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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앨범, 당신도 명반이 될 수 있다

기념비적인 유산과 상업적 이용, 그 사이 어딘가

by 고멘트

얼마 전 발매된 Mac Miller의 [Balloonerism]은 그의 첫 사후 앨범이었던 [Circles]에 뒤이어, 또 한 번 평단의 극찬을 자아냈다. 실험적 요소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앱스트랙트 힙합 특유의 난해하면서도 추상적인 예술 감각은 물론이고, 몽글몽글한 질감의 사운드는 트랙 전체를 몽롱하게 아우르며 마치 그의 꿈속을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거기다 트랙의 유기성도 잊지 않고 챙겼으며, 이에 평론가들은 '그가 음악계에 남긴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상기시키는 씁쓸한 선물', '듣는 이로 하여금 10여 년 전의 그의 짙푸른 생각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등의 호평을 남겼다. [Balloonerism]은 13-14년도에 이미 발매 예정일과 트랙 리스트까지 전부 완성된 상태였으나, 소속사 측에서 해당 앨범이 너무 실험적이라는 이유로 발매를 연기시켰고, 이후 유출본만 떠다니던 상황이었다. 이에 본 앨범이 Mac Miller가 큰 애정을 가지고 있던 중요한 프로젝트임을 인지한 유족들이 그의 뜻을 존중해 공식 버전을 발매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극소수일 뿐, 대다수의 사후 앨범은 부정적인 인식으로 통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가장 최근 예시로는 Juice WRLD의 [The Party Never Ends]와 SOPHIE의 [SOPHIE]가 있다. Juice WRLD의 세 번째 사후 앨범인 [The Party Never Ends]은 발매 전부터 '고인 팔이'라는 여론이 나올 만큼 소속사 측의 무리한 진행에 불만이 제기되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업계 거물들을 한데 모아 만든 미공개 곡 짜깁기 앨범에 불과한 현실은 큰 실망과 분노를 안겼다. 또, SOPHIE의 경우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고려하지 못한 점이 패착이 되었다. SOPHIE로 정의되는 예측 불가한 전개 속에서 극한의 뒤틀림은 온데간데없고, 플랫한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트랙들이 대다수였다. 물론, 'Reason Why'와 같이 기존 SOPHIE의 음악과 궤를 같이하는 곡들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본다면 해당 앨범은 SOPHIE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앨범이었다. 상업적 수단이라는 투명한 의도와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결과물은 사후 앨범에 대한 프레임을 씌우기 충분했고, 이러한 움직임이 과거부터 지속되다 보니 어느덧 사후 앨범은 부정적인 인식으로 통하게 된 것이다.





먼저, 사후 앨범으로 많은 논란을 낳았던 Michael Jackson이 있겠다. 그의 두 번째 사후 앨범인 [Xscape]에 수록된 'love never felt so good'은 Justin Timberlake가 피쳐링하며 빌보드 핫100 상위권에 랭크되는 우수한 성적을 보였지만, 본 앨범이 사후 앨범이라는 점에서 Justin Timberlake의 피쳐링은 아쉬움과 부정적 반응을 남겼다. Michael Jackson과 생전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가 사후 앨범이라는 중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다소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거기다 Michael Jackson은 생전에도 미공개 곡이 유출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알려진 바 있는데, 이러한 고인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미공개 곡들을 모아 발매된 앨범이라는 점에서 Justin Timberlake의 피쳐링 또한 고인의 의견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외에도 Michael Jackson의 첫 사후 앨범이었던 [Michael]은 일부 트랙이 Michael Jackson이 아닌 다른 사람이 불렀다는 '모창 소송'까지 이어지기도 했으며, 그의 사후 앨범은 '잭슨이 살아있었으면 절대 나오지 않았을 퀄리티'라는 딱지가 붙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XXXTENTACION의 [Bad Vibes Forever]가 있다. 해당 앨범의 처참한 퀄리티는 이를 '급조된 앨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만들었다. 미완성이 의심되는 뒤죽박죽의 노래 길이부터 톤도 정리되지 않은 듯한 일관된 기타 사운드, 갑자기 등장하는 샤우팅, 마치 녹음 파일을 그대로 긁어온 것만 같은 저음질과 초라한 믹싱까지. 미흡한 완성도를 넘어 데모 수준에 지나지 않는, 그야말로 '앨범이 아닌 습작에 가까운 형태'였다.


