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가 재결합하고 칸예 웨스트가 한국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며 Nas가 국내 뮤직페스티벌 헤드라이너를 장식하는 등, 강력한 아티스트 파워를 가진 이벤트가 연이어 터지는 2024년. 수도권에서 이러한 빅 이벤트가 일어나는 와중에 국내 지방 도시에서도 단순한 지역 축제를 넘어 신선한 기획을 앞세운 이벤트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Lakebeats: 충주본색(忠州本色) / 안동국제탈출페스티벌
필봉마을굿축제 / 구미산단 페스티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공무원인 ‘충주시 홍보맨’을 기점으로 젊은 세대에게 유쾌한 이미지를 심어준 충주시에서는 한국형 개러지 파티인 ‘Lakebeats: 충주본색(忠州本色)’ 개최를 알렸다. 안동시 역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라는 전통적인 IP를 갖고 특유의 흥과 현대의 일렉트로닉 음악 트렌드를 결합한 레이빙 프로그램을 선보였으며, 임실군의 ‘필봉마을굿축제’는 첼리스트이자 DJ, 아티스트인 양해인이 페기 구를 패러디한 ‘페기 굿’으로 농악과 테크노가 결합한 굿판 퍼포먼스를 진행할 것을 알리며 기존의 관객층인 지역 주민들 뿐 아니라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성공적인 홍보 효과를 누렸다. 오랜 기간 한국 첨단산업을 이끌어 온 경상북도 구미시도 구미의 산업단지를 조명한 문화행사로 공단 일대에 밴드 공연과 전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구미산단 페스티벌’ 개최를 알렸다.
위 행사들의 공통점은 우선 수도권 외, 흔히 뭉뚱그려 ‘지방’이라고 불리는 도시에서 진행되는 행사라는 점이다. 특히나 인상적인 점은 예컨대 'OO축제+축하무대'와 같이 단순히 지역 특산물이나 전통문화와 축하 무대를 병치시킨 일반적인 지역 축제의 구성이 아니라, 두 요소를 좋은 기획을 통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녹여내 다른 지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해당 지역만의 고유한 가치를 축제라는 형식으로 치환한 점이다. ‘충주본색’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충주의 관아골 아트뱅크 243을 중심으로 국악부터 뽕, 2000년대 대중음악까지 한국음악의 스펙트럼을 총망라하는 폭넓은 아카이브 퍼포먼스를 보여줄 예정이며, ‘구미산단 페스티벌’ 역시 공단 일대 최근 시설의 노후화, 청년 근로자 감소, 문화 시설 부족을 해결할 수 있도록 빈 창고를 활용한 공연과 전시를 선보인다. 또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퍼포먼스와 은퇴 근로자들을 위한 만찬을 준비하는 등 구미 시민과 근로자와 함께 산업단지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그들에게 헌사를 보낸다.
페기 구를 패러디한 '페기 굿'으로 필봉마을굿축제를 홍보한 첼리스트 겸 DJ 양해인
나아가 이들은 생성형 AI를 활용한 홍보영상 제작과 젊은 세대들 혹은 특정 음악씬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아티스트를 섭외하고 패러디하며지방을 떠난 청년들과 타지역의 청년들, 그리고 해당 씬의 음악 팬 모두에게 어필하고 있다. 이는 지속되는 불경기와 일자리 부족 등 여러 이유로 청년들이 지역을 이탈하며 수도권 지역이 과밀화되고 지방 소멸에 대한 우려가 심화하는 오늘날 새로운 방식으로 지방 도시 방문 및 관광을 유도하며 지역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더욱 반갑게 다가온다.
하반기 동안 공개되는 여러 지역 행사를 지켜보며 일찌감치 새로운 지역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가치를 지키며 영향력을 키워온 페스티벌이 하나 떠올랐다. 바로 강원도 철원군에서 진행되는 ‘DMZ PEACE TRAIN MUSIC FESTIVAL’(이하 DMZ 피스트레인)이다.
2024 DMZ PEACE TRAIN MUSIC FESTIVAL
DMZ 피스트레인은 1953년 휴전협정 이후 만들어진 군사적 완충지대 DMZ의 접경지인 철원에서 진행되는 뮤직페스티벌이다. 2018년부터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는 슬로건 아래 우리에게는 조금은 미지의 장소인 철원에서 페스티벌을 진행해 왔다. 여타 페스티벌 중에서도 지역 활성화 그리고 음악/공연 산업 활성화를 모두 잡은 페스티벌로 평가받고 있는 DMZ 피스트레인은 단순한 축제를 넘어 하나의 브랜드처럼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기획과 운영으로 업계에서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독보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출처: DMZ PEACE TRAIN MUSIC FESTIVAL since 2018 공식 인스타그램
기본적으로 뮤직 페스티벌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DMZ 피스트레인은 철원 군민과 복무 군인들에게 무료로 티켓을 제공한다. 또한 DMZ의 접경에서 평화를 외치는 페스티벌인 만큼 철원에 남아있는 한국전쟁과 관련한 아픈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인 월정리역, 수도국 터에서 부대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한다. 티켓이 필요 없는 무료 프로그램도 있다. 고석정 관광단지 중앙에 위치한 분수 광장에서는 낮부터 페스티벌이 끝난 밤까지 SCR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의 디제잉이 진행되는데 이는 티켓의 유무를 넘어서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만의 리듬으로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출처: DMZ PEACE TRAIN MUSIC FESTIVAL since 2018 공식 인스타그램
좋은 페스티벌 덕분에 행사 동안 행사지인 고석정과 인근의 식당들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숙박시설은 날짜가 공개됨과 동시에 예약이 마감되기도 하며 매해 꾸준히 철원을 찾는 피스트레인 마니아들은 철원에 하루이틀 더 머물며 한탄강 주상절리길이나 소이산 전망대를 관광하는 등, DMZ 피스트레인은 철원군의 지역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큰 규모의 행사나 축제가 진행되며 발생하는 소음과 쓰레기로 인한 지역 주민과의 갈등이나 민원 역시 지역 축제의 숙명이지만 DMZ 피스트레인은 위와 같은 기획으로 운영 시 예상되는 여러 가지 지역과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고 철원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섬세하게 배치했다. 이는 지역 활성화만 아니라 축제의 정체성과 메시지가 힘없는 텍스트로 끝나지 않고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해줄 수 있는 힘이 된다.
