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누구를 위한 걸까?
기안84의 유튜브에서 지난 8월 12일 공개된 ‘걸그룹은 어떻게 살까요’를 보면 현존하는 아이돌이 얼마나 힘든 일과를 보내는지 알 수 있다. 음악방송 리허설을 시작으로 본 방송 촬영, 그리고 방청을 와준 팬들을 위한 미니 팬 사인회도 진행하며, 관련 스케줄이 끝나면 다른 장소로 이동해 바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팬 사인회도 소화한다. 보통 이런 스케줄은 새벽 3시 ~ 밤 23시까지 20시간 정도 소요되며, 영상에서 볼 수 있듯 스케줄이 끝나도 바로 연습실로 가서 레슨을 받는 것이 일상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음 앨범 준비, 팬들에게 보여 줄 커버 곡 연습까지 하루에 진행해야 한다. 이처럼 타이트한 하루를 보내더라도 언제나 웃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이러한 노동의 금전적인 보상이 언제부터 가능한지도 미지수다. 이러한 합리적이지 않은 현실에 더불어민주당은 15세 이상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용역 시간을 기존 46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한다 하니, 이처럼 정부에서도 케이팝 아이돌의 업무량을 문제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팬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일명 '역조공 문화' 역시도 어느새 하나의 경쟁이 된 듯하다. 간단한 도시락과 과일에서 시작한 역조공은 점차 스케일이 커지더니 현재는 랍스터, 스테이크, 삼계탕 등 일반적인 도시락의 퀄리티를 넘어섰으며, 팬들의 자리로 직접 아티스트가 찾아가 당일착장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고 미공개 포토카드를 주는 등 서비스의 종류도 더욱 다양해졌다. 뿐만 아니라, 팬들은 각자 커뮤니티의 '자신의 아이돌이 얼마큼 역조공 했는지'를 올려 누가 더 돈을 썼냐, 성의가 있냐 하고 비교하는 것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아티스트를 응원해 주고 같이 고생해 주는 팬들에게 더욱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시작했던 취지로 시작한 역조공이 이제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팬들 간 자존심 싸움 중 하나가 돼버린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음악방송 대기시간마다 챌린지 영상 촬영, 활동을 하지 않은 시즌에도 꾸준히 팬을 위해 자체 콘텐츠 유튜브 영상 촬영을 해야 한다. 특히, 챌린지는 이제 매 음악 방송마다 최소 3 ~ 5 편은 찍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기에, 빠르게 다양한 춤을 습득해야 하기 때문에 피로감이 크며 챌린지 영상을 두고 실력을 비교당하기까지 한다. 하물며, 개인 시간에는 정기적으로 버블과 위버스 등 팬 플랫폼을 통해 팬들과 소통해야 하는데, 만약 이를 소홀히 할 시 팬 커뮤니티에는 자주 등장하지 않는 아티스트를 대놓고 저격하는 게시물이 바로 파생되며, 팬들끼리 자신의 최애가 얼마나 자주 오는지 비교하기도 한다. 이처럼 현재 아이돌의 일상은 정말 쉴 틈 없이 바쁘다. 하지만 팬의 입장으로 바꿔서 생각해 보면 또 다른 의견이 나온다.
