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미디어에서 커뮤니티 역할로 확장되고 있는 인스타그램 음악 매거진
최근 인스타그램은 틱톡 이용자 유입 및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의 업로드 패턴 등을 근거로 오랫동안 고수해 온 정방형 형태의 피드 모양을 세로로 긴 직사각형 형태로 전환했다. 오랜 기간 인스타그램의 정체성으로 여겨진 정방형 룰이 갑작스레 해체되며 많은 사용자가 당혹스러워했으나 이러한 변화가 오히려 반가운 사용자도 있을 듯 하다. 바로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 트렌드를 이끄는 미디어 혹은 매거진 역할의 계정들이다.
'인스타그램 매거진' 계정들이 제작하는 콘텐츠는 텍스트 정보를 캡션이 아닌 이미지에 포함시켜 실제 기사나 에세이 같은 형태로 제작하는 만큼, 중립적인 형태를 보이는 정방형보다 문서와 같은 세로로 긴 비율이 모바일 환경에도 적합하고 가독성도 더 높다. 글 위주의 에세이부터 마케팅, 경제, 문화예술 등 다양한 주제와 콘셉트로 운영되는 인스타그램 매거진은 주요 언론과 대형 출판 매거진 브랜드가 인스타그램의 환경에 맞추어 콘텐츠를 제작하던 흐름을 이어 2023년 말,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계정을 생성하는 방법이 어렵지 않다보니 개인이 운영하는 경우도 상당 수 있으며, 해당 분야에 대한 대단한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콘텐츠를 매거진 형태로 제작해 발행할 수 있다. 이러한 계정들은 많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보를 검색하고 알고리즘을 통해 수많은 추천 콘텐츠를 받아들이며 사용 및 체류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sns에서도 더욱더 양질의 정보를 얻고자하는 욕구와 텍스트 콘텐츠 트렌드, 그리고 더욱 세분되어 개인화된 취향을 찾고자 하는 흐름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아카이빙과 큐레이팅을 기반으로 취향을 전시하는 채널이 많다 보니 음악을 주제로 한 매거진 계정(이하 음악 매거진)도 많다.
이들은 주로 명반으로 불리는 앨범이나, 아티스트 그리고 팬들과 관련된 밈, 씬의 최신 소식, 운영자의 고유한 큐레이팅 그리고 기타 정보성 콘텐츠를 주로 제작하고 발행하며, 사용자들도 매거진을 통해 관련 소식과 정보를 확인하는 추세이다. 특히나 인디 음악의 경우, 과거 펜데믹을 거치며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영상'의 형태로 많이 주목을 받고 이용자들도 채널 운영자의 큐레이팅을 기반으로 새로운 곡을 디깅하며 인디 음악을 소비하였으나, 최근에는 그 역할을 인스타그램 음악 매거진이 대체하는 듯 보인다.
이러한 흐름에는 인스타그램이 과거 포털사이트를 넘어 유튜브를 통해 주로 이뤄지던 정보 검색의 역할을 또다시 대체하고 있는 배경이 있다. 실제로 와이즈앱이 발표한 2024년 모바일앱 총결산 리포트에 의하면 영상 기반의 유튜브가 사용자 수와 사용 시간에서 인스타그램을 크게 앞섰지만, '자주 사용한 앱' 부문에서는 인스타그램이 카카오톡에 이어 2위에 오르며 유튜브를 앞섰고 증감 폭 역시 3.8억회에 이르며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사람들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SNS'라는 특성에 유튜브가 담당하던 '정보 검색' 역할의 비중을 흡수한 결과이다.
물론 음악이라는 오리지널 콘텐츠는 유튜브를 비롯한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가장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지만, 이용자가 그 수많은 오리지널 콘텐츠 중 하나에 도달하려면 해당 콘텐츠에 대한 매력적인 '정보'가 필요한 만큼 영상 기반의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보다 컷 이미지와 텍스트 기반의 인스타그램이 같은 정보를 가졌을지라도 콘텐츠의 유형 특성상 받아들이기 더 수월한 것이다. 실제로 제작자의 입장에서도 훨씬 품이 덜 든다. 영상 콘텐츠의 경우 생생한 현장성을 담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녹음 없이는 텍스트 정보의 전달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SNS라는 개인화된 취향과 정보를 담고 있는 공간에서 인디 음악이라는, 주류에서 조금 벗어난 독특하고 매력적인 취향을 담고 있는 정보, 즉 콘텐츠를 발견한다면 즉시 스토리나 피드에 공유하고 전시하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과정이 유기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인디 음악과 인스타그램 매거진은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게 된다.
