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많이 들려올 LGBTQ 음악
대중 매체가 탄생한 이래로, 이렇게 성소수자들과 관련된 소재들이 매체에 자주 등장했던 시기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것을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로서 쓰인 게 아니라 점점 자연스럽게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공개된 웨이브(Wavve)의 국내 최초 레즈비언 연애 프로그램 ‘너의 연애’는 공개와 동시에 3일 연속 신규 유료 가입 견인 1위 프로그램으로 등극하였으며, 대표적인 국내 성소수자 방송인인 홍석천과 성소수자 유튜버 김똘똘이 진행하는 유튜브 ‘홍석천의 보석함’에는 인기 남자 아이돌, 배우들이 출연하며 지속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OTT 인기순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BL 장르의 웹드라마는 신인 남배우들의 등용문이 된지 오래이다. 음악도 절대 예외가 아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할 수 있지만, 해외(특히 서양 중심의)에서 아티스트의 성적 정체성과 지지 성향은 음악을 감상하는 데에 있어 달리 신경 쓰이는 요소가 아니다. Lil Nas X는 커밍아웃 이후 발매한 [MONTERO]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가감 없이 드러냈음에도 빌보드 HOT100 1위를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틱톡의 10대 유저들에게 “너 레즈비언이야?”라는 의미로 쓰이는 “Do you listen to girl in red?”라는 질문 속 girl in red 또한 LGBTQ 아티스트이지만, 그와 동시에 5월 스포티파이 기준 매달 1,200만 명이 듣는 대표적인 베드룸 팝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LGBTQ 음악이라고 해서 LGBTQ 리스너들만 듣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음악을 LGBTQ 음악이라 할 수 있을까. 댄스 뮤직은 퀴어를 배제하고 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장르이다. 정박으로 찍히는 4박자 드럼과 경쾌한 하이햇, 훵크에서 영향을 받은 그루비한 베이스와 신나는 멜로디로 춤추기 좋은 음악 그 자체인 디스코는 당시 주류 음악이자 미국 백인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록’의 반작용처럼 탄생하였기 때문에 소수자들에게 특히 사랑받아온 장르이다. 때문에 Bee Gees 등으로 인해 백인화가 되기 전까지 디스코는 소외받던 70년대의 미국 흑인 게이들이 모여서 춤추며 해방되던 게이 클럽을 채우는 음악이었고, 그렇게 퀴어가 사랑하는 댄스 뮤직의 시초가 되었다. 80년대 이후 전자 음악의 발전과 함께 댄스 뮤직에도 일렉트로닉이 섞이기 시작했고,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는 하우스는 탄생하게 된 장소부터가 게이 클럽이다. 하우스는 디스코를 변형하다 만들어진 장르인 만큼 리듬, 흑인음악과 자주 융합되는 특징은 비슷하지만 디스코의 오케스트레이션 대신 신스 사운드, 보컬 샘플링으로 채워져 있다. 언더그라운드 씬에서는 Larry Levan, Honey Dijon, The Blessed Madonna 등의 영향력 있는 LGBTQ 아티스트들이 계속해서 퀴어 팬들을 모으고 있으며, 2020년대에 들어서는 Beyoncé, Troye Sivan, Ariana Grande와 같은 친LGBTQ 성향을 밝힌 팝스타들에 의해 대중적으로도 사랑받게 되었다. 특히나 하우스 속 퀴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Beyoncé의 [RENAISSANCE]는 정통 하우스를 기반으로 퀴어들에게 사랑받는 디스코, 테크노, 하이퍼 팝 등의 장르를 알차게 담아냄과 동시에 퀴어프렌들리한 가사와 비주얼(볼룸)까지 더하며 퀴어 커뮤니티를 향한 존중과 지지를 담아낸 대표적인 친LGBTQ 앨범이다. 하우스와 테크노에서 영향을 받은 하이퍼 팝 역시 장르의 탄생을 함께한 PC Music이 퀴어프렌들리한 성향을 띠었고,(소속 아티스트였던 SOPHIE는 트랜스젠더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도 상당수의 퀴어 아티스트들로 구성되어 있는 씬이다. 당시 씬의 주류였던 무겁고 진지한 일렉트로닉 음악들과 다르게 밝고 신나면서도, 어떤 음악보다 왜곡되고 과잉된 사운드와 성별을 가늠하기 어렵게 음성변조된 보컬이 결합된 음악은 그들에게 ‘나와 닮은 음악’인 것이다.
