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비슷해지는 국내 페스티벌 라인업에 관한 고찰
올해도 지난 3월 <더글로우 2025>를 시작으로 뮤직 페스티벌 시즌의 막이 올랐다. 이후 치러질 페스티벌의 라인업도 하나둘 완성되어 가는 가운데 많은 이들이 올해의 페스티벌에 기대감을 드러내는 한편, 일각에서는 올해도 역시 비슷비슷한 아티스트들이 예년처럼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피로감을 드러내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페스티벌을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아티스트들을 ‘페스티벌 공무원’이라고도 부른다. 매년 사라지지 않고 한 자리를 지키기 때문인데 단어 자체는 특별히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지 않지만 두 가지 의미 모두로 사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도 한 해 동안 한 아티스트의 공연을 모두 따라다녀 본 적이 있고, 그때마다 매번 마주치는 아티스트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대형 페스티벌이 아닌 중소 페스티벌 혹은 기업/지역행사의 경우에서는 좋아하는 아티스트이지만 예상가능한 셋리스트와 흐름에 지루하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고 비슷한 라인업을 자꾸 마주치다 보니 각 공연이나 행사의 차별점도 느끼기 힘들었다. 때문에 매년 페스티벌 라인업이 떴을 때, 익숙한 이름들이 재차 보이면 자연스럽게 공연에 대한 기대감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최소 근 3년간 이러한 모습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왜 반복될 수밖에 없는지, 일부 페스티벌 공무원 격의 아티스트들이 언제나 든든히 한 자리를 차지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조금 허무하지만 고민의 결과는 “당연하다.”였다. 누군가 이에 대해 나무란다면 “어쩔 수 없다.”가 더 정확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기본적으로 공연, 페스티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모객, 즉 ‘티켓판매량’이다. 공연 기획 및 제작사 측은 공연 이외 다른 수입원이 없다는 가정하에 공연의 티켓 판매로 자금을 확보해 아티스트 개런티를 비롯한 예산을 처리한다. 한 공연이 끝나자마자 또 새로운 공연을 오픈해야 이 자금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 구조인셈이다. 때문에 좋은 의도를 갖고 좋은 아티스트를 데려와 공연을 기획했어도 관객이 일정치 모이지 않으면 적자를 면하기 힘들다. 때문에 현재의 뮤직 페스티벌이 선보이는 라인업에서 비슷한 아티스트가 자주 등장하는 현상은 중소 페스티벌일수록 더욱 당연해진다. 한국보다 음악산업이 훨씬 크고 아티스트 풀이 넓은 일본 역시 대형 페스티벌을 주최하는 록킹온의 재팬잼 - 록인재팬 - 카운트다운재팬을 살펴보면 역시 겹치는 라인업이 많으며 마니아들에게는 10년 전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평가받고 있다. 어쩌면 시장의 이치인 셈이다.
이러한 배경지식을 갖고 페스티벌 공무원으로 불리는 아티스트들을 한번 살펴보자. 헤드라이너 급의 아티스트로는 10cm, 잔나비, 새소년, 실리카겔, 이승윤, 글렌체크, LUCY 등의 아티스트를 떠올릴 수 있고, 한로로, 터치드, 유다빈밴드, 나상현씨밴드 등의 밴드 역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중견급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티켓파워를 가늠해 보기 위해 단독공연 이력과 팬덤의 크기를 알 수 있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 멜론 팬 수를 정리해 보았다. 해당 아티스트를 보고 페스티벌 티켓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만큼 단독공연을 기준을 정리한 점을 참고 바란다.
모든 아티스트가 최소 2000석 이상의 공연장에서 단독공연을 개최하고 있고, 비교적 단독공연의 규모가 크지 않은 나상현씨밴드도 오랜 활동 기간으로 멜론 팬 수에서는 유다빈밴드와 한로로를 앞서며 헤드와 루키 사이 허리급으로서의 존재감과 팬덤을 보이고 있다.
