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트로트 예능 방송으로 부흥한 트로트 씬의 지속가능성 진단
2019년과 2020년은 트로트의 황금기였다.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과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의 연이은 화제성 덕분에 송가인과 임영웅을 필두로 한 젊은 트로트 스타들이 많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방송의 후광을 입고 전국적인 팬덤을 기반으로 음반 성적과 콘서트 예매율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힘을 얻어 각 방송사에서는 <미스트롯>, <미스터트롯>과 유사한 오디션, 서바이벌 포맷의 트로트 예능 방송들을 우후죽순 쏟아냈다. 그러나 타 방송과 차별성이 없는, 동일한 장르와 구성의 반복으로 시청자들은 점차 피로감을 느끼고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미스터트롯>과 <현역가왕> 파생 방송을 포함해 비교적 최근에 종영한 <잘생긴 트롯>의 경우, 유명한 연예인들이 대거 출연했음에도 시청률 10%를 넘지 못했다. <미스터트롯3> 도 나쁜 성적은 아니었지만 최고 시청률이 19.1%로, 전작 <미스터트롯> 최고 시청률이 35.7%를 기록했던 때보다는 비교적 낮은 수치이다.
게다가 송가인, 임영웅 등의 최정상급 인기 스타의 공연을 제외하면, 신인이나 입지가 애매한 트로트 가수 단독 콘서트나 방송 파생 공연의 예매율도 현재 5%가 채 되지 않는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역 행사 관계자를 인터뷰한 기사에 의하면, 행사나 방송 등에서 트로트 가수에 대한 수요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 크게 늘지 않았으며, 최근 트로트 오디션 방송에서 ‘진, 선, 미’를 받거나 TOP7에 들어간 신인들도 예전보다 화제가 크게 되지 않아 공연이나 행사를 뛸 기회를 얻기가 많이 힘들어졌다고 한다. 한 마디로 트로트 소비층과 수요가 있는 아티스트는 그대로인데, 공급만 많아진 셈이다. 이를 미루어 보았을 때, 트로트의 화제성은 예전만큼 전국민적으로 크다고 보기가 어렵다. 어쩌면 장르 자체의 호감보다는 방송의 인기에 힘입어 바짝 올라간 트로트의 입지가 서서히 떨어지고 있는 단계일지도 모른다.
이는 임영웅, 송가인, 영탁, 이찬원 등 인지도가 탄탄한 일부 아티스트에게 편중된 시장의 문제로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트로트를 소비하는 연령층이 아직까지도 50-60대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음원 사이트의 연령별 인기 차트나 트로트 아티스트의 음원 청취 연령을 참고했을 때, 트로트 장르의 곡은 주로 50대 이상에 몰려 있었다. 공연을 예매하는 연령은 30대에서도 높았지만, 자녀가 부모 혹은 조부모의 몫을 대신 예매하는 경우도 많다는 걸 생각하면 실 수요자는 50대 이상으로 보는 게 더 적합하다. 즉, 아직까지도 이들의 음원을 스트리밍하고, 음반을 구매하고, 공연 티켓을 직접 사서 관람하는 연령층은 여전히 50대 이상에 머물러 있다.
