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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중소의 기적'인가, '사상누각'인가?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체제의 전망과 지속가능성에 대하여

by 고멘트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와의 법적 분쟁은 걸그룹 뉴진스의 전속계약 해지 요구로 이어지는 등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4월, 민 전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아일릿의 소속사 빌리프랩의 뉴진스 카피’, ‘쏘스뮤직의 걸그룹 론칭 과정에서 민 전 대표가 받은 불이익’, ‘뉴진스 차별 대우’ 등의 사건을 폭로했고, 방시혁 의장의 독단적인 경영 방식으로 인해 창작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훼손되어 왔음을 지적했다.


민 전 대표를 포함하여 여타 매체와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체제를 거론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국내 대표 ‘4대 기획사’로 꼽힐 만큼 큰 성과를 거두며 순항 중이었고, 모회사와 자회사, 그리고 아티스트 구성원이 사이좋은 한식구로 지내는 것처럼 보였던 하이브. 도대체 어떤 속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2023092117126_383772_449.jpg 하이브 산하 레이블 및 자회사 조직도

올해 1분기까지만 해도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체제는 글로벌 음악 기업으로의 성장 가도로 이어지는 발판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올해 2월에 있었던 2023년도 4분기 실적 발표에서 박지원 전 하이브 대표는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시스템은 특정 아티스트와 레이블의 의존도를 줄이고 레이블 간 경쟁과 협력이 이뤄지도록 설계되었다”라고 주장하며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공을 예측했다. 실제로 하이브는 쏘스뮤직, 플레디스 등 다수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인수해 다양한 아티스트를 확보하면서 방탄소년단(BTS)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음반 활동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었다. 그 결과 하이브는 올해 자산 규모 5조 원을 넘기며,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서는 최초로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고속 성장이 진행되는 동안 내실을 다질 시간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정확히는 각 산하 레이블의 자유와 성과를 어떻게 보장해 줄지에 대한 조율과 논의 과정이 체계적이지 않았다. 또한 멀티 레이블 시스템을 한국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기존 1인 중심의 수직적인 지배구조가 여전히 유지된 것도 문제였다. 실제로 하이브 산하의 모든 레이블의 실질적인 경영은 창업자가 아닌 하이브 측 임원들이 맡고 있으며, 창업자는 경영과 관련해서 사내이사로서의 역할과 소수 주주의 권리밖에 행사하지 못한다. 또한 주주총회, 이사회를 통해 각 레이블 경영에 대한 사안을 의결해야 하는 구조 역시 레이블이 모회사 하이브의 영향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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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방시혁 의장의 각 레이블의 아티스트 제작과 활동에 대한 과도한 개입과 차별 대우로 이어졌다. 쏘스뮤직이 하이브의 새 걸그룹을 론칭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발생했을 때도, 아일릿이 뉴진스를 카피했다는 의혹 때문에 민 전 대표와 빌리프랩 사이에 갈등이 있었을 때도, 방시혁 의장은 이를 세심한 대화와 중재로 해결하는 대신 민 전 대표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묵살하고 르세라핌과 아일릿의 프로듀싱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레이블 간의 경쟁과 기싸움을 격화시켰다. 또한 독립적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자회사가 오히려 모회사의 수장에게 의존하고,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이렇게 형성된 권력구도는 결국 모기업의 안정적인 지원 아래 자회사가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아티스트를 기획할 수 있는 멀티 레이블 체제의 이점을 오히려 약화시키고 말았다.