팬덤 혹은 티켓파워가 크다는 사실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국내에서 대중성과 인지도가 높다는 의미이다. 사실 국내 음악 산업 전체로 보면 강력한 팬덤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케이팝에 비해서 지표가 미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라이브 공연이 주 활동 형태인 아티스트 중에서는 앞서 언급한 아티스트들이 팬이 아닌 대중으로 하여금 멜론 차트에서,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혹은 라디오에서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일 확률이 훨씬 높을 것이다. 이 점은 기존 공연의 코어팬과 아티스트의 팬덤 이외의 일반 대중 즉, 예비 관객들의 신규 유입의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페스티벌을 팬들에게는 자주 등장하는 아티스트의 무대가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엔데믹과 함께 오프라인 행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페스티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지언정, 공연을 찾아가고 공연을 보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행위가 익숙하지 않은 일반 대중들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인 부대 프로그램이나 독보적인 콘셉트가 없는 이상 ‘아는 이름’ 혹은 ‘들어본 이름’ 하나 없이 공연을 찾아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점에서 페스티벌 공무원격의 아티스트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특정 아티스트라기보다는 모객력이 큰 아티스트를 뜻한다.) 당해 모객의 결과가 공연의 운영을 판가름하고 다음 해를 기약하게 하는 만큼, 끊임없는 신규 관객층 유입은 모든 페스티벌의 숙제이기 때문에 대중성과 인지도가 증명된 아티스트 존재는 필수다.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에는 ‘서울재즈페스티벌’이 있다.
서울재즈페스티벌은 엔데믹을 기점으로 재즈뿐 아니라 장르에 구애받고 다양한 색깔의 아티스트를 적극적으로 섭외하며 재즈를 넘어 뮤직 페스티벌을 표방하는 기조를 보여주고 있다. 2025년 올해의 라인업도 마찬가지이다. 보통의 록페스티벌이나 뮤직페스티벌에서 자주 보이는 잔나비, 데이브레이크와 같은 밴드는 물론 지난해 단독공연을 비롯해 부산국제록페스티벌에서도 여전한 팬덤 화력을 보여준 씨엔블루와 솔로 앨범을 발매한 NCT의 도영 등의 라인업이 이를 반증한다.
무엇보다 올해 라인업에서 돋보이는 부분 중 하나는 첫날 헤드라이너 LANY와 서브헤드에 위치한 Kamashi Washington(이하 카마시 워싱턴) 그리고 RAYE이다. 21세기 재즈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색소포니스트 카마시 워싱턴과 2024년 브릿어워드 6관왕, 2025년 그래미 3관왕 RAYE가 아닌 LANY가 헤드라이너가 된 배경에는 이들을 압도하는 국내에서의 인기와 인지도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유튜브에 LANY를 검색한다면 서브헤드라이너인 두 아티스트와 달리 한국어로 된 관련 콘텐츠가 압도적으로 많다. 지난 내한과 함께 촬영한 ‘딩고 킬링보이스’와 <더 시즌즈 - 이영지의 레인보우> 출연 영상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유행과 함께 대폭 상승한 인지도는 단독 플레이리스트 조회수 682 만회라는 수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9월 LANY 내한 공연이 아티스트 건강 문제로 취소된 영향도 있겠지만 카마시 워싱턴과 RAYE가 킬링 보이스에 출연한다고 상상해 본다면 상당히 신기하면서도 당황스럽지 않은가? 그 점이 국내 페스티벌에서는 LANY가 헤드라이너가 될 수밖에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멜론 차트를 장기집권하며 사랑받은 QWER 역시 성장형을 표방하지만 폭발적인 인기와 인지도를 얻으며 데뷔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국내 최대 록페스티벌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역시 지난해 역주행 흐름을 이어받아 큰 사랑을 받은 데이식스 역시 당해 단번에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 그리고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서브 헤드라이너로 이름을 올리고 당해 페스티벌 흥행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관객 10만 명과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 관객 6만 명을 합치면 10만 명”이라는 밈처럼 공연계에는 공연을 보러 다니는 관객의 수는 정해져 있다는 말이 오랫동안 자조적으로 돌고 있는데, 그만큼 높은 인지도와 대중성을 갖춘 아티스트 덕분에 어떻게든 새롭게 공연을 직접 보러 가고 공연에 비용을 지불하는 행위의 장벽이 낮아지고 유입이 생기는 현상은 페스티벌을 만들고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감사한 일이다. 이에 더불어 그렇게 첫 발을 내디딘 관객들에게 말 그대로 festive! 한 경험을 전해주고 각 페스티벌만의 고유한 매력을 느끼게 해 주며 특정 아티스트와 팬덤을 넘어 이 문화와 씬 자체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 궁극적으로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한 가장 필요한, 이상적인 과정이다.
둘째로, 페스티벌 공무원, 즉 라이브 공연이 주 콘텐츠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자주 보이는 아티스트는 인지도뿐 아니라 라이브 공연 퀄리티도 보장되어 있다. 아티스트의 인지도와 개런티가 반드시 아티스트의 라이브 능력치와 비례하지 않듯, ‘라이브 공연’을 잘하는 아티스트는 따로 있다. 그런 씬에게 계속해서 섭외가 되는 아티스트는 매번 자신의 실력과 매력을 증명해 왔기 때문에 오랜 기간 공연과 페스티벌을 통해 관객을 만나고 있는 셈이다.
