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렐 사운드를 따라 과거를 경유하다
밴드 사운드의 부활부터 Brat 풍 하우스의 열풍까지. 숨 돌릴 틈 없이 타오르던 트렌드의 불꽃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는 지금, 겉으로는 미약해 보일지라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하나의 불씨가 있다. 트와이스의 ‘Strategy’에서 들려오는 오래된 신스, ARrC의 ‘nu kidz’ 도입부를 타고 흐르는 4박자 리듬, 더보이즈의 ‘Rock and Roll’에서 감지되는 2000년대 R&B 정서는 모두 Pharrell Willams (이하 퍼렐)의 음악적 언어를 적극적으로 참조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K-POP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니다. 최근 Lil Nas X의 ‘HOTBOX’와 Lil Tecca의 ‘Dark Thoughts’는 거의 동시에 퍼렐과 JAY-Z의 ‘Frontin’을 샘플링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재해석한 곡이다. 특정 장르가 유행처럼 확산하는 흐름은 익숙한 일이지만, 지금처럼 개별 아티스트의 스타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소환되는 흐름은 상대적으로 드문 사례다. 그렇다면 왜 하필 퍼렐일까? 그의 미학이 시대를 초월해 다시금 참조 가능한 언어로 기능하게 된 배경과 맥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퍼렐은 Chad Hugo (이하 채드)와 함께 프로듀서 듀오 ‘The Neptunes (이하 넵튠즈)’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오늘날 ‘퍼렐 사운드’로 불리는 음악은 본질적으로 ‘넵튠즈 사운드’라 할 수 있겠다. 대표적으로 Gwen Stefani의 ‘Hollaback Girl’에서 채드가 색소폰과 호른 같은 관악기를 활용해 멜로디와 하모니를 구성하고, 퍼렐이 퍼커션과 베이스 드럼을 통해 리듬과 그루브를 주도하면서 두 사람의 개성이 프로덕션 전반에 명확히 드러난다. 특히 텁텁하고 거친 질감의 드럼과 퍼커션은 이 곡을 기점으로 퍼렐의 시그니처 사운드로 자리 잡았고, 동시에 넵튠즈 사운드의 미학을 상징하는 요소로 기능하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넵튠즈는 MC Lyte의 ‘Closer’에서 확인할 수 있는 차갑고 무미건조하게 떨어지는 드럼 톤을 바탕으로 Noreaga의 ‘Superhug’, Mase의 ‘Lookin’ at Me’처럼 거칠고 직선적인 힙합 트랙은 물론, Beenie Man의 ‘Girls Dem Sugar’처럼 감각적이고 유연한 트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소화하며 그들의 사운드가 지닌 확장성과 유연성을 입증했다.
주목할 점은 퍼렐이 전통적인 건반이나 기타보다 차가운 질감의 신스와 일렉트릭 피아노(EP)를 중심으로 코드 진행의 뼈대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Snoop Dogg의 ‘Drop It Like It’s Hot’에서는 기타나 피아노 없이 건조한 클릭 소리와 딥한 베이스, 그리고 은은하게 배치된 EP 톤의 신스 코드가 공간의 여백을 채우며 전체 사운드를 지배한다. 마찬가지로 Jay-Z의 ‘I Just Wanna Love U’에서도 전통적인 화성 악기의 개입 없이 반복되는 신스 루프가 리듬과 멜로디를 유기적으로 엮어내며, 오히려 강한 중독성을 만들어낸다.
