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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5년 3월 3주)

The Volunteers, 예지, 제니, Bon Iver 외

by 고멘트

"록에도 규칙이 필요한가"


1. The Volunteers (더 발룬티어스) - ‘Ru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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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 : "난 규칙 없는 삶을 살고 있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The Volunteers의 신곡 ‘Rules’는 완전한 자유를 갈망하는 듯하면서도, "제발 나를 규칙으로 가둬줘"라는 모순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이는 단순한 자유에 대한 찬가가 아니라, 자유 속에서도 불안과 혼란을 느끼는 인간적인 내면을 담아냈다. 사운드적으로는 단단한 기타 리프와 안정적인 리듬 섹션이 곡의 중심을 잡아주며, 인털루드에 삽입된 기타 솔로와 드럼 필인이 긴장감을 형성한다. 특히, 거친 밴드 사운드 위에서 섬세하게 피어나는 백예린의 보컬은 곡이 담고 있는 이중적인 감정을 고조시킨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무난하고 직선적인 흐름을 유지하여 극적인 전환점이나 예상치 못한 전개가 부족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브리지나 클라이맥스에서 보다 과감한 변주 또는 보컬과 악기의 극단적인 대조가 있었다면, 곡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더욱 강렬하게 와닿았을 것이다.


The Volunteers가 처음 주목받았던 이유는 R&B 음악을 하던 백예린이 프런트맨으로서 얼터너티브 록과 그런지를 지향했다는 점이다. ‘Violet’이나 ‘Time to Fight’ 같은 초기 곡들은 거친 질감의 기타 톤과 러프한 믹싱으로 청중의 귀를 단번에 사로잡지 않았는가. 그러나 구름의 탈퇴 이후, 밴드의 사운드는 점점 정제되었고, 초기의 거친 질감 대신 감성적인 접근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는 구름의 프로듀싱이 초기 The Volunteers의 록 사운드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하며, 현재의 변화가 필연적인 흐름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구름이 최근 김뜻돌과 협업하며 노이즈 록과 슈게이즈 요소를 대담하게 도입한 점도 이러한 변화를 더욱 부각시킨다. 김뜻돌의 음악에서 구름은 두터운 기타 레이어와 실험적 효과음을 통해 독특한 입체감을 만들어냈고, 이는 The Volunteers의 초기 사운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요소들이다. 이 비교를 통해 보면, 구름의 부재가 밴드 사운드에 미친 영향을 더욱 명확하게 체감할 수 있다.


현시점에서 The Volunteers의 행보는 얼터너티브 록과 팝의 경계에서 다소 애매한 인상을 남긴다. 초창기의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를 기대했던 리스너들에게는 아쉬운 변화일 수밖에 없다. 한때 마이너한 록 사운드를 고집하며 돌파구를 만들었던 이들의 패기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결국, The Volunteers의 강점은 과감한 에너지와 개성적인 록 사운드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정제된 스타일은 새로운 시도라기엔 밋밋하고, 이들이 초기에 보여줬던 거친 질감과 강렬한 표현력이 사라지고 있다. 감성적인 접근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도 있겠지만, 밴드 본연의 색을 지키기 위해선 초창기의 록적인 과감함과 실험 정신을 다시금 되찾아야 할 때다.





"최선을 다했으나, 한 끗이 아쉬운"


2. 예지 (ITZY) - [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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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글 : 그룹의 첫 솔로 아티스트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보통 삼위일체가 이루어져야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데, 그룹의 색으로 밑바탕을 칠한 후 그 멤버만이 할 수 있는 강점 하나로 색칠을 한다. 마지막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포인트 하나로 화룡점정을 하는 것이다. JYP엔터테인먼트의 경우, 나른한 섹시를 보여줬던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가 있고, 또한 나연만이 할 수 있는 과즙미가 돋보였던 ‘POP!’은 중독성 있는 챌린지가 화제였다. 표류했던 ITZY가 지난 ‘Imaginary Friend’에서 비장하면서도 몽환적인 콘셉트를 통해 새로운 자기애를 찾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으면서 예지의 이번 음악도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매력이 기반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지의 올라운더 재능과 고양이 상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고혹적인 신스팝 무드의 음악을 들고 왔다.


