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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5년 4월 1주)

izna, 우효, 텐, Chappell Roan, Hope Tala 외

by 고멘트

"향이 짙은 향신료는 가끔 음식의 맛을 해치는 법"


1. izna (이즈나) – ‘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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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망 : Teddy의 프로듀싱으로 데뷔 전부터 하입을 받던 Izna의 신보 ‘Sign’은 Teddy와 Kush의 프로듀싱이 짙다 못해 낙인처럼 찍혀있다. Teddy의 강점과 단점이 동시에 될 수 있는 특유의 뽕삘이 이젠 예전만큼 대중을 사로잡지 못한다. 또, 테디의 동양적인 멜로디와 서양적인 사운드가 섞인 음악 스타일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음악 자체가 신선하지도 못했다. 물론 이런 부분 덕에 5세대 K-pop 아이돌 중에서 독특한 사운드를 자랑하지만, 그건 독특한 게 아니라 과거 성공한 K-pop 음악을 답습해 생겨난 특이함일 뿐이다.


비단 답습의 문제를 넘어서, 곡 완성도 자체에도 애로사항이 많다. 곡 내 유기성이 느껴지지 않고 여러 노래의 파트를 중구난방으로 이어 붙인 느낌이다. 벌스의 Sine 파형 신디사이저가 몽글몽글한 분위기를 잡아준다. 그런데 후렴구에서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신나는 신스베이스가 등장한다. 후렴구가 끝나자 랩을 하기 위한 파트가 등장하는데 이 세 개의 송폼이 전혀 연관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게 반전으로 느껴졌다면 참으로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반전의 느낌이 아니라 뜬금없는 트랜지션일 뿐이다. 좋은 말로 다양한 특징을 구현해 멤버 개개인의 특색을 살려준 음악이지 그저 목적 없이 떠도는 사운드들의 잘못된 만남으로만 느껴진다.


Teddy의 프로듀싱도 그렇고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했다 보니 데뷔 전 파급력은 상당했다. 데뷔 [N/a]는 앨범 디자인에서의 뉴진스 ‘OMG’ 유사성 사건과 더불어, 음악이 동세대 여자 아이돌과 차별성이 거의 없어 아쉬웠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컴백에서 정체성 구현을 도전한 듯싶었으나 그냥 'Teddy가 만든 아이돌' 거기서 끝났다. 'Teddy의 프로듀싱'이라는 꼬리표는 Izna를 5세대 여자 아이돌들의 달리기 경주에서 좀 더 앞선 스타트를 끊게 해 준 것은 확실하다. 그만큼 Teddy라는 이름값에서 발생하는 관심도는 크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꼬리표가 오히려 Izna의 속도를 늦춰버리고 있다. 앞으로 Izna에게 필요한 건 단순히 Teddy의 음악이 아닌, 'Teddy가 만든 Izna만의 음악'이다.





"우효가 낯설게 바라본 기아의 가치"


2. 우효 - ‘너를 부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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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 2023년 기존 곡들의 리메이크작 EP [돌아온 우효] 이후로 한동안 신곡 소식이 뜸했던 우효가, 이색적이게도 기아의 브랜드 캠페인에 의해 오랜만에 불려 나왔다. 아티스트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기아의 철학을 재해석해 보고자 그녀를 부른 것이다. 즉, 이번 작업은 기존의 것을 낯설게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관점을 얻는 '낯설게 하기' 기법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효의 관점에서 기아라는 브랜드를 낯설게 바라본 결과, 그녀가 포착한 것은 자동차의 '움직임'이었고, 그 '움직임'에서 기계의 거친 질감과 도시인의 쓸쓸함이라는 감정을 도출해 냈다. 일렉기타의 거친 연주 위에 얹힌 '잃어버린 엔진', '내 사랑은 너를 향해 움직여' 등의 가사는 충성적이고 쓸쓸한 존재로서의 자동차를 의인화한 듯 다가온다. 특히나 종결어미 '-요'로 끝내는 가사, 그리고 후렴 뒤로 이어지는 간주를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는 것은 ‘Vineyard’ 나 ‘청춘’ 등에서 숱하게 들어왔던 우효만의 작법으로, 누가 들어도 우효의 곡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이번 곡에서는 낙하하는 신스 멜로디를 통해 우효 특유의 여리고 우울한 감정이 치닫는 클라이막스를 만들어냈다. 자동차의 움직임에서 감정이 이토록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결과적으로 제3자의 눈으로 브랜드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던 기아의 바람에, 기대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해 준 곡이었다. 우효만의 멜랑꼴리한 소녀 감성, 그리고 수준 높은 공감 능력이 없다면 지어지지 못할 가사로 기아차가 지닌 '움직임'에 새로운 차원을 선사했다. 아티스트로서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작업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 작업이 과연 기아차의 브랜딩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기아의 기존 이미지를 확장하고 브랜드 가치를 더한 계기가 된 것은 맞지만, 통상적으로 생각되는 기아의 4050 타깃층에게는 너무 낯설게 다가갈 콜라보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찌 되었든, 우효를 애타게 부르고 있던 팬들에게는 우효를 불러내어 준 기아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제 점수는요, '텐'입니다."


