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dinary Heroes, ZIN CHOI, 더보이즈 외
플린트 : 강렬한 록 사운드라는 범주 안에서 다양한 시도로 밴드 리스너들에겐 반가움을 선사해 온 Xdinary Heroes(이하 엑디즈)였다. 그러나 그 중 어느 것도 본인들의 정체성으로 정하지 못하고 이곳저곳 "찍먹"만 하는 듯하다. 예컨대, 저번 앨범도 사운드에서 Royal Blood가 떠오르던 ‘FEELING NICE’를 비롯해, X JAPAN의 록 발라드, 얼터너티브 메탈 등 다양한 장르의 곡으로 구성되었다. 이번 앨범 또한 Linkin Park의 ‘The Emptiness Machine’을 닮은 첫 곡 ‘FIGHT ME’로 시작해 여러 느낌의 펑크 트랙들이 이어진다. 문제는 한 아티스트가 6개월 안에 이 다양한 것들을 다뤄 그룹의 방향성에 혼란을 준다는 것이다. 이 중 엑디즈의 주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장르가 있을까 싶다.
어쨌든 기존의 록 문법을 퀄리티 높게 잘 반영한 점은 분명 호평할 부분이지만, 새로운 사운드 도입 등 재해석 요소가 없어 기시감이 드는 점도 엑디즈만의 개성을 만들지 못하는 원인이다. 고유한 재해석 없이 록을 선보이는 데에 그치다 보니 구시대적 록의 문법들에 얽매여만 있다. ‘Supernatural’처럼 가벼운 곡에서조차 강한 고음과 디스토션 사운드를 일관되게 사용하는데, 올드한 접근을 남용하여 앨범의 흐름을 만들어야 할 곡조차도 피로하게 만든다. 록 음악을 저항정신으로 직결하는 점이나, ‘Beautiful Life’의 "무형의 왕 앞에 경례"와 같은 가사는 록에 대한 케케묵은 스테레오타입 그대로일 뿐이다. 엑디즈를, 그리고 이번 앨범을 설명할 말은 "하드 록 스타일의 음악으로 강하게 표출하는"이라는 보편적이고 뻔한 말밖에 없어 이에 대한 고유하고 명확한 설명을 붙일 수가 없다.
"우리 아이돌 밴드인데 하드한 록 해요!"라는 이미지가 이제는 부족하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아직도 그런 인식을 남기려 록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그냥 "하드록을 한다!" 말고 기획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디테일한 방향이 필요하다. 이제는 저 반복되는 주장을 들어주기가 지친다.
율무 :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를 담아낸 앨범 커버처럼, 닫힌 방 문 너머에는 오롯이 나만 알고 싶은 열일곱 Zin Choi의 이야기가 고요히 머물러 있다. ‘Sunkissed’는 드럼도, 건반도, 허밍도 어느 하나 앞서 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선 채 각자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조용히 일렁이는 감정을 조심스레 감추고 숨기려고 한다. 반면, ‘MAGIC 8 BALL’은 잘게 쪼개진 베이스 라인이 만들어낸 훵키한 리듬을 통해 방 안을 단숨에 나만의 스테이지로 바꿔 놓는다. 이렇듯 [donotdisturb]는 열일곱 Zin Choi의 방 안에 꽁꽁 감추고 싶은 마음과 때로는 바깥으로 꺼내 보이고 싶은 욕망이 맞물리며, 서로 다른 두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앨범은 열일곱의 순수함을 머금은 듯 경쾌하게 튀어 오르는 ‘FUN fire’로 시작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공간 전체를 감싸는 다크한 앰비언트 트랙 ‘Filter’로 마무리되는데, 이렇게 열릴 듯 열리지 않는 방 문은 결국 닫힌 채 남아 있게 되지만, 서로 다른 결이 만들어낸 절묘한 균형감과 응집력 덕분에 Zin Choi의 역량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굳게 닫힌 문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열어가고 있다. 오직 열일곱의 시선이기에 완성할 수 있었던 섬세한 결과물이다.
