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GOGIDISCO, 신인류, 허회경, Aidan Bissett 외
아인 : BULGOGIDISCO가 돌아왔다. 근데 이번엔 땀나게 뛰기보단, "야 우리 쿨하게 놀자"하고 손 내미는 느낌이다. 신곡 ‘GOOD TIME’은 제목부터 좋은 시간만 보장하겠다는 패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예전의 ‘DAGAGA’나 ‘Go’에서 강한 기타 리프와 격렬한 드럼으로 밀어붙이던 방식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베이스, 컷팅 기타, 드럼만으로 이루어진 미니멀한 사운드 안에서 그들만의 흥을 절제된 방식으로 풀어낸다. 베이시스트 황성욱의 안정감 있는 연주는 곡의 중심축을 단단히 잡아주고, 군더더기 없이 비워낸 구성은 리듬의 반동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덜어냄을 통해 긴장을 푸는 순간에도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되는 리듬감, 이 점이 바로 이 곡의 핵심 미덕이다.
‘GOOD TIME’은 단순히 템포를 낮춘 것이 아니라, 사운드의 여백과 반복 구조를 통해 리듬 자체로 분위기를 끌어가는 곡이다. "It's a good time"이라는 반복 후렴은 강한 훅으로 작용하고, 거친 톤의 보컬은 비워진 공간 위를 리듬감 있게 채운다. 이 곡은 뭔가를 설명하려 애쓰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무드를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말이 많지 않아도 되는 곡이랄까. 이건 무드를 타고 노는 노래고, 실제로 뮤직비디오도 그 무드를 정확하게 받아친다. 예전처럼 B급 유머를 대놓고 밀어붙이진 않지만, 이번에는 회사라는 익숙한 공간 안에서 'GOOD TIME'을 외치는 방식으로 더 친근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정장을 입고, 복사기를 지나치며, 심각한 회의실 안을 어슬렁거리면서도 합주는 멈추지 않는다. 따분한 일상 속에서도 엉뚱함을 유지하는 그 모습이, 전작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BULGOGIDISCO 특유의 장난기를 살렸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예전처럼 확 끌어올리는 다이내믹이나 디스코풍 사운드를 기대한 이들에겐 이번 곡이 상대적으로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비워낸 만큼 채워진 것'이 분명 있지만, 곡 전체의 기승전결이나 밀도 면에서는 조금 더 상업적인 디테일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결국 변화란, 그것을 감지해 줄 청자가 있어야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BULGOGIDISCO는 여전히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흥'을 새로 써 내려가고 있다. 한 곡으로 "우리 요즘 이런 거 하고 있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밴드는 많지 않다. 그 점에서 ‘GOOD TIME’은 흥겨운 시도였고, BULGOGIDISCO의 태도는 여전히 인상적이다.
광글 : 신인류를 처음 알게 된 건 ‘작가미정’이었다. 그때의 신인류는 고요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파란 하늘의 한낮보다는 조용한 저녁노을에 가까운 톤이랄까. 반복되는 잔잔한 드럼이 가장 하단을, 그 균형을 깨뜨리지 않고 조용히 얹어지는 신스 사운드와 베이스, 그리고 서툴렀던 청춘에 대한 후회와 회고를 꾸밈없이 전달하는 목소리까지. 그러나 이전의 삶을 종료하고 새로 태어난 첫 정규 앨범 [빛나는 스트라이크]는 여전히 청춘을 노래하지만, 그 방식은 달라졌다. 이전이 한 방향의 감정을 정직하게 비췄다면, 이번 앨범은 훨씬 복잡하고 다면적인 청춘의 얼굴을 그린다. 추상적인 사운드와 비현실적인 이미지 속에서 얼굴은 여러 감정을 보이며 그 중심엔 '영혼 빌리지'라는 허구의 세계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과거의 화질이 아주 낮은 필터를 씌운 것 같다. 마치 꿈을 꾼 뒤 희미하게 남는 잔상처럼. 로파이한 질감과 [희망서]부터 이어진 아이 같은 간드러진 보컬 톤은 그 필터 역할을 해내며, 서로 다른 감정의 조각을 하나로 엮는다. '영혼 빌리지'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은 그 연결의 틀이 되고, 곡마다 다른 감정의 파편들이 이 세계관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게 된다. ‘리턴 투 피크닉’은 청춘의 서툰 혼란을 불분명한 일렉 기타와 뭉툭한 신스 사운드로 풀어낸다. 혼란스럽던 정서는 ‘Huf’의 흥겨운 허밍을 지나 타이틀 ‘정면돌파’에서 한층 더 성장한 입장을 드러낸다. 시작부터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드럼과 신스는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자유로움을 추구하겠다는 달라진 의지를. 마지막 '정면돌파하러 간다'의 반복은 스스로에게 걸어보는 주문처럼 들리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한다. 마치 불안함을 극복하기 위한 자기 최면 같달까.
