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YNEXTDOOR - [19.99]
남자 아이돌의 세계는 꽤 오랜 기간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로 불렸다. 음원 성적보다는 음반 판매량과 공연을 주요 실적으로 다루다 보니, 새로 데뷔하는 보이 그룹들 또한 팬덤 잡기에 급급했다. 해외 팬덤을 위한 강렬한 음악과 퍼포먼스는 대중의 피로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고, 언젠가부터 보이 그룹 시장은 정말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2023년, 5세대 남자 아이돌 음악이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제라보(ZEROBASEONE, RIIZE, BOYNEXTDOOR)’와 TWS(투어스)로 대표되는 이들은 침체되었던 보이 그룹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남돌의 부활’을 알렸다. 보이넥스트도어(BOYNEXTDOOR)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실력과 자신만의 색이 뚜렷한 음악을 내세운다. 청량, 카리스마 등 한정적이고 뻔한 콘셉트에서 벗어나, MZ스러움을 아이덴티티로 5세대를 이끌어가는 이들이 발매한 미니 3집 [19.99]는 어떠한 텍스트를 담아내고 있을까?
보이넥스트도어(BOYNEXTDOOR)는 지코라는 프로듀서 아래, 옆집 소년들이라는 이름과 맞는 일상적인 소재를 노래한다. ‘지코’ 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음악에 이지리스닝과 가벼운 텍스트를 더하여, 보다 트렌디한 음악과 앨범을 선보여왔다. 특히 멤버들이 직접 작곡과 작사에 참여하여 감성을 녹여냄으로써, 실제 MZ세대의 면면을 더욱 섬세하고 솔직하게 살리고 있는 그룹이라 할 수 있다.
‘공감’을 가장 큰 감정으로 앞세운 이들은 ‘첫사랑 3부작’으로 첫 시리즈를 완성했다. [WHO!], [WHY..], [HOW?]로 이루어진 시리즈는 제목처럼 설렘과 아픔이 담긴 이들의 첫사랑을 노래한다. 데뷔 싱글인 [WHO!]는 좋아하는 상대를 발견하고 마음을 전하는 과정을, 미니 1집 [WHY..]는 설레는 첫사랑 이후 찾아온 이별을, 미니 2집 [HOW?]는 만남과 이별 그 사이의 다양한 감정을 담아냈다. 한 번쯤 겪어본, 치기 어린 첫사랑을 보이넥스트도어의 시점으로 보여준 것이다.
마치 친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듯,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텍스트를 노래하고자 하는 이들은 음악과 동시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비주얼 콘텐츠로 아이덴티티를 다지고자 했다. 데뷔 싱글 [WHO!]에서 이러한 아티스트 브랜딩을 직관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데, Crunch 버전의 콘셉트 포토는 멤버들이 초인종을 누르듯, 현관 외시경처럼 연출한 화면으로 그룹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표현했다. 또한 트리플 타이틀곡 중 두 번째 타이틀 ‘One and Only’의 무대에는 아예 ‘문’이라는 오브제 자체가 등장하는데, 이는 이내 보이넥스트도어의 가장 큰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외에도 집 모양을 강조한 앨범 커버와 응원봉까지 다양한 비주얼 프로덕션을 활용하여 이들이 지향하는 ‘바로 옆집에 살 것 같은 소년들’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잡고 가고자 한 것이다.
첫사랑 3부작을 통해 그룹의 방향성을 각인한 보이넥스트도어가 새롭게 발매한 미니 3집 [19.99] 또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텍스트를 강조하고 있다. 19.99세를 뜻하는 앨범명은 스무 살이 되기 직전, 가장 뜨거운 시기를 표현한다. 내년에 스무 살이 되는 막내 운학을 비롯하여, 이제 막 20대에 들어선 이들이 직접 겪고 있는 고민과 생각들을 담은 것이다. 가족과 학교 등의 안정적인 공간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삶이 시작될 것만 같은 혼란스러운 스물. 그 언저리의 멤버들이 직접 표현한 자유로움과 자신감, 쓸쓸함과 실망 등의 감정은 매우 꾸밈없고 솔직하다.
보이넥스트도어는 이러한 앨범 텍스트를 재미있고 다양한 콘텐츠와 함께 풀어냈다. 부모님께 들키기 싫었던 우리들만의 비밀과 소소한 일탈을 풀어낸 선공개 곡 ‘부모님 관람불가’의 뮤직비디오는 각종 밈을 패러디한 이미지들이 포토 덤프처럼 쏟아지며 화제가 되었다. 또한 스물의 근거 있는 자신감을 담아낸 타이틀곡 ‘Nice guy’ 뮤직비디오에서는 마인크래프트 캐릭터들의 퍼포먼스 장면이 등장하며, MZ세대 대표 그룹답게 MZ스러움이 가득한 콘텐츠들을 선보였다.
