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MIXX, 신지훈, 황세현, Abir, Léa Sen 외
사키 : 쏟아지는 아이돌의 시리즈 기획 앨범들. 그중에서도 어딘가 별나 보이는 '산화철(Fe3O4) 3부작'이라고 들어는 보았는가? 그들은 앞을 가로막는 벽을 허물고(BREAK), 별난 자신을 세상에 드러냈으며(STICK OUT),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기(FORWARD)에 도달했다. 타이틀 ‘KNOW ABOUT ME’는 트랩 기반의 힙합 비트와 강렬한 신스 사운드의 조화로 몽환적이고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확 터지는 구간이 없어 첫인상은 다소 심심했으나, 메아리치듯 튀어나오는 애드리브나 오묘한 화음 라인 등 미처 캐치하지 못한 사운드들을 발견하며 진가를 알아차릴 수 있는 곡이다.
이처럼 이번 앨범은 'FORWARD'라는 의미 안에서 여러 실험적인 곡들을 선보였는데, 특히 현악기를 사용해 위태로우면서도 경쾌한 오케스트라 분위기를 연출한 수록곡 ‘Golden Recipe’가 가장 인상적이다. 또한 ‘Papillon’은 시시각각 뒤바뀌는 리듬과 무드를 통해 좋은 의미로의 충격을 선사한다. 이외의 곡들 역시 믹스 장르 안에서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으며, 어느 트랙 하나 완성도를 놓치지 않는다. 한마디로 프리미엄 뷔페 같은 앨범이랄까.
엔믹스는 흔히 성공의 공식이 되는 케이팝 음악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모두 잘 아는 '믹스팝'이라는 장르부터 그렇지 않은가. 이번에도 그들은 아무나 쉽게 시도하지 못할 오묘한 색깔의 곡을 들고서 등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엔믹스 세계관에서 제시하는 음악적 메시지는 '한계를 깨부수고 우리만의 길을 개척하는 것'. 'Fe3O4' 세계관의 마지막 장을 이루고 있는 만큼 그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오는 듯하다. 그들이 꼭 대중성을 위한 선택을 할 필요는 없으며,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처럼 도전적이고 세련된 음악들이 모여서, 앞으로의 길을 빛낼 것이라 자신한다. 당신 또한 이 음악을 세 번쯤 듣는 순간 완벽하게 빠져들게 될 것이다.
샤베트 : 재즈 연주에 초점을 맞췄던 정규 1집과 달리 5년 만에 돌아온 신지훈의 싱글 ‘우주섬’은 본격 싱어송라이터로의 첫 도약으로 보인다. 부드러운 일렉기타와 재즈 퀸텟 사운드 위로 동화 같은 가사를 속삭이는 구름 같은 보이스는 파스텔 톤의 그림책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던 그의 말처럼 몽환적인 ‘우주섬’ 아트워크를 직관적으로 연상시킨다. 멜로디 사이사이 들리는 피아노는 재즈 화성의 매력을 짚어주고, 후렴구와 벌스 사이에 등장하던 세션 연주를 2절 후렴구 이후에는 1분이 넘는 길이로 과감히 확장시키며 고도의 재즈 테크닉을 들려준다.
