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악계의 엘리트화
2024년 10월, 약 5년만에 대학가요제가 돌아왔다. 대학가요제는 1977년 런칭되어 2012년까지 매년 MBC에서 개최되었던 가요제로, 대학생들이 직접 창작한 곡으로 경연을 펼친다는 신선한 컨셉을 앞세워 한국의 대표적 가요제 중 하나로 손 꼽혀왔다. 산울림, 송골매, 김경호, 김동률, 신해철 등 걸출한 스타를 배출해내면서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신인 가수 등용문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시청률과 화제성 저조를 원인으로 MBC에서는 결국 2012년을 마지막으로 대학가요제를 볼 수 없었다. 2019년, MBC플러스에서 가요제를 일시적으로 부활시키긴 했지만 그도 일회성에 그쳤고, 지난 몇 년간 대학가요제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토록 오래간 스타들의 등용문으로 기능하던 대학가요제는 왜 폐지되었을까?
첫 런칭 시점과 달리 대학 진학의 특수성이 사라지며, 폐지 당시에는 ‘대학생’이라는 사회적 지위가 그다지 특별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 MNET의 슈퍼스타K 시리즈, SBS의 K팝스타 시리즈 등 대국민 대상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흥행하면서 대학가요제가 참가자들은 물론 시청자에게도 큰 매력을 주지 못했다는 점 등 사회적인 변화도 한몫 했지만, 결국 대학가요제가 더 이상 신선함을 주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음악 산업의 상업화, 그리고 ‘엘리트화’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의 음악 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물론, 그들이 처음으로 시스템화한 연습생 제도는 사실 생각보다 그리 역사가 길지 않다. 아마추어들을 발굴해 연습생 시절을 거쳐 데뷔시키는 시스템은 90년대 ‘SM기획’과 ‘대성기획’ 시절 사실상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예외적으로 솔로가수 ‘김완선’ 등 연습을 거쳐 데뷔한 케이스가 존재하긴 했지만, 그는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였을 뿐, 90년대 대형 기획사가 등장해 시스템을 정립하기 전까지는 자신만의 음악을 해나가던 뮤지션들이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등 대회를 통해 매스컴에 처음으로 얼굴을 비추거나, 또는 인디씬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다 매니저, 프로듀서 등의 도움을 받아 방송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90년대 등장한 대형 기획사들의 아이돌 그룹들이 큰 인기를 얻고 가요계에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 음악계의 데뷔 시스템은 변화했다. 오디션에 응시, 기획사를 통해 전문적인 트레이닝 및 이미지 브랜딩 과정을 거치는 연습생 생활을 거쳐 데뷔를 하게 되는 과정이 보편화된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대중들이 마주하게 되는 가수의 형태가 변화했다. 그룹과 솔로를 가리지 않고, 자본과 시스템을 통해 트레이닝된 상태로 데뷔하는 가수들이 많아지며 인디 씬은 자연스럽게 침체되었다. 음악의 퀄리티를 떠나 방송 출연, 마케팅 전략 등 개인과 회사 사이엔 자본력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팬덤을 형성하고 메인 스트림으로 진출하는 인디 가수들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인디 씬의 인기가 식어가자 씬의 크기는 줄어들었고, 자본의 도움은 없더라도 독자적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꾸준히 만들어나가는 독특한 가수들을 대중이 마주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장르적으로 제작의 허들이 다소 낮다고 할 수 있는 힙합 장르의 침체나 아마추어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침체도 인디 가수들과 아마추어 뮤지션들에게는 악재로 작용했다.
혹자는 최근 ‘밴드붐’이 일며 밴드들이 다시 떠오르는 가운데, 인디 가수들이 메이저씬으로 들어오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음악계의 엘리트화라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을 제시할 수도 있다. 확실히 실리카겔을 필두로 터치드, wave to earth 등 주목받는 인디 가수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최근 현상은 2010년대 장미여관, 국카스텐, 10CM 등의 인디 밴드들이 주목받았던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최근 밴드붐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실리카겔, 터치드 등 대다수는 모두 예술대학교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한 이들이다. 대표적으로 실리카겔과 터치드는 서울예술대학교, 유다빈밴드와 wave to earth의 멤버들은 호원대학교 출신으로 모두 음악을 전공했다. 과거 대학가요제가 흥행했던 시절, 하다못해 2010년대 인디밴드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사뭇 다른 양상이다. '나 어떡해'라는 걸출한 노래를 남긴 밴드 '샌드 페블즈'는 서울대학교 밴드동아리이고, 10CM는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중퇴한 권정열을 필두로 했다. 결국,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학생들이 아마추어 시절부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인디 활동을 하며 인기를 얻었던 지난 시절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아마추어 출신 인디 가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더해서 인디 씬에도 연습생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전 고멘트 기획칼럼에서 언급되었던 것과 같이,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마운드미디어 소속 한로로는 실제 회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거쳐 데뷔한 바 있다. 이제는 인디 씬에서도 아티스트가 태동하는 과정에 회사가 개입, 전문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사례가 생긴 것이다.