타이틀곡 ‘Air’는 절제된 훅과 묵직한 비트 사이의 조화가 특징인 곡이다. 특히 빌드업되는 사이렌 뒤에 이 음악의 킥인 ‘Takin’ my air’ 부분이 등장하는데 마치 공중으로 붕 뜨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선사한다. 이어 반복되는 무거운 베이스에 치고 나오는 보컬은 톡 쏘는 시원한 무드를 주며 마치 2000년대 패션쇼에서 걷고 있는 모델의 시크한 워킹이 떠오른다. 이렇게 공간감 있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곡 제목인 ‘Air’를 나타내려고 했음을 짐작케 하며, 디스토션된 보컬과의 조화는 마치 Charli xcx의 ‘Gone’, ‘360’을 연상하게 만든다. 또한 자동차 보닛 위에 올라가 내부를 바라보고 있는 티저의 메탈릭한 무드는 더욱 기시감을 유발한다. 그러나 ‘Air’는 Charli xcx의 콘셉트보다 정제된 느낌이 강한 점이 아쉽다. 만약 더 과감한 무드를 표현했다면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을까? 예컨대 MV 속 빨간색이라는 장치를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고양이 상 특유의 시크함이 잘 드러나며 새로운 시도인 단발과 함께 첫 눈을 사로잡는 무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 ‘Can’t Slow Me, No’는 오히려 예지 특유의 농염한 매력을 잘 살려주는 곡이다. 라틴 리듬 위에 다양한 보컬 톤의 조합은 리스너에게 듣는 재미를 주며, 훅은 고양이가 간을 보는 것 같은 키치함이 잘 드러난다. 결국 ‘Air’는 예지라는 아티스트를 확실하게 기억에 남기기보단 예지가 가진 재능의 다양함을 확인할 수 있는 수준에서 그치고 말았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그룹이라면 솔로는 약점을 보완하기보다는 자기가 가진 능력 중에 제일 잘할 수 있는 하나를 보여줘야 한다. 단편적으로 올라운더 특성이 강한 ITZY의 류진이나 채령과 같은 타 멤버가 이 노래를 불렀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묘한 공감을 할 수 있다. 선미가 성인이 보여줄 수 있는 주체적인 섹시함을 내세우고, 나연이 특유의 큐트하고 에너제틱한 무드를 통해 차별화를 했던 것처럼 예지 또한 갖고 있는 장점 중 최고가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은 흑백으로만 구분할 수 있는 스케치에서 드로잉이 멈춘 느낌이다. 다음 단계는 수채화를 할지 유화를 할지 정해 확실한 색깔을 칠해야 할 것이다.





"보석함에 잡동사니가 너무 많아요"


3. 제니 (JENNIE) – [Ru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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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 : 그룹으로 데뷔했을 때부터 제니는 아티스틱한 느낌보다는 패션 아이콘의 이미지를 강하게 내세우곤 했다. '인간 샤넬', '인간 젠틀 몬스터' 등등… 그래서 제니가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다른 멤버들에 비해 큰 기대감이 들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제니에게 기대한 건 아이코닉한 모먼트였지, 음악적인 부분은 아니었기 때문. 그러나 올해 초에 공개된 선공개 싱글들이 상당히 공을 들인 사운드와 함께, '제니'하면 떠오르지 않는 음악 장르를 가지고 오면서 대중에게 신선함을 안겨줬다. 기존에 제니가 보여줬던 음악성이 힙합에 EDM 구성을 붙이는 전형적인 YG식 곡 전개였다면, ‘ZEN’은 인더스트리얼한 분위기의 팝 랩, ‘Love Hangover’는 얼터너티브 팝에 네오 소울을 섞는다. ‘ExtraL’이 힙합에 댄스 팝을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기존 노선과 비슷하지만서도, 트랩 사운드에 R&B, 저지 클럽을 얹는 등 트렌디한 접근이 돋보였다.


본 앨범의 수록곡들 역시 하나하나 신경 쓴 티가 보인다. 타이틀곡인 ‘like JENNIE’는 브라질 펑크를 가미한 일렉트로닉 팝 트랙으로 2분 남짓한 시간 동안 하염없이 '제니'를 외친다는 강수를 둔다. 브라질 펑크라는 장르가 메인스트림 팝 시장에 등장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빠른 시점에 해당 장르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Kali Uchis와 Childish Gambino가 피쳐링으로 참여한 ‘Damn Right’ 역시 90년대~00년대의 R&B 트랙을 재현하며, 미니멀한 비트 위에서 세 사람의 보컬이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만 앨범 전체의 응집력은 아쉬움이 남는다. 에너제틱하게 분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R&B 트랙이 찬물을 끼얹는데, 앨범의 초반부터 그러한 양상이 보인다는 게 문제다. ‘like JENNIE’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이어가지 못하는 건 이해를 한다 해도, ‘start a war’부터 ‘Handlebars’까지 연타로 그 에너지를 분산시키면서 초반부터 힘을 빠지게 한다. 게다가 두껍게 깔은 808 베이스 소리가 앨범 전체에 걸쳐서 반복이 되고 있는데,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음에도 비슷한 사운드로 구성을 하다 보니, 앨범 단위로 들었을 때 피로감이 크게 느껴진다.