그러나 그 때문에 쉬운 멜로디에도 불구하고 결코 쉬운 음악으로 와닿지 않았다. 아무리 재즈의 정체성이 즉흥 연주라지만, 화려한 재즈 테크닉을 장황하게 남발하고 있다. 대중적인 에센스를 가미했다는 그의 의도가 무색하게 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세션 연주는 멜로디의 흐름을 끊어, 탑라인에 대한 집중을 분산시킨다. 매 간주마다 등장하는 세션과 솔로 연주가 모든 악기를 공평하게 강조하려는 의도라지만, 길고 복잡한 구성은 사라짐과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과 희망을 노래하겠다는 노래의 메시지를 흐린다. 비슷한 포지션의 재즈 싱어송라이터 이진아는 오히려 신지훈보다 더 복잡한 재즈 솔로를 구사하는데, 특유의 동화적인 터치가 담긴 캐치한 탑라인과 무엇보다도 길고 화려한 세션 연주가 언제나 그다음 멜로디로 도약하는 방향으로 귀결되며 탑라인과 궤를 같이한다는 인상을 준다. 마찬가지로 힙합에 재즈를 가미한 오코예(O’KOYE)의 경우에는 거듭되는 변주와 화려한 구성이 그저 정신없는 테크닉의 연속으로 들리지 않도록, 이들의 사운드는 어디까지나 탑라인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물론 이 곡에서 쉬운 가사와 흐물흐물한 멜로디를 통해 나름 이지 리스닝을 추구한 것으로 보이나, 싱거운 느낌만 남기고 노래의 밀도를 떨어뜨려 곡의 전반적인 인상을 가린다. 기타리스트가 아닌 재즈 싱어송라이터 신지훈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중 재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635 : 특유의 허스키한 톤의 음색이 매력적인 황세현은 싱잉 랩을 중점으로 커리어를 쌓아왔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나온 다수의 음악이 기리보이의 '찌질한 사랑 노래'의 향기를 내고 있다. ‘중간이 딱 좋아 (Feat. SOLE)’나 ‘사랑때문에’가 대표적이다. 이번 싱글 ‘어떠캐 (Feat. 민수)’ 또한 마찬가지로 미니멀한 비트 위 보컬과 랩을 오가는 싱잉 랩인 점과 이에 답해주듯 감성적인 보컬의 여성 솔로 아티스트의 피처링이라는 구성까지 기리보이의 몇몇 음악들이 오버랩되는 구성이다. 게다가 이대로 간다면 '기리보이의 유사품' 혹은 '언럭키 기리보이' 정도에 머물 뿐 일 것이다. 지난 1월, 기리보이도 [Pt.1 : 넌 왜 항상 이런 식이야?]라는 여전한 찌질 감성의 앨범을 냈지만 이게 유효했던 때와도 시간이 지난 탓인지 이전 같은 반응과 성적은 볼 수 없었다. 때문에 황세현이 이 길을 계속 가고자 한다면 본인만의 허스키한 음색을 살리거나 ‘말해줘’와 같이 미니멀에서 벗어난 비트를 차용해 보는 등의 +@의 무언가를 더 보여줘야 한다.
사키 : 봄밤에 편하게 듣기 좋은 R&B 팝이다. 리드미컬한 드럼 비트 위 감성적인 기타 리프는 사랑의 몽글몽글한 감성을 이끌어 내고, 파워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보컬이 곡 전체를 여유롭게 이끌어 간다. 자신을 '선물'이라 말하는 당차고도 사랑스러운 가사가 이 곡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이다.
하지만 왜인지 '쉬어가는 단계' 정도로 느껴지는 곡이다. 누구나 다 아는 뻔한 맛의 R&B 디저트 체인점 느낌. 이전 앨범에서는 더욱 리드미컬하고 강렬한 보컬 테크닉을 보여 준다거나, 감각적인 신스 사운드를 잘 활용하는 등 들을 거리가 훨씬 풍성했다. 특히 두 번째 EP [HEAT]에서 아랍 전통 음악 요소와 서구 팝의 형태가 결합된 '아랍팝' 장르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선보이기도 했던지라, 이번 싱글에서 상대적으로 힘을 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가벼운 R&B 장르를 선호하는 리스너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전략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조금은 아쉬운 선택처럼 느껴진다. 이후의 앨범에서는 그녀의 강점인 그루비한 보컬이 150% 묻어날 수 있는 화려한 곡을 들고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간 시도한 적 없는 디스코 리듬이랄지, 신선한 비트 위에 아랍풍 멜로디를 얹어 Abir만의 독특한 장르를 형성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샤베트 : 베드룸 팝을 즐겨 듣는 이들 가운데 과연 곡의 제목과 가수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듣는 경우가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 십중팔구로 알고리즘과 바이럴을 타고 흘러온 이름 모를 로파이(Lo-fi)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듣고 있을 것이다. 사실 Léa Sen(이하 레아 센)의 음악도 내게 그렇게 흘러왔다.
