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힙합 씬에 던져진 [K-FLIP]의 숙제
최근까지 각종 힙합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앨범을 하나 꼽자면 단연 식케이, Lil Moshpit의 [K-FLIP]일 것이다. 원래도 신보가 나올 때마다 리뷰와 의견이 활발히 오가는 공간이지만, 이번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지난 1월에 발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시간 논쟁이 지속된 이유는 아마도 해당 앨범이 국내 힙합 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따라, 이 뜨거운 담론은 단순히 퀄리티의 수준을 가로 짓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닌 '레이지의 현지화'를 논하는 지점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거기다 며칠 전 디럭스 앨범 [K-FLIP+]와 Playboi Carti의 [Music]이 비슷한 시기에 발매되면서 다시금 재점화된 상황 속, 수많은 힙합 팬이 그들을 주목하는 이유와 [K-FLIP]이 국내 힙합 씬에서 지닌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
확실한 건 식케이는 떠오르는 신예도 현재 대중적으로 크게 소비되는 아티스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전과 달라진 음악적 행보 때문이다. 식케이가 기존에 추구하던 음악적인 방향은 Travis Scott이 연상되는 오토튠을 활용한 싱잉랩 기반의 트랩이었다. 그러다 레이지가 부상하던 팬데믹 시기, 해당 장르의 아티스트 곡을 많이 접하면서 김하온과 함께한 [Album On The Way!]에 레이지 소스를 많이 착안하게 되었고, 이후 자신이 설립한 레이블인 KC를 본격적으로 출범하며 해당 앨범을 기점으로 레이지 장르를 주력으로 하기 시작했다. [Album On The Way!]는 Playboi Carti, Ken Carson 등이 소속된 Opium이라는 그림자를 피해가진 못했으나, 과장된 신시사이저나 장르에 맞춘 변형된 랩 스타일 등 레이지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며 전면에 장르색을 드러낸 점과 트렌디한 장르를 수입해 하나의 메이저한 흐름으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국내 힙합 씬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이후 KC의 컴필레이션 앨범 [KCTAPE, Vol. 1], [KCTAPE, Vol. 2]을 연이어 발매하였고, Ken Carson의 프로듀서인 Glasear를 비롯하여 레이지를 주도하는 레이블 Opium 소속 프로듀서 F1lthy 등 현지 프로듀서들의 참여로 본격적인 장르 굳히기에 들어가며 자신과 레이블의 입지를 확실히 다질 수 있었다. 그 결과, 현재 국내 힙합 씬에서 식케이는 레이지의 최첨단 역할이 되었고, 이번 [K-FLIP]에 대한 주목도는 높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뜨거운 담론의 주인공 [K-FLIP]은 어땠을까? 우선, 리드머, 이즘과 같은 음악 평론 사이트나 각종 힙합 커뮤니티 속 많은 유저들 사이에선 긍정적인 반응이다. 무엇보다 한국 음악들을 샘플링한 곡으로만 채워진 '한국적인 앨범'을 만들고자 했던 그들의 기획 의도처럼 'K-레이지'를 확립했다는 점을 굉장히 높이 사는 모양이다. Okasion의 'LALALA (Feat. Beenzino)', The Quiett의 '2 Chainz & Rollies (feat. Dok2)' 등과 같은 힙합은 물론이고, 김사월의 '달아', 실리카겔의 'Desert Eagle' 등 다양한 장르를 차용하며 자신들이 붙인 'K'의 당위성을 부여했다. 거기다 유튜버 천인학의 SNS 밈인 요아정 리액션 소리까지 샘플링으로 사용한 점은 트렌드와 재미를 모두 잡은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관점을 기획이 아닌 결과로 바꾼다면 얘기는 살짝 달라진다. 한국적인 앨범이라는 기획 의도와 예상치 못한 곡 선정, 밈의 사용은 참신한 시도였으나, 샘플링의 완급 조절 실패라는 아쉬움은 여전하다. 샘플링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사용된다. 원곡의 핵심을 대놓고 보여주며 재치와 즐거움을 잡거나, 리스너들이 직접 찾을 수 있도록 교묘하게 숨긴 채 뒤늦게 놀라움을 선사하거나. 그리고 전곡이 전자에 해당하는 [K-FLIP]의 경우 모두가 잘 아는 핵심 훅만을 가져와서 곡 분위기에 녹여내다 보니 원곡과 다른 인상으로 풀어내지 못한 것이다. 특히, 실리카겔의 'Desert Eagle' 후주가 인트로에 그대로 삽입된 'K-FLIP'이나 Okasion의 'LALALA (Feat. Beenzino)'를 활용한 ‘LALALA (Snitch Club)’, 디럭스 앨범인 [K-FLIP+]에 실린 'LOV3', 'MADE IN KCOREA (1TAKEBAR)'은 핵심 전주나 코러스가 대놓고 들리는 지경이다.
또, 디럭스에 추가된 'PUBLIC ENEMY REMIX'는 피처링으로 새롭게 참여한 창모와 지코의 실망스러운 랩과 '멍멍멍'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라인으로 오점을 남겼으며, 디스토션이 들어간 기타와 신스 사운드로 만든 장르적 색채는 정제된 느낌이었다. 따라서, 결과물의 퀄리티보다는 (아쉬운 완급 조절과 별개로) 다양하고 생뚱맞은 장르들을 곡 분위기에 맞게 녹여낸 Lil Moshpit의 능력이 돋보였던 앨범으로, 이는 앞서 언급한 수많은 스포트라이트가 Lil Moshpit의 프로덕션을 향한 이유이기도 하다.
수많은 힙합 팬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K-FLIP]은 국내 레이지 씬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형 레이지', 'K-레이지', '레이지의 현지화' 등 다양한 수식어로 씬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의 시선은 '샘플링을 활용한 참신한 시도'만을 향해있을 뿐, 본 앨범이 국내 레이지 씬에 음악적으로 어떠한 방향을 제시할 것인가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즉, [K-FLIP]이 일궈낸 단발적인 성과가 영향력을 뻗쳐 연속성을 띠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에 가깝다. 또한, 국내 레이지 씬을 이끌고 갈 식케이 자체가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Travis Scott과의 유사성이 처음 제기되었던 '알콜은 싫지만 주면 마실 수 밖에 (Feat. 박재범)'을 지나 [H.A.L.F]에서는 무려 대표곡이었던 3곡 모두 표절 논란이 일어나면서 '카피캣'이라는 강한 낙인과 함께 여론이 극심하게 악화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레이지로 퀄리티와 대중성을 모두 잡을 수 있는 아티스트는 현재 식케이가 유일하다. [K-FLIP]이 국내 힙합 씬에 던진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를 대신할 누군가 나와야 하는 지금, 안타깝게도 식케이의 대체재로 불릴 만한 인물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거기다 앞으로 약 3년 반 동안 그의 음악이 세상에 나오기도 힘들게 됐다) 어쩌면 현재로서는 Lil Moshpit의 프로덕션 능력에 기대어 다른 래퍼들과의 시너지를 바라는 것이 가장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K-FLIP]이 던진 레이지의 불씨가 몸집을 키우기도 전에 빠른 속도로 사그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by. 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