셰익스피어의 7가지 인생 단계를 재해석했다고 언급을 하긴 했지만, 그것이 곡순으로 표현이 된 것도 아니고, 결과적으로는 '사랑', '자존감', '여성'이라는 주제로 귀결이 되기 때문에 메시지 자체가 그렇게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또한 15곡이라는 볼륨이 다소 과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10번 트랙 이후의 R&B 트랙들은 왜 수록이 되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존재감이 미약하다. 디럭스 버전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앨범 단위의 감상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부분을 어느 정도 덜어낼 필요도 있다. 블랙핑크 멤버들의 솔로 작품이 모두 발표된 상황에서 본인의 음악적 욕심에 맞는 퀄리티를 가지고 왔다고 판단이 된다. 그렇지만 싱글이 아닌 앨범 단위에서는 여러 곡을 하나의 작품으로 바라보기 위한 유기성이 필요하다. 개별 트랙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곡 순이라든지, 진짜 필요한 트랙을 가려내는 능력이 필요한 타이밍이 아닐까. 보석함에 잡동사니가 많으면 진짜 보석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회복은 기다림이 필요한 일"


4. Bon Iver - ‘If Only I Could Wait (feat. Danielle Ha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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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 : 마지막 정규 앨범은 벌써 6년 전의 작품이 되었고, 그 사이에 코로나라는 역병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Bon Iver 역시 자가격리 기간 동안 다양한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며 간간히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 이름의 결과물을 내놓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프롤로그 성격의 EP [SABLE,]가 미니멀한 포크 사운드를 다뤘다면, 본 앨범 [SABLE, fABLE]의 선공개곡들은 얼터너티브와 포크, 팝을 오가는 음악을 선보인다. ‘Everything Is Peaceful Love’는 전작의 차분한 분위기와 대조되는 팝 성향으로 다소 뜬금없게 느껴졌지만, ‘If Only I Could Wait’이 같은 방향성을 이어가면서 비로소 [SABLE, fABLE]의 큰 그림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If Only I Could Wait’은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음악들 중 가장 실험성이 옅은 곡이다. Bon Iver 특유의 전자음을 오묘하게 집어넣는 작법은 여전하지만, 풍부한 현악 편곡 위에 팝스러운 멜로디를 이식하며, [22, a million], [i,i]의 실험적인 얼터너티브와는 완전히 다른, 대중친화적인 트랙으로 완성되었다. 전작과 동일하게 글리치 사운드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청각적인 재미를 연출하기보다는 멜로디를 뒷받침하는 역할이라는 점이 의외다. 특히 HAIM의 보컬 Danielle이 피쳐링으로 참여하면서 소피스티 팝 색깔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그래서 오히려 Aaron Dessner와 함께한 프로젝트 Big Red Machine의 곡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듯, ‘If Only I Could Wait’은 그의 전형적인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을지 모르나, 차근차근 감정을 쌓아가는 곡의 전개와 부드러운 사운드 질감으로 여전히 청자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정통 포크 사운드는 둘째 치고, 지나치게 쓸쓸하게 표현이 됐던 [SABLE,] 파트와는 확연하게 대비가 된다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SABLE,] 파트를 선공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독이 어떻게 치유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Bon Iver는 마지막 정규 앨범 [i,i]를 발매하고 오랜 기간 동안 불안장애에 시달렸다고 고백한 바 있다. 'sable'이라는 영단어의 뜻이 '검은색'이고, 'fable'은 '우화'를 뜻하는 말이다. 어둠에서 우화로 넘어가는 구성을 보여줌으로써, 이번 앨범에서는 그가 훨씬 더 진솔한 이야기를 선보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끔 한다.