이는 트로트 씬의 지속가능성에 장기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씬의 고립은 곧 씬의 축소로 진행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트로트의 전성기였던 1950년부터 1980년까지의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50-60대와 달리, 현재의 20-30대가 대중음악의 핵심 소비층이었던 1990년대는 힙합, 알앤비, 발라드 등의 장르가 주류로 이동함에 따라 트로트가 쇠퇴하던 시기다. 즉, 50-60대와 달리 현재의 20-30대에게는 트로트가 친숙하거나 공감대를 쉽게 형성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의 20-30대가 향후 50대 이상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저절로 트로트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며, 트로트에 매력을 크게 못 느끼거나 거부감이 있을 경우에는 트로트를 소비할 가능성이 더욱 없어진다. 그렇게 새로운 세대의 유입 없이 소비층의 고령화와 축소가 지속된다면 10년 뒤, 20년 뒤에는 트로트에 대한 수요나 영향력이 지금보다는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젊은 연령층의 트로트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음악산업백서에 따르면, 연령별 즐겨듣는 음악 장르 중 트로트는 20대, 30대에서 각각 1.3%, 3.7%의 적은 수치를 기록했다. 50대, 60대에서 각각 22.9%, 47.3%를 차지한 것과 비교했을 때, 연령별 호감도 차이가 꽤 큰 장르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브라스와 스트링, 복고적인 느낌의 신스가 결합된 ‘뽕짝’ 사운드, 비슷비슷한 양산형 멜로디, 목을 떨거나 소리를 꺾는 특유의 창법 등에서 오는 예스러운 느낌은 듣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밖에 없고, 젊은 연령층에 크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또한 가사와 관련해서도 일차원적인 사랑 타령, 인생 예찬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이 대다수여서 지금의 20-30대가 따라 부르거나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임영웅, 영탁, 정동원과 같은 몇몇 아티스트들은 트로트에 타 대중음악 장르를 차용하여 보다 젊은 감성으로 다양한 연령층을 유입하기 위한 시도를 해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트로트의 소비층을 넓히는 데에 눈에 띌 만한 성과를 거둔 아티스트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임영웅의 경우에도 싱글 ‘Polaroid’, 정규 앨범 [IM HERO]에서 록, 포크, 발라드, EDM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지만, 중후한 음색의 잔잔한 음악이 다수인 까닭에 20-30대보다는 50-60대에서 음악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또한 정동원은 정규 2집 타이틀곡 ‘흥!’에서 랩 피처링을 넣거나 평소에도 댄스 퍼포먼스를 강조하는 등 트로트에 K-POP적인 요소를 결합하는 경향이 짙고, K-POP 부캐 JD1으로도 활동하고 있지만 트로트 가수로 많이 알려져 있는 이미지 때문에 정작 20-30대에게는 관심을 크게 못 받고 있다. 그나마 영탁의 히트곡 ‘찐이야’, ‘니가 왜 거기서 나와’는 멜론 일간 차트 최고 순위 각각 47위, 57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지만, 다른 곡들의 성적은 저조한 것을 볼 때 음악 자체보다는 유행어와 밈을 활용한 B급 정서를 내세운 영향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즉, 음악의 변화만으로 젊은 연령층이 자발적으로 트로트에 관심을 갖고 찾아 듣게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예전처럼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히트곡이 그동안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전에 잠깐 유행했던 트로트 곡들을 TV 방송에서 편곡하여 부른 음원이나, 공연과 행사에서 분위기를 잘 띄워줄 만한 비슷비슷한 멜로디의 양산형 트로트가 수두룩하게 발매되었을 뿐이다. 과거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던 이애란의 ‘백세인생’,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 나훈아의 ‘테스형!’ 등의 노래는 연령과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인생살이의 어려움을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가사에 담아냄으로써, 젊은 연령층까지 학생/직장인 공감 밈을 만들어 올려 유행을 이어갔고, 그중에서도 ‘테스형!’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영상 조회수 천만 뷰를 찍었을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세대교체가 된 젊은 트로트 스타 사이에서 이 정도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노래는 나온 적이 없다. 트로트가 본디 ‘한국인의 삶의 애환과 감정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장르’ 중 하나인 만큼, 소비 연령층을 넓히기를 원한다면 장르뿐만 아니라 가사에도 20-30대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낼 필요가 있다.
2019-2020년에 있었던 트로트 장르의 재부상은 기존 대중음악을 소비하고 향유하는 방식에서 소외되어 왔던 50대 이상의 노년층이 주류의 방식으로 대중문화를 즐길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주었다. 더 나아가 2030 연령층에게 나이 든 사람만 듣고 부르는 노래로만 평가되어 왔던 트로트에 대한 편견도 일정 부분 해소해 주었다. 그러나 이는 자연스러운 방식이 아닌,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 형식의 미디어가 의도적으로 해당 장르를 수면 위로 띄운 경우에 가깝기 때문에, 노년층 위주로 소비되는 TV 방송마저 사라진다면 트로트의 화제성과 장르 씬의 지속가능성도 함께 떨어지는 위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지금의 후광에 마냥 의존하기보다는, 5년 뒤, 10년 뒤에도 트로트가 롱런할 수 있도록 소비 시장을 넓힐 수 있는 장기적인 전략을 고민하는 게 현재 아티스트와 업계 관계자에게 주어진 과제다.
By. 루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