해당 아티스트들은 라이브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도 정말 많지만 라이브 실력을 넘어 대중들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직캠도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피크를 입에 물고 기타 솔로구간을 선보이며 현장의 여심을 모두 박살 낸 새소년의 2019 렛츠락 페스티벌 ‘파도’ 직캠 영상이 있고 (실제로 유튜브에 ‘새소년 레전드’라고 검색하면 가장 상단에 해당 영상이 뜬다.), 10cm 권정열 역시 ‘유죄 골반’으로 유명한 2019 그린플러그드 동해 ‘폰서트’ 직캠이 있다. LUCY의 바이올리니스트 신예찬도 2023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을 비롯한 여러 공연에서 안대를 쓰고 바이올린 솔로 파트를 선보이는 ‘채워’의 ‘안대 직캠’이 있고, 밴드 합주에서 상대적으로 소리가 잘 묻히는 바이올린 특성상 강한 마찰로 인해 무대 도중 현이 끊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를 48초 만에 간절하면서도 침착하게 갈고 바이올린 솔로 파트를 이어나가는 짜릿한 순간이 담긴 2023년 단독공연 ‘열, 다섯’의 ‘21세기의 어떤 날’ 무대의 직캠도 큰 사랑을 받았다.
또한 국내 페스티벌에서 자주 보이진 않았지만 여러 무대에서 끊임없이 라이브 실력을 증명하며 케이팝씬을 넘어 국내 대형 페스티벌 헤드라이너까지 자리한 사례도 있다. 여러 투어 공연과 2021년 <킹덤: 레전더리 워>를 통해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보이그룹 ATEEZ(이하 에이티즈)는 2024년 ‘코첼라 밸리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과 매해 25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운집하는 세계적인 뮤직 페스티벌 ‘마와진(MAWAZINE)’ 헤드라이너, 일본 최대 뮤직페스티벌 중 하나인 ’섬머소닉’으로 라이브 실력을 증명했고 같은 해 국내 대형 페스티벌인 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도 헤드라이너로 이름을 올리며 아이돌 그룹으로는 이례적으로 해외페스티벌뿐 아니라 국내 페스티벌에서도 러브콜을 받으며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공연 잘하는 아티스트’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주었다.
마냥 음악을 잘하는 아티스트만을 무대에 세울 수도 없다. 음악을 잘하는 것과 공연을 잘하는 것은 또 다른 개념이기 때문인데. 국내외 인디씬에서 음악으로 최고의 루키 평가를 받는 파란노을 역시 2024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며 많은 음악 팬들의 기대를 샀으나 경험 부족과 라이브 공연의 특성과 맞지 않는 아티스트의 성향차이로 인해 다소 아쉬운 평가가 이어진 만큼 마냥 음악성만으로 ‘라이브 공연’ 무대에 세우는 데에는 기획사의 입장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은 ‘페스티벌 공무원이라고 불리는 아티스트를 빼면 누구를 세울 수 있나?’라고 생각할 순 있지만, 아티스트의 수만 따지만 국내에도 좋은 아티스트들이 정말 많다. 좋은 음악과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아티스트가 많지만 그 아티스트의 모객력이 국내 페스티벌 베뉴의 관객 수용인원을 초과해서도 안된다는 조건사항도 있다. 당장의 티켓파워로만 보면 BTS나 제니와 같은 팝스타 아티스트가 떠오르지만 설령 그들이 섭외가 가능하더라도 현재 국내에는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페스티벌 베뉴가 없다. 갑자기 철원 고석정 일대에서 열리는 dmz 피스트레인에 blur를 불러오면 흥행을 떠나 베뉴 자체가 무너져 큰 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더 크다. 때문에 에스파, 실리카겔, DPR, 자이언티 등이 라인업으로 발표되고 킨텍스 홀에서 진행될 2025 슈퍼팝의 안전한 운영에 대해서도 괜한 우려가 생기는 지경이다. 이렇듯 국내 공연 및 페스티벌 베뉴의 부족현상도 아티스트 풀이 더 한정되어 있다고 느끼는 게 되는 요인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성도가 높은 페스티벌 마니아층이 느끼는 라인업 중복현상에 대한 피로감을 지우기는 쉽지 않다. 기획사 측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이 이뤄지는 만큼, 매해 보장된 즐거움과 새로운 즐거움의 조화를 위해 라인업의 비중을 신중하게 조절하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
지난해 첫 선을 보인 ‘더글로우’의 경우 첫 회에는 앞서 언급한 페스티벌 팬들이 선호하는 아티스트 외에도 자이언티, 조지, 카더가든, 유라 등 R&B 씬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진 아티스트를 더한 뒤 국내, 미국, 싱가포르, 태국의 인디 아티스트들이 살짝 더하며 라인업을 마무리했는데 첫 선을 보이는 만큼 인지도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려있었고 해외 아티스트들 역시 스타일이 겹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쾌적한 실내페스티벌, 한 해의 첫 페스티벌이라는 콘셉트와 명확한 포지션을 확보하며 호평 속에 첫 개최를 마무리했다.
