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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가 부릅니다. ‘길을 잃었다’

갈피를 잃은 [꽃갈피 셋]과 아이유를 바라보며

by 고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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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inning] | [꽃갈피 셋]


‘꽃갈피는 괜찮겠지’


작년에 발표된 아이유의 [The Winning]은 익숙하다 하기엔 새롭고, 도전적이라 부르기엔 조심스러운 어딘가 애매한 경계에 놓인 앨범이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다양한 장르의 연장선에 놓여 있었지만, 곡들이 하나의 서사나 흐름으로 엮이지 못한 채, 마치 셋리스트에 무난히 끼워 넣을 수 있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앨범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붕 떠 있는 느낌을 남겼고, 아티스트로서의 진화나 새로운 전환점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유감스럽게도 이번에 발매된 [꽃갈피 셋]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전 [꽃갈피] 시리즈가 따스한 정서와 리메이크의 신선한 재해석을 보여주었던 데 반해, 이번 작품은 오히려 단조롭고 정체된 분위기 속에 머무른다. 오랜 시간 아이유의 음악과 함께 성장해 온 아이유 키즈로서 2022년 [The Golden Hour] 콘서트 현장에서 유애나봉을 흔들며 느꼈던 벅찬 감동이 아직도 선명한데, 그때의 음악이 전하던 설렘과 감흥은 이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정확히 짚기는 어렵지만, 비슷한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아이유다운 음악과 아이유가 현재 그리고 있는 방향성 사이가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다는 점. 새로운 시도를 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안전한 선택에 머무르는 아이러니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녀의 음악 속에는 여전히 따뜻함이 배어있지만, 그 온기가 더 이상 청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거나 깊이 위로하지는 못해 [꽃갈피]가 전달하던 감동 역시 예전 같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이번 앨범을 들으며 문득 떠오른 생각은 ‘그래도 꽃갈피는 괜찮겠지’라는 기대가, 어느 순간 ‘왜 꽃갈피마저 괜찮지 않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어버린 듯하다.





리메이크 작업은 원곡을 그대로 따라 부르는 형식에 그치지 않는다. 원곡이 가진 정서를 바탕으로 가창자의 감성이 조화를 이루며 전혀 다른 결의 작품으로 재탄생할 때, 비로소 리메이크는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그렇기에 때로는 신곡을 발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섬세한 작업이 되기도 한다.


조덕배 - 나의 옛날 이야기


아이유가 선보인 [꽃갈피] 시리즈가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단순한 재현을 넘어 원곡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듯 자신만의 해석을 더한 시도들이 음악적으로도 진정성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조덕배의 ‘나의 옛날이야기’는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하소연이 스며들어 있는 반면, 아이유는 탄탄한 코러스 위에 담담하고 솔직하게 감정을 풀어낸다. 특히 실로폰처럼 통통 튀는 벨 소리 대신 아코디언과 바이올린을 전면에 내세워, 곡 전체에 따스하면서도 새로운 색감을 입혔다. 양희은의 ‘가을 아침’은 쌀쌀한 늦가을 아침의 공기를 담았다면, 아이유는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초가을 아침을 떠올리게 한다.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구성된 가장 소박한 편곡임에도, 그 담백함이 오히려 신선하다. 이러한 시도들이 대중에게 ‘리메이크의 또 다른 재미’를 일깨워주었다는 점에서 [꽃갈피]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성취였다.



Left (향기로운 뒷모습)


이러한 리메이크의 미학은 아이유뿐 아니라 여러 아티스트의 작업에서도 빛을 발했다. 조규찬은 리메이크 앨범 [Remake]을 통해 원곡을 세련되게 다시 엮어주는 정리자의 역할을 해냈다. 섬세하게 변형된 코드 진행과 어쿠스틱 중심의 따뜻한 편곡은 원곡의 멜로디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곡의 분위기를 한층 더 고요하고 다듬어 노스탤지어와 세련됨 사이의 균형을 절묘하게 잡아낸다. 정준일의 리메이크 앨범 [정리] 역시 원곡의 감정을 섬세하게 해석하고 확장해 내는 해석자로서, 절제된 편곡과 호소력 있는 보컬로 발라드의 내면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점이 돋보인다. 피아노와 스트링을 중심으로 구성된 미니멀한 편곡은 과잉을 피하면서도 감정을 응축시키고, 여백 있는 표현 방식은 청자에게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나얼의 리메이크 앨범 [Back to the Soul Flight]는 그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사례로 꼽힌다. 소울과 훵크에 기반한 편곡, 고전적인 분위기의 악기 구성, 그리고 나얼의 깊고 세밀한 보컬이 만나 원곡을 마치 시대를 초월한 클래식처럼 재탄생시켰다. 특히 ‘한 번만 더’와 ‘귀로’는 원곡의 구성을 존중하면서도 섬세하게 감정을 확장해, 단순한 재해석을 넘어 정제된 재창작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처럼 뛰어난 리메이크는 원곡의 감정과 구조를 온전히 이해하고, 그 위에 가창자만의 시선과 해석을 정교하게 더 할 때 완성된다. 결국 리메이크란 과거의 음악을 다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감성으로 되살려 또 하나의 장르로 탄생시키는 일이다.





