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명백백한 소음의 왕.
구태여 파란노을과 6v6 records, 그리고 씬의 후예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확실히 한국에서 거친 기타의 드라이브 소리를 활용하는 ‘소음 음악’의 파이가 커졌음을 느낀다. 스타일과 감도에 따라 네오 싸이키델리아 (물론, 엄격한 사람들은 “이 장르가 어째서 소음이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 노이즈 락, 노이즈 팝 ~ 슈게이즈로 구분될 텐데, 가장 팝적인 네오 싸이키델리아 장르의 실리카겔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밴드가 됐으며 인디에서 고유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던 김뜻돌과 바이바이배드맨 모두 최근 노이즈, 슈게이즈 장르의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AKMU의 이찬혁 역시 BABO라는 밴드를 시작하며 해당 사운드를 보여주고 있지 않았는가. 이토록 소음 음악은 단순히 장르 내의 신인이 늘어나고 있음을 넘어서, 어느덧 타 장르의 아티스트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큰 장르가 돼버렸다.
그렇다면 당신은 한국의 소음 음악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정확히 말하면, 얼마나 많은 아티스트를 알고 있는가? 앞서 언급한 아티스트들 정도에서 디깅을 그치고 있다면, 당신은 굉장히 많은 것을 손해 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파란노을, 브로큰티쓰, 피아노슈게이저 등, 2020년대의 소음 음악 씬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이 모두 입을 모아 샤라웃한 아티스트가 있으니, 그가 바로 조월이다.
Merzbow처럼 전위적인 순수 노이즈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면, 상기한 소음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당연히 ‘소음을 어떻게 듣기 좋게 만드느냐’ 일 것이다. 조월은 정말로 특징적이면서도 대단한 사운드 메이킹을 선보인다. 그의 대표 곡 ‘온도시가불타는꿈’의 등장하는 노이즈는 정말로 불타는 순간의 경고 음을 연상시킬만큼 섬뜩하게 구현되지만 그럼에도 곡을 그대로 삼키지는 않는다. 곡의 전면부에 자리 잡고 있는 어쿠스틱 기타 뒤에서 화려하게 불탈 뿐이다. ‘같은 마음’, ‘악연’ 등에서도 뛰어난 믹싱을 통해 거친 소음을 소리 뒤편에 배치한다.
즉 그는, 단순히 ‘소음을 듣기 좋게 잘 만드는 것’을 떠나, 그 소음을 듣기 좋게 ‘잘 배치하는 방법’까지 탁월한 아티스트이다. 몇몇 소음 음악 아티스트들이 소음만 크게 키워 청자들의 귀를 괴롭게 할 때, 조월은 소음을 편하게 들을 수 있게끔 배려한다.
이처럼 조월의 소음이 듣기 편하게 ‘계획’된 것은 조월만이 가지고 있는 서정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소음이 강렬하다 할지라도 그의 음악은 언제나 서정적이다. ‘온도시가불타는꿈’에서도 기본적인 코드와 어쿠스틱 기타, 탑라인 자체는 정말로 부드러울뿐더러 ‘같은 마음’의 탑라인과 감성 역시 실리카겔이나 팔칠댄스가 네오 싸이키델리아로 편곡해도 어울릴 만큼 뛰어난 감각을 자랑한다. 과거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밴드 (이하 속옷밴드) 시절의 노래들을 비롯해 ‘The Future Was Beautiful’, ‘노래’, ‘쿠쿠’ 등. 그의 ‘소음 음악’에서 이러한 서정성을 머금은 곡은 셀 수 없이 많다. 나원영 평론가는 조월의 이러한 사운드를 일컬어 ‘서정적인 소음’이라고 정의한다.
