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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가려다 경찰라라 가겠어요

본인 확인, 본질은 확인하셨나요?

by 고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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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X를 뜨겁게 달구었던 글이 하나 있다. 경찰이 동행해 신분을 확인했음에도 Day6의 팬미팅에 입장하지 못했다는 한 미성년자 팬의 글이었다. 주최 측은 미성년 관객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로 청소년증과 여권을 사전 공지했으나, 해당 글의 주인공은 학생증만을 지참했다. 이에 공연 입장을 거절당하자 경찰서에 방문하여 신원 확인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경찰과 공연장을 방문하였음에도, 사전 공지한 신분 확인 서류를 제시하지 못해 결국 팬미팅에 입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공지를 숙지하지 못한 팬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해당 글에 대해 아이돌 팬덤은 분노했다. 그간 암표 근절이라는 목적 하에 불필요할 정도로 과한 본인 확인 절차가 이뤄져왔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이 작성된 이래로, 뜨거운 반응에 Day6의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는 공식 사과문과 함께 환불 절차를 공지하였음에도 여전히 신분증을 지참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기록부나 전자 인증서를 추가로 요구한다든지, 미성년자의 표를 보호자의 명의로 예매한 것임에도 입장하지 못했다든지의 사례가 봇물 터지듯 함께 터져나오고 있다.


일련의 사례를 바라보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암표 근절을 위한다는 엄격한 본인 확인 절차는 암표 근절에 효과가 있는가? 아니, 애초에 암표를 막는다는 것이 가능은 한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애초에 왜 공연의 주최 측이 암표를 막고 싶어하는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도덕적 기준이다. 얼마든 웃돈을 주고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에 대한 시선이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크로 등 부정한 방법을 활용한 예매는 현행법상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 엄연한 형사 처벌의 대상이다. 도덕적인 면을 배제하더라도, 비공식적인 티켓 값이 상승이 주최 측에서 달가울 리는 없다. 암표를 구매할 때 붙은 추가 금액은 기획사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암표는 공식적 판매 루트를 통하지 않으므로, 추가 금액이 모두 티켓 판매자에게 갈 뿐 공연 주최 측에는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돌 시장에서 공연이란 단순한 수익 창출의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새로운 팬덤을 유입시키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기 때문이다. 암표를 통해 티켓 값이 오르면 공연 관람의 허들이 지나치게 높아지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공연을 통해 유입되는 신규 팬덤의 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기획사는 암표를 막고 싶어하기 마련이고, 그를 위해 운영사에 더욱 구체적이고 깐깐한 본인 확인 절차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를 전달받은 운영사는 유연한 운영으로 현장에서의 혼란을 만들어 주최 측 클레임을 받느니, 관객의 원성을 받더라도 원칙을 고수해 더욱 엄격한 기준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주최 측이 왜 암표를 막고 싶어하는지는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입장 단계 전, 예매 단계에서 암표를 근절하는 것은 불가한가 하는 물음이 생겨난다. 많은 팬덤이 실질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쪽에 가깝다. 실제 공연을 관람하고자 하는 팬들을 대상으로 개인정보 침해에 가까운 본인 확인을 진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매크로 등 부정한 방법을 통해 표를 예매하거나, 또는 지나칠 정도로 과한 가격의 암표를 제시하는 업자들을 근절해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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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현재의 기술력을 생각하면, 본인 확인 절차가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수많은 예매자 중 업자들을 가려내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업자들이 매크로, 또는 티켓팅 사이트에서 대기 없이 바로 좌석 선택 창으로 넘어갈 수 있게 해주는 일명 ‘직링’을 활용하는 것은 일부 식별이 가능하다 치더라도, 정상적인 접근을 통해 표를 예매한다면 업자와 일반 관객을 식별할 수 없다. 게다가 매크로, 직링 등을 활용하는 업자라 하더라도, 이들을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정상적인 접근으로 간주되는 표들을 모두 취소하는 정책으로 인해 정상적인 예매 표까지 취소되었다는 억울한 사례를 공유하는 팬들의 후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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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기획사 입장에서는 기술력의 한계로 예매 단계에서는 업자를 가려낼 수 없기 때문에, 입장 단계에서의 허들을 높여 암표를 포함한 양도 행위 자체를 막겠다는 식으로 생각이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까다로워진 입장 단계가 암표 근절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 특성상 대체제가 없고, 마치 한정판 상품처럼 수요에 비해 공급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아이돌 공연의 경우, 수요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 공연에 참석하고 싶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본인 확인 절차를 피하기 위해 다른 방식일 뿐 실상 암표와 동일한 효과를 가져오는 ‘대리 티켓팅’, ‘아이디 옮기기’ 등의 상품이 성행하고 있다. 공연에 따라 다르지만, 입장객 본인의 계정으로 예매를 대신해주는 일명 ‘대리 티켓팅’은 성공보수로 2-30만 원 이상의 금액을 요구하곤 한다. 이 상품들 역시, 기획사에게는 그 수익이 돌아오지 않음에도 실상 공연의 값 자체를 올린다는 결과 자체는 암표나 다를 바가 없다.