3. 텐 (TEN) – [ST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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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틀곡 ‘STUNNER’는 강렬한 베이스와 그루비한 보컬이 조화를 이루며 칠한 바이브가 돋보이지만, 오로지 음악만 감상했을 때 임팩트가 강한 느낌은 덜하다. 그렇다고 아쉽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음악의 빈 공간을 텐의 강점인 퍼포먼스로 채워주면서 타이틀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여유로움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래만 들었을 때보다 퍼포먼스와 같이 감상했을 때 비로소 좋아지는 노래가 있지 않은가. 이처럼 종합예술의 느낌이 강한 케이팝의 특성을 이용해 텐의 매력을 잘 보여준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이어지는 트랙들은 음악적 도전과 더불어 앨범의 흐름을 만들어주며 완성도를 올려주고 있다. ‘BAMBOLA’는 실험적인 사운드와 구성이 인상적인 트랙으로, 조금 더 익숙한 맛의 타이틀곡 전에 선공개 함으로써 음악적인 시도와 대중이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을 모두 효과적으로 가져갔다. 특히 팝적인 보컬로 그루비한 느낌을 잘 소화해 내는 텐 특유의 보컬이 음악과 잘 어우러졌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Enough For Me’나 ‘Butterfly’는 다른 트랙에 비해 신선한 느낌은 덜하다. 그러나 반복되는 신스 사운드나 로파이 한 질감의 피아노 등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곡의 포인트를 더하며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트랙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앨범 전체 완급조절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이번 앨범은 텐이 솔로 가수로 데뷔한 이후 두 번째로 발매하는 앨범이다. 즉 데뷔 이후 앞으로 어떻게 음악을 전개할 것인지 방향성을 보여주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텐은 그동안의 활동에서 음악이 가진 바이브를 퍼포먼스와 보컬적으로 잘 표현해 내는 아티스트임을 보여줘 왔다. 이번 앨범은 이러한 강점을 여유로운 바이브로 보여주고, 새로운 음악적 시도 역시 ‘BAMBOLA’ 같은 트랙을 통해 적절히 담아내며 '음악의 느낌을 살리는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입지를 굳히려는 명확한 방향성을 보여주었다. 이것만으로도 이 앨범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충실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첫걸음을 디딘 초석 위에 탄탄히 잘 갈고닦은 두 번째 돌을 올린 듯한 앨범이었다.





"반어법은 이렇게 쓰는 거야"


4. Chappell Roan – ‘The Giver’

: 이번 싱글은 컨트리스러움이 가득 담긴 피들 라인과 기존에 Chappell Roan이 자주 보여준 밴드 사운드가 조합된 곡이다. 퀴어적 정체성, 그래미에서 보여준 비판적인 수상소감 등 최근 가장 진보적인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는 Chappell Roan이 팝 중 가장 보수적인 장르인 컨트리를 가져왔다는 것이 꽤나 흥미롭다. 다만 Chappell Roan이 보여주는 색채를 좋아하던 대중들이 따라갈 만한 음악적 매력이 명확히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Chappell Roan은 그동안 ‘Pink Pony Club’이나 ‘Good Luck, Babe!’ 등으로 대표되는 신스팝 위주의 음악을 해왔고, 이는 그의 음악적 정체성이나 퍼포먼스에서 나타나는 파격적이고 판타지적인 느낌을 잘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극히 어쿠스틱한 스트링 사운드나 장르가 주는 현실적인 느낌이 그의 매력을 반감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싱글은 전략적인 측면에서 아주 흥미롭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그 남자보다 내가 더 자신 있으니까 내가 다 줄게.'라고 말하는 듯한 가사의 내용이었는데, Chappell Roan의 음악이 가지는 파격적인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지점이었다. 또한 컨트리라는 장르를 가져온 것에 대한 맥락도 흥미롭다. 진보적인 가사와 보수적인 장르의 대비를 통해 반어법적으로 그의 진보적인 면을 파격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단순히 '음악'만 들었을 때는 Chappell Roan에게 기대해 온 음악이 아니라 아쉬운 지점이 있을 수 있는 싱글이었으나, 파격적인 아티스트는 예상치 못한 지점을 툭 건드릴 때 더 재미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싱글은 Chappell Roan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아티스트인지 대중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그 다운 싱글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Hope Tala가 분좋카에서 스트리밍 될 수 있는 16가지 이유"


5. Hope Tala - [Hope Handwri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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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 한남동 어느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틀어 놓기만 해도 '느좋'을 연출할 수 있는 앨범이 있다. Hope Tala의 음악이 이렇게 표현될 수 있는 이유는 일상적으로 들어왔던 R&B와 소울 사운드에 보사노바와 라틴 감성을 한 스푼씩 더했기에, 요즘 말하는 느긋한 바이브에 개성을 더한 '느좋'에 완벽히 부합되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은 'Handwritten'이라는 단어에서도 볼 수 있듯, 그녀의 매력인 부담스럽지 않고 여유로운 사운드 위로 내면의 고찰을 담은 가사를 더욱 진솔하게 담아내 친밀한 느낌을 극대화했다.