그렇다면 과연 쟁쟁한 5세대 보이 그룹들 사이에서 그저 ‘MZ스러움’으로 이들만의 입지를 완성할 수 있을까?
- 프로듀서 지코의 존재감
이들이 자신들만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넘어야 할 가장 첫 번째 산은 그 무엇도 아닌, 바로 프로듀서 지코의 존재감이다. 보이넥스트도어는 지코가 설립한 KOZ 엔터테인먼트의 첫 아이돌로, 타 그룹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의 인식은 낙인 아닌 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니 1집 [WHY..]의 타이틀곡 ‘뭣 같아’는 발매 4주 내 멜론차트 TOP 100에서 10위를 유지하며 대중 픽 음악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러한 성적을 기록하는 데 지코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의 영향, 낙수 효과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반면, 바로 다음 앨범인 미니 2집 [HOW?]의 타이틀곡 ‘Earth, Wind & Fire’는 또 다른 반응들이 등장했다. ‘뭣 같아’로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덕에 음원 차트 성적과 음반 판매량은 이전보다 성장했으나, 난해하게 느껴지는 스피드업 구간으로 인해 믿고 듣는 ‘지코네 아이들’이라는 기대감이 깨지는 경우도 존재했다. 이렇듯 네임드 프로듀서가 제작하는 아이돌은 프로듀서의 이미지가 소속 아티스트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준다. 실제로 지코의 여러 논란들 때문에, 보이넥스트도어라는 그룹에 진입장벽을 느끼는 팬들도 있었다. 때문에 데뷔 1년 차를 넘어선 지금, 프로듀서의 존재감을 뛰어넘어 이들만의 정체성을 확립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생활 밀착형 음악을 위한 ‘진짜’ 이들의 이야기
5세대 보이 그룹이 팬덤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아낸 만큼 이들의 콘셉트를 선례로 활동하는 그룹은 점차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업계보다 빠르게 유행을 답습하는 시장의 분위기 속에서 언제까지 MZ 식 트렌디함을 이들의 정체성으로 내세울 수 있을지 미지수다. 보이넥스트도어가 앞세우는 공감이라는 텍스트는 TWS(투어스)의 등장으로 인해 어느샌가 조금 흔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트렌디하고 예쁜 디자인으로 매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피지컬 앨범도 NCT WISH 등 타 그룹들의 획기적인 앨범 디자인으로 인해 이전보다 화제성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보이넥스트도어만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이들이 추구하는 생활 밀착형이라는 음악적 지향점에 딱 붙을 수 있는, 만들어낸 것이 아닌 ‘진짜’ 이들의 이야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발매한 미니 3집 [19.99]는 보이넥스트도어만의 아이덴티티를 굳히고자 시도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보이넥스트도어의 음악적 지향점은 ‘공감’이다. 음악의 본질이 결국 감정의 교류에 있다고 믿는 이들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그룹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지점인 ‘생활 밀착형 음악’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앞선 시리즈 앨범, 첫사랑 3부작은 아이돌이라는 위치로 인해 한계가 있다. 연애가 금기시되는 아이돌 팬덤의 분위기와 유사 연애 마케팅이 존재하는 시장 속에서, 이들이 노래하는 첫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는 우리의 기억과 감정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보이넥스트도어의 이야기처럼 느끼기는 어렵다. 직접 작사에 참여하며 자신들의 감정을 녹여내기는 했으나, 실상은 그에 대한 경험이나 감정에 대해서 까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보이넥스트도어의 사랑 이야기는 인식하기는 쉽지 않아도 어딘가 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미니 3집 [19.99] 속 보이넥스트도어의 이야기는 확실히 자전적이다. 보다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재로 진정성을 더한 것이다. 실제로 19세인 멤버가 있는 이 시기에 이런 앨범을 기획했다는 것은 결국 보이넥스트도어만이 가능한 앨범을 만들고자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예능 활동이나 SNS를 통해 쌓아 온 이미지 또한 이러한 기획 의도를 뒷받침한다.
입시 전문 유튜버 미미미누의 콘텐츠에 여러 번 출연하며 리얼하게 나눈 대학수학능력시험 이야기는 많은 또래의 공감을 샀고, 멤버들이 직접 풀어낸 학창 시절의 다양한 썰들도 X(트위터)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이렇게 쌓은 MZ세대 그룹이라는 이미지는 대중과 팬덤 모두에게 이번 앨범의 텍스트를 더욱 어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보이넥스트도어는 아직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19.99]의 메시지처럼 아직 불완전하기에 다양한 것을 시도할 수 있고, 더욱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도 반드시 존재한다. 미니 3집을 통해 본인들의 색을 조금 더 뚜렷하게 만들 수 있었던 만큼, 유행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막연히 따라가지만은 않는 이들이 또 어떤 흔한 텍스트로 새로운 것들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by. 별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