 성공적으로 넓혀주었다. 


이번 싱글 역시 그들의 음악적 다양성 확장에 일조하는 곡이다. ‘Seven’, ‘Numb’, ‘Lauren’ 등의 그들이 많이 사랑받았던 곡들이 연상되는 뚜렷한 밴드 사운드와 몽환적인 드림팝 질감도 존재하지만, 찰랑이는 기타의 발랄함과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간주의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와 인트로의 음이 맞지 않는 듯 불안한 리프 멜로디로 하여금 곡이 평범하지 않고 입체적으로 느껴지면서도, 역시나 그들의 대표곡들이 가지는 편안함과는 차별되는 지점을 만들어낸다. Men I Trust의 베드룸 팝은 뻔해지지 않은지 이미 오래이다. 





"언어의 장벽이 주는 완벽한 상상력"


6. She Past Away - ‘İnziva

도라 : 튀르키예의 포스트 펑크 밴드 She Past Away는 그룹명에서 예상할 수 있듯 다크 웨이브를 뿌리에 두고 있다. 초기에는 기타와 베이스 사운드를 중점적으로 곡을 풀어내었는데, 2019년에 발매된 [Disko Anksiyete]를 기점으로 신스 사운드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신스 사운드가 주가 됨으로써 거의 들리지 않는 낮은 보컬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어 다크 판타지가 연상되는 음악적 스타일이 차차 정립되어 갔다. 어둡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서정적인 가사 또한 특징적이지만, 튀르키예어가 낯선 한국인 입장에서는 그 이국적인 느낌이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언어의 장벽 아래에서 오로지 음악만으로 서로의 세계가 연결될 수 있는 경험이란!


이번 싱글 또한 앞서 말한 She Past Away의 신스 사운드 위주의 표현이 가미된 고딕 록 장르의 곡이다. 오케스트레이션이나 스트링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운 고딕 록보다는 차분하며, 반복적인 노트가 인상적이다. 화음을 통한 밀도 있는 공간을 표현하기보다 넓은 패드 사운드로 웅장함을 만들어냈는데, 어둡고 축축한 동굴 속에서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뿐일까? 빠른 8분 음표 노트는 누군가에게서 도망치는 발소리를 떠오르게 한다. 인터뷰를 통해 She Past Away가 공포 영화의 미학에 영향을 받는다는 뜻을 밝힌 바 있는데, 이번 싱글에서 그들이 받은 시각적 영향력을 음악을 통해 성공적으로 풀어냈음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들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경험이 그 증거 아니겠는가. 레퍼런스와 오마주 그리고 표절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고 있는 '대 레퍼런스의 시대'에 나 자신의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음악이 반갑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니 '다크 무드'를 필두로 한 무언가를 기획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She Past Away의 음악적 세계에 연결되어 보는 건 어떨까. 내면에 깊이 숨겨져 있던 호기심의 씨앗을 발견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 '도라', '등구', '윈스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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