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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5년 7월 5주)

김진환, 조유리,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외

by 고멘트

"추구미 vs 도달가능미"


1. 김진환 –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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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y : 아이돌 그룹에서 솔로로 영역을 넓히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숙제를 동반한다. 아이콘의 멤버 김진환은 이 숙제를 꾸준히 풀어왔지만, 새 앨범 [207]에서도 여전히 명쾌한 해답을 내놓진 못한 듯하다. 그룹 활동 당시 김진환은 부드러운 미성으로 곡의 감정선을 섬세히 살려내는 능력이 뛰어났고, 그 덕에 그룹 내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아쉽게도 이번 앨범에서는 이러한 그의 장점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We Can't Explain’의 트로피컬한 신스와 발랄한 리듬이나, 타이틀곡 ‘OBEY’의 강렬한 드럼 비트, 그리고 퍼포먼스 중심 구성은 김진환 특유의 차분하고 감미로운 색깔과 충돌한다. 그가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섬세한 보컬의 매력이 희석됐고, 귀를 사로잡을 만한 멜로디나 임팩트도 부족하다. 전체적으로 비어 있는 듯한 절제된 톤 역시 깊이보다는 허전한 느낌을 준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후반부에 B.I가 참여한 ‘Angel’, ‘Loving You’와 같은 트랙에서 익숙한 아이콘 시절의 감성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솔로로서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 바엔 차라리 그룹에서 보여줬던 색깔을 더 명확히 활용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보다 깊고 확실하게 완성시키는 일이 아닐까. 아이콘의 김진환도, 솔로 아티스트 JAY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남아 있다면 앞으로의 음악 역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다음 앨범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닌, 무엇을 가장 잘할 수 있는지를 먼저 명확히 하고, 그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반 바퀴만 돈 전환점"


2. 조유리 – [Episode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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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애플 : 조유리는 그간 댄스팝 장르를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솔로 활동 이래 처음으로 도전한 '밴드 사운드' 기반의 팝 록은, 밴드 음악이 대중적으로 궤도에 오른 흐름을 활용한 결과였다. 연기로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그가 음악에서도 보다 보편적인 취향을 겨냥할 수 있는 '머글' 장르를 택한 것 역시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Kpop을 즐겨 듣지 않는 타 장르 리스너도 페스티벌 현장을 통해 경험하거나, 많은 이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무드와 장르이기 때문. 그룹의 노래를 혼자 부르는 듯한 '장벽'이 느껴졌던 전작 ‘Taxi’와 비교하면, 아티스트의 보컬 또한 음악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디스코그래피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유의미한 진전으로 보인다.


‘이제 안녕!’을 선두로 라이브 공연이 자연스레 상상되는 밴드 사운드부터, 더블 타이틀인 프로듀서 구름의 향이 묻어나는 ‘개와 고양이의 시간’을 지나, '빵' 터뜨리지 않는 얼터너티브 록 장르로 절제미를 들려준 ‘Overkill’까지 다양한 장르를 담아냈다. 다만 ‘이제 안녕!’은 조유리의 디스코그래피에서는 새로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솔로 아티스트가 밴드 세션과 함께하며 '청춘'을 노래하는 팝 록 장르는 도영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잡은 손을 놓아주는 것 어쩌면 이건 사랑의 다른 말'이라 외치는 가사는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을 연상시킨다. ‘잠수해’의 백킹 코러스 또한 ‘낙하’ 속 아이유의 흔적이 묻어난다. 누군가 이미 접근해 자리 잡은 영역이란 뜻이다. 트렌드를 따르는 데엔 '나만의 것'이 한 스푼은 필요하다.