Prologue 트랙 ‘Growing Pains’는 'Tryna grow a thicker skin'이라 시작하며 이 앨범이 궁극적으로 그녀가 성장 과정 속에서 사유한 것들을 담았다는 걸 안내한다. 타이틀 중 하나인 ‘Magic or Medicine’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한 치료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로, 특히나 그녀의 매력과 강점을 가장 잘 살린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무심하게 끊기는 그녀의 영국 악센트가 자연스러운 리듬감으로 형성되는 것이 특징인데, 엇박으로 나오는 기타 반주와 빈티지한 질감의 드럼이 어우러져 미니멀한 트랙 구성이 줄 수 있는 매력이 십분 발휘된다. ‘Breaking Isn't What a Heart Is For’는 EP와 어쿠스틱 기타, 스트링으로만 이루어진 곡으로 소프트한 느낌을 자아낸 한편, ‘Bad Love God’는 빠른 템포와 명확한 코러스를 통해 팝적인 색깔이 두드러지는 트랙으로 그녀의 앨범이 소프트하게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위험한 사랑을 마주하고 회개한다는 발칙스러운 가사를 담아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대중성까지 잡아냈다. ‘Survival’은 세련된 트랙 위로 노예제도와 생존에 대해 은유적으로 노래하며 영문학 전공다운 그녀만의 지적인 개성을 엿볼 수 있었다.


Prolouge부터 The End라고 표기되어 있는 총 16곡 안에서 R&B와 보사노바가 어우러진 세련된 사운드와 어쿠스틱한 감성, 팝적인 접근까지 유려하게 보여주며 무엇 하나 지루하거나 튀는 것 없이 정성스레 구성된 앨범이었다. 단순히 분위기가 좋은 음악을 넘어, 러닝타임 53분 동안 그녀 내면의 고찰들을 진솔하게 펼쳐낸 가사들로 그녀의 사적인 저널을 읽은 느낌을 자아내기까지 한다. 부담스럽지 않은 사운드와 가볍지만은 않은 가사, 이 매력이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와 분좋카에서 그녀의 음악이 꾸준히 스트리밍 되는 이유 아닐까.





"타이밍은 지금이었다. 하지만 해내지 못했을 뿐"


6. Playboi Carti – [Music]

르망 : 코로나 시대 이후 세계 최고의 트렌드세터로서 행보를 보여준 Playboi Carti(이하 카티)는 전작 [Whole Lotta Red]에서 얻은 록스타의 이미지를 벗어던지며 자신의 뿌리인 '힙합'으로 돌아왔다. [Music]은 힙합의 과거와 현재를 음악적인 요소로 풀어낸 음반이다. 말도 안 되는 총 사운드, 뜬금없는 프로듀서 태그 그리고 싼 티 나는 스네어 롤은 2000년대 Atlanta에서 발생한 Trap 믹스테잎에서 자주 사용되던 사운드이다. 또 앨범 자켓의 'I AM MUSIC'과 가사들로 Atlanta 음악의 대표인 Lil Wayne을 언급한다. 이런 이유로 이 음반은 그의 고향이자 음악적 뿌리인 Atlanta 음악 역사를 보여줌과 동시에 현재 그의 정체성이라 볼 수 있는 Rage까지 동시에 선보였다. 전작 [Whole Lotta Red]는 뱀파이어 컨셉과 'Rockstar'를 워딩으로 가져오며 새로운 사운드의 접근을 보여줬다면, [MUSIC]은 힙합 문화를 가져오며 과거 유행과 현재의 유행을 동일선상에 올린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만, 이건 문화적으로 봤을 때의 가치이지, 과연 이 음반이 빌보드를 폭격할 정도로 좋았을까? 음악성으로는 분명 아쉬운 음반이다. 믹스테잎을 복각하다 믹스테잎의 특성인 아마추어리즘까지 복각하여 대중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가장 큰 문제는 34곡이라는 과도하게 많은 트랙이 앨범의 집중도를 해친다는 것이다. ‘K POP’, ‘FINE SHIT’ 그리고 ‘OPM BABI’등 만들다 만 느낌의 음악들도 중간중간에 섞여 있어 사람들에게 객관적인 ‘호’를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시대적으로나, 음악사적으로나 카티의 [MUSIC]은 Nirvana의 [Nevermind]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 둘 다 록과 힙합 장르의 쇠퇴하는 순간 나타난 아이콘의 신보이다. 또, 둘 다 각 장르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주며 대중의 호평을 받았다. 단, [Nevermind]는 작품성까지 챙기며 불후의 명반이 되었지만 [Music]은 작품성에서 한참 뒤떨어진다. 이미 [Music]은 빌보드 차트를 점령했다. 모든 곡이 차트인을 했지만, 이는 [Music]의 음악적 완성도가 아닌, 카티의 화제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곡 수를 줄이고 Atlanta 믹스테잎의 좋은 점만을 복각하여 뱅어와 수록곡의 앨범적 유기성을 만들었다면, 이 음반은 신세대의 대표 음악으로서 역사에 남았을 것이다. 분명.





※ '르망', '유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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