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설립 기획사, 장점과 리스크
바야흐로 아이돌 1인 기획사의 시대다.
2023년, YG와 전속 계약이 만료되며 로제를 제외한 블랙핑크 멤버 전원은 모두 자신만의 독자 회사를 설립했고, YG 소속 시절과는 사뭇 다른 활발한 행보를 보이며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있다. 기존 기획사와의 계약 만료 후 자신만의 독자 회사를 설립한 아이돌들의 사례는 블랙핑크가 전부는 아니다. 2023년, 개인 활동을 위해 엑소의 첸, 백현, 시우민(이하 엑소 첸백시)은 INB100을 설립했고, 뒤이어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이 만료된 디오는 컴퍼니수수를 설립했다. 슈퍼주니어의 동해와 은혁도 2023년 공동으로 ODE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유행처럼 번진 아이돌 멤버들의 기획사 설립은 대체로 우호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분위기이다. 당장 팬덤 입장에선 분산되어야만 했던 소속사의 인력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집중될 수 있어 이전 대비 활발한 활동을 보일 수 있고, 기획사의 제한 없이 아티스트가 원하는 이미지와 컨셉을 분명히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지지의 가장 큰 이유다.
그럼에도 반대의 의견을 개진하는 팬들도 있다. 아이돌 멤버가 기존 회사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데에 대한, 나아가 회사의 실질적인 대표로서 기획사를 꾸려갈 수 있는가에 관한 우려의 시선 역시 존재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응원의 시선과 동시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걸까?
본격적으로 아이돌들의 소속사 운영이 우려스러운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기존의 울타리를 벗어난 아이돌들이 어떻게 소속사를 설립해 운영하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스스로 대표자로서 실무를 총괄하며 회사를 운영하는 펜타곤 키노나, 아스트로의 라키 같은 케이스도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로서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실질적인 경영 업무 등을 담당할 실무진과 함께 회사를 설립하는 형태이다. 김재중의 인코드엔터테인먼트와 디오의 컴퍼니수수가 대표적 예시가 되겠다. 김재중은 큐브엔터테인먼트 부사장 출신의 노현태 대표와, 도경수는 SM엔터테인먼트 배우 부문 출신의 남경수 대표와 손을 잡고 소속사를 설립했다. 이미 대형 기획사에서 실무를 담당한 적이 있는 확실한 이력의 동료와 협업함으로써, 신생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운영 구조와 인력을 구축하는 방법이다.
혹자는 기획사를 설립한 후 기존 엔터테인먼트에 흡수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현재는 하이브산하 레이블로, 보이그룹 BOYNEXTDOOR를 배출하기도 한 지코의 레이블 KOZ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 사례이다. 2018년 지코의 활동을 위해 설립하였으나, 2020년 하이브의 인수를 통해 산하 레이블로 편입되었다. 이후 보다 탄탄한 인프라를 활용, 솔로 아티스트 대비 품이 많이 드는 아이돌 그룹을 성공적으로 런칭해내기도 했다. 엑소 첸백시 멤버들이 설립한 INB100 역시 비슷한 케이스로, 2024년 5월, 설립 1년여만에 MC몽의 원헌드레드레이블의 자회사로 편입되었음을 밝혔다. (※ 멤버들의 원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와 원헌드레드레이블 사이 탬퍼링 논란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나, 공시에 의하면 추후 편입된 케이스에 해당하므로 이와 같이 분류했다.)
해외 유통사 레이블과 계약 체결을 통해 해외 활동에 힘을 더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 블랙핑크 멤버들이 택한 방식으로, 제니의 OA, 지수의 BLISSOO, 리사의 LLOUD는 각각 소니뮤직의 컬럼비아 레코드, 워너 레코드, 소니뮤직의 RCA레코드와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보다 해외에 초점을 맞춘 방식의 계약으로, 인지도 측면에서 국내에 비해 공격적인 프로모션이 필수적인 해외 활동에 기성 회사의 도움을 받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블랙핑크 멤버들은 대형 해외 레이블과 계약 체결을 통해 프로모션은 물론, 프로덕션의 면에서도 도움을 받기도 했다. 제니는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 체결 후 동일 레이블 소속의 Dominic Fike와 협업했고, 리사 역시 같은 RCA레코드에 소속된 Doja Cat과 함께 싱글을 발매했다. 더블랙레이블에 소속되어 있지만, 다른 멤버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애틀랜틱 레코드와 협업 계약을 체결한 로제의 경우, Bruno Mars와의 협업에 레이블의 도움이 있었음을 공식적으로 밝힌 바도 있다.
세 가지 케이스의 공통점이 있다. 설립은 아이돌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무는 다른 사람이 담당하고 있거나, 기성 회사 인프라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설립과는 관계 없이, 대표자, 또는 사내 임원진으로서 이름을 올리고 적극적으로 회사 업무에 개입하는 멤버들은 상기 기재된 사례 중 지코, 김재중, 지수 정도가 전부이다. 그러나 혹자는 충분한 경험을 쌓은 회사 또는 인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아이돌이 설립한 회사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다.
