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게 다양하게 영업합니다
재작년부터 시작된 J-POP 유행의 불씨는 쉽게 꺼질 생각을 안 하는 듯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 챌린지가 SNS에서 인기를 끌며 OST인 YOASOBI의 'アイドル'이 히트를 쳤고, 이후 국내에서는 해당 곡과 비슷한 분위기의 곡들이 J-POP을 표방하며 우후죽순 쏟아졌다. 그들이 내세운 J-POP은 공통적으로 '청량' 또는 '벅차오르는' 등의 단어로 귀결되었고, 마치 실제 애니메이션 오프닝에 쓰일 법한 음악처럼 들리곤 했다. 때문에 어느덧 국내 리스너들에게 J-POP은 '청량한 벅차오르는 애니 감성'으로 통용되었고, 여전히 이러한 스타일의 음악이 J-POP이라는 이름 하에 활발히 소비되는 중이다. 그러나 해당 특징만으로 J-POP을 설명할 순 없다. 단순히 ‘애니메이션 감성'으로 포장하기에 J-POP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일본 대중음악의 새로운 흐름이었던 '시부야케이'가 있다. 시부야케이는 보사노바, 재즈, 프렌치 팝,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도쿄의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분위기로 표현하며,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 미술 등 시각적인 부분까지 아우른 것이 특징이다. Pizzicato Five의 [This Year's Girl]이나 Cornelius의 [Fantasma]가 그 예시이다. 그다음, 일본 록 음악계 특유의 서브컬쳐인 '비주얼케이'는 화려한 메이크업, 극적인 무대 의상, 독특한 헤어스타일 등을 통해 음악 자체를 넘은 시각적인 표현을 중점으로 형성된 장르이다. 일본 록 씬에서 비주얼 케이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 X JAPAN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외에도 국내 리스너들에게 가장 친숙할 세련된 도시 감성을 담은 '시티팝', 도쿄 시모키타자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인디 밴드들을 일컫는 '시모키타계', 복잡한 리듬과 변박자를 사용하는 '매스락', 그리고 2010년 후반에 등장하여 현시점 국내에서 J-POP 그 자체로 통하는 ‘야호성’이 있다.
야호성은 보컬로이드 문화에서 비롯된 음악 스타일로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과 밝고 역동적인 멜로디, 보컬로이드 감성을 담은 탑라인이 특징이다. 때문에 야호성의 대표 아티스트인 YOASOBI와 Yorushika, ZUTOMAYO의 노래를 들어보면 보컬로이드 특유의 높은 탑라인, 빠른 BPM에 잘게 쪼갠 멜로디와 함께 쏟아지는 가사, 싱코페이션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대중들에게 '청량한 벅차오르는 감성'이라는 이미지가 박힌 이유도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과 질주감 넘치는 리듬 때문일 것이다. 또, 야호성(夜好性)이라는 명칭 자체가 '밤을 좋아하는 성향'을 의미하듯, 낮의 활기보다는 밤의 감성에 가까운 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J-POP에 속하는 다양한 장르 중 야호성 스타일의 음악이 주목받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이는 SNS 플랫폼의 확산과 YOASOBI의 대중적 성공이 맞물리면서부터다. 야호성을 대중적으로 확립한 사람이 YOASOBI가 되면서 자연스레 해당 스타일의 기준점이 되었고, <최애의 아이>가 국내에서 인기를 얻으며 국내 리스너들에게 야호성 감성에 대한 익숙함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많은 국내 아티스트가 J-POP이라는 이름 하에 야호성 스타일과 비슷한 음악들을 발매했고, 어느덧 'J-POP = YOASOBI'라는 공식은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장르들이 무색하게도 현재까지 국내에서 J-POP은 단순히 야호성만으로 인식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음악에 야호성스러운 몽환적인 감성과 청량함, 벅차오르는 느낌이 혼합되어 있으면 너나 할 거 없이 J-POP 간판을 내세우곤 한다. 음율의 '피차일반', '파도혁명'은 누가 봐도 Yorushika의 그림자 아래 존재했고, 스스로 J-POP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던 김마리의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또, LUCY는 이전부터 계속해서 J-POP과의 유사성을 지적 받아왔는데, LUCY의 '맞네'와 Yorushika의 'いって'를 비교해보면 단번에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곡의 포인트라 할 수 있는 도입부에서 'いって'의 드랍 이후 기타가 나오는 구성을 똑같이 맞춘 것도 모자라 발음까지 유사하게 들여 맞춘 건 의도가 다분하다고 보이는 대목이다. ('いって'는 '잇떼'로 발음된다) 여기에 지난 1월, 10주년을 맞이해 발매한 여자친구의 '우리의 다정한 계절 속에'가 YOASOBI의 ‘夜に駆ける’ 짝퉁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디 그뿐일까. 아예 대놓고 J-POP을 베끼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LUCY의 경우 얼마 전 발매된 ‘하마’로 또 다시 표절 논란에 휩싸였는데, 이번엔 Eve의 'ラストダンス'이다. 재생하자마자 들리는 반복되는 메인 기타 리프의 유사성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구글 노래 찾기에서 LUCY의 '하마'를 들려주면 Eve의 'ラストダンス'로 검색된다는 후기가 있을 정도이다. 또, 달담의 ‘화선’은 蝶々P의 ‘Kokoronashi’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지적이 있기도 했다.