추후 발매될 정규 앨범의 신호탄인 이번 싱글 ‘lvl 6 -VIDEO GAMES’는 미니멀하고 다크했던 이전 EP보다 다소 밝은 분위기의 어쿠스틱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렇지만 간간히 등장하는 서늘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사운드 효과가 차갑고 차분한 감성을 유지시킨다. 뭉근한 사운드와 허스키한 보컬은 극도로 미니멀한 구성 아래 리스너에게 몽환적인 잔상을 남긴다. 위태로운 관계를 비디오 게임에(‘VIDEO GAME’), 이별의 아픔을 떨어지는 잠자리에(‘Dragonfly’) 빗대어 풀어낸 그녀의 시적인 작법은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몽상가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몽환적인 로파이 음악은 심플한 나머지 너무나 단출하고, 어떠한 변주도 등장하지 않아 매우 뻔하다. 이는 비단 레아 센만의 문제는 아닌 게, 베드룸 팝 장르 자체가 편안한 무드로 일관되기에 변화가 지양되어 사운드는 나른해지는 것을 넘어 쉽게 나태해진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베드룸 팝 씬의 일관된 행보는 어느 가수의 어떤 곡을 재생해도 똑같이 코지한 느낌을 받길 원하는 리스너의 니즈를 착실히 반영한, 대중음악에 가장 충실한 장르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스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게으른 사운드로는 플레이리스트 음악 그 이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레아 센이 Joy Orbison, Sampha와의 콜라보에서 보여줬던, 미니멀한 구성으로도 할 수 있는 다채로운 가능성을 본인 음악에서는 시도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
635 : ‘DSTM’은 제목에서도 보이듯 2007년 발매된 리한나의 ‘Don't Stop The Music’을 샘플링한 곡이다. 본 곡에 들어서기 전 ONE OR EIGHT 또한 아이돌이기에 하나 짚고 갈 부분이 있다. 유행하는 장르 음악들의 파생과 혼합의 연속이라는 아이돌 음악의 특징이다. 그런데 2020년대에 들어서 유행한 '드릴'은 시도 자체의 횟수가 적을뿐더러 그마저도 낮은 완성도 혹은 이질감을 보였다. 이런 와중에 ONE OR EIGHT의 직전 작품인 ‘Kawasaki’는 현역 래퍼 Big sean을 직접 데려온다는 방법으로 함께 드릴을 시도하며 도전적인 장르의 시도라는 기획과 함께 높은 완성도의 작업물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이번 ‘DSTM’의 샘플링 또한 색다른 타겟팅 혹은 기획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곧바로 기대를 그치게 했다.
15년도 훌쩍 넘은 원곡을 가져와서 샘플링했기에 트렌디함을 갖춘 비트에 샘플링 곡은 감초 역할로 잘라 넣는 등의 구성을 생각했지만 까놓고 보니 복제에 가까운 결과물이었다. 곡의 시작 부분에 위치한 보컬 샘플이 인상적이었지만 곡을 다 듣고 난 뒤에는 이 복제품 같은 곡의 일부로 느껴지면서 이마저도 옅어진다. 원곡의 프로듀서인 스타게이트까지 데려와서 제작한 게 원곡을 지키는 방향의 독이 되어 돌아온듯싶다.
ONE OR EIGHT의 이번 싱글이 무엇에 중점을 둔 기획인지 모르겠다. 앞서 말한 ‘Kawasaki’처럼 포인트를 제대로 잡고서 이에 맞는 기획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기획은 당연하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Don't Stop The Music’과 같은 히트곡이자 올드 IP를 샘플링할 것이었다면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지금도 먹힐만한 파트만 포인트로 잘라 넣거나 통 샘플을 할 것이라면 원곡 프로듀서까지 데려온 판에 아예 재구성을 하는 방향이 좋았을 것이다. 에이벡스라는 큰 회사 그리고 이미 보여준 좋은 기획까지, 할 줄 아는 팀이 이런 결과물을 내보인 게 상당히 아쉬울 따름이다. 장의 유행과는 다르고 뒤처지더라도 ONE OR EIGHT이 무엇을 하는 팀인지, 한 앨범 혹은 곡을 발매함에 있어서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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