또한, 하이브의 무리한 인수합병 및 사업 확장으로 인해 수익 손실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멀티 레이블 체제의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하이브는 쏘스뮤직, 플레디스, KOZ 등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 외에도 이타카 홀딩스, QC미디어 홀딩스 등의 해외 레이블을 큰 비용을 들여 인수하였으며, 음악 사업 외에도 게임 사업 부문 하이브IM을 별도 자회사로 두는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총 11개의 레이블, 65개의 종속기업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타카 홀딩스의 경우 약 1조 원에 인수한 지 3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지난해 1000억 원 이상의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적자가 이어지고 있으며,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등 경쟁력 있는 주요 아티스트도 이탈하여 북미 시장으로의 진출 및 협업과 관련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또한 하이브IM도 ‘리듬 하이브’, ‘별이 되어라 2’ 등 여러 게임 론칭 프로젝트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2022년 362억 원에서 308억 원으로 감소하는 등 성과가 저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현재 큰 수익을 내고 있는 국내 레이블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에도 경제적인 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예측된다. 그야말로 ‘사상누각’의 미래가 닥쳐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이브는 지난 8월, 국내 및 일본 멀티레이블 사업을 총괄하는 ‘하이브 뮤직그룹 APAC’을 신설했다. 레이블 사업의 성장과 혁신 및 음악 사업의 본질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이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자회사 레이블의 성장과 혁신에 오히려 역행하는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방시혁 의장을 주축으로 모회사의 의사가 자회사의 생존과 성장에 강하게 영향을 주고 있는 가운데, 그 사이에 총괄 조직이 자리하게 되면 수직적인 구조가 강화되어 모회사 하이브와 자회사 레이블 간의 소통이 더욱 어려워지고, 자율성과 독립성이 침해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오히려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사안은 방시혁 의장의 하이브 내 위치에 따른 역할이다. 하이브 내 최고 경영자로서 레이블 간의 갈등을 원활하게 중재하고, 균형을 맞춰야 하는 의무는 현재 일부 레이블의 총괄 프로듀서를 겸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과 충돌된다. 적어도 하이브가 다양한 색깔의 아티스트와 음악을 제작하는 진정한 멀티 레이블이 되기를 원한다면, 보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레이블의 개성과 색깔을 존중하고, 산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균형적으로 지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필요 이상으로 무리한 인수합병과 사업 확장을 지양함과 동시에, 음악 사업의 본질에 가까운 방향으로의 ‘선택과 집중’을 적절하게 하는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멀티 레이블’ 체제 자체는 미래에도 지속가능할까? 비록 하이브 사태로 인해 멀티 레이블 체제가 크게 비판을 받고 있지만,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멀티 레이블 체제는 앞으로도 더욱 대중화되고 고도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세계적인 규모의 3대 음반사인 유니버설뮤직 그룹, 워너뮤직 그룹, 소니뮤직 그룹은 오래전부터 경쟁력 있는 아티스트를 보유한 레이블을 인수하여 규모를 키우고, 상업적 성공을 거둔 레이블뿐만 아니라 컨트리, 힙합, 전자음악 등 특정 장르에 특화된 다수의 레이블들을 수평적 다각화 구조로 경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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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레이블 체제의 오랜 역사를 가진 세계 3대 음반사 : 유니버설 뮤직 그룹, 워너 뮤직 그룹,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또한 JYP와 SM 엔터테인먼트에서도 CEO가 총괄 프로듀싱까지 담당한 싱글 레이블 체제에서, 본부/센터별로 아티스트의 기획과 활동을 전담하고, 아티스트의 개성을 살리는 멀티 레이블로 조직 경영 체제를 바꾸고 있다. K-POP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해외 시장으로까지 확대된 지금, 이전과 같은 1인 프로듀서 체제만으로는 자사 아티스트의 성장 속도와 시장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역부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은 엔터 산업 특성상, 가능한 많은 아티스트를 육성하여 매출 구조를 다양하게 만들고 공백기, 재계약 불발 등의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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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엔터테인먼트 센터제 / JYP 엔터테인먼트 본부제 조직도

다만 K-POP이라는 장르에만 한정된다면 장기적으로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체제에 대하여 “팔레트가 아닌 합숙소”로 비유한다. K-POP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쏠려있다 보니, 결국엔 단일 시장에서 비슷한 음악으로 비슷한 유형의 소비자를 두고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다수 아티스트의 팬덤을 통해 높은 수익과 성과를 내고 있긴 하지만, 보다 다양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층을 공략하고, 음악 시장을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SM의 KRUCIALIZE(R&B), ScreaM Records(전자음악), SM Classics(클래식), JYP의 Studio J(밴드 음악)와 같이 댄스음악으로 대표되는 K-POP 외의 장르에서도 성장 잠재력이 있는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뚜렷한 개성을 가진 다양한 아티스트와 레이블이 서로 상생하며 최상의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풍경. 어쩌면 하이브도 초기에는 그러한 청사진을 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다수와 아티스트와 회사를 한 곳에 모아놓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본을 함께 나누는 구성원이 늘어날수록 뜻하지 않는 갈등과 마찰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체계적인 중재와 소통이 필요하다. 그것이 각 레이블의 고유성과 독립성을 모기업으로서 존중하는, 경영진과 조직의 최고 수장으로서 할 수 있는 최상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부단한 노력으로 일궈 놓은 ‘중소의 기적’이 ‘사상누각’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동안 K-POP 시장을 확대하고 K-POP의 세계화에 기여한 성과가 있는 만큼, 지금의 문제를 극복하고 한국 음악 시장의 대표 기업으로서 구성원 모두가 상생하는 방향으로 순항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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