더 나아가 메이저라 불리는 K-POP 씬에서는 J-POP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본 감성으로 둔갑해 J-POP으로 소비되는 곡들도 허다하다. 일본 학원물 컨셉의 라이브 클립까지 찍었던 i-dle (아이들)의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나 현재 J-POP을 주력으로 하는 QWER의 '내 이름 맑음'은 사실 J-POP이 아닌 단순히 걸 밴드 감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두 곡 모두 피아노를 메인으로 하고, 신스 사운드로 아련한 밤 느낌을 연출하는 등 야호성의 일부분을 공유하며 보편적으로 '청량' 또는 '애니메이션' 감성을 떠올리게 하지만,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빠른 BPM, 특유의 뽕끼, 싱코페이션은 빠져 있기에 완전한 J-POP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QWER의 경우 데뷔곡이었던 'Discord'로 J-POP 느낌을 잘 살리며 훌륭한 레퍼런스로 시작했기에 첫인상이 계속 지속되는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들은 사실 일본 애니메이션 OST보다는 투니버스 OST 감성에 더 가깝지만, 대중들에게는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국내에서 야호성 스타일의 음악을 J-POP으로 취급하는 이유는 청량, 벅차오름, 애니메이션 감성 때문일 것이다. 앞서 설명한 SNS 플랫폼의 확산 탓도 있겠지만, 어릴 때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하며 애니메이션 OST의 특징과 감성이 주입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러한 특징들을 국내 가요에 적용했을 때 반사적으로 J-POP으로 인식하게 되는 이유도 클 것으로 본다. 결과적으로 야호성은 높고 뽕끼있는 잘게 쪼갠 탑라인, 빠른 BPM, 싱코페이션이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장르이지만, 장르에 대한 이해도 없이 단순히 '감성'만을 좇다 보니 J-POP을 오해하게 되는 맥락인 것이다.
물론, 모든 아티스트가 야호성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클래지콰이는 과거 'K-시부야케이'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고, 2020년 결성된 밴드 데이로터스는 무한 양산되는 밴드 붐 속 비주얼케이로 출사표를 던졌으며, 다브다(Dabda)와 cotoba(코토바)는 매스락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 Sheena Ringo에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크리스탈 티, Fishmans의 오마주가 강하게 느껴지는 기쿠하시 등 아티스트에 영향을 받아 오마주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J-POP을 오마주해도 다양한 스타일과 장르의 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하나같이 전부 야호성 또는 애니메이션 OST처럼 쉽고 뽕끼 가득한 벅차오르는 감성만을 사용한 음악을 하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더군다나 대중들에게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메이저씬의 음악들이 백이면 백 YOASOBI 호소인에 가까우니 말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곧 'J-POP = 요아소비'로 귀결되는 고정관념을 심화할 수밖에 없다.
정리하면, J-POP은 그저 '청량'하고 '벅차오르는' 단어로만 설명할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에서는 야호성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다. 거기다 개성 없이 답습되는 J-POP 베끼기까지. 비단 J-POP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국내에서는 해외 음악 베끼기라는 유구한 전통이 있었으나, 최소한 다양한 시도라거나 개성이라는 정성을 추가했다면 현 그림이 조금이나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다. 차라리 유행 따라 J-POP을 하고 싶다면 야호성만을 바라보지 말고, Official髭男dism, King Gnu, Ryokuoushoku Shakai 등 실력 있고 개성 있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오마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더불어 애니메이션 감성을 J-POP의 전부로 치부하는 시각도 지양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단순 복제에서 벗어나 J-POP의 원류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덧입힌 음악을 선보여야 할 때다.
by. 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