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떠나는 Z세대와 소통하는 케이팝
대다수의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인스타그램으로 넘어가던 2017년 즈음, 나는 학과 내에서 유명한 인스타그램 헤비유저였다. 순간의 기분과 정제되지 않은 일상을 항상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게시물로 공유하기를 좋아했고, 강의실 복도를 지나갈 때면 선후배 동기 막론하고 마주치는 사람마다 “OO야 너 인스타그램 잘 보고 있어”라는 말을 듣는 일이 허다했다. 흔히 말하는 스토리 뜨개질은 일상이었고, 2015년 하반기부터 사용해 온 계정에는 현재까지 1636개의 게시물이 남아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SNS에 일상을 숨 쉬듯 업로드하는 일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에 수많은 광고와 정보들이 개입되면서 팔로워들과의 거리감이 생기다 보니, 나의 일상을 지켜보는 사람은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팔로워에 한정되어 있음에도 불특정 다수에게 혹은 허공에다 대화를 거는 듯한 공허함이 느껴졌다. 한 해 동안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게시물을 세어보니 10년 동안 업로드한 1600여 개의 게시물 중 최근 5년간 올린 게시물은 80여 개에 불과했다. 약 5% 비중인 셈이다. 때문에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기보다 내 일상을 나누고 싶은 상대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며 소통의 갈증을 해결했고, 더 사적이고 진정성 있는 소통을 위한 다른 플랫폼을 기웃거리거나 새로운 계정을 개설하기도 했다.
비단 혼자만의 경험은 아니었나 보다. 세계 4대 회계법인 딜로이트가 올해 2월 공개한 디지털 소비자 연구(Connected Consumer study) 5번째 에디션에 따르면 Z세대의 59%가 실제 물리적 세계보다 온라인에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더 많으며 Z세대의 81%가 온라인 활동이 타인과의 의미 있는 유대관계를 쌓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응답했음에도 불구하고,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56%가 온라인 활동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를 느끼고 있으며 지난해에 비해 우려를 느끼는 사람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최근에는 SNS의 안팎에서 완벽함을 내세우기보다 실수를 하더라도 진솔하고 자연스러운 태도나 콘텐츠가 사랑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예시가 ‘말차코어(matcha-core)’이다. 말차코어는 젊은 세대들이 건강, 슬로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커피를 대신해 말차가 들어간 음료를 선택한다는 흐름에서 등장한 트렌드이다. 말차와 관련된 레시피를 공유하고 직접 만들어 먹거나 생명력 넘치는 초록빛 색감을 활용한 이미지를 공유하기도 한다. 아티스트 제니 역시 과거 커피 대신 말차를 마신다고 언급한 부분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으며 두아리파나 젠데이아와 같은 해외 아티스트도 말차 코어에 탑승하며 하나의 마이크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말차코어 트렌드를 지켜보면 불과 몇 개월 전 유행했던 ‘말차 스필(matcha spill)’도 같이 떠올릴 수 있다. 말차 스필의 경우 일각에서는 6~8유로 정도의 말차 음료를 마시지 않고 바닥에 쏟아버리는 모습에 일종의 재력을 과시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는 해석도 있었으나, 말차 음료가 무방비하게 바닥에 흩뿌려지고 컵이 일그러진 모습이 담긴 이미지가 보는 이로 하여금 완벽함을 드러내는 이미지보다 이것마저 연출일지언정 실수로 인해 연출된 파격적인 이미지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잠시나마 트렌드로 부상한 것이다.
Benson Boone, Sombr, Gigi Ferez 등, 영국의 오피셜 차트와 같은 해외 트렌딩 차트 상단에서 자주 보이는 아티스트 대다수가 틱톡에서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많이 선보이는 기성 챌린지 콘텐츠보다 수수한 모습으로 사소한 주제를 팔로워들에게 제시하나 일상적인 순간을 짧게 자주 공유하며 팬들과 소통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역시 보는 이로 하여금 아티스트를 팔로우했음에도 일반인 친구의 일상을 보는 듯한 친근감을 형성하며 아티스트에게 인간적인 호감과 매력을 느끼게 만들어 신곡 홍보까지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그 밖에도 하루 한번 무작위로 오는 알람으로부터 2분 안에 촬영한 사진만 보정 없이 포스팅해야만 하는 앱 ‘BeReal(비리얼)’의 등장과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과 소소한 순간을 공유해 보세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등장한 인스타그램의 신기능 ‘QUICKSNAP(퀵 스냅)’은 맞팔로우 된 친한 친구 유저에게 보정 불가능한 사진을 직접 보낸 뒤 24시간에 사라지는 기능으로 역시 앞서 언급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케이팝 아티스트를 제작하고 아티스트의 SNS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진실함과 꾸미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흐름은 일종의 새로운 과제같이 느껴진다. 해당 트렌드를 선호하는 Z세대와 밀레니얼세대는 케이팝의 주 소비층이고, 케이팝은 뉴진스를 기점으로 자연스러움 역시 미덕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연출 포인트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다른 장르에 비해 아티스트의 캐릭터부터 보이는 모습까지 기획과 연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씬이기 때문이다. 