다시 초입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애초에 암표를 막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모두가 예상하듯 답은 ‘불가’다. 예매 단계에서의 차단은 기술력의 한계가 있고, 입장 단계의 허들을 높여 암표를 차단하는 방식은 관람객의 불편과 또다른 방식의 암표를 부추길 뿐이다. 게다가 수요와 공급을 적정 수준으로 맞추는 것은 전술했듯 아이돌 산업의 특성상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모든 팬덤에 공연 관람의 기회를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실적으로 같은 공연을 몇 번이고 반복할 수는 없고,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게 되면 아이돌이라는 상품의 가치도 하락할 위험이 생긴다. 결국 암표를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은 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도입한 현재의 본인 확인 절차는 암표 근절에 도움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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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명확하다. 입장객들의 불편 초래에 비하면 그 실질적인 효과는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대리 티켓팅과 같은 파생 상품의 탄생은 어쩔 수 없다쳐도, 본인 확인 단계의 불편을 줄이고 정확도를 올리면 암표 근절과 팬덤의 불만을 잠재우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시선도 있지만, 그 역시 한계가 있어보인다. 일례로 하이브는 본인확인 절차를 간소화해 팬덤의 불만은 줄이고, 본인 확인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금융 서비스 ‘토스’의 운영사와 협업해 ‘얼굴 패스’를 도입했지만, 팬덤의 반발은 여전했다. 얼굴이라는 생체정보를 민간 업체가 활용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개인정보 침해가 일어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굴 패스 역시 대리 티켓팅이나 아이디 옮기기와 같은 상품의 수요를 높일 뿐 근절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본인 확인’이라는 절차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높일 뿐이다.




암표를 뿌리 뽑기란 불가능하지만, 엄격한 본인 확인만이 암표를 줄이는 방법은 아니다. 도입해볼만한 차선책들 역시 있다. 암표를 근절하는 방법은 없지만, 현실적으로 지금보다 나은 최선의 방식들은 있을 수 있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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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했듯, 암표가 문제되는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시장 내 티켓 값이 올라감에도 주최 측으로 돌아가는 수익은 없다는 점, 그리고 둘째,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비공정한 방식으로의 티켓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이들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첫 번째 문제는 예상 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공식적으로 수요에 따라 티켓 값을 조정하면 된다. 실제로 미국, 유럽권에서 개최되는 해외 콘서트의 대부분은 이미 공식 예매처에서 마치 경매처럼, 수요에 따라 티켓 값을 조정하는 ‘다이나믹 프라이싱’ 정책을 활용하고 있다. 당초 판매 시부터 수요에 따라 공급자가 상품의 가격을 조정하는 것이다. 공식 가격이 오르게 되면, 자연스럽게 암표 판매 금액 자체가 상승할 테고, 현재에 비해 암표를 구매하고자 하는 관객의 숫자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매크로 등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좋은 자리를 구해 되파는 암표는 물론이고, 이런 방식으로 자리를 구해주는 대리 티켓팅에 대한 수요도 자연스레 줄어들게 될 것이다. 게다가, 공연을 주최하는 측에 상승한 티켓의 수익이 가게 되기 때문에, 부가 수익이 공연의 질로 연결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수요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점은 확실히 긍정적이다.