Noey : 새로운 레이블로 이적 후 선보이는 첫걸음은 여러모로 예상 밖이었다. 신스 팝으로 시작해 R&B, 디스코 팝, 일렉트로 팝 등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선보였지만 그 속에서 더보이즈라는 팀의 정체성은 다소 흐릿한 듯하다. 예컨대 타이틀 곡 ‘VVV’는 그간 더보이즈가 보여온 행보와는 결이 다르고, 빅뱅 전성기 시절의 발라드를 떠올리게 하는 ‘Nothing’, 짙은 디스코 무드의 ‘Miss Demeanor’는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만 같다. 가사는 전반적으로 전형적인 사랑 표현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서로 다른 장르와 색깔로 포장된 트랙들이 명확한 스토리, 혹은 콘셉트의 연결점 없이 병렬적으로 나열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각 트랙을 하나하나 살펴본다면 그 완성도 자체는 충분하나, 앨범 전체로써의 통일감이 다소 떨어지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최근 K팝 시장의 웬만한 팀들은 콘셉트, 퍼포먼스, 사운드 삼 박자를 일정 수준 이상 갖춘 상태다. 결국 현시점의 경쟁은 "무엇을 꾸준히 할 수 있느냐"로 판가름이 난다. 그런 점에서 더보이즈는 아직 새 레이블에서의 적응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전원 이적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하고 난 이후의 첫 행보임을 고려하면, 이번 앨범은 지금 더보이즈에게 필요한 여러 갈래 중, 앞으로 오래 쥐고 갈 수 있는 한 방향을 고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결국 예상을 빗나갔다는 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무언가를 향해 여지를 남겼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루영 : "멜랑콜리(Melancholy)에게 바치는 자장가". Japanese Breakfast의 정규 4집을 감상한 소감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이와 같을 것이다. 전작 [Jubliee]에서 기쁨의 감정을 음악적으로 탐구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이와 반대로 성공 이후 자신에게 새롭게 찾아온 우울과 슬픔을 솔직하게 마주했다. 어머니의 암 투병기를 비롯해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의 문화적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과 우울을 극복하는 과정을 다룬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를 통해 작가로도 이름을 널리 알린 미셸 정미 자우너의 4년 만의 신보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의 정규 4집에 실린 모든 노래는 '우울함이나 약간의 섬뜩함'이라는 주제로 엮여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쿠스틱 기타 리프를 비롯해 포근한 느낌의 사운드와 보컬을 사용하여 본인의 감정을 차분하게 어루만지는 듯한 곡들이 많았던 게 인상적이었다.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몽환적인 신스로 서막을 여는 ‘Here is Someone’부터 고전적인 스트링 사운드가 돋보이는 ‘Orlando in Love’, 포크와 컨트리 등 친숙하면서도 예스러운 장르적 색깔을 더한 ‘Little Girl’, ‘Men in Bars’ 등의 트랙이 그러하다. 1집 [Psychopomp], 2집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에서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찾아온 상실감을 악에 받친 슈게이즈로 표현했던 시기와는 대조적이다. ‘Mega Circuit’, ‘Picture Window’ 등의 트랙에서는 일찍부터 시도해 온 사이키델릭한 음악적 실험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긴 하지만, 그 또한 트랙의 경쾌하고 광활한 분위기에 자리를 양보하는 느낌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신화, 명화를 비롯한 고전 텍스트가 많이 인용되기도 했고, 가사가 은유적이고 함축적이어서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럼에도 이 앨범을 계속 찾게 되는 이유는 그가 구현하는 사운드에서 오는 치유와 해방감 때문이다. 처음으로 전문적인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진행한 만큼 그가 구현하고자 하는 사운드도 복합적인 감정선과 함께 더욱 깊어지고 풍부해졌다. 느리고 잔잔하지만 어딘가 들떠 있는 어쿠스틱 기타 리프를 비롯해 피아노, 스트링, 신스의 포근함 속에 있다 보면, 오늘 겪었던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광활한 무중력의 공간 속에서 둥둥 떠있다 어려움 없이 잠에 들 것만 같다. 언어의 장벽은 넘지 못했지만, 그가 음악으로 전하고자 했던 멜랑콜리한 정서와 이를 향한 위로의 마음들은 이미 충분히 받았다.
Noey : Charli XCX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부터 Tommy Richman ‘Million Dallor Baby’를 연상케 하는 VHS풍 뮤직비디오까지, ‘Breakaway’는 어디까지나 최근 트렌드 안의 안전한 선택처럼 보인다. 아쉽게도 Mae Muller가 아닌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음악이다. 물론 장점은 유효하다. 가사에는 자전적 메시지가 깔려 있고, 무너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목소리는 여전히 진정성 있다.
하지만 그 진심을 뒷받침해 줄 사운드와 연출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렉트로닉 팝의 공식을 착실히 따르며 다이나믹보다는 반복에 가까운 구성, 듣기 편하고 정돈된 연출 – 이 모든 건 팝 시장에서 먹히는 요소이고, 그것 만으로도 곡은 충분히 좋게 들릴 수 있다. 다만 그녀가 이걸 왜 해야 했는지, 그녀만의 색채가 무엇이었는지는 계속해서 의문을 남긴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억에 오래 남을 곡은 아니다. 트렌드를 잘 따랐지만, 끌고 나가지는 못했다. 모두가 비슷한 스타일로 경쟁할수록 결국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만 살아남는 건 어쩔 수 없다. Mae Muller는 그 얼굴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의 방향이라면, 아직은 물음표다.
플린트 : 코로나로 인한 베드룸 팝 붐이 꺼져가니, 베드룸 팝의 몽환적인 신스의 잔향이 사라진 대신 통기타 사운드가 자리 잡았다. Men I Trust의 상징적인 사운드인 피킹 베이스와 폭닥한 드럼, Lo-Fi한 질감은 몇 곡에만 남아있을 뿐이며, 그마저도 리버브를 줄인 채 빈티지한 챔버 팝에 쓰였다. ‘Bethlehem’, ‘The Landkeeper’ 같은 곡에서 들리는 스트링과 미디 사운드는 심지어 산울림의 ‘청춘’과 같은 애절한 한국의 7080 발라드가 떠오르는 시대감을 준다. MZ한 트렌디함은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촌스럽다기보단 중후하고 고풍스러운 의미로 올드한 앨범이 되었다.
이전 작들만큼 귀에 딱 꽂히는 사운드나 캐치한 멜로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주는 특별함도 덜하다. 그럼에도 Men I Trust를 듣는 이유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달래 주며, 단지 3년이 지난 만큼 좀 더 어른스러워졌을 뿐이다. 쓸쓸한 MZ를 표현하던 음색은 어른이 되어 고독을 평온함으로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마치 20살 초반 Men I Trust를 듣던 사람들이 이제는 중반이 되어가며 성숙해지는 것처럼. 누군가 Men I Trust를 "야밤에 불 꺼두고 맥주 캔을 따며 틀기 좋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일요일 오후 티백을 우리며 틀기에도 좋은 느낌이다. 보다 성숙해지고 깊어진 감성은 이제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선사할 수 있을 것 같다.
※ 'Noey', '율무'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