라이브형 가수를 꿈꾼다는 그의 보컬 역량은 증명된 지 오래다. 두 번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다인조 걸그룹의 메인보컬 자리도 묵묵히 소화해 냈다. 이제 스물다섯이라는 에피소드를 터닝포인트로 삼겠다면, 돌아서고 나서는 향할 곳이 더욱 분명해야 한다. 조유리의 보컬은 양립하기 어려운 맑음과 허스키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누군가가 연상되는 밴드 곡을 넘어, 그의 강점까지 함께 보여줄 수 있는 곡을 들려준다면 '라이브형 가수'라는 그의 염원을 대중에 각인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희가 세계관 들려주는 사람인가요? 음악가지"


3. 투모로우바이투게더 – [별의 장: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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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게비누 :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Beautiful Strangers는 좋은 곡을 엄선한 결과라기보다,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트랙을 우선순위에 둔 선택처럼 느껴진다. 세계관의 스토리라인에 따라 곡이 지니게 된 서정적인 무드와 절실한 감정선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트랩 비트 위에 펼쳐지는 구성은 이미 Déjà vu에서 봤던 그림이며, 곡 자체에 임팩트도 크지 않아 전반적으로 잘 만든 세계관 OST라는 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타이틀곡이 앨범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K-pop 시장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전략은 다소 아쉬운 선택이다.


세계관을 향한 진심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번 정규 앨범에는 모든 멤버의 솔로곡이 수록되었는데, 각자 'Together'라는 주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서로의 구원이 된다는 서사에 설득력을 더한다. 이는 데뷔 7년 차를 맞은 멤버들의 솔로 데뷔 예행연습인 동시에 각자의 서사를 세계관의 일부로 통합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방탄소년단의 WINGS가 각 멤버의 내면을 개별적으로 조명하며 전체 세계관을 확장했던 전략과 유사하다. 개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사의 입체감을 더하고, 그룹의 서사와 연결 지으며 세계관의 깊이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이번 신보는 세계관을 확장하는 동시에, 멤버 개개인의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을 시도했다. 팬덤을 결집시키고, 콘셉트 변화에 설득력을 부여하며, OSMU(원소스멀티유즈)를 가능하게 하는 등, 탄탄한 세계관을 지속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전략이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본질적으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다. 무엇보다 좋은 곡이 우선되어야 하며, 앨범의 중심에는 결국 음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음악이 세계관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을 이끌어가는 앨범을 만들어야 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바다를 닮은 음악, 음악을 담은 바다"


4. Quadeca – [Vanisher, Horizon Scr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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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y : 한때 유튜버 출신 래퍼로 규정되었던 Quadeca(이하 쿼데카)가 이제는 어떤 이름표로도 한정할 수 없는 음악 세계를 만들어냈다. 포크트로니카의 섬세한 질감과 바로크 팝의 디테일을 품은 트랙들이 자연스럽게 흐르다가도, ‘THUNDRRR’, ‘THE GREAT BKUNAWA’ 같은 트랙에서는 여전히 힙합 뮤지션으로서의 뿌리를 드러낸다. 맥시멀한 사운드를 곳곳에서 펼쳐 보이지만 과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청자를 압도하려 들지 않는 덕분에 모든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콘셉트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부각한다. 간간히 등장하는 파도, 바람 소리와 같은 자연적 효과음들은 트랙 간의 유기적인 흐름을 돕고, 나아가 쿼데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다'라는 테마를 보다 생생히 전달한다.


더욱이 이 앨범은 뮤직비디오와 함께 감상해야 온전히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하나의 영화처럼 연결된 영상 속에서 쿼데카는 현실의 한계를 넘어 자유와 깨달음을 추구하는 여행자로 등장하는데, 후회와 불안, 죽음과 재탄생 같은 개인적인 감정들이 점차 드러난다. 또한 바다로 출항하는 장면부터 물속에 잠긴 채 내면의 심연을 표현하는 장면, 마지막 석양 아래 홀로 표류하는 장면까지 음악의 감정선과 맞물리며 이어진다. 영상의 배경이 되는 키 큰 풀이 무성한 외딴섬, 판타지 같은 성이 있는 광활한 초원,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등대와 같은 다양한 장소들은 감정과 서사를 콘셉트적으로 완성도 높게 담아내는 역할을 한다. 이로써 음악만으로 듣기엔 추상적이고 모호할 수 있는 주제들이 시각적 연출과 결합해 더욱 뚜렷하게 전달된다. 보는 즐거움과 듣는 즐거움,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촘촘히 연결하는 서사적 완성도까지 고루 갖춘 흥미로운 앨범이었다.