그렇다면, 아이돌 개인 회사가 가진 대표적인 위험 요인은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는 업무 능력 부족이다.
현실적으로, 실무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아티스트들이 몇이나 될까? 특히 대형 기획사 소속이었다면 경영은 당연하고, 앨범 기획 등 아티스트와 밀접한 업무라 하더라도 아티스트가 실무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적다. 그렇기 때문에 실무진의 영역이었을 다양한 업무를 모두 총괄하는 역할로 아이돌이 기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일례로, 강다니엘은 자신이 설립했던 기획사 커넥트엔터테인먼트의 대주주가 대표자인 자신과 논의 없이, 자신의 명의를 도용, 100억 원대의 선급투자 계약을 체결했음을 밝히며 대주주를 형사고소한 바 있다. 현재 커넥트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었던 강다니엘, 챈슬러, 유주와 모두 전속 계약이 해지되었음이 확인되었고, 사실상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 이후 강다니엘은 신생 기획사 ARA와 계약을 체결해 대표가 아닌 단순 소속 아티스트로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둘째로는 아티스트가 곧 회사라는 리스크다.
아티스트가 회사를 설립한 이상, 아티스트의 개인적인 문제가 회사 경영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아티스트가 설립한 회사라는 이유로 큰 인지도를 얻으며 시작하지만, 동시에 아티스트와 관련한 작은 잡음이라도 회사의 존폐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빅스의 라비가 설립한 더라이브레이블이 그렇다. 그루블린, 스튜디오 글라이드 등 산하 레이블을 설립하고, 에일리, 휘인 등 솔로 아티스트를 영입하며 승승장구하던 더라이브레이블은 설립자이자 대표자인 라비의 병역기피 논란으로 인해 난항을 겪고 있다. 더라이브레이블의 소속 가수였던 휘인과 에일리 모두 전속 계약이 만료되었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재 산하 레이블인 그루블린 소속의 래퍼 나플라의 병역 기피까지 논란이 되며 회사 전체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며 이전의 공격적인 행보를 멈춘지 오래다.
가장 결정적인 리스크는 바로 앨범 퀄리티와 매출, 성적 면에서의 아쉬움이다. 블랙핑크 리사는 총 네 개의 선공개 싱글을 발매하며 2월 말에 예정된 정규 앨범을 프로모션하고 있는데, 네 가지의 싱글의 기획 방향, 프로모션 방향에 큰 아쉬움을 표하는 반응이 많다. 특히 첫 싱글이었던 ‘ROCKSTAR’의 경우, 뮤직비디오와 의상의 표절로 인해 홍염을 겪기도 했다.
정성적인 퀄리티를 떠나서, 정량적인 매출과 차트 성적에서 아쉬움을 보이는 아티스트들도 많다. 엑소 디오, 펜타곤 키노, 러블리즈의 류수정 등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기존의 소속사에 속해있을 때와 비교했을 때 다소 감소한 음반 세일즈 및 차트 성적을 보이고 있다. 엑소 디오의 경우, 1인 기획사 이적 후 활발한 미디어 활동을 통해 대중 인지도가 상승한 것은 물론, 예능 활동을 통해 긍정적인 언급이 늘어난 것과는 별개로 음원 차트 성적 면에서는 큰 아쉬움을 남겼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시절 발매한 [기대]의 수록곡 ‘별 떨어진다’는 차트에서 역주행하며 대중에도 큰 호응을 얻었지만, [성장]의 수록곡들은 차트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보이지 못했다. 기존 소속사에서 발매한 것과 큰 컨셉의 차이는 없음에도, 차트에서 성패가 이렇게 갈렸다는 건 결국 음원 프로모션과 퀄리티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 인지도를 위한 미디어 활동이 음악 청취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대형 기획사 시절만큼 좋은 곡을 추리는 A&R 인력, 또는 아티스트 이미지 변화에 따른 컨셉을 제시할 프로덕션 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독립 기획사의 음원 프로모션과 마케팅 경험은 물론 능력있는 프로덕션의 부재가 보이는 부분이다.