특히 퍼렐은 넵튠즈 활동의 전성기 이후, 엇박의 리듬을 활용하며 기존의 바운스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넵튠즈 사운드를 넘어선 퍼렐 스타일의 확립으로 이어졌다. 그의 드럼 비트는 단순히 리듬감을 형성하는 차원을 넘어, 곡 전체의 에너지를 주도하는 핵심 요소로 기능한다. 예컨대 N.E.R.D의 ’Lemon’에서는 엇박의 클랩 사운드가 리듬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Ariana Grande의 ‘the light is coming’과 ROSALIA의 ‘MOTOMAMI’에서는 엇박의 효과음이 리듬감을 직관적으로 자극하며 몸을 자연스럽게 까딱이게 만든다. 이때 일정한 808 베이스가 리듬과 리듬 사이를 촘촘하게 메워 멜로디보다 리듬 중심의 구조를 강조하고 곡의 추진력을 강화한다. Voices of fire의 ‘JOY’ 또한 전통적인 가스펠 리듬 위에 무게감 있게 내려앉는 엇박의 808 베이스를 얹어, 종교적인 색채에 힙합의 세련된 질감을 절묘하게 결합한다.
퍼렐은 이러한 리듬을 바탕으로, 2010년대 이후 그루비한 훵크와 디스코 리듬이 주도하는 댄서블한 영역으로까지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장해 왔다. ‘Gust of Wind’는 무게감 있는 디스코 리듬 위에 계단식으로 쌓이는 스트링과 건반 신스가 더해져, 세련된 감각과 경쾌한 분위기를 동시에 연출한다. Dua Lipa의 ‘Hallucinate’는 퍼렐 특유의 드럼 존재감은 다소 절제되어 있지만, 아티스트의 댄서블한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가볍고 유머러스한 터치가 더해지면서 곡의 질감을 유연하게 조정한다.
결과적으로 퍼렐의 건조한 드럼 톤은 복고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엇박 리듬이 만드는 바운스는 예상 불가능한 흐름을 만들어내며 미래적인 질감을 부여한다. 여기에 훵키함과 디스코의 대중성까지 더해지며, 퍼렐 사운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유기적으로 교차시키는 하나의 시간적 플랫폼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특징은 N.E.R.D의 첫 정규 앨범 [In Search Of…]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복고 감성, 미래적 질감, 그리고 대중적 흡인력이 훵키한 락 사운드 속에서 절묘하게 융합되었다.
이처럼 퍼렐은 장르를 낯설게 재배치하면서도 익숙한 감각을 잃지 않는 독특한 균형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여 가장 독창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몇 안 되는 창작자 중 하나다. 바로 이 점이, 오늘날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퍼렐 사운드’를 반복해서 호출하는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2000년대를 대표했던 독자적인 노선, 이른바 ‘퍼렐 사운드’를 오늘날 다시 재현하려는 움직임은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 나타난 것일까. Y2K 문화의 장기적인 유행 속에서 이지리스닝 트렌드는 더 이상 일시적인 유행으로 보기 어렵다. 언제 어디서나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미니멀한 음악에 대한 수요가 고정화되면서, 음악은 점점 더 익숙하고 안전한 선택지로 수렴되고 있다. Doechii의 ‘What It Is?’는 TLC의 ‘No Scrubs’을 샘플링하며 과거의 감성을 직조해 냈고, Leon Thomas의 ‘MUTT’는 Enchantment의 ‘Silly Love Song’을 삽입하며 전형적인 컨템포러리 R&B 감성을 은은하게 불러온다. 영국에서는 R&B 걸그룹 FLO가 등장하며 2010년대에 활동했던 일렉트로닉 팝 기반의 Fifth Harmony와 Little Mix의 계보를 잇는 동시에, 보다 본격적인 R&B 사운드를 통해 세대교체를 꾀하려는 흐름도 감지된다. 이처럼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은 별다른 저항 없이 소비되고 있으며, 점차 회고적이고 수동적인 방식으로 굳어지고 있다.
