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iiKiii, Yves, Snail’s House, Yeat
JEN : ‘DANCING ALONE’은 호불호 갈리지 않도록 적절히 설계되었다. 레트로한 무드가 매력적인 신스팝 위, 최근 그룹들이 자주 다루는 '우리'를 노래하는 아름다운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로 채워졌다. 빠른 템포 안에서도 조급한 느낌을 덜어내며 아련한 감정선을 완성하고, 브릿지와 분명한 곡 구성이 돋보이던 이전 세대들의 문법을 따르며 빈틈없이 짜인 사운드가 인상 깊다. 수록된 ‘딸기게임’ 또한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던 이전 곡 ‘DEBUT SONG’의 기조를 이어 나가려는 의도로 읽힌다. 미니멀한 비트 위 '등장부터 걍 보법이 달라', '무리래 막 에바래 막'와 같은 Z세대 식 위트 있는 가사가 얹히며, KiiiKiii(이하 키키) 특유의 키치하고 직선적인 매력이 한층 살아난다. 단조로울 수 있는 구성에서 톤 차이를 고려해 주고받는 파트나 화음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며 구성면에서 퀄리티를 올린 점은 영리한 선택이었다.
전반적으로 브랜딩이 중요한 데뷔 초라는 시점에서, 데뷔 앨범 [UNCUT GEM]의 브랜딩을 잘 이어 나가고 있다. 물론 ‘GROUNDWORK’나 ‘BTG’를 통해 다양함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타이틀이자 대표 이미지로 각인시킨 ‘I DO ME’에서 보여준 솔직하고 자유로운 소녀 이미지를 잘 표현해 냈다. 특히 키키의 장점인 '음악을 비주얼라이징하는 역량'은 타 신인들과는 분명한 차별점이 존재한다. CG나 인위적인 연출을 피하여 자연스러운 현실 세계의 소녀들을 담아내고, 키치하고 하이틴스러운 무드를 통해 만들어낸 독보적인 이미지는 키키의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큰 요소이다.
다만 중요한 점은,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음악보다는 외적의 것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음악이 별로라는 의미는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레트로한 사운드 위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는 흠잡을 곳이 없다. 하지만 소속사 선배 아이브의 경우, 비슷한 주제를 노래하더라도 넓은 음역대와 확실한 고음, '내 장점이 뭔지 알아? 바로 솔직한 거야', '그날 향기로운 보랏빛의 mood'와 같은 킬링파트로 임팩트를 주는데, 키키는 이러한 킬링포인트의 부재로 노래를 가볍게 흘려듣게 된다. 반면 인스타 기본 프로필에 컨셉에 맞는 아이템을 더한 Z세대 식 독특한 마케팅과, 미니 홈페이지를 꾸며 키치한 아이템을 파는 개러지 세일 프로모션은 신선한 아이디어로 대중의 많은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러한 외적 이미지 중심의 소비는 코어 팬층 형성에 어려움을 줄 수 있으며, 빠르게 트렌드가 변화하는 K-Pop 산업에서 장기적인 경쟁력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로 남는다. 이제는 음악적으로도 확실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포인트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iforyoursanity : PAIX PER MIL과 벌써 세 번째 EP, [Soft Error]에서는 하이퍼팝과 PC Music 계열 음악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1번 트랙 White cat에서는 실험적인 전자음 위에서도, 탑라인은 비교적 대중적으로 흘러간다. 대중적이라 안전하지만, 뾰족하지 못해 아쉽다. 2번 트랙에서는 Rebecca Black의 히트 싱글 ‘Sugar Water Cyanide’를 인트로에 샘플링 하고, PinkPantheress를 피쳐링으로 참여시키는 등 재밌는 그림을 만들어 내며 화제성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각자의 확고한 색을 드러내는 PinkPantheress와 Rebecca Black 사이에서 이브만의 색이 뚜렷하지 못한 점은 아쉽게 다가온다. 이브의 파트가 등장할 때면 그저 'K-POP스러운' 느낌이 든다는데 그치기 때문이다. 이어 3번 트랙 ‘Aibo’에서는 가장 PC Music 색채가 짙게 드러난다. 피치 조정이 날뛰는 보컬 사운드과 디스토션이 가득 걸린 일렉 기타 사운드를 듣고 있으니 100 gecs가 떠오르기도 한다. 4번 트랙은 틀자마자 들려오는 쓸쓸하고 먹먹한 선율을 듣고 있으니 oklou가 떠오른다. 5번 트랙은 이브의 목소리를 하나의 소스 정도로 활용하며, 딥한 하이퍼 팝 트랙을 구현해 낸다. 가장 선명히 개성이 드러나는 트랙이나, 과연 이 트랙이 프로듀서 ioah의 몫인가 이브의 몫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결과적으로 이번 앨범은 대중성을 유지하면서도, 이브가 도전해 보려는 영역의 어떤 아티스트, 어떤 레이블의 느낌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 이상의, 이브 자신만의 정체성을 굳혀가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맥은 비주얼 적인 부분(뮤직비디오, 앨범 커버 등)에서도 이어진다. 하이퍼팝, PC Music 특유의 괴짜, 실험적인 면을 완전히 살리기보다는, 해당 특징을 녹여내면서도 대중적인 감각을 유지하려다 보니 결국엔 표현이 다소 흐려진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직은 자기만의 색을 구축하는 과정에 있지만, 지금의 시도를 거쳐 향후 음악과 이미지가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iforyoursanity : 마이너한 장르가 메이저 시장과 교차하며 시너지를 내는 순간은 음악 산업에서 종종 있어 왔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마이너 장르 특유의 실험성과 독창성이 대중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충돌이 발생할 수 있어, 두 영역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렉트로닉 음악 장르에서는 의미 있는 선례가 있다. 한때 마니아층에 머물렀던 하이퍼팝은 Charli XCX를 기점으로 대중 음악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여 장르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Hyper라는 이름처럼 과잉된 감각과 표현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존재했기 때문이라 본다. 뿐만 아니라 하이퍼팝 이전에는 PC Music, 버블검 베이스(Bubblegum Bass)등의 일렉트로닉 장르가 이미 메이저 장르로 자리 잡아 오기도 했다. 이러한 일렉트로닉 음악 흐름의 다음 주자로, 좀 더 귀엽고 밝은 색을 지닌 카와이 베이스의 부상을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그럼 카와이 베이스(Kawaii Bass)란 대체 무엇인가. 이름 그대로 '귀여움'을 전면에 내세운 장르로, 퓨처 베이스의 하위 장르이다. 언어에서 알 수 있듯 일본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일본 특유의 화성을 기반으로, 듣는 재미를 주는 일렉트로닉 요소(칩튠 사운드 등)와 빠른 템포 등으로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장르이다. 국내 아이돌 데뷔 연령이 점차 낮아짐에 따라 귀여움을 전면에 내세운 콘셉트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음악적으로도 귀여운 장르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아일릿의 ‘빌려온 고양이’, NCT WISH의 ‘Steady’ 리믹스 앨범에 Snail’s House의 이름이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자, 주목해 볼 만한 장면이다.