인스타그램 음악 매거진들은 초창기 팔로워 유입을 위해 뾰족한 특징보다는 누구나 알 법한 아티스트나 앨범을 다루며 일부 채널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슷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과도기도 있었으나, 여러 매거진들이 각자만의 개성과 매력적인 이미지를 가진 콘텐츠를 발행하며 초창기 개인이 소소하게 운영하던 계정에 비슷한 관심사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이후 채널이 성장하며 포화한 매거진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높은 퀄리티 혹은 오리지널 콘텐츠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시기, 음악 매거진들은 레이블, 아티스트 그리고 공연 주최 측 등의 광고, 협업 콘텐츠를 발행하며 신뢰도와 네트워크를 쌓아나갔다. 그밖에도 신선한 자체 기획 콘텐츠를 꾸준히 발행하며 씬의 소식을 재밌고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자, 씬의 팬과 잠재적 소비자 그리고 업계 당사자 모두가 무시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되어가고 있다.
이를 대표하는 계정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우선 종합 음악 매거진 채널 'FAVALL(페이볼) (@thefavall)'(이하 페이볼)이 있다.
페이볼은 국내 인디를 포함해 종합 음악 매거진에 가까운 채널로 약 9천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초창기 정보성, 큐레이팅 콘텐츠로 시작했지만 점차 특유의 볼드한 썸네일에 펑키한 디자인 요소를 더해 독보적인 비주얼과 미감으로 시선을 사로잡으며 고유한 매력을 가꿔나갔다. 결국에는 이미지 기반이라는 인스타그램의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매거진 계정이 아닐까 싶은데 표지 이외의 본 내용 역시 실제 잡지처럼 감각적인 레이아웃과 디자인으로 보는 재미와 가독성을 모두 잡는다. 현재 서로 다른 4명의 에디터가 개성 넘치는 콘텐츠를 발행하고 있으며 타 음악 매거진 계정이나 디시인사이드 포스트락 갤러리 같은 음악 커뮤니티와의 인터뷰 그리고 저연차 음악업계 종사자 오프라인 모임 등 음악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사람들과의 소통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밴드' 카테고리에서는 'AoB 밴드 붐은 온다(@ageofband) (이하 밴붐온)'이 있다. 밴붐온은 7.7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계정으로 이는 밴드를 벗어나 종합 음악 매거진을 표방하는 여타 계정들과 비교해도 높은 수치로, 현시점 국내 밴드 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계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해 밴드 붐의 흐름과 함께 수제 밈이나 아티스트 및 곡 추천 등으로 주목을 받은 뒤 밴드 입문자를 위한 팁이나 인디 씬 내의 변화나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나누거나 아티스트의 공연 규모 변화를 분석한 데이터를 수집해 제공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씬의 활성화를 위한 고민을 팔로워 그리고 현업자들과 나누고 이를 콘텐츠화해 긍정적인 영향력을 도모하고 계정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깔끔하고 일관성 있는 디자인과 후킹 한 이미지 선택도 밴붐온의 장점이다.
지난 27일 밴붐온은 최근 주목할 만한 인디 뮤지션의 음악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AoB 컴필레이션 앨범 Vol.1 : 돌연변이]를 발매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음악 매거진이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한 것 역시도 전무후무한 사례인데, 앨범 커버에 등장하는 파란 가재는 자연에서 200만분의 1 확률로 태어나는 일종의 ‘돌연변이’로 이를 콘셉트로 각자만의 독특한 정체성과 사운드를 가진 인디 뮤지션 11팀의 기성곡 11곡과 앨범을 위한 김승주의 신곡 1곡을 앨범에 담아냈다. 밴드 관련 밈을 올리는 1인 계정으로 시작해 약 1년 1개월간 여러 콘텐츠를 홀로 기획하고 제작하며 실제 국내 인디 씬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른 과정은 여러모로 고무적이다.