이 결심은 ‘Kaibutsu’에서 다시 흔들리는 듯 하지만, ‘용이 되고 싶은 아이’는 흔들리는 모험 속에서도 함께라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작은 용기를 품는다. 기타가 이끄는 절제된 초반부는 그런 용기의 메세지를 더욱 집중하게 했다. 중반부터 악기들은 하나씩 고조되며 끝에 다다르는 순간 모든 사운드가 뿜어져 나온다. 덕분에 자칫 무거워질 뻔한 앨범 흐름을 명랑한 분위기로 다시 전환한다. 마지막 트랙인 ‘일인칭 관찰자 시점’은 가장 말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지며 자연스럽게 초창기의 신인류가 떠올랐다. 그 목소리는 모든 이야기들을 옆에 있는 나에게 조용히 건네는 것처럼 들린다. 다시 시작한 신인류의 대장정은 옛날처럼 고요하지만은 않다. 물론 마냥 밝지도 않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느리게 부유하는 듯한 신인류의 현재는, 슬픔도 기쁨도 혼란도 모두 청춘의 일부임을 말한다. 그런 감정들을 한 공간에 머무를 수 있도록 설계한 ‘영혼 빌리지’라는 장치는 그래서 더 돋보였달까. 이제 보니 청춘은 울기만 하지 않는다. 웃다가 울고, 걷다가 멈추는 이상한 생물인 것 같다. 그런 청춘의 입체적인 얼굴들을 표현한 이번 시도는 신인류의 두 번째 여정을 응원하게 만든다.
635 : 허회경의 음악이 흑백 사진관이라면, 그 한가운데 화려한 사진 한 장 같은 음악이 등장했다. 내 마음이 마음처럼 안 되는 게 '이상해'라는 메시지는 여전한 허회경식의 위로이자 공감이지만 본 곡에서는 이와 상반되는 화려한 분위기를 보인다. '이상해'라는 제목에 걸맞게 '?'를 연상시키는 곡 앞뒤의 오르간 사운드와 통통 튀는 리듬 위에 어딘가 상기된 보컬은 이상한 재미를 주는데, 이런 포인트들은 기존의 허회경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무채색의 위로와는 다르게 색감이 느껴진다. ‘이상해’와 같은 색다른 시도는 허회경이 음악을 함으로써 전달하려는 큰 주제인 위로와 공감은 유지하되 그 표현 방식이 넓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시도들이 허회경의 사진관에 어울리기만 한다면, '흑백'이라는 제한을 조금씩 풀어주고 더 다양한 표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635 : 이해하기 쉬운 음악 = 좋은 음악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이해하기 쉽다고 한들 잘 된 기획, 음악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질문이다. 반복해서 되돌아오는 사랑을 동의어로 표현한 ‘ricochet’도 그중 하나이다. ‘ricochet’은 내용과 제목의 일치를 넘어 반복되는 구조의 사운드까지 가져가며 통일성을 더욱 짙게 만들며 이해를 돕고 직관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까. 말 그대로 단순 반복 형식의 구성이다 보니 이렇다 할 임팩트가 없다. 이에 더하여 ‘ricochet’의 스트링+드럼의 인트로는 자칫 '경박'하게 들릴 수 있다. 인디 록/팝을 듣는 리스너들에게 이런 부분은 치명적일 수 있으며, 다시 말해 ‘ricochet’을 들을 이유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Aidan Bissett이 ‘ricochet’으로 이런 점을 느꼈다면, 유행에 편승하더라도 미니멀한 구성으로 본인의 미성과 함께 감성을 끌어올린다거나, 극단적으로는 창법을 바꾸는 등의 선택으로 '킥'을 주어야 할 것 같다.