대학가요제의 전성기 시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먼저 언급했던 것처럼, 과거에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음악 활동을 펼치고자 했던 원석들이 가요제나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 매체에 등장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가수들이 주류가 되었으며,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아마추어 뮤지션들은 오랜 역사를 지닌 사운드클라우드, 나아가 틱톡과 인스타그램과 같은 개인 SNS를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개인 미디어가 아닌, 범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아마추어 출신 음악가를 찾아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SNS에서 주목을 받고 나름의 팬덤을 구축한다 해도, 보다 폭넓은 이를 대상으로 하는 매체에 등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마추어들을 올드 미디어에서는 찾아 보기 힘들어진 지금, 대학생들, 즉 아마추어들이 주축이 되는 대학가요제를 내년에도 또 볼 수 있을까?
아마추어의 날 것의 매력이 올드 미디어를 통해 어필되기는 쉽지 않은 요즘, 내년에도 대학가요제가, 또는 대학가요제를 통해 배출된 우승자가 큰 화제성을 얻기엔 힘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다시 돌아온 대학가요제는 참가자 조건을 대폭 완화했다. 작곡, 작사 능력이 모두 있는 대학생만 참여할 수 있던 기존의 방식에서, 프로듀싱 능력에 제한을 두지 않았고 대학생과 대학원생까지 대상을 넓혔다. 참가자의 모수 자체가 증가했다는 점에서 가지각색의 참여자들을 방송에서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인 요인이다. 더불어, 창작곡 제한이라는 허들을 없애며 비교적 넓은 장르를 방송에서 만나보게 될 수도 있게 되었다. 실제로 이번 대학가요제는 국악 장르의 참가자가 등장하는 등, 보다 다양한 장르의 참가자들을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과 사실상 거의 유사한 조건으로 기존 시청자들이 대학가요제라는 브랜드에 기대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을지 모른다는 점이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 그러나, 결국 참가자 모수가 늘어 대중에게 어필할만한 스타가 나올 확률은 이전보다 높아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대중이 대학가요제에 기대하는 감성을 충족하기엔 어렵겠지만, 최근 미디어 상황을 고려하면 참가자의 허들이 낮아진 것은 더욱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틱톡, 인스타그램 등 자기 자신을 표출하는 SNS 활동이 당연해진 지금, 참가자인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은 매체를 통해 비춰지는 자기 자신에 대한 브랜딩에 매우 능한 세대다. 음악 외적으로도 캐릭터로서 승부해 볼만한 참가자들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
이미 틱톡, 유튜브 숏츠 등을 통해 활동하다가 실제 데뷔로 이어졌던 여러 선례들도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승헌쓰가 재쓰비로 데뷔했고, 댄스 유튜버로 활동하는 남매 유튜버 땡깡과 진절미 역시 자체적인 곡을 발매해 데뷔로 이어졌다. 해외로 시야를 넓히면 이런 사례는 더욱 많아진다. 최근 싱글 'Diet Coke'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Addison Rae는 물론, Lil Huddy, Dixie D'Amelio 등의 틱톡커들이 음원을 내고 가수로 활동하고 있고, 틱톡커로서 만들어낸 브랜드를 음악에도 적용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개인 미디어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들을 대학가요제라는 발판을 통해 보다 더 넓은 대중에게 소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예능적인 측면에서도, 방송에 비춰지는 독특하고 분명한 캐릭터를 통해 매력을 발산해 팬덤을 구축하는 사례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와 같은 긍정적인 전망에는 제작진의 세밀한 연출이 필수적이다. 기존의 대학가요제가 가진 색깔만으로 승부할 수 없어 참가자 조건에 변화를 주었다면, 그에 맞춰 참가자들의 더욱 신선한 매력을 보여주어야만 가요제가 시리즈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실제 방영된 무대를 보면 참가자들의 곡 선곡이나 연출이 다소 여전히 기존 대학가요제의 모습에 갇힌듯해 보여, 가요제의 존속에 물음표가 띄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대학가요제의 폐지는 단순히 프로그램의 존폐를 넘어, 한국 음악계의 엘리트화라는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추어 시절과 인디 활동을 통해 데뷔하는 가수들은 줄고, 음악업계 역시 산업화되며 대중들에게 선보여지는 음악의 다양성 역시 함께 줄어들었다.
한국 스포츠를 좋아해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었을 말이다. ‘엘리트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생활체육을 추구해야 한다.’ 음악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듯하다. 음악을 전공하고 트레이닝을 거쳐야만 음악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업계가 돌아가고 있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엄격한 트레이닝 시스템과 회사의 기획력, 그리고 자본력이 현재의 케이팝을 만들었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만들어진 음악 외로도, 본인만의 솔직하고 다양한 음악을 전하는 가수들이 한국에 등장하려면, 건강한 음악 생태계를 위해 ‘생활음악’에 대해서도 한 번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동아리, 방과후활동 지원 등을 통해 음악 역시 스스로를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방법으로서 허들을 낮추고 일상에 녹아들게 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해본다.
By. 이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