다만, 티켓의 공식 가격 자체가 상승하는 것의 부가 효과로 암표가 줄어드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 뿐, 만일 수요 예측에 실패하면 기존 팬덤의 질타를 불러오는 것은 당연지사, 티켓 값 상승으로 인해 라이트 팬의 코어 팬덤 진입 허들을 오히려 높이는 부작용만 초래할 수도 있다. 일례로 영국에서 진행된 밴드 ‘오아시스’의 공연 티켓이 다이나믹 프라이싱 적용으로 정가의 2배에 달하는 약 355파운드에 판매되었음에도, 여전히 암표 시장에서의 가격이 6,000파운드 (한화 약 천만 원)까지 천정부지로 솟아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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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분은 암표의 두 번째 문제로 꼽았던 불공정한 방식, 기술력으로는 가려낼 수 없는 부정 예매를 줄일 수 있는 방법과 병행을 통해 보완해보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다이나믹 프라이싱과 함께, 팬덤의 자발적인 신고를 장려하는 제도를 만들거나, 자체 모니터링 팀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부정 예매를 직접적으로 줄이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다이나믹 프라이싱은 결국 암표의 수요를 줄일 수 있는 방식일 뿐, 매크로나 대리 티켓팅 등의 불공정한 예매를 잡아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신고 제도나 모니터링의 강화는 암표 자체를 취소, 그 행위 자체를 줄일 수 있는 방식이다. 일례로 가수 아이유의 경우, 소속사 측에 암표를 신고하고 그 증빙자료를 제출할 경우, 공연 티켓을 증정하는 일명 ‘암행어사’ 제도를 운영하기도 했었다. 소속사 내 추가적인 인력이 필요하겠지만, 팬덤의 자발적인 신고가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부정한 예매를 지양하는 자정 작용으로서까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포인트이다.


물론, 아이유의 ‘암행어사’ 제도 역시 입장 시 본인 확인과 피신고자가 자신의 예매가 공정했음을 소명하는 절차를 과하게 요구한 것, 더불어 정상 예매자가 부정 예매로 신고되어 입장이 불가했던 것이 논란이 되어 포상 제도를 폐지한 바 있던 것처럼, 이 방식에도 한계가 있다. 예매 과정 로그, 입금 내역 등을 주최 측에서 하나하나 모두 확인할 수 없기에, 본인확인 또는 소명 절차가 과하게 엄격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란이 되었던 지인 간의 대리 입금, 미성년 자녀를 위한 보호자의 대리 예매 등은 신고 대상에서 제외하고, 대리 티켓팅, 암표 등 리셀 전문 업자로 그 신고의 대상을 한정한다면, 더불어 티켓 예매 사이트와의 협업을 통한 예매 로그 확인, 공식적인 원가 양도 확인서 배포 및 입금 내역 확인증 등의 소명 서류 등을 매우 세세하게 체계화하고 사전 공지한다면 다이나믹 프라이싱 등의 방법과 함께 병행되어 암표를 줄일 수 있는 부가적인 방식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겠다.




아이돌 팬덤, 나아가 사회는 공연 시 수반되는 불필요할 정도로 엄격한 본인 확인 절차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암표 근절이라는 목적이 있다곤 하지만, 입장 절차는 날로 예민해져가는 개인정보 의식에 반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그에 결부해 공연 전반적으로 스탭들이 팬덤을 대하는 태도까지 지적하는 의견은 점차 강화되고 있다. Day6 팬미팅 사례는 이것을 사회적인 문제로 공론화시킨 사례였을 뿐, 아이돌 공연의 운영 방식에 대한 팬덤의 불만은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금번 문제가 당연히 난감하게 느껴질 것이다. 어찌보면 사면초가의 입장이다. 암표를 두고볼 수도, 그렇다고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것처럼 엄격한 본인확인 절차를 고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관점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 계속해서 존재하던 팬덤의 불만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을 되레 기회로 삼는 것이다. 공급자 차원에서 수요에 따라 티켓 자체의 값을 올리는 것에 대한 이유로서 이번 문제가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다. 티켓 가격을 높이는 것이 단순 수익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그를 통해 더욱 양질의 공연을 공급하고, 불공정한 암표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보여준다면, 그리고 결과로서 증명한다면 금번 사태는 되레 암표를 효과적으로 근절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아이돌 팬덤, 나아가 대중은 이제 업계의 관성이라는 이유로 관습을 답습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팬덤 내부의 일이 사회 전체의 담론으로 커졌다는 건 그만큼 변화를 원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강하고, 그들의 뜻이 사회 전반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현재의 까다로운 수요자들이란, 과거와 다른 이들이 유입되며 수요층이 다양해졌다는 반증이고, 그렇기에 현재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성숙한 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아픔일지 모른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지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수요자 층이 있기에 이제 공급자들도 신중하게, 동시에 설득력 있게 새로운 방식을 제시해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일 수 있어야 할 때가 온 건 아닐까?



By. 이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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