광글 : 이름처럼 Sexy가 콘셉트인 건 알지만, 선정적인 가사와 섹슈얼한 비주얼 만으로 어필하는 건 수명이 짧다. 이를 여성의 주체적인 당당함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몇 번 하다 보면 끝난다. 노골적인 여성의 성적 표현이 드러났던 바로 이전 싱글 ‘Fat Juicy & Wet’에서도 느꼈지만, 그 한계가 여실히 보이는 싱글이다. Hoochie Coochie라는 스트립 댄스를 모티브 삼아 기존 아이덴티티를 이어가지만 Hoochie Coochie를 지우고 남은 일관된 트랩 비트와 툭툭 던지는 래핑은 ‘Pound Town’이나 ‘SKeeYee’과 무서울 정도로 비슷하다.
그나마 차이점을 두었던 오리엔탈 사운드도 너무도 많이 쓰였던 요소라 지루하다. 차라리 과거의 스트립 댄스가 남성이 향유하는 선정적인 문화에 갇혀왔었다면 오히려 이 콘셉트를 전복적으로 뒤틀어 메시지 측면에서라도 새로움을 보여줘야 되지 않았을까. 아무리 트랩이 캐주얼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곡은 AI가 학습한 '섹스어필 여성래퍼의 클리셰'를 조합한 것처럼 들린다.
아인 : 몽환적인 무드와 감각적인 비주얼, 그리고 스페인어와 영어를 넘나드는 이중언어 감성까지, The Marías는 그 자체로 하나의 스타일을 선보인다. 꾸준히 자신들만의 감정을 세련되게 쌓아온 이들의 신곡 ‘Back To Me’는 느릿하게 말을 건네듯 시작하지만, 끝날 즈음엔 어느새 귀를 단단히 붙잡고 있다. 특히 인트로에서는 드림팝의 흐릿한 공기 위에 차가운 신시사이저 질감과 묵직한 베이스가 얹히며, 감정이 밀폐된 듯한 공간감을 형성한다. 이는 마치 악몽 속에 갇힌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코러스로 넘어가는 순간 rate를 빠르게 변화시키는 오토메이션이 청각적인 '균열'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곡 전개 방식은 억눌린 감정이 조용히 터져 나오는 순간처럼 다가오며, 곡의 서사적 구조를 은근하게 견인한다.
전작 ‘Hush’가 관능적인 베이스와 도발적인 무드로 감정을 전면적으로 드러냈다면, ‘Back To Me’는 정반대로 곡 전체를 관통하는 신스 리프와 반복되는 리듬 사이에서 미묘하게 밀고 당기는 묵직한 베이스의 조화를 통해 내면의 불안을 조용히 눌러 담는 방식으로 감정을 풀어낸다. 미니멀하게 정제된 악기 구성은 감정을 더욱 날것처럼 드러내고, "Is she all that you want?"라는 반복적인 질문은 그 감정의 무게를 배가시킨다. 희미한 불빛 아래 혼잣말하듯 흘러가는 보컬은 떠나간 사람을 되돌리고 싶지만 그럴 용기는 없는 마음을 섬세하게 대변한다. 감정적으로는 미련과 질투 사이, 음악적으로는 단순함과 깊이 사이를 유영하는 듯하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Back To Me’가 이별의 순간을 과장되게 슬퍼하거나 감정적으로 폭발시키지 않고, 그 감정이 현실적으로 밀려드는 시점을 정교하게 포착했다는 것이다. 이별은 대개 그 순간보다도, 사랑했던 사람의 빈자리가 구체적으로 느껴질 때 비로소 깊게 와닿지 않는가. 이 곡은 그런 공허함을 절제된 구성과 차가운 신스 질감, 그리고 여백을 통해 표현한다. 마치 꿈속에 홀로 남겨진 듯한 이별의 감정을 감각적으로 펼쳐 보인다. 슬픔을 토해내는 이별 노래와는 달리, ‘Back To Me’는 감정을 억제한 채 상황의 깊이와 정서를 함께 전달한다. 이는 The Marías가 감정 설계를 얼마나 섬세하게 해낼 수 있는 팀인지 잘 보여준다. 그 점에서 이 곡은 단순한 무드 트랙이 아니라, 정서적 해석이 가능한 이별의 미학을 담은 곡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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