그동안 [꽃갈피] 시리즈는 진득한 감성과 원곡에 대한 신선한 해석을 통해, 과거의 명곡들을 아이유만의 언어로 다시 들려주는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번 [꽃갈피 셋]에서는 전작들이 보여준 감성적 깊이와 곡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옅어지고, 해석 역시 다층적이라기보다 평면적이고 1차원적인 수준에 머무른다.


IU 'Never Ending Story' MV


부활의 ‘Never Ending Story’는 점층적으로 감정을 고조시키다 절정에서 터뜨리는 락발라드의 감정 곡선이 인상적이나, 아이유는 이 절정을 피하고 차분하게 감정을 눌러 담는 방향을 택했다. 피아노로 시작해 스트링을 덧붙이고, 이어서 드럼이 가세하며 감정을 밀어 올리는 방식은, 그녀의 ‘Love Wins All’에서 보여준 전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절제는 아이유 특유의 섬세한 감정선을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이 곡에서는 오히려 원곡이 지닌 처연하고 호소력 짙은 정서를 희석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코러스 일부의 밴딩 구간을 드랍으로 처리한 편곡은 흥미로운 시도로 보였으나, 그 외에는 참신한 해석이나 뚜렷한 변화를 찾기 어려웠다. 감정의 밀도를 약화시킨 편곡과 해석은 진득한 감성보다는 안전한 선택에 가까웠고, 그로 인해 리메이크로서의 의의도 흐릿해졌다. 이번 곡 역시 공연용 셋리스트를 염두에 둔 듯한 웅장한 편곡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아이유의 보컬과 곡의 감정선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지지 못해 리메이크에서 기대되는 새로운 감정의 층위를 충분히 끌어내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이 곡이 타이틀곡으로 선정된 점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 외에도 롤러코스터의 ‘Last Scene’은 원곡이 가진 재지함을 덜어내며 오히려 더 재지하게 빅밴드 스타일을 과감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수민과 슬롬의 담백하고 절제된 스타일에 기댄다. 이어지는 ‘미인’ 역시 ‘Last Scene’과 유사한 톤과 태도를 이어가며, 바밍타이거의 유쾌한 스타일에 기댄 채 무난하게 흘러갈 뿐 아이유가 이 곡을 통해 어떤 시선과 감정으로 원곡을 바라보고 해석했는지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는다. 원곡의 정서를 새롭게 확장하거나 구조를 재창조하려는 과감한 시도보다는, 무난하고 안전한 방향으로 선회한 인상이 짙다.


IU '네모의 꿈' Live Clip


‘네모의 꿈’은 과도하게 점철된 게임 사운드적 요소들이 동심을 일깨워주는 콘셉트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혼란스러운 전자음 중심의 편곡은 곡의 진정성을 해치며 과장된 연출처럼 느껴진다. 특히 이 곡은 비슷한 결을 지녔던 ‘후라이의 꿈’과 자연스럽게 비교될 수 있다. ‘후라이의 꿈’이 오랜 시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밝고 희망찬 정서를 과하지 않게, 잔잔하면서도 진솔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반면 ‘네모의 꿈’은 인위적으로 덧입힌 귀여움과 부자연스러운 연출이 감정의 균형을 무너뜨리며 곡은 다채로움보다는 일종의 장르적 과잉으로 느껴지고, 그로 인해 청자가 곡에 깊이 빠져들 여지를 줄인다.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트랙임에도 불구하고, 앨범이 남기는 여운보다는 물음표를 남긴 채 끝나버린다.