그렇다면 밴붐온과 같은 1인 독립 기획자가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을까? 그 과정을 정확히 속속들이 알기는 힘들지만, 인디 씬의 레이블과 아티스트 그리고 공연 주최 측 등이 인스타 음악 매거진 채널과 협업하는 이유를 고민해 보며 어렴풋이 그 배경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우선 국내 인디 씬의 특성상 케이팝을 비롯한 대중음악 씬에서 소비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차트도 많이 없고 트래픽이 적은 만큼 팬덤 연구소 블립이 제공하는 kpop radar같이 M/V, SNS 팔로워 등과 같은 데이터가 모이는 곳이 없어 국내 인디 씬만의 산업 규모와 범위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영화계의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이나 공연계의 공연예술통합전산망 같은 인프라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시대가 변하며 다양한 프로모션 형태가 등장했음에도 올해로 30주년을 역사를 쌓아온 국내 인디 씬에 대한 모니터와 데이터가 모이는 인프라는 미비한 상태이다.
특히 여전히 리스너들 사이의 ‘입소문’의 영향이 큰 인디 씬의 특성상 커뮤니티의 필요성은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인스타그램 매거진 계정은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정성스러운 콘텐츠를 제작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매거진의 형식을 빌려 더 다양한 정보를 담아낼 수 있는 만큼 누가 봐도 광고 느낌이 강한 바이럴 숏폼 콘텐츠에 비해 같은 시간 내 파급력은 조금 약할 수 있지만, 비교적 진정성이 높은 양질의 콘텐츠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와닿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위와 같은 장점 덕분인지 최근 인디 레이블의 채용 공고에는 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기획력 그리고 콘텐츠 제작 능력까지 보장된 SNS ‘매거진’ 계정 운영 경험자를 우대하는 항목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실제로 ‘FAVALL(페이볼) (@thefavall)’의 운영자이자 에디터 Q는 페이볼에 공개 구직 콘텐츠를 발행하며 자신을 어필해 현 CAMWUS의 정준구 대표를 비롯한 여러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고, 현재 MPMG 산하의 더 볼트에 입사해 더 볼트의 공연 소식을 전하는 @thevault.live.kr에서도 감각적인 자체 홍보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CAMWUS의 경우 레이블에서 인스타 매거진 콘텐츠의 형식을 차용해 자사 아티스트 IP의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를 공식적으로 제작해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인스타그램 매거진은 레이블, 아티스트와 같은 콘텐츠 당사자들에게는 자신의 음악과 씬을 홍보하고 부흥시킬 수 있는 가장 신선한 기획자이자 콘텐츠 제작자를 찾을 수 있는 창구가 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인디 씬의 팬들에게는 새로운 커뮤니티이자 씬과 팬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고, 매거진 콘텐츠를 통해 유입되는 잠재적 리스너들에게는 인디 씬 혹은 특정 아티스트나 음악에 입문을 돕는 조력자이자 마케터의 역할을 한다. 이는 마치 여러 자발적인 팬 문화를 통해 크게 성장하고 생동하는 케이팝 씬처럼 인디 혹은 음악 팬들이 만드는 새로운 팬 문화이자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으로도 해석되는데, 이를 통해 주류이자 많은 하입이 집중되는 케이팝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하는 매체가 적은 인디 씬의 여러 소식이 알려지고 다양한 기획을 통한 관련 콘텐츠가 활발히 생산되고 소비되며 씬의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길 바란다.
노파심에 덧붙이는 말이지만 모든 음악 매거진들에게 “당신이 운영하는 계정과 콘텐츠에 책임감을 느끼고 씬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쳐라!”라는 부담을 주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누군가는 소소하게 취미로 계정을 운영하고 있을 수 있고, 또 혹자는 정말 씬의 성장을 위한 큰 목표를 그릴 수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필자는 무언가를 향한 애정과 관심이 당신의 생각보다 강력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다만 전문성과 상관없이 누구나 계정을 생성하고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만큼 운영자의 부주의로 부정확하고 근거 없는 정보나 루머가 생성되는 것을 경계해달라는 정도의 책임은 부탁하고 싶다. 아티스트, 레이블, 매거진 운영자, 독자 등 씬을 구성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관심으로 계속해서 씬을 성장시킬 수 있길 바란다.
By. 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