2024 황금 카니발
지난 9월 말 경주 금리단길 일대를 가득 채운 ‘황금 카니발’ 역시 DMZ 피스트레인의 영향 아래에 있는 듯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기존에 경주 황남동 일대의 카페, 서점, 빈 상가에서 도보로 돌아다니며 소박하고 여유롭게 볼 수 있는 공연을 진행하며 상권 부흥과 새로운 풍경의 페스티벌을 제시했던 ‘황남동 카니발’은 올해 더욱 몸집을 불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역이자 경주 신라 왕릉급 대형 무덤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고분인 ‘봉황대’ 메인 스테이지를 세우고 미용실, 분식집, 오락실, 영업이 종료된 영화관 건물들을 활용해 '황금 카니발'이라는 페스티벌을 진행했다.
경주가 가진 고유의 풍경과 경주에서 개성 있는 점포를 운영하는 공간을 아티스트와 매칭해 일종의 큐레이션처럼 선보이는 이 페스티벌 역시 노동동 일대 상권을 조명하며 홍보 효과를 누림과 동시에 페스티벌이 진행되지 않을 때도 방문하기 좋은 매력적인 상가들과 각 가게만의 스토리를 콘텐츠화하여 관객들에게 알려주었다.
이러한 뮤직 페스티벌 형태의 지역 행사들은 지방 도시들의 청년 인구 유출이나 지방 소멸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기는 힘들지라도 국내 여행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지역만의 고유한 매력과 이미지를 각인시켜 자연스럽게 관광으로 이어지는 효과를 자아낼 수 있다. 또한 수도권만 아니라 국내 여러 도시에서도 각 상황에 맞는 공연 및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문화행사를 위해 무조건 수도권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을 줄일 수 있어 시민들의 문화생활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인구와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다는 이유로 면적이 작고 밀도가 높은 서울시에서 공연 및 행사를 개최해야 한다는 통념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최근 서울시에서는 여러 행사의 소음 민원으로 인해 공무원이 현장에서 데시벨을 측정하며 음량을 통제하고, 이에 관객들이 음악이 잘 들리지 않아 항의하는 기이한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기획자들이 시야를 넓혀 좀 더 자신들만의 콘텐츠에 적합한 장소를 물색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앞서 소개한 페스티벌과 행사들이 매해 안정적으로 개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나 오프라인 그리고 야외에서 진행되는 행사는 행사 운영만으로도 여러 변수와 돌발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운영상의 안정이 뒷받침 되어주지 않으면 이를 지속하기가 매우 힘들다. 행사의 주최가 되는 지자체에서 기존과 다른 기획으로 진행되는 행사의 의의와 잠재력을 내다보지 못하고 지원을 줄이거나 제재를 가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좋은 기획자들이 서울만 아니라 국내 여러 지역에서 지역의 가능성을 찾아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행사가 생겨나는 초기 단계에서 지자체의 지원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이후 지자체로부터 독립하거나 안정적으로 운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해당 축제 및 행사의 가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후원사 및 투자처의 관심과 지원도 매우 필요한 상황이다.
그리고 좋은 축제에는 당연히 좋은 기획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행사들 처럼 해당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축제에 잘 녹여내어 축제만의 메시지와 레거시에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며 공연을 위한 아티스트 라인업 역시 각 축제만의 기준과 색깔에 맞게 이뤄진다면 자연스럽게 정체성도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좋은 기획과 컨셉트가 정해졌다면 행사의 규모와 유동 인구를 늘리기 위해 역으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공연 및 페스티벌 소비에 익숙한 관객을 끌어들여 오는 것도 필요하다. 지역 주민만으로는 규모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경주의 황금 카니발이 메인 스테이지를 만들고 티켓 파워가 있는 아티스트 섭외를 늘린 이유가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방에 거주하며 여러 지방 도시의 뮤직 페스티벌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지켜보며 운영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산재해 있음에도 지역 활성화와 좋은 행사를 위해 애쓰는 기획자 그리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마지막으로는 국내 여러 지역에서 새로운 페스티벌을 경험해 보고 싶은 잠재적인 관객 그리고 관광객들에게 많은 관심을 부탁하고 싶다. 관객 없이 좋은 기획, 안정적인 운영과 지원만으로는 모두가 같은 가치를 공유하며 어우러지는 ‘축제’가 성립될 수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