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lly Yam은 거품이 아닙니다.
검정 가죽바지에 소위 ‘춘장립’이라 불리는 검정 립스틱을 찍어 바른 채 지하철에서 “it it it it it it”이라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틱톡, 쇼츠, 릴스와 같은 숏폼 영상을 즐겨보는 사람이라면은 한 번쯤은 무조건 봤을 영상이라고 확신한다. 2025년 혜성같이 등장한 랩퍼 (사실 2024년에도 활동을 했지만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기에) Molly Yam (이하 몰리 얌)은 본 곡 ‘Burning Slow’를 통해 중독성 넘치는 코러스와 특유의 패션으로 릴스에서 382만, 378만, 253만 등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한국의 숏폼 유저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했다. 걸그룹 키스오브라이프와 영파씨 역시 ‘Burning Slow’ 챌린지에 참전하며 본 음악이 대세임을 다시금 증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몰리 얌의 음악을 듣고 단순 ‘숏폼 음악’이 아닌 ‘장르 음악’으로서 매력을 느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한국에서 숏폼 음악이 음악으로 인정받는 순간이 그동안 있었던가? 솔직히 말해 아직까지는 아무도 없었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무래도 숏폼에서 흥행한 음악이라고 하면 서이브나 조주봉과 같은 ‘중독성’에 초점을 둔 사례가 많았고, 이에 따라 음악 제작 과정에서 자연스레 코러스 파트에만 모든 걸 쏟아붓게 되니 숏폼에서의 인기가 곧 음악성을 인정받는 것으로는 연결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몰리 얌의 음악 또한 숏폼에서 “it it it it it it it” “ay ay ay ay ay ay”만 듣게 되면 그들과 같은 “B급 음악”이라고 매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당신은 이센스, 비와이 등의 거물 랩퍼들이 ‘Burning Slow’를 샤라웃 했으며, 식케이는 리믹스 버전에 직접 피쳐링으로 참여까지 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몰리 얌의 음악은 기존 한국의 숏폼 음악과는 궤가 다르다.
한국에서는 아직 오피움 레코드로 대표되는 정통 레이지만이 KC 레이블, 언에듀케이티드 키드 등을 통해 간신히 로컬라이징 되고 있는 시점이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레이지의 넘실거리는 신스만을 기반으로 하이퍼 팝, 디지코어, 플럭 등의 유사한 장르들과 합쳐지며 고유의 씬을 형성하고 있다. 2 Hollis, Che, Lucy Bedroque 등의 찢어질 듯한 사운드를 사용하는 랩퍼부터 조금 더 부드러운 Yeat, Nettspend, Destroy Loney나 Cochise까지, 조금씩 스타일은 다르지만 이들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대체적으로 하나의 그림으로 정리가 될 것이다. 로파이한 사운드와 넘실거리는 신스, 쉬운 비트 속에서 싱잉 랩을 통해 테크닉보다는 중독성과 분위기를 확보하는 음악들 말이다.
몰리 얌의 ‘Burning Slow’는 한국에서 이러한 바이브를 제대로 구현한 몇 안 되는 곡 중 하나이다. 단순히 코러스의 중독성을 넘어, 로파이함은 부족하지만, (한국에서 본토만큼의 로파이를 구현하기에는 아직 리스너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됐을 것이다!) 잘 구현된 플럭 사운드 속에 펼쳐지는 깔끔하면서도 다채로운 플로우가 돋보이는 벌스는 본토의 음악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이런 음악 스타일이 해외에서도 대체적으로 사운드 클라우드나 rate your music 같은 힙스터 플랫폼, 숏폼 같은 Z세대 플랫폼에서 인기 있는 장르라는 것을 미루어 보면, 이들과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비슷한 플랫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 역시 하나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장르적으로 본다면 앞서 언급한 많은 랩퍼들이 스쳐가지만, 그렇다고 어떤 특정 랩퍼가 또렷하게 오버랩되지 않는 것도 몰리 얌만의 강점이다. 하이톤의 랩, 로파이성이 옅음은 Cochise가 떠오르지만 몰리얌은 플럭 사운드를 버무려 더 캐치함을 추구한다는 차이점이 있으며, Destroy Lonely나 Yeat보다는 사운드가 부드러우며 더 싱잉을 하기에 역시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는다. 또한 각종 공연 직캠이나 최근 채널 ‘Stage Dyeing’에서 공개된 그의 라이브는 “어디까지나 음원용 랩퍼일 것이다”라는 편견을 깨부수기 충분했다. 대충 녹음하고 오토튠으로 메꾸는 랩퍼가 아닌, 싱잉 능력치가 충분히 갖춰진 랩퍼임을 증명한 것이다.