또한 케이팝 씬이 공유하는 정서로보나, 아티스트의 평균 데뷔 연령이 어린 만큼 본모습을 드러내는 부분은 일종의 리스크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고 어디까지 팬들의 환상을 지켜내는 선을 벗어날 수 있는지, 이해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Z세대들이 공개된 SNS를 떠나 디스코드나 텔레그램 같은 폐쇄적인 플랫폼으로 옮겨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에서 Fred again..처럼 개인 디스코드 채널을 만든다거나, 거의 모든 아티스트의 가장 기본적인 소통창구인 SNS를 접기도 힘들다. 때문에 케이팝이라는 씬 혹은 각 아티스트에 맞게 받아들여야 하는 과제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최근 케이팝 콘텐츠의 흐름을 관찰해 보면 이미 콘텐츠 마케팅 혹은 프로덕션으로 잘 풀어내고 있는 사례들이 있다. 첫 번째는 투어스의 부계정이다. 그룹 투어스의 부계정 @247shared는 개인계정의 멤버버전의 계정처럼 운영되고 있다. 음악을 추천한다거나 서툴지만 그만큼 직접 편집한 티가 나는 브이로그 그리고 일기까지 앨범 활동에 국한되지 않고 공식 계정에 올리기에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비리얼 역시 프로모션 콘텐츠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에스파는 비리얼을 활용한 이미지로 콘셉트 포토를 공개했고, 전소미는 케이팝 아티스트 최초로 비리얼 공식계정을 만들어 소통하고 있다. 그 밖에도 여러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비리얼 이미지를 공유하며 일상 속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진솔함과 자연스러움을 프로덕션 속 연출이나 마케팅과 적절한 밸런스를 맞춰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힙레 챌린지’로 큰 사랑을 받은 NCT 마크의 첫 정규앨범 [The Firstfruit]이 그러한데,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곳을 기반으로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앨범의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당근 마켓 계정을 직접 활용한 티저 이미지를 선보여 친근감과 신선함을 고루 전하며 아티스트와의 심리적 거리를 확 줄여주었다.
NCT WISH 역시 이런 부분에서 독특한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는데 최근 학교부터 회사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공감을 살 수 있는 역할과 공간에 과몰입해 주변에 있을법하면서도 없는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재미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콘셉트에서는 인스타그램 공지채널을 통해 마치 같은 학교 같은 반 동급생처럼 거리낌 없이 팬들과 소통했다. 인스타그램 공지채널 역시 DM과 동일한 레이아웃으로 아티스트와 DM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만큼 비교적 프라이빗함을 자아내는 마케팅에 자주 활용하는 추세이다.
단순한 이상적인 아이돌보다 어딘가 웃기고 귀여운 주변 친구같이 팬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이들은 급기야 멤버 사쿠야의 깜짝 생일파티 영상 촬영에서 돌발상황으로 사쿠야가 바지를 입지 못하고 등장해 버렸음에도 리얼하게 일어난 해프닝을 놓치지 않고 사쿠야가 좋아하는 핑크바지로 합성해 업로드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그렇게 팬들에게 큰 충격과 즐거움을 선사한 ‘핑크바지 사건’은 이후 올라온 생일 기념 단체 사진에서 사쿠야가 실제 합성된 핑크바지를 입고 등장하며 유쾌하게 마무리되었다. 가야 할 방향과 원하는 모습이 명확히 정해졌기에 할 수 있었던 결정이다.
해당 트렌드의 흐름을 지켜보며, 글의 초입에서 언급한 이유로 계속해서 Z세대들이 SNS를 벗어나는 현상이 이어진다면 오히려 오프라인 콘텐츠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지 않을까 싶다. 대표적인 오프라인 콘텐츠인 팝업스토어가 앨범의 콘셉트로 꾸며진 공간과 프로그램을 경험하며 몰입감을 높이고 있고 아티스트를 만나는 형태로는 팬사인회나 팬미팅, 콘서트 등이 있는데 몰입감이 높다는 부분은 자연스러움과 친근함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 여기에 아티스트와의 진솔한 소통이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기획을 해본다면,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을 시작함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된 관심사에 따른 새로운 오프라인 관계와 경험을 추구하고 진솔한 소통에 대한 갈증을 겪는 Z세대를 사로잡을 수 있는 오프라인 콘텐츠가 등장할 수도 있다.
물론 케이팝에서 오프라인 콘텐츠와 아티스트와의 만남은 위기관리 측면에서 정말 예민한 사항이지만, 결국 이러한 제안의 본질이자 핵심은 신뢰와 연결감이다. 조금은 부족할지언정 그런 모습을 공감 어린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공유하며 쌓아나가는 신뢰관계, 그리고 아티스트와 내가 같은 감정과 경험 공유하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중요한 것이다. 비연예인인 친구나 지인과의 SNS 소통의 빈도도 줄어들고 고민하는 케이팝의 주 소비층에게 아티스트란 물리적으로든 심적으로든 훨씬 더 먼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소통의 형태를 제공해 주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설령 그것이 연출된 것일지언정 장기적으로 아티스트의 활동을 고려했을 때도 오랜 기간 팬들과 신뢰관계를 쌓아나가야 하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활동에 녹여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와 성숙한 소통을 기반으로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아티스트이자 사람이 되는 것이 더욱 우선이겠지만 말이다.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아티스트는 가상의 캐릭터가 아닌 사람으로서 대중들과 관계를 맺고 사랑과 관심, 나아가 신뢰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Z세대가 행동으로 보여주는 진정성 있는 소통에 대한 갈망을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By. 교야