슈퍼주니어 D&E 역시,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시절 발매한 정규앨범 [COUNTDOWN]은 약 25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지만, ODE엔터테인먼트 설립 이후 처음으로 발매한 미니앨범 [606]의 판매량은 20만 장에 못 미치는 다소 아쉬운 성적을 보였다. 군 복무로 인해 앨범 발매 사이 긴 공백기가 있었음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2024년 한 해 동안 매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음에도 바로 다음 미니앨범 [INEVITABLE] 역시 약 15만 장 정도의 판매량에 그치면서 독립 이후 연이어 예전만 못한 성적을 보인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소속사 변화에도 불구하고 만듦새나 컨셉은 큰 차이가 없었음에도 음반 판매량이 하락세를 보인다는 것은, 두 번의 활동을 이어가면서 팬덤의 유지, 또는 확장에 실패했음을 암시한다. 아티스트 생애주기상, 폭발적인 성장을 유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렇다면 일반 대중 유입을 목적으로 새로운 컨셉을 제시하거나, 프로모션 대상 및 방향을 전환하는 방법도 있기에, 이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능력이 부족했던 프로덕션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종합적으로 아이돌의 경우, 여타 다른 유형의 아티스트에 비해 유달리 많은 분야에서 손을 필요로 한다. 음악과 비주얼은 물론, 컨셉, 스토리, 안무, 프로모션 등 수많은 부분에 주목하는 팬덤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영역에서 세심한 기획과 관리가 필수적이다. 자연스레 그를 소화하는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그에 관여하는 실무 스탭진의 역할이 큰 편이다. 따라서 기존에 인맥 인프라를 구축한 바 있는 기획사와 달리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고, 그 세팅에 아티스트가 직접 관여해야 하는 신규 설립 기획사의 경우 기존과 유사한 퀄리티를 만들어내는 데에 한계가 있다. 점차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설립 초기와 유사한 수준에 그친다면, 부족한 제작 역량은 장기적으로 아티스트 로드맵에 치명적인 한계를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긴다.
대체 왜 아이돌들은 아늑한 회사의 품을 벗어나 독자 회사를 설립하려고 할까?
가장 큰 이유는 아티스트로서의 자율성 때문이다. 앨범의 컨셉과 기획에 아티스트가 적극 개입할 수 있고, 보다 아티스트 의도에 맞는 앨범을 발매할 수 있다. 앨범의 내용뿐인가? 활동의 적극성 역시 달라진다. 서두에 적은 블랙핑크 멤버들의 예시가 가장 대표적이다. YG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는 7년간 블랙핑크는 12개 앨범을 발매했고, 그 중 8개는 싱글 앨범이었다. 그러나, 멤버들이 본격적으로 회사를 설립한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네 멤버가 모두 미니/정규 앨범 발매 소식을 알렸다. YG엔터테인먼트 소속 당시엔 평균적으로 1년에 2개의 발매도 어려웠지만, 멤버들의 독립 후 1년만에 4장의 앨범을 발매하게 된 것이다. 성적 면에서 아쉬운 케이스로 언급됐지만, SM엔터테인먼트에서 독립한 슈퍼주니어 D&E 역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독립 회사인 ODE엔터테인먼트의 설립 이후, 2024년 한 해 동안 2장의 미니 앨범과 1장의 리패키지, 그리고 1장의 디지털 싱글까지 발매하며, 기존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당시 1년에 1장 정도를 발매하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앨범이나 활동 외의 다른 요인들도 있다. 큰 이유 중 하나는 정산 관련 문제이다. 기성 기획사 소속 시엔 정산 비율 설정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기획사를 독자 설립하게 되면 아티스트로서 정산 받는 비율을 보다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앨범 활동에 필요한 금액 역시 아티스트의 입맛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후배 양성에 방점을 두고자 할 수도 있다. 김재중의 인코드엔터테인먼트나 지코의 KOZ엔터테인먼트처럼, 프로듀서로서 자신의 활동을 넘어 후배 아이돌 그룹을 양성하고 기획하는 데에 뜻이 있다면 기존 소속사에 남는 것보다는 독자 회사를 설립하는 쪽이 훨씬 그 뜻을 이루는 데에 맞는 방향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리스크를 언급했던 것처럼, 아이돌들이 자신만의 회사를 설립하는 건 반드시 호재만은 아니다. 최근 3세대 아이돌들의 전속 계약 종료와 함께 유달리 자신만의 기획사를 설립하는 사례가 늘어났지만, 전술했던 것처럼 아이돌의 특성상 스탭진의 역량이 아이돌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제반 사항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실패할 리스크 역시 큰 것이 아이돌 독자 설립 기획사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돌들이 설립하는 기획사를 응원의 시선으로 지켜보는 것은 꼭 그들의 팬이어서만은 아니다. 그간 쌓아온 경험과 아티스트의 직관을 기반으로, 아티스트로서의 색을 명확하게 구축하는 것은 물론이오, 나아가 후배 양성까지 성공해내고 있는 다양한 선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무능력의 아쉬움은 적합한 인재들과의 협업을 통해, 프로모션 채널의 아쉬움은 유통사, 영상 제작사 등 기성 회사들과의 협업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는 대형 기획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등 1세대 기획사들은 각각 이수만, 박진영, 양현석 등의 아티스트 출신이 설립했다. 이런 사례로 증명된 바와 같이, 아티스트로서 갖춘 직관이 회사를 운영해나가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부디 부족할 수 있는 부분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기간을 가지며, 보다 현명하고 치밀한 준비를 통해 자신만의 감각으로 새로운 케이팝의 세대를 열어가는 아티스트 독자 설립 기획사들이 늘어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