카와이 베이스 특유의 청량함을 한껏 살린 트랙부터, 여유로운 여름 해변이 그려지는 곡까지 이번 앨범은 계절감으로 가득 채웠다. 특히 3번 트랙에서는 카와이, 퓨처 베이스 팬들에게 반가울 동물의 숲 K.K의 보컬이 등장해, 게임 속 음악이 주었던 여유롭고 차분한 분위기를 다시 느끼게 한다. 그 위를 장식하는 건 여전히 Snail’s House의 시그니처인 귀여움이다. 대놓고 귀여운 1~4번 트랙을 지나, 5번 트랙부터는 템포는 살짝 느려지지만 그 속에서도 아기자기한 퍼커션 사운드, 피치를 변형시킨 보컬 샘플링, 아르페지오 신스 같은 귀여운 요소들은 여전하다. 끝으로 그를 더욱 알고 싶다면 뮤직비디오를 감상해 보길 추천한다. 가사가 없는 음악을 하는 만큼 뮤직비디오를 통해 그가 그리고 싶은 귀여운 세계관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JEN : Yeat(이하 이트)가 지난해 발표한 [2093]은 레이지에서 나아가 인더스트리얼까지 선보이며, 실험적이고 미래지향적 사운드로 호평을 받았지만, 일부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던 이트가 아니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불과 몇 달 후 발표된 후속작 [Lyfestyle]에서는 이를 의식한 듯 기존 사운드로 회귀했으나, 이번에는 '똑같아서 지루하다'는 평가와 함께 변화를 요구하는 의견을 표명했다. 그래서인 걸까,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발매된 [DANGEROUS SUMMER]에서는 두 앨범 사이의 장점을 뽑아내어 밸런스를 맞추려 한 듯한 의도가 엿보인다.
[Lyfestyle]의 성향이 묻어나는 대표적인 트랙은 ‘LOCO’로, 비교적 낮은 신스와 묵직한 808 위 에너지 넘치는 플로우로 가득하다. 기존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는가 싶다가도, 저지 클럽의 리듬감을 넣어 변칙감을 더한 것은 '지루하다'는 평가를 극복하려는 신중한 고민이 느껴진다. 프로듀서 BYNX의 프로덕션도 돋보이는데, 그는 [2093]의 실험적인 시도를 영리하게 풀어낸다. 보컬을 악기처럼 다루는 실험적 모먼트를 보여준 ‘GROWING PAINS’라던지, 공간감이 느껴지는 라이브 드럼과 울렁이는 일렉 기타, 콰이어가 어우러진 ‘[ADL IS COMING]’ 또한 [2093]의 연장선으로써 우리의 귀를 사로잡는다. 첫 여성 아티스트와의 협업인 ‘FLY NITE’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뿌연 안개로 가득 찬 초현실적 사운드 속 매끄럽게 흐르는 이트의 신선한 플로우, 뒤이어 부드러운 리퀴드 드럼을 DnB스럽게 연주하며 함께 들려오는 FKA twigs의 몽환적인 보컬은 훌륭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이렇듯 다이내믹한 사운드의 확장은 단순히 두 앨범의 중간점에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전에 '비슷한 곡만 발표하는 래퍼'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고, 상반된 평가의 두 앨범을 거친 만큼 [DANGEROUS SUMMER]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앨범명처럼 여름을 타깃하는 단편적인 의도에 머물렀을 수도 있지만, 이트는 분명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앨범으로 완성해 냈다. 비교적 단조로운 트랩 하위 장르 내에서 활동하면서도 경계를 넘나들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두 앨범 사이 적절한 균형을 맞추며 모두의 귀를 만족시켰다. 이러한 과정을 거쳤기에 그가 꾸준히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확장하며 다양한 디스코그래피를 구축해 나갈 수 있었다. 아울러 트랙 중 ‘[ADL IS COMING]’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앨범은 다가올 Don Toliver와의 협업 앨범의 프리퀄 역할이기도 하기에, 자신의 역량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사운드를 마음껏 펼쳐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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