하지만 2000년대 R&B 사운드를 반복적으로 차용하는 현상은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확장하기보다는 과거의 코드에 안주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2000년대 문법을 되풀이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는 것이다. Muni Long과 No Guidnce는 2000년대 컨템포러리 R&B에 소울적 감성을 성공적으로 더했지만, 그 이상의 새로운 도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Muni Long의 서사는 여전히 과거의 연애 감정에 머물러 있고, No Guidnce는 하모니 중심의 정공법을 따르지만, 사운드적으로는 Boyz II Men의 계보를 무난하게 재현하는 데 그친다. SZA와 Steve Lacy와 같은 아티스트들이 전통적인 R&B의 구조를 벗어나 각각 네오 소울 감성에 락적인 사운드를 더하거나, 인디 록을 접목하는 등 해체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R&B의 스펙트럼을 확장해 나가는 흐름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Tate McRae 역시 ‘Greedy’를 통해 2000년대 섹시 아이콘의 공백을 전략적으로 메우며 시장 내 입지를 확보했으나, 앨범 전반을 들여다보면 이 전략이 얼마나 지속 가능하며 실질적인 창의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결국 이들의 음악은 레트로 감성을 효과적으로 환기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그것이 동시대 R&B 씬의 진화적 흐름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되살림’과 ‘재창조’ 사이의 간극이 여전히 유효하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은 진부할 만큼 반복되어 왔지만, 현재 음악 시장이 이에 보내는 대답은 안타깝게도 새로움이 아닌 익숙함의 반복에 가까워 보인다. 과거의 스타일을 소환하는 전략은 그저 그 시절의 정서를 반복 재생하는 데 머물고 있으며, 오늘날의 창작이 과거의 언어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이미 2000년대 사운드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이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최근에는 듣기 어려웠던 퍼렐 사운드의 귀환은 반가운 신호로 읽힐 수 있었다.
‘퍼렐스러움'이 대중에게 환영을 받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음악적 진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히 돌아온 유행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유행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확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다.
이 지점에서 Tyler, The Creator (이하 타일러)는 퍼렐 사운드를 가장 모범적으로 계승한 사례로 언급될 수 있다. 그는 퍼렐의 음악적 문법을 흡수하되 단순한 답습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자신만의 미학 안에서 이를 능동적으로 재배열하고 전유한다. 실제로 그래미 수상 소감에서 퍼렐에게 직접 감사를 표하며, 퍼렐이 자신의 음악 세계에 끼친 영향력을 분명히 드러낸 바 있다. 이는 퍼렐 사운드가 타일러의 정체성 형성에 있어 단순한 참조를 넘어 결정적 토대로 기능했음을 시사한다.
2013년에 발표한 ‘Jamba’는 퍼렐식 엇박 클랩 리듬을 공격적으로 변형하고 빠른 템포의 드럼과 직선적인 신스는 서스펜스적인 긴장감을 유도하며 타일러 고유의 리듬 해석 방식을 보여준다. 이 시기의 타일러는 퍼렐의 미니멀리즘을 차용하되, 보다 무거운 질감과 극적인 전개를 통해 리듬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2017년의 ‘See You Again’에서는 드럼 톤에서부터 퍼렐의 2000년대 초반 작업을 연상시키는 건조하고 묵직한 질감을 띠며, 드럼의 텍스처와 그루브 중심으로 곡을 전개함으로써 퍼렐의 정체성을 흡수하는 동시에 타일러 미학이 정점에 도달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2023년에 발표된 ‘RISE!’와 같은 트랙에서는 초기 힙합에 대한 회귀적 접근과 세련된 사운드 디자인이 병행되며 미니멀한 리듬 운용과 반복되는 구조의 신스를 정제된 형태로 구현함으로써 퍼렐과 타일러 간의 경계를 지울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작업에서 퍼렐의 영향력은 분명하게 감지되지만, 그것은 결코 모방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타일러는 ‘퍼렐의 계승자’라는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퍼렐 사운드를 동시대적 감각에 맞춰 재해석하고 세련되게 응용하는 전략을 통해 ‘타일러스러운’ 사운드를 구축할 수 있었다.
결국 퍼렐 사운드의 부활은 단순한 복제의 대상이 아니라, 창작의 재해석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퍼렐 사운드의 귀환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이를 차용하는 아티스트들이 과거의 정서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타일러처럼 이를 자기화하며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창조적 실천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날의 퍼렐 붐은 과거의 잔향을 반복 재생하는 데 그치는, 일시적인 회고에 그칠 뿐이다.
by. 율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