"빠져들게 만드는 '변화'"


5. Parcels - ‘Safeandsound’

광글 : Parcels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라이브 공연을 통해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에너지를 음악에 녹여낸다고 말한다. 특히 베를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클럽 문화에 깊이 빠져들었고, 사람들을 춤추게 만드는 신나는 분위기를 추구했다. 그러나 이번 싱글에서는 사색에 잠기게 만드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Parcels의 '회귀'에서 비롯된다. 이번 음악은 다시 고향인 호주로 돌아오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며 원래의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가며 얻는 작은 행복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훵키한 리듬을 기반으로 한 레트로한 디스코 사운드를 연출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인디 팝 특유의 물 흐르는 듯한 무드로 음악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알 수 없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영감을 받은 이번 싱글은 빈티지한 노이즈 위에 차분하게 읊조리는 보컬로 문을 연다. 이는 정해진 방향성 없이 바다를 떠다니는 듯한 신비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함을 사운드로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이어지는 미니멀한 드럼 위에 얹어진 허밍은 더욱 고요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미세하게 들리는 신스의 질감은 '모호함'이라는 감정을 더욱 극대화한다. 특히 브릿지 이후 "Is it safe and sound?" 라며 반복되는 가사는 그러한 불확실한 삶 속에서 평온함을 추구하려는 내면이 효과적으로 표현된다. 함께 점점 증폭되는 사운드는 혼란 속에서도 삶을 향한 간접적인 의지를 보여주며 마지막까지 애매한 아이러니함을 느끼며 음악을 듣는 내내 신기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또한 [Day/Night] 이후 삶을 대하는 철학을 음악에 담아내려는 Parcels의 기조는 이번 싱글에서 한층 더 적극적이다. 앞서 언급한 '모르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으로 "Who is to say, they know what they're doing?"라는 가사를 통해 반문한다. 과연 누가 자신의 삶을 완벽히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라는 자조적인 태도로 ‘모른다는 것’은 불가피함을 강조한다. 결국 "I need to forget, I need to let it go" 라며 굳이 모든 것을 이해하려 애쓰기보단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흥미로운건 이러한 내면의 감정을 탐구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기존의 흥겨운 바이브가 아니라 사색적인 인디 팝을 선택한 것이다. 단순한 장르적 시도가 아니라 호주로 돌아온 Parcels가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성이 과거보다 더 깊이 있는 탐구로 이어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Yaeji는 음악 변태(變態)"


6. yaeji, E Wata - ‘Ponde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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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 :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더 나아가 언어의 장벽을 넘나드는 Yaeji는 또 한 번의 탈피를 시도한다. 그녀의 음악은 미끄러지듯 변형되는 댄스 음악과 유연한 클럽 리듬에 한국어와 영어를 속삭이듯 얹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스타일은 일렉트로니카 신에서 동서양 감성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사례로 평가받으며,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본인의 트레이드마크를 유지하면서도, 음악적 감각을 더욱 본능적으로 끌어올린 신곡 ‘Pondeggi’는 번데기라는 한국의 전통 길거리 음식에서 착안한 제목을 지닌다. 이 곡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일상적 사운드와 전자음향의 창의적 결합이다. 손뼉 놀이에서 착안한 리듬을 활용해 더욱 유희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며, 반복적인 리듬 위로 레이어드 된 효과음들과 무심하게 읊조리는 Yaeji의 목소리는 최면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뮤직비디오 역시 이러한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풀어낸다. Yaeji는 누에로 변신하고, 테크노 마녀에게서 변태(變態) 과정을 보호하려 한다. 이는 단순한 SF적 상상이 아니라, 변화와 성장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 온 Yaeji가 번데기의 변태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은, 또 다른 '진화'의 순간을 암시하는 것 아닐까? 음악적으로도 기존의 4/4 하우스 비트에서 벗어나 변칙적인 리듬을 중심에 두고 전자음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질감을 만들어냈다. ‘Raingurl’과 같은 초기 하우스 기반 트랙과 차별화되며, [With A Hammer]에서 노이즈, 얼터너티브 팝, 브레이크 비트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단순한 일렉트로닉 트랙을 넘어 리듬 실험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곡의 테마인 번데기의 변태 과정과 맞물리며 더욱 입체적인 청각 경험을 선사한다.


Yaeji의 음악은 늘 변화해 왔지만, ‘Pondeggi’는 단순한 스타일 실험을 넘어 그녀가 자신의 음악적 근원을 되짚고 더욱 확장하려는 신호탄처럼 들린다. 기존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더욱 깊이 담아내고 원초적인 사운드를 도입하며, 리듬과 서사적 실험을 한층 분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예지스러운 곡"이라는 평가에 그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곧 Yaeji다. 혁신적인 변화를 쫓지 않아도, 그녀는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더욱 견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





※ '광글', '아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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