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제작의 대체재가 아닌 협업의 손길로
지난 4월, Billie Eilish, Nicki Minaj, Stevie Wonder 등 유명 팝스타 200명은 “전문 예술가의 목소리와 초상을 도용하고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며 음악 생태계를 파괴하는 AI의 약탈적(predatory) 사용을 막아야 한다”는 공개서한에 서명했다. 이와 같은 공식적인 움직임을 통해 한동안 우후죽순으로 올라오며 큰 인기를 끌었던 AI를 활용한 음악 커버에 대한 정당성과 이에 대한 종사자의 의견이 무엇일지 상기해 보도록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국내에서도 aespa 윈터가 라이브에서 “AI 그거 나쁜 거라 그랬어.”라며, YouTube에 올라와 있던 AI 커버 노래들을 직접 불러주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김형석 작곡가는 한 기관의 의뢰로 작곡 공모 심사에 참여하였는데, 1위로 선정한 곡을 “제법 수작이었다”고 평가했지만, AI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져 개인 SNS에 “이걸 상을 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라며 “이제 뭘 먹고 살아야 하나”라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많은 음악산업 종사자가 AI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비칠 정도로, 이미 AI는 음악산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자명하다. 대표적인 작곡 AI툴 Suno와 Udio 등 은 간단한 프롬프트 입력 혹은 간단한 스타일을 선택하여 지정하기만 하면 누구나 간단히, 그리고 빨리 세상에 없던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활용해 제작된 음악의 대표적 사례로는 ‘창팝’이 있다. ‘창팝’이란 게임 메이플스토리와 그 게임의 현 디렉터인 김창섭 디렉터에 대한 내용을 담아 AI를 활용한 음악을 만들어, 유저들 사이에서 밈처럼 유행하고 있는 것을 일컫는데, 해당 게시물들의 유튜브 조회수가 1000만을 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FlowGPT의 ‘DEMO #5: nostalgIA’은 음성 AI 기술을 활용해 Bad Bunny, Justin Bieber, Daddy Yankee의 목소리로 구성된 곡으로, 스포티파이 글로벌 바이럴 차트에서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물론, 이때 활용한 Bad Bunny의 음성에 대해 아티스트가 직접 보이콧 선언을 하는 등의 이슈가 있었지만, 차트의 데이터가 말해주듯 어찌 되었든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AI를 활용한 음악에 대해 넓은 수용성을 나타내고, 오히려 관심 있고 흥미롭게 소비하는 추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Kanye West와 Ty Dolla $ign, ¥$ [VULTURES 2]에서 화제가 되었던 AI 활용은 적지 않은 부정적 여론을 형성했다. 수록 트랙 중 ‘FIELD TRIP’과 ‘SKY CITY’ 특정 부분에서 재미있게도 자기 자신의 음성 데이터를 활용하여 AI 보컬로 활용했다는 것인데, 왜 [VULTURES 2]에서 사용한 AI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을까.