그 밖에도 톤이나 구성이 불완전하게 정리된 Marvin Gaye의 [Dream of a Lifetime]나 부조화로 호불호가 크게 갈린 Jim Morrison과 the Doors의 [An American Prayer], 선방은 했지만 기존 작품들에 비해 아쉬움이 남는 Prince의 [Welcome 2 America] 등 사후 앨범이 주는 기대치를 충족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사후 앨범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된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아주 간단하다. 아마도 남은 자들의 상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즉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후 앨범을 발매한 대부분의 아티스트가 유명세를 가졌다는 점, 그렇기에 그들의 앨범 발매 소식 하나만으로 전 세계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 이는 결국 수입으로 직결되는 점을 미루어 봤을 때 필자의 추측이 아주 틀린 답변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Michael Jackson, Juice WRLD, XXXTENTACION과 같이 혹평을 받았던 아티스트들 역시 빌보드200 최상위권에 랭크되거나 빌보드 핫100에 상당수의 곡을 올리는 등 사후 앨범으로 높은 성적과 판매량을 기록했으니 말이다. 때문에 대다수의 사후 앨범은 '상업적 이용'을 위해 출발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목적 자체가 상업성에 그치다 보니 아티스트의 정체성과 뜻을 존중하기보다는 그저 발매하기에 급급해 ‘급조된 앨범’이라는 비참한 결과물을 초래했던 것이다.



반면, 위 사례들과 달리 Mac Miller처럼 사후 앨범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 사례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Big L의 [The Big Picture]가 그러하다. Michael Jackson, XXXTENTACION과 같이 미공개 곡들을 모아 만든 앨범이었지만, 그의 매니저이자 파트너인 Rich King과 총괄 프로듀서인 DJ Premier의 주도 하에 짜깁기한 흔적 하나 없이 매끄러운 흐름의 높은 퀄리티의 앨범을 완성할 수 있었다. 또, The Notorious B.I.G.의 [LIFE AFTER DEATH]나 Otis Redding의 [The Dock of the Bay]와 같이 이미 제작이 완료된 상태에서 사망한 경우 완성도에는 차질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이 전작들과 동일한 퀄리티를 자랑하며 명곡으로 오래오래 기억되기도 한다. 국내 가요계 명곡으로 자리한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역시 이미 제작된 상태에서 사후 싱글로 발매된 곡으로 앞선 사례들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앨범의 퀄리티를 유지하여 그 가치를 보존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수익금을 기부함으로써 사후 앨범이 보다 의미 있게 할 때도 있다. 샤이니 종현의 [Poet | Artist]는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준비한 신보로 발매 시기까지 예정된 앨범이었다. 이에 유족들은 취소나 연기 없이 고인의 뜻에 따라 앨범을 발매했고, 그가 미처 말하지 못했던 진솔한 내용이 담긴 만큼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또, 작년 8월에는 가수 박보람의 유작인 데뷔 10주년 앨범 [The Last Song]이 발매되었는데, 해당 앨범은 기존에 사랑받았던 곡들로 구성해 그녀를 떠올릴 수 있는 형태로 유족과 동료들의 요청으로 진행되었다. 고인의 뜻을 따르고, 고인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한 두 앨범 모두 수익금은 유족들이 운영하는 재단과 소외 계층에 각각 기부되며 사후 앨범의 가치를 지켰다.



외에도 사후 앨범을 통해 아티스트의 생전 꿈을 대신 이뤄주는 방법도 있다. Lil peep의 사후 앨범인 [Come Over When You're Sober, Pt. 2]는 발매 당시 pt. 1과의 낮은 연관성과 훨씬 더 팝적으로 구현된 사운드로 인해 기존 팬들에게 좋은 평을 듣지 못했는데, 이는 소속사의 일방적인 결정 때문이었다. 이에 그와 함께하던 프로듀서인 Smokeasac이 본 앨범은 Lil peep의 뜻이 아니었음을 그의 어머니에게 전달하였고, 이후 유가족의 허락하에 Lil peep이 원래 하려고 했던 곡들로 재구성한 og version을 재발매하며 고인의 뜻을 존중하는 좋은 선례로 남았다.


정리하면, 사후 앨범이 긍정적으로 비치기 위해서는 미흡한 완성도나 짜깁기, 리믹스 등이 아닌 높은 퀄리티로 아티스트의 명성을 훼손하지 않거나, 기부와 같은 음악 외적인 수단을 통해 사후 앨범에 의미를 더하거나, 또는 아티스트의 뜻을 존중하여 고인의 꿈을 이뤄주는 등의 방법이 필요하다. 위 사례들의 공통점은 레이블과 지인들의 사적 의도와 관련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들이 지속되면 '사후 앨범'이라는 부정적인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서는 사후 앨범의 방향성에 대해 좀 더 심층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소속사와 지인, 유족들의 인식 재고이다. 과연 본 앨범이 '기념비적인 유작'인지 아니면 '고인을 활용한 돈벌이 수단'에 불과한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즉, 발매로 인해 기대되는 상업적 효과가 아닌 Lil peep이나 Mac Miller의 사례처럼 아티스트의 생전 뜻을 존중하고, 팬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이득을 취하겠다면, 최소한 아티스트의 정체성과 앨범의 유기성, 사운드 등 그간 부정적 평가를 받았던 부분들을 중점으로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제작해야만 한다. 더는 남은 자들의 욕심으로 아티스트의 명성이 훼손되는 일은 없기를 바라며.




by. 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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