2025년 2회 차에는 포지션을 확실히 인지시킨 만큼 라인업에서도 훨씬 더 균형감 있는 구성을 보여주었다. 든든한 헤드라이너급의 공무원 아티스트들의 비중을 줄이고 국내 슈게이징씬 루키 Leaveourtears, 싱어송라이터로서 좋은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송소희, 루키 자리에도 이찬혁의 비밀밴드 BABO, 실리카겔 김건재가 속한 시라카미 우즈를 섭외하며 화제성을 놓치지 않았다. 해외 아티스트 라인업의 음악도 더욱 다채로워졌는데 원더리벳에 이어 funk, 재즈를 넘어 퓨전 퍼포먼스를 보여준 ALI, 락킹 한 일본의 Billyrrom부터 음울한 듯 사이키델릭 한 바이브의 deca joins, 내한과 페스티벌을 통해 국내와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는 Yonlapa, 팝 일렉트로니카 듀오 Cosmo’s Midnight, 상쾌한 드림팝 사운드와 그루브를 고루 갖춘 서브헤드라이너 급의 Mild Orange까지, 인디팝으로 묶일지언정 지난해보다 훨씬 다양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구성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다.
‘아시아권의 아티스트와 음악을 조명한다’는 명확한 기조를 가진 아시안 팝 페스티벌에 비해 더글로우는 여전히 라인업만으로는 기조를 읽어내기에는 모호하지만 쾌적한 실내 페스티벌, 한 해의 첫 페스티벌이라는 포지션만으로도 많은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앞으로 라인업에서도 고유한 기조가 조금 더 분명히 보이기를 기대하고 싶다. 예컨대 ‘현시대 가장 트렌디한 밴드 사운드를 듣고 싶으면, 더글로우!’ 같은 것 말이다.
GMF, BML, HAND, HANT 등 굵직한 페스티벌 브랜드를 갖고 있는 MPMG 산하 공연 기획사 민트페이퍼에서는 페스티벌 라인업의 균형을 유지하고, 새로운 헤드라이너/서브헤드라이너/허리급/루키를 찾기 위해 ‘One Concours’ - ‘HAND’ - ‘BML/GMF’ 순서로 밸류가 높아지는 자체적인 시스템을 만들었다. 2016 mpmg week에서 첫 선을 보인 공개 싱어송라이터 오디션 ‘One Concours’은 루키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이다.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아티스트는 컴필레이션 앨범 [bright] 시리즈에 참여할 뿐 아니라 mpmg가 주최하는 기획공연 참여 기회까지 얻게 되는데 과거 HAND - BML/GMF순으로 절차를 밟은 것과 달리 바로 가장 대형 페스티벌인 GMF로 향하기도 하는 기회를 받고 있다.
한편, 이런 믿고 섭외하는 페스티벌 공무원의 영향을 벗어나 성공한 페스티벌의 사례도 존재한다. 철원 고석정 일대에서 이뤄지는 DMZ PEACE TRAIN(이하 피스트레인)이다. 피스트레인은 슬로건에서 ‘헤드라이너가 없음’을 내걸었다. 현시대가 열망하고, 숨겨진 음악을 조명하는 기조를 가진 피스트레인은 포스터와 타임테이블에서도 명확한 헤드라이너를 구분하지 않는다. 피스트레인의 이수정 감독은 섭외기준에 대한 질문에 우선 ‘라이브를 잘하는 팀’이 중요하며, 철원의 주민들과 어우러지는 페스티벌인만큼 국내 레전드 아티스트를 꼭 섭외하려 한다고 밝혔다. 정태춘 박은옥, 윤수일, 최백호, 이상은, 김수철과 같은 국내 레전드 아티스트의 무대를 현시대의 감성으로 볼 수 있는 페스티벌이 있다고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그 무대가 바로 피스트레인에서 세대에 상관없이 실현된다. 피스트레인은 평화를 노래하는 고유한 콘셉트도 있지만 본 칼럼에서 다루는 라인업의 관점에서 좀 더 바라보자. 첫회인 2018년부터 씬에서 음악성과 라이브 실력으로 가장 주목받고 핫한 아티스트를 세웠다.