퀴어들에게 사랑받는 또 다른 장르는 바로 록이다. 그중에서도 건반이나 신스와 같은 악기로 인해 다른 록 음악들에 비해 남성적인 느낌이 약했던 글램 록은 중성적인 패션이 주 특징인 만큼 퀴어적 성향이 시각적으로도 드러나는 장르이다. 후에 실험적 양성애였다고 정정하긴 했지만 David Bowie의 글램 록 시절 커밍아웃은 공인이 한 최초의 커밍아웃이었으며 그로 인해 퀴어 아티스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유의미한 행보였다. 메탈 역시 퀴어에게 영향을 받은 장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퀴어팬을 지닌 장르이다. 그들은 긴 머리와 화려하고 타이트한 의상, 진한 화장 등의 패션에 매력을 느끼며 공격적이고 과격하다는 이유로 비주류로 평가받는 메탈을 자신이 느끼는 사회적인 소외감에 동일시한다. Judas Priest는 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헤비메탈 밴드이면서도 보컬인 Rob Halford의 커밍아웃을 통해 메탈 씬의 반LGBTQ적 정서가 사라지는 데에 긍정적 영향을 준 밴드이기도 하다. 메탈 밴드 Otep의 프론트우먼이자 지속적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레즈비언 Otep Shamaya는 Lady Gaga와 함께 2010년 세계적인 LGBTQ 음악 시상식인 'GLAAD 뮤직 어워드'의 최우수 음악 아티스트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펑크 또한 장르가 지닌 개방성과 포용성과 같은 성격으로 인해 많은 퀴어들의 사랑을 차지한 장르로, ‘퀴어코어’라는 하위문화가 존재할 만큼 씬의 아티스트들 또한 LGBTQ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가장 직관적으로 LGBTQ 음악임을 드러내는 방법은 역시 가사에 메시지를 담는 것이다. 대놓고 퀴어와 관련된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흔한 경우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LGBTQ 음악이라고 하는 곡들의 가사에는 어느 정도 공통된 특징이 있다. 섹슈얼리티를 개방적으로 표현하거나, 불안한 감정 상태를 고백하기도 하며, 앞으로 펼쳐질 희망적인 미래를 자신감 넘치게 예고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세상에 내주는 듯한 이러한 가사의 음악들을 통틀어 ‘퀴어 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퀴어 팝 아티스트에는 여성 팝스타들이 많다. 비교적 진지한 콘셉트가 많은 남성 아티스트들에 비해 밝고 대중적인 댄스 뮤직과 개방적이고 다채로운 콘셉트를 선보이는 여성 팝스타들이 퀴어 팝 속 메시지를 더욱 자주, 그리고 효과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Lady GaGa의 ‘Born This Way’는 후렴 가사에 “게이”, “양성애자” 등의 성소수자들을 나타내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넣은 최초의 빌보드 HOT100 1위 곡이며, Madonna의 ‘Vogue’는 보깅 댄스와 퀴어 댄서들을 주류 팝 시장에 선보인 최초의 곡이기도 하다. 음악 외적으로도 그들은 양성애자임을 밝히고 퀴어 행사에 참여하는 등 LGBTQ에 대한 지지를 지속적으로 드러냈고 있다. 최근에는 그 뒤를 이어 Chappell Roan이 차세대 퀴어 팝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Chappell Roan 역시 본인의 성 정체성을 커밍아웃한 아티스트이며, 작년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인 ‘Good Luck, Babe!’는 이성애라는 사회적인 규범에 갇히지 말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이다.
이런 LGBTQ 음악은 이제 전 세계의 여러 음악 차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과거에는 논 퀴어 아티스트들이 퀴어 코드를 쓰거나, 퀴어 리스너들이 공감할 만한 감정적인 주제를 다룬 곡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한 아티스트들이 직접적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음악들이 늘어났다. 어떻게 성’소수자’들의 음악이 이렇게까지 대중적으로 흥행할 수 있었을까. 우선 시대가 변했다. 몇십 년에 걸쳐 만들어진 친LGBTQ적 정서는 대중들이 그들의 음악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음악도 쉬웠다. 앞서 언급했던 퀴어 팝의 주된 주제인 불안, 희망은 퀴어가 아닌 이들도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이며 밝은 댄스 뮤직은 대표적인 대중음악 중 하나이다. 또한 퀴어가 지닌 소수성은 오히려 더 매력적인 차별점으로 작용되기도 했다. One Direction을 벗어난 Harry Styles가 솔로 아티스트로서 리브랜딩과 포지셔닝에 성공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단연 David Bowie를 연상시키는 중성적인 패션이다.