음악의 사전적 정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박자, 가락, 음성 따위를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하고 결합하여, 목소리나 악기를 통하여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 역시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으로 정의되어 있다. 즉, 애초에 음악이란 인간의 활동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전적 정의를 차치하고서라도, 앞서 잠깐 언급했던 김형석 작곡가가 꽤나 수작이었지만, AI가 만든 것이라 수상에 고민이 깊어졌다는 것은, 음악에 있어서 인간의 감성과 창의성이라는 지점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역설한다. 그렇다면, 왜 음악과 예술에 있어서 인간의 감성과 창의성이라는 것이 필요조건인 것일까. 음악을 감상할 때 우리는 단순히 사운드와 음계만을 가지고 즐기기보다는 그 이면의 아티스트 개인의 서사나, 해당 곡이 나오게 된 배경, 이 곡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는지 등 아티스트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과 감성, 의도까지 전체적으로 한 번에 고려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극소의 개연성을 지닌 확률이라도 존재한다면 이를 무한히 시도할 때 이루어질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무한 원숭이 정리’처럼 AI가 만든 음악이 무수한 조합의 시도 끝에 비틀즈나 마이클 잭슨과 동일한 수준을 갖춘 결과물을 도출한다고 할지라도, 온전히 그를 음악으로써 향유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음악에 있어서는 정의로 보아도, 해당 사례를 보아도, 결과보다 과정, 그 주체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의 [VULTURES 2] 또한, 소비자들이 AI라는 새로운 기술의 활용적인 측면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위를 전제로 아티스트만의 예술성을 기대했기에 앞선 사례들과 다른 반응을 얻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법률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AI라고 하는 것은 결국 학습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학습에 사용하는 정보들이 모두 저작권이 존재한다는 것이 주된 쟁점이다. 실제로 “AI가 저작권이 있는 자료를 사용해 학습하면, AI가 생성한 음악이 인간 아티스트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지난 6월 유니버설 뮤직그룹,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워너 레코드 등 미국 주요 음반사가 음악 생성 AI 스타트업 Suno와 Udio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음성 활용 AI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실정이다. UK 뮤직 Tom Kiehl 임시 대표는 가수들의 작업물이 허락도 없이 AI 발전에 사용되고 있다고 우려하며 "기업들은 예술가들의 동의를 얻고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보다 책임감 있게 접근해야 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음악에 있어서 AI의 활용은 무조건적으로 지양되어야 하는가? 수백 개의 데모 사이에서 AI 기술을 통해 타깃 아티스트 음성을 활용한 곡은 듣는 이로 하여금 훨씬 매력적이게 느낄 수 있게 하며, 더 귀 기울여 듣도록 만들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최종 녹음 곡으로 정해지기 전, 스케줄을 맞추기 힘든 아티스트에게 모니터링용 시험 녹음을 시키기보다, 음성 AI를 활용해서 해당 아티스트가 가창했을 때 생성되는 분위기와 적합성 정도를 미리 파악하여 시간적, 금전적 비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 더불어 글로벌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곡을 가창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노력해도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어려운 발음들을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창자를 쉬이 찾을 수 없는 작곡가의 경우, 자기 음악의 시연으로써 음성 AI의 활용은 매우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음성 AI 기술뿐만 아니라, 급하게 일회성으로 짧게 사용해야 하는 효과음이나 앰비언스를 몇 시간에 걸쳐서 적합한 스타일의 음원이 존재하는지 찾기보다는 작곡 AI를 활용하여 보다 적합하고 저렴하게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AI를 활용하여 보다 정밀하게 주파수를 조정하여 믹스와 마스터링을 진행하며 보다 작곡가의 의도를 더욱 비춰낼 수 있다. 또한, AI 기술을 활용하여 악기별 스템을 효과적으로 추출하여 활용할 수 있다.
즉, AI를 음악산업 종사자들의 온전한 대체가 아닌 협업과 보조의 수단으로써 바라본다면 새로운 워크플로우와 예술적 기회와 지평이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이미 무궁무진하다. 결국 인간의 의도와 생각이 있어야 음악으로서 온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으니, AI를 배척하기보단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창작자에게 기여할 수 있을지, 가치를 더할 수 있을지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앞서 언급했던 저작권, 소유권 등의 윤리적 과제를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이미 그런 움직임은 일어나고 있다. 미국 저작권청은 자신의 저작물이 AI 모델 학습에 사용될 경우 보상받을 수 있는 모델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캐나다 가수 Grimes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을 테니 맘껏 복제하여 사용하라며, AI를 활용해 자신의 목소리가 포함된 노래를 성공적으로 만들면 로열티의 50%를 제작자와 나누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AI를 약탈적 존재가 아닌 협업의 도구로 생각하여 논의를 이어간다면 음악 산업의 경계가 무한히 확장되어 새로운 바람을 불어올 수 있을 것이다. AI의 발전이 음악 산업에 가져올 변화는 충분히 긍정적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 풍부하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을 새로 제시하며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AI는 어쩌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By. 심피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