새소년, 아도이, 장기하와 얼굴들, No Party For Cao Dong, Joyce Jonathan, 그리고 섹스피스톨즈의 Glen Matlock까지 사실 당대 혹은 레전더리 한 커리어를 가진 아티스트들의 이름도 보이지만 이들의 이름은 위계 없이 뒤죽박죽 섞여있으며 잔나비만 해도 당시 커리어 하이인 정규 2집 <전설>이 나오기 전 라이브 실력으로 입소문을 타던 시기였으며 현대무용가 차진엽이 이끄는 예술 단체 Collective A와 같은 신선한 아티스트, 그리고 신대철, 한상원, 찰리정으로 구성된 블루스 파워까지. 초기부터 라인업에 대한 기조가 명실히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매해 그들만의 기준으로 독보적인 라인업을 선보이고 고유한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며 페스티벌을 이끌어 간 결과. 피스트레인은 페스티벌 팬들에게 라인업을 굳이 보지 않아도 믿고 가는, 기대되는 페스티벌이 되었다. 페스티벌이 궁극적으로 단독공연과 다른 점은 무대만이 콘텐츠가 아니라 베뉴까지 가는 길, 팔찌를 착용하고 입장하고, 자리를 잡아 돗자리를 깔고, F&B와 부대프로그램을 즐기고, 무대를 하는 와중에도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할 수 있는 자유로움까지 더 큰 감각을 건드리는 경험인 만큼 일관된 정체성과 운영으로 이상적인 페스티벌의 형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주최 측이 할 수 있는 노력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무대를 직접 꾸미는 아티스트에게도 책임감을 넘기지 않을 수 없다. 각 페스티벌만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만들어 같은 아티스트가 여러 페스티벌에 참여해도 각각 색깔에 맞는 연출과 셋 리스트를 선보일 수 있지만, 아티스트도 출연빈도가 높아지는 만큼 중복되는 무대구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2024년 큰 관심을 받으며 행사가 늘어난 데이식스의 경우 크고 작은 행사뿐 아니라 페스티벌과 단독공연까지 거의 동일한 셋 리스트 구성으로 팬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큰 관심을 받은 만큼 무대의 수도 압도적으로 늘어나고 아티스트가 주목을 받게 된 계기가 된 음악이 정해져 있고, 그 음악을 듣고 그 무대를 보기 위해 오는 관객이 대부분이며 섭외 의도도 그러한 만큼 무대를 준비하는 아티스트와 스태프들 입장에서도 중복되는 셋 리스트와 구성을 피하기 힘들 수 있다. 또한 글렌체크의 60’s cardin이나 잔나비의 Jungle을 비롯한 관객 참여 비중이 높은 음악 등 매번 해도 즐겁고 안 하면 서운한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한 흐름을 넘긴 올해부터는 좋은 곡과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발표한 만큼 오랜 팬들이 기다리는 곡이나 새로운 데이식스의 모습을 보여주며 대세를 증명하고 라이브 공연을 믿고 볼 수 있는 아티스트로서 존재감과 수명을 키워나가기를 바란다.
이번 칼럼에서는 라인업을 중심으로 페스티벌의 활성화와 기획/운영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 이야기를 하게 된 궁극적인 목표이자 이상은 페스티벌 문화의 활성화, 신규 관객의 유입, 안정적 운영 기반 확보, 더욱 다양한 아티스트를 국내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를 위해서는 국내의 여러 음악 씬과 공연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져야 한다. 때문에 라인업을 통한 페스티벌의 상업성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견하고 사람들이 경계 없이 어우러지며 자유롭고 강렬한 경험을 하는 페스티벌의 문화적 의미와 역할도 잊지 않기를 당부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 칼럼을 작성하게 되었다. 연이은 경기 침체와 불필요한 것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예민해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마냥 관객에게 많은 관심을 달라고 부탁하기도 더욱 힘들어지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계속해서 지켜나가고픈 페스티벌의 가치가 있는 만큼 많은 이들이 페스티벌의 즐거움을 느끼고 향유하였으면 한다.
By. 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