그의 또 다른 대표 곡 ‘어느새’는 이러한 서정성의 극대화다. 본 곡은 아예 소음은 최소화했기에 ‘소음 음악’이라기보다는 ‘드림팝’에 가까울 텐데, 그만큼 그가 가진 감성을 여과 없이 자랑하는 곡이다. 특히 코러스의 멜로디는 그 어떤 음악보다도 쉽고 강렬하다. 이 곡만의 감성에 빠진 김한주, 브로큰티쓰, 황소윤, 기쿠하시, 피아노슈게이저 등의 인디 아티스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본 곡을 커버하기도 했다. ‘악연’, ‘식목일’ 역시 ‘어느새’와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고 있으며, ‘정말로행복하다’에서는 이러한 감성을 포크 장르로 까지 확장시켜 낸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어렸을 때 김현철, 더 클래식, 윤상, 조동익의 음반들도 즐겨 들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쌓인 팝 감각의 결과물이 아닐까.
그가 단순히 ‘서정적인 소음 음악’ 정도에 머물렀다면 이처럼 많은 샤라웃을 받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정말로행복하다’나 ‘산불’, ‘평서문’ 같은 트랙들은 조월에게서만 엿볼 수 있던 포크라면, 다른 트랙에서는 더욱더 다양한 장르들을 선보인다. [보난자] 버전의 ‘전자랜드’, 혹은 ‘다시는 이러면 안 돼’에서는 Radiohead, Bjork 등이 떠오르는 IDM 리듬 기반으로 소음을 전개했으며, 특히나 쾅프로그램의 최태현과 함께 한 [거울과 시체] 앨범의 ‘자장가’ 같은 트랙에서는 조금 더 본격적으로 전자음을 느낄 수가 있다. ‘Smells Like 22’에선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을 포크트로니카로 리메이크하지 않았는가!
조월의 음악적 스펙트럼의 정점은 아마 ‘퇴로’ 일 것이다. 제목부터 ‘트로트’와 유사한 발음으로 설정된 이 곡은, 전반부는 전형적인 ‘뽕짝’ 리듬에 약간의 스산함과 조월 특유의 믹싱을 머금은 채 진행된다. 그러다가 3분대 들어 자연스럽게 밴드 사운드로 변환되며 슈게이즈 사운드로 달리는데, 트로트와 슈게이즈의 조합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수식을 조월은 해낸 것이다. 들을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경지에 달한듯한 송 메이킹이다.
그의 커리어의 시작은 90년대에 활동한 진공 악단이라는 밴드였다. 다양한 씬의 아티스트들이 모인 모임 별과 앞서 간단하게 언급한 속옷밴드 등의 활동을 통해 00년대에서부터 활발하게 활동해 온 조월은, 2023년과 2024년에도 꾸준하게 싱글을 발표하며 공연을 할 정도로 계속해서 한국 소음 음악의 최전선에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00년대 한국 슈게이즈 최고의 히트곡 ‘멕시코행 고속열차’도 그가 속한 속옷밴드의 곡이었으며, 해외 My Bloody Valentine 팬들의 소소한 이목을 끌은 한국의 [Loveless] 헌정 앨범에서도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그가 커버한 ‘When You Sleep’은 비둘기 우유의 ‘Only Swallow’와 다음으로 가장 큰 호평을 받았다.) 모임 별 역시 디자인과 같은 음악 외적인 부분으로도 유명하지만 불세출의 명반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를 남겼으며, 지금도 그 유명한 새소년의 황소윤을 영입하며 이름을 이어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월’이라는 이름 자체의 인지도는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이는 조월 본인 자체가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기를 원하는 성향이 있음에서 비롯된 결과일 수도 있다. 그의 음악은 컴필레이션 앨범을 제외하면 만선 (maansun)이라는 플랫폼에서 돈을 주고 구매해야만 들을 수 있었으며, 2023년에 몇 앨범이 음원 사이트에 풀리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앨범들은 만선에서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이노가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평하며 이런 말을 한 것은 유명하다. “당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앨범을 산 사람은 극소수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의 밴드를 시작했다.” 이 말을 한국으로 옮긴다면 가장 적합한 사람은 조월이라 확신한다. ‘서정적인 소음’이라는 특징과 함께 트로트, IDM, 포크, 드림 팝, 포크트로니카 등 다른 어떤 아티스트들도 비교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장르를 선보인 조월. 아는 사람만 아는 아티스트지만, 그의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를 최고라 뽑기 주저하지 않으며, 각자의 방법으로 각자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By 베실베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