“최소 300만 원은 써야 안전하게 붙을 수 있어요” 아이돌 팬 사인회를 갔다 온 한 네티즌의 인터뷰 내용이다. 실제, 인기 아이돌의 팬 사인회 한번 가기 위해선 최소 앨범을 200장 ~ 300장 구매해야 하며, 중소 아이돌도 30장 ~ 50장은 사야만 한다. 이것은 사인회 당첨자를 랜덤이 아닌 정해진 수량(컷) 보다 조금 구매한 사람들은 모두 자르기 때문이다. 또한 팬 사인회를 여러 번 진행하고, 회차마다 특전 포토카드를 다르게 만들어 일명 앨범 판매량을 단기적으로 늘리기 위한 전략이다. 팬들은 이런 전략을 알면서도 내 최애를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정기적으로 사인회에 참석하고 있다. 팬 사인회 뿐 아니라 계속 오르고 있는 콘서트 비용, 유료화가 당연시된 팬 소통 플랫폼처럼 덕질을 하기 위해서 써야 하는 돈이 늘어만 난다. 그렇다면 현재 팬들은 쓴 돈에 맞는 서비스를 제대로 받고 있을까
좋아하는 아이돌을 볼 수 있는 행사 중 가격 대비 높은 퀄리티를 기대할 수 있는 건 콘서트다. 보통 120분 동안 공연을 진행하고 평소엔 볼 수 없었던 커버 무대, 편곡 등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된다. 그리고 콘서트 비용 역시 예전에 비해 높아졌으며, 대부분의 아이돌 콘서트에서 ‘20만 원대’ 티켓 가격은 업계 기준이 된 듯 보인다. 2022년 열린 방탄소년단의 ‘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의 티켓 최고가는 22만 원(VIP석 기준)에 달했다. 불과 3년 전 같은 장소에서 진행된 ‘LOVE YOURSELF: SPEAK YOURSELF [THE FINAL]’이 11만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약 2배가량 오른 셈이다. 또한 비싼 콘서트 비용으로 악명 높은 블랙핑크는 가장 비싼 BLINK석이 275,000원으로 측정됐다. 그렇다면 가격이 높아졌으니 당연히 퀄리티가 높아졌을까? 지난 3월 제니의 첫 단독 콘서트 ‘JENNIE 'The Ruby Experience’가 열렸다. 하지만 당초 120분 러닝타임이 안내됐으나, 실제 공연은 약 70~75분 만에 끝이 난 것에 불만을 가진 팬이 다수였다. 또한 소통 없이 40분 동안 퍼포먼스만 진행했으며, 앙코르 곡 하나 없이 바로 콘서트가 끝났다는 점 역시 논란이 되었다.
또한 영상통화 팬 사인회가 끝나지 않았는데 도중의 욕설을 했다는 의혹이 있는 제로베이스원의 김지웅, “활동 언제까지 하냐”는 팬의 질문에 그걸 알려주면 안 되죠”라고 말했던 골든차일드 멤버 태그 등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 많았다. 가수 백지영의 유튜브에 출연한 2PM 옥택연이 풀은 팬 사인회 일화를 아는가? 그는 요즘 신인 아이돌처럼 애교를 요구하는 팬들에게 “나 그런 거 못하는데..”하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팬이 건넨 “오빠 나 이거 돈 내고하는 거야” 이 한마디에 옥택연은 팬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다. 이처럼 연차가 오래된 아티스트도 돈을 쓴 팬의 요청은 거의 들어주고 있다. 본인을 좋아해 주고 이 자리에 오기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팬의 입장에서는 큰돈을 쓰는 데 비해 오는 만족감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정리하자면 팬들은 매 컴백마다 거액의 돈을 써가며 아이돌을 지원해 주고, 아이돌은 팬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음악방송, 팬 사인회, 챌린지 영상 촬영 등 수행해야 하는 일들은 많아만 진다. 경쟁이 심해질수록 보다 더 퀄리티 높은 서비스를 더욱 높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고 이런 분위기를 따라가기 위해 팬의 소비를 부추기기도 한다. 그리고 팬들은 당연히 보상심리를 기대하기에 만족스럽지 않으면 언제나 비난하고 서로 비교하는 일까지 자연스레 생기게 된다. 앞서 말한 높아지는 팬 사인회 컷과 콘서트 비용,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결점을 보게 될 수 있는 챌린지, 버블 등 팬 플랫폼과 같은 서비스가" 과연 팬들이 쓴 돈 만큼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현재 아티스트가 하고 있는 많은 스케줄, 과제 등이 어린 나이에 소화하기에 문제가 없는가?"에 대한 질문에도 역시 속 시원히 "없다"라고 대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정산 시스템이 바뀌어 중소 아이돌도 초기부터 어느 정도 정산을 바뀐다면 그들에게 조금 더 양질의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 무엇 하나도 확신할 수 없다. 팬들과 아티스트 모두 서로 피로감만 쌓이고 있는 이 상황, 정답은 없는 관계에서 '제로섬 게임'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by 만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