기세를 몰아 최근 발매된 앨범 [Tiktoksta]는 어떤가? ‘MONEY UP’에서의 레이지를 시작으로 ‘LADY 9A9A’의 디지코어, ‘WET’의 뉴재즈 등 역시나 본토 해당 씬에서 쓰이는 다양한 장르를 한데 모은 앨범인데, 자칫 정신없을 수도 있는 이 다양한 장르를 유기성 있게 하나로 묶어준 것은 그의 탄탄한 싱잉 기본기에서 온 뛰어난 탑라인 메이킹이다. 어떤 트랙을 들어도 모든 트랙의 싱잉이 ‘맛있다.’ 특히 이러한 메이킹 능력은 ‘WET’에서 정점에 달하는데, ‘wet wet wet’이라고 반복하는 부분은 ‘Burning Slow’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다른 코러스 멜로디를 추가해 조금 더 바리에이션을 더 했으며, ‘Burning Slow’의 벌스가 조금 더 다채로웠다면, ‘WET’에서는 코러스의 탑라인을 이어받아 뉴재즈 특유의 여유로움을 한껏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팝적인 감각 위에 평균 2분이 겨우 넘는 트랙 런닝 타임이 더해지니, 우리는 정신없거나 물리기보다는 빠르게 즐기고 끝낼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신인들은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아 불필요한 트랙을 집어넣다가 앨범이 지루해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이런 부분에서 굉장히 노련했다. 뿐만 아니라 피쳐링 활용도 군더더기 없었다. 키드밀리, 로꼬, 스윙스, 골드부따 같은 베테랑들이 참여했지만 그는 한순간도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이미 몰리 얌과 유사한 카테고리에 있는 음악들인 Cochise의 ‘Tell Em’, Yeat의 ‘Monëy so big’ 등의 숏폼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그 후로 그들은 여러 작업물을 통해 본인이 단순히 숏폼 뮤지션이 아닌, ‘숏폼을 활용한 뮤지션’임을 증명했다. 음악 스타일은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숏폼에서부터 주목을 받은 Tommy Richman이나 Hanumankind에게도 그 누구도 ‘숏폼 뮤지션’이라고 비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앞서 말했듯 여전히 숏폼 음악은 B급 음악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며, 힙합 씬에서는 그나마 포티몽키가 있겠지만 그 역시도 숏폼 음악이 아닌 본인 음악의 작업물까지 인정받는 데는 실패했다. 음악 외적 논란을 떠나 애초에 음악 자체가 음악성과 거리가 먼 멍청 트랩이었고, 그의 랩 역시 아무리 좋게 봐도 뛰어난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숏폼 음악이 음악으로 인정받는 순간이 그동안 있었던가? 앞에서는 “아직까지 없었다”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본토 음악을 빠르게 캐치해 독특한 패션, 챌린지와 함께 잘 버무려 무명이었던 랩퍼로서는 이례적으로 숏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거물 랩퍼들에게까지 인정을 받고, 단순 싱글이 아닌 정규 앨범에서까지 증명을 해냈다. 앨범 이름인 ‘Tiktoksta’인 것처럼, 우리는 지금 한국의 첫 틱톡 (랩) 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By 베실베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