결과적으로 원곡의 매력을 최대한 보존하며 안정적인 리메이크를 시도한 ‘빨간 운동화’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곡들이 완성도나 해석 측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아이유만의 독창적 해석보다는 외부 아티스트들의 스타일에 지나치게 의존했고, 각 곡의 정체성보다는 공연용 셋리스트를 염두에 둔 기획 의도가 강하게 드러난다. 그로 인해 앨범은 희미한 정체성과 얕은 정서, 그리고 안전한 머니 코드만을 건져 올린 채 아이유라는 아티스트의 내면을 보여주는 데에는 실패한, 다소 공허한 결과물로 남았다.



JOY 조이 '안녕 (Hello)' MV


이에 비해 백예린의 [선물]과 조이의 [Hello]는 비슷한 또래의 솔로 여성 아티스트로서 리메이크를 통해 자신만의 색을 잘 입힌 사례다. 백예린은 드림팝과 재즈풍의 보컬 톤, 나른하고 몽환적인 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원곡에 자신만의 색채를 새롭게 덧입혔다. 예컨대 ‘그럴때마다’와 ‘산책’은 보컬의 공기감과 간결한 편곡을 통해 원곡의 클래식함을 해치지 않으면서 담담하고도 애틋한 감정을 녹여내고, ‘Antifreeze’는 검정치마 날 것의 매력을 담백하고 미니멀한 편곡으로 재구성해 앨범 전체를 백예린 특유의 감성을 일관되게 투영하며 하나의 일관된 정서로 포장하는 데 성공했다. 조이의 [Hello] 앨범 역시 조이의 발랄한 에너지를 곡마다 섬세하게 녹여 리메이크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안녕(Hello)’에서는 박혜경의 청량한 에너지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조이의 밝고 상큼한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덧입혀졌다. ‘좋을텐데’에서는 성시경의 서정적인 멜로디를 유지하면서도 조이의 풋풋하고 순수한 감성을 덧댐으로써 조이의 음색과 매력에 초점을 맞췄다. 원곡의 구조나 분위기를 과하게 뒤틀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보컬 색깔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조이표 리메이크’라는 정체성을 뚜렷이 구축할 수 있었다.


두 앨범 모두 리메이크가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개성과 음악적 세계를 다시 써 내려가는 하나의 창작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증명해 냈다. 각자의 음색과 해석을 통해 원곡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그 과정에서 리메이크라는 장르가 지닌 가능성을 확장한 셈이다.


반면, 이번 [꽃갈피 셋]은 그러한 리메이크의 미학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한 채, [꽃갈피] 시리즈가 이전에 보여주었던 해석의 즐거움이나 재발견의 감흥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곡마다 아이유만의 시선이나 감정이 깊이 스며들기보다는 무대 위에서의 소화력을 고려한 ‘셋리스트 중심의 앨범’에 머무르며, [꽃갈피] 시리즈가 지닌 리메이크의 본질적 의미를 온전히 이어가지 못했다.






‘좋은 날’과 ‘너와 나’와 같은 댄스곡으로도, ‘밤편지’와 ‘팔레트’와 같은 발라드와 미디엄템포의 곡으로도 대성공을 거두며 16년 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아이유의 커리어도 어느덧 안정기에 접어든 듯하다. 현재 아이유는 댄스곡과 발라드곡을 번갈아 가며 선보이고 있지만,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시도가 점차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해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거나, 트렌디하다고 말하기엔 어딘가 잘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걸친 듯한 느낌이 종종 들기도 한다. ‘Blueming’부터 ‘라일락’, Shopper’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밴드 사운드 계열의 곡과, ‘삐삐’를 시작으로 ‘홀씨’, ‘Flu’, 그리고 최근의 ‘미인’에 이르기까지 반복되는 귀엽고 빈티지한 힙합 스타일은 아이유가 꾸준히 시도해왔지만, 그만큼 스타일이 고착화되며 신선함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 오히려 데뷔 초반, 성숙하고 내면적인 감성에 천착하던 아이유가 연차가 쌓일수록 점점 더 가볍고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음악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인상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대중성과 트렌드에 발맞추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더 넓은 청중층과 소통하려는 노력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아이유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음악의 진정성과 섬세한 감정선이 점차 흐려지고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콘셉트의 변화나 스타일의 전환을 넘어 아이유가 궁극적으로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지금 아이유는 분명한 분기점에 서 있는 듯하다. 그녀가 앞으로 어떤 음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아이유’라는 이름이 지닌 음악적 서사는 전혀 다른 궤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새로운 길을 여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익숙함과 안정에 안주하며 자신만의 목소리를 잃어가는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대중성과 예술성, 유행과 진정성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아이유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금은 그 갈림길 한복판에 선 순간인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녀가 다시 한번 ‘왜 노래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되는 순간일 것이다.







by. 율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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