"시리즈는 3편까지만"


5. Tyla – [W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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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애플 : Wizkid의 랩핑으로 문을 여는 [WWP]는 다시 남아프리카 대지의 열기와 리듬을 실어 나른다. ‘DYNAMITE’는 이전 싱글로 공개됐었고, ‘IS IT’과 ‘BLISS’도 마찬가지다. 결국 [WWP]가 새롭게 들려주는 유일한 목소리는 ‘MR. MEDIA’ 하나뿐이다. 아프로비츠가 앨범 전반을 지배하며 트랙 간의 구분선이 흐릿해진다. 결국 반복되는 ‘같은 맛’은 관성을 만들어냈다. EP로 발매하기 위해서는 좀 더 다른 열기를 전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혹여 ‘Water’의 숏폼 신화를 재현하려는 의도라면, 이 반복되는 더위는 차라리 권태로 다가온다.


'Tyla'하면 떠오르는 장르와 색채가 뚜렷해진다는 건 음악정 정체성을 수립하는 데 분명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보통 시리즈는 3편을 마지막으로 한다. [TYLA]의 연장선을 [TYLA +]가 이었고, 그 연장선을 다시 한번 [WWP]가 이었다. 즉, 이다음부터는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전작의 수록곡 ‘BACK to YOU’에서 엿볼 수 있던 트랙의 여백과 보컬의 조화도 Tyla의 음악이 확장될 수 있는 부분이다. 트랙을 떼어내고 보컬만 충분히 경쟁력 있는 보컬이다. 귀를 감는 목소리가 특징인 Tyla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넓은 음역을 보여줄 수 있는 곡과 함께하는 것도 쓸만한 옵션이 될 것이다.





"STOP PLAYING WITH ME"


6. Tyler, The Creator – [DON’T TAP THE G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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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게비누 : 이번 신보는 지난 앨범들과 사뭇 다르다. 30분이 채 안 되는 러닝타임, 80-90년대 펑크, 일렉트로, 디스코를 재해석한 댄스곡들, 그리고 춤추기를 좋아하는 새로운 페르소나 Big Poe가 그 증거다. Tyler, The Creator (이하 타일러) 역시 이것은 지난 앨범들과 달리 깊이 있는 앨범이 아니라며 그저 즐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기분 전환용 앨범으로 가볍게 소비되고 잊힐 앨범이라는 건 아니다.


제목 Don’t tap the glass는 수족관이나 동물원, 미술관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고문이다. 그런데 만약 유리벽 너머에 있는 것이 타일러라면? 자신이 구경거리로 소비되는 것을 거부하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이전까지는 그가 상징과 암시가 가득한 음악을 공개하면 사람들은 그 의미를 해석하느라 그의 구석구석을 관찰하고 분석했다. 타일러는 이 대상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석의 여지를 지워버리고, 파티의 흐름을 주도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다시 Big Poe로 돌아가서, 이 페르소나가 바라는 것은 청자의 감정이입이나 해석이 아니라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어떠한 반응이다. 타일러답게 재치 있고 센스 넘치는 방식으로 과몰입에 빠진 청중을 해방시키고, 자신 역시 대상화되는 아티스트의 위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간의 디스코그래피가 진지한 서사 중심으로 흘러갔다면 Don’t tap the glass는 그 흐름에 제동을 거는 잠깐의 댄스파티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가벼움 속에서 완성된 타일러의 프로듀싱은 무엇보다도 독보적이다. 의미를 앞세우기보다 음악이 지닌 1차적 역할인 '즐기는 것'에 충실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스며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해석을 요구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분명한 태도를 전달하는, 지극히 타일러다운 영리한 접근이다.





※ 'Noey', '배게비누', '화인애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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