그렇다면 해외가 아닌 케이팝 속에도 LGBTQ적 요소를 찾아볼 수 있을까. 사실 동성인 멤버들끼리의 스킨십이 포함된 페어 안무나 남성 아티스트들이 파스텔톤의 귀여운 의상을 입고 애교를 부리는 모습은 다른 장르에서는 흔히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때문에 일부 해외 리스너들은 케이팝을 Gay-Pop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히 이런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고 점점 더 적극적인 퀴어 코드가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유색인종 LGBTQ로부터 시작된 볼룸 씬을 배경으로 탄생한 ‘보깅’과 게이 디스코 씬에서 발달한 ‘왁킹’ 장르의 댄스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안무를 구성하기도 하며, 퀴어 댄서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하기도 한다. 또한 츄의 ‘Heart Attack’, 아이린&슬기의 ‘Monster’와 같은 곡의 MV에는 퀴어 코드가 꽤나 직관적으로 들어가 있기도 하며 아이돌들은 지속적으로 팬들에게 다양한 사랑을 응원한다는 의견을 전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KATSEYE의 라라, JUST B의 배인이 본인의 성 정체성을 커밍아웃하고 팬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팝에 점점 가까워지는 상황으로 인해 음악적으로도 LGBTQ적인 요소가 들어간 장르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에스파의 ‘Savage’는 당시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했던 하이퍼 팝을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최근 일렉트로닉 씬의 부흥과 함께 에스파 ‘Whiplash’, 르세라핌 ‘CRAZY’, 세븐틴 ‘MAESTRO’, 청하 ‘STRESS’ 등 하우스와 테크노를 차용한 수많은 케이팝 곡들이 쏟아져 나왔다. 케이팝뿐만 아니라 국내 언더그라운드 씬에서도 점점 퀴어를 언급하는 것이 쉬워지고 있다. 최근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 부문을 수상한 NET GALA는 몇 년 전 논바이너리 퀴어임을 밝히기도 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점점 더 우리가 듣는 음악 속에 다양하고 많은 퀴어 코드가 녹아들 것이고, 점점 더 퀴어 리스너와 논퀴어 리스너들은 같은 음악을 듣게 될 것이다. 최근 다양한 음악 차트 상위권에 장기간 머물러 있는 Sabrina Carpenter, Doechii, Lady GaGa, Billie Eilish는 모두 퀴어이거나 퀴어 커뮤니티를 지지하는 아티스트들이며, 2023년에 개설된 스포티파이의 LGBTQ 플레이리스트 ‘GLOW’는 개설된 지 1년 만에 2억 8천만 회 이상의 누적 스트리밍 수를 기록했다. 전 세계적으로 Z세대는 가장 퀴어프렌들리한 세대이다. 미국은 Z세대의 5명 중 1명이 LGBTQ이며, 60년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유럽 최대의 국가대항 노래 경연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자칫 지루한 옛날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었지만 퀴어프렌들리한 방향성을 통해 Z세대의 열광을 이끌어냈다.
그러니 아티스트 및 제작자들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더더욱 퀴어와 그들의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제작해야 한다. LGBTQ와 뗄 수 없는 하우스, 하이퍼 팝 장르를 시도하면서 반LGBTQ적인 가사를 담고 있지는 않은지, 볼룸 씬의 요소를 차용하면서 백인 댄서들로만 채우지는 않았는지 체크해야 한다. 또한 퀴어임을 밝히지 않고 퀴어처럼 행동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퀴어베이팅’처럼 보일 요소는 없는지 예민하게 확인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리스너들 역시 퀴어적인 요소를 부정하지 말고 존중하고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갈수록 서로에게 냉정해지는 시대이다. 그들이 음악에